# 387
387화. 빙정(氷晶)과 흑봉(黑峰)
미간을 좁힌 한립이 다시 술법을 펼치려는데 노인이 먼저 움직였다.
음산한 얼굴로 기괴한 수인을 맺더니 두 손에서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 머리 위의 보호막에 쏘아 보냈다.
동시에 남색 보호막이 수축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무수히 많은 수정조각들이 공중에서 반짝거리며 방원 십여 장을 뒤덮었다.
노인이 단호한 얼굴로 한립을 가리켰다.
“가라!”
퍼퍼퍼퍼펑!
하늘을 뒤덮을 듯 반짝이던 수정조각들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데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이게 영술이란 건가? ’
한립은 속으로는 놀라면서도 즉시 바구니 고보를 발동시키고 다시 한 번 한 무더기의 삼색 서금충을 불러내 그를 보호하게 했다. 이번에는 서금충들이 한립의 주위를 미친 듯이 돌아 물 샐 틈 없는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바구니 고보는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하얀 빛을 품으며 수정조각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결과 바구니 고보와 맞닥뜨린 수정조각들은 하얀 기운에 휩쓸려 흡수당하고 말았다.
곧 수정조각들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좌우로 갈라지더니 바구니 고보를 피해 한립을 보호하고 있는 서금충들을 향해 날아왔다.
펑! 퍼펑! 펑!
둔중한 울림이 연달아 들려왔고 뾰족한 수정조각들에 당장이라도 서금충들이 뚫릴 것 같았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서금충들의 보호막이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목 노인도 이것을 보고는 찔끔하고 말았다.
지금 사용한 빙정술(氷晶術)은 수사들이 쓰는 오행도술 중의 빙우술(氷雨述)과 비슷했지만 수량과 힘에서 월등히 뛰어났다. 모든 수정조각들이 그의 몸에서 분출된 한기가 변한 것이라 굉장히 날카롭고 기이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대부분 수사들이 보호막으로 이것을 막으려다 수정조각에 당하고는 했다. 그런데 수정조각들이 벌레들 틈으로 사라지고는 아무런 소식이 없자 노인도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머뭇거리다가 의식을 퍼트려 사정을 알아보려는데 머리 위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려왔다. 순간 두 귀가 멍해지며 눈앞이 깜깜해져 하마터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릴 뻔 했다.
목 노인이 서둘러 두 손을 모아 몸에 부딪혔다. 곧 그의 몸에서 하얀 보호막이 하나 더 생겨나며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은색의 거대한 종이 언제 다시 기세를 회복했는지 거대한 음파를 울려댄 것이다.
이때 은빛이 반짝이며 또 한 번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노인이 아니라 청색 거검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남색 그물망을 향해서였다.
“안 돼!”
노인이 즉시 무언가를 깨닫고는 재빨리 조취를 취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남색 그물망이 종의 음파를 맞아 산산이 끊어지고 구속을 벗어난 거검이 거침없이 노인을 내려치고 있었다.
날카로운 검날이 닿기도 전에 엄청난 압력이 먼저 밀려들었다.
비록 보호막이 있었지만 거검을 막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노인이 수십 장 밖으로 물러나며 간신히 거검의 공격을 피했다.
이어 그가 주저 없이 구슬을 향해 손을 뻗어 불러들였다. 노인이 머리 위의 구슬에 정기를 분출해 다시금 보호막을 형성하고는 신중한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상대의 벌레 떼들은 이미 웽웽거리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 다시 한립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한립이 한 손에 수촌 크기의 남색 얼음꽃을 들고 노인을 응시했다. 그의 서늘한 시선에 노인이 놀랐으나 곧 시선을 한립이 들고 있는 얼음꽃으로 옮기곤 경악했다.
빙화는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아름다운 빙화의 겉모습은 아무 상관없었지만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영력은 얼음 속성 영술을 수백 년간 수련해온 그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아주 낯선 종류의 냉기였지만 그는 이미 두려움이 싹 트기 시작했다. 노인이 입을 비죽이며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본 상사의 영술을 그것으로 깨버린 것입니까? 어떤 보물이기에 그리 신통한지 들어나 봅시다.”
“보물이라. 뭐 그 비슷한 겁니다. 당신이 방금 사용한 영술에 대해 설명해 주면 저도 설명을 해드리지요.”
“우리 법사들의 영술에도 관심이 있습니까? 재미있는 분이군요!”
노인이 차차 원래의 음산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한립은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손에 쥔 빙화를 꺼림칙해 하고 있었다.
한립이 대답하기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노인도 크게 화가 치밀었다. 목 노인이 냉소하며 허리춤을 두드렸고 검은 빛이 반짝이며 저물대 속에서 돌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거무튀튀한 것은 놀랍게도 작게 수축한 산(山)이었다.
한립이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노인은 이미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내던지 산은 검은 빛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커지더니 수십 장의 크기로 불어났지만 기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커졌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생각할 것도 없이 거검을 향해 손짓하니 거검이 진동하며 산의 정상을 향해 사납게 떨어져 내렸다.
쿵!
굉음과 떨어져 나간 암석 조각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푸른 빛과 검은 빛이 얽혀 들었다.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검은 산의 정상을 여덟 장 가량 파놓기는 했으나 두 동강 내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게다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다시 파여 나간 부분이 매워져 다시 거검이 내려치기 전에 원상태를 회복했다. 이제 백여 장 가까이 커진 산봉우리는 거의 진짜 산봉우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규모면 아무리 서금충으로 만든 보호막이나 충갑이 있더라도 가루가 될 것 같았다. 거검이 계속해서 검은 산봉우리를 내려치고는 있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노인이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산봉우리가 ‘펑!’ 소리와 함께 돌연 한립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사나운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한립은 등 뒤에서 천둥치는 소리와 은빛이 번뜩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수십 장 밖에서 한립이 나타났을 때는 그의 등에 은색 날개가 달려 있었다.
“허!”
한립의 순간 이동을 본 노인은 펄쩍 뛸 판이었다. 그가 안색이 급변해서는 순식간에 몸을 튕겨 한립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제 목 노인도 확신했다. 눈앞의 상대는 절대 일반적인 원영 초기 수사가 아니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자신이 잡아둘 상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무 공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목 노인이 속으로 후퇴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립은 검은 산봉우리를 보고 있었다.
저런 기이한 능력을 지닌 보물은 한눈에 보아도 목 노인이 제련해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마 상고시대 유적지에서 찾아낸 고보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보물로 공격하면 원영 후기의 수사라도 멀쩡하지는 못할 것이니 이것만 차지하면 공격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노인의 수중에 있는 어풍차도 아주 탐나는 물건이었다. 노인을 보는 한립의 눈빛이 점점 서늘해졌다.
이 정도 싸워봤으니 상대의 공법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거기다 하늘이 자신이 자신을 도운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너무 운이 없는 것인지 상대의 공법은 전부 얼음 속성이어서 건람빙염을 흡수하고 있는 그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저 순간이동 하는 검은 산봉우리가 상대의 가장 강한 공격 무기인 것 같은데 풍뢰시를 착용한 그가 당할 리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상대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고민을 마친 한립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빙화가 빛을 터트리며 신속히 녹아내렸고 계란 크기의 남색 불꽃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립이 다른 한손으로 거검과 은색 종을 차례로 가리킨 후 풍뢰시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손에 남색 불꽃을 들고 나타났을 때는 이미 노인과 백 여 장 거리로 가까워져 있었다.
거검과 은색 종이 빛을 키우더니 쾌속으로 노인에게 날아들었다.
도중에 거검이 갑자기 해체되며 수 백 자루의 날카로운 검기들이 노인의 보호막으로 쏟아져 내렸다.
푸푸푸푸푹!
푸른 검기가 끝없이 노인의 보호막을 공격했고 은종은 음파를 방출해 보호막을 때렸다.
연달아 공격들이 쏟아졌지만 노인은 긴장을 했을 뿐 당황하지는 않았다. 머리 위의 구슬에 대량의 영력을 쏟아 부어 보호막을 두껍게 만들고 한 손으로 재빨리 수결을 맺어 남색 빛을 분출했다.
남색 빛이 그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1척 두께의 네모난 얼음방패를 형성했다.
얼음 방패까지 만들어 놓고 한결 마음이 편해진 노인은 다른 손으로 검은 산봉우리를 향해 손을 뻗자 흑봉이 검은 빛줄기로 변해 되돌아왔다.
물론 한립의 순간이동을 경계하며 계속 주변을 주시해 기습을 대비했다. 원영기 법사의 풍부한 실전 경험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꽈과광!
천둥소리가 치며 한립이 노인의 측면 십 여 장 거리에 등장했고 손에서 대량의 푸른 실을 촘촘하게 뿜어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청명침 부보를 쓴 것이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라 노인이 다른 수를 쓰기도 전에 침들이 남색 방패를 뚫고 얼음방패를 공격했다.
파파파파팟!
비가 내리는 듯한 바늘의 공격 소리가 그치고 하얀 빛이 크게 솟구치며 바늘들이 꽁꽁 얼어 떨어져 내렸다.
목 노인이 쾌재를 부르며 입을 벌려 지척에 있는 한립에게 남색 빛기둥을 뿜었다. 당연히 한립은 은빛을 번쩍이며 또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는 동안 검은 산봉우리가 노인의 머리 위로 돌아와 떠있었다.
노인이 법결을 산봉우리에 쏘아 보냈고 산 아래에서 거무튀튀한 기운이 흘러나와 노인을 공격하던 수백 자루의 검기와 은색 종을 휘감았다.
거침없이 맹공을 하던 한립의 보물들이 그 안에서 크게 기세가 꺾여 노인의 깜빡거리던 보호막도 안정을 되찾았다.
안심을 한 목 노인이 손을 뒤집어 어풍차를 꺼냈다. 작게 변한 그것을 던지자 곧 하얀 빛과 함께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상대의 빙화가 녹아 남색 불길로 변한 후부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극히 빠른 속도로 어풍차에 도착한 목 노인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가 구슬과 흑봉을 회수하려는 순간, 어풍차 바로 옆에서 천둥이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번갯불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한립이 나타난 것이다.
“허!”
크게 놀란 노인이 손을 들어 술법을 펼치려는데 한립이 먼저 건람빙염을 쥐고 있던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치며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노인은 반사적으로 주위에 얼음 방패를 형성했고 이에 한립의 손과 방패가 맞부딪쳤다.
“크큭!”
노인이 희색을 드러냈다.
맨손으로 정빙순(晶氷盾)을 공격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자가 아닌가! 상대의 팔뚝까지 순식간에 얼어붙어 떨어져 나갈 것이다.
펑!
하얀 빛과 남색 빛이 동시에 몸집을 키웠다.
노인은 순간 눈앞이 밝아지며 가슴이 서늘해졌는데 남색 불길을 품은 한립의 손이 귀신처럼 이미 그의 가슴에 얹어져 있었던 것이다.
미처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기이한 남색 불길이 그의 몸으로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의 몸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여 그 안에 갇혀 버렸다.
공포에 질린 노인이 어쩔 수 없이 수 백 년 간 수련한 단전의 불길을 일으켜 목 부위에서 간신히 남색 한기를 막아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립은 오히려 피식 웃고는 다른 손을 펼쳤다. 이에 푸른 검기가 나타나더니 재빨리 노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목 부위에서 치열하게 공세를 펼치던 남색 한기도 승기를 잡아 노인의 입을 포함한 얼굴의 반절을 얼려냈다.
목 노인이 절망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의 두개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며 노인과 똑같이 생긴 작은 원영이 나타났다.
한립이 바로 입을 벌리자 금색 벼락이 목 노인의 원영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목 노인의 원영도 지체 없이 남색 빛을 흩날리며 사라져 금색 벼락은 허공을 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