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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85화 (142/2,000)

# 385

385화. 대상사(大上師)

전음부를 보내자 동시에 기운을 숨긴 수사들은 돌풍이 가장 맹렬한 중앙을 피해 모습을 감추었다.

왕선과 연여언은 수행이 부족해 왕천고가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함께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한립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의 의식에 왕천고의 행적이 어찌 안 보이겠는가.

백여 리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당장이라도 어디에선가 요괴나 마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컴컴하고 흉흉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바람 속에서 소용돌이가 하늘로 치솟았지만 이미 몸을 숨긴 이들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용돌이에는 법사 여러 명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은닉술을 펼치고 있던 한립도 근거리에 다가가자 의식으로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돌풍은 그들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법사들이 한립 등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수사들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며 그들의 뒤로 빠지려는데 가장 선두에 서있던 남롱후가 급히 전음을 보냈다.

“옆을 조심하시오!”

한립이 즉시 고개를 돌렸다가 눈썹을 꿈틀했다.

두께가 백 장은 될 법한 소용돌이 기둥이 그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크기를 운용하는 법사라면 수행이 보통이 아닐 터.

‘설마 우리를 발견한 건가? ’

한립이 길게 호흡을 내쉬자 몸 안의 청죽봉운검들이 꿈틀거렸다.

법사의 명성이야 들어온 지 오래지만 실제로는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만나보니 전혀 반갑지 않았다.

다들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소용돌이 기둥을 지켜보았고 몇몇은 이미 법보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거대 소용돌이 기둥은 그들을 스쳐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이에 남롱후는 한시름 놓았는데 그 순간 사방이 모래바람으로 어두워지며 수사들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주의합시다. 이 모래 바람은 뭔가 이상하군요. 의식을 멀리 보낼 수 없으니 흩어져선 안 되겠어요.”

남롱후가 다시 차분히 중얼거렸다. 물론 그들의 수행으로 이런 모래바람을 날려버리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였지만 그러면 그들의 존재가 노출된다.

모래 바람이 곧 사라질 거라 믿고 한립 등의 수사들은 은닉술을 펼치며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 했다.

그런데 반 시진도 되지 않아 한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가 신형을 멈추고 허공에 떠서는 도처를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롱후 등이 놀라 그를 따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 수사, 어찌 가지 않는 것입니까?”

“다른 분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노부인이 묻자 한립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무슨 뜻이오?”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가 신형을 번뜩이며 한립 옆에 다가왔다. 왕천고와 백의 노인 역시 그의 말에 서로를 쳐다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이제 제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래 모래바람을 지나왔는데 어찌 법사들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법사들이 다들 한 곳에 뭉쳐 움직인다 치더라도 주변 풍경 또한 변화가 없는 것은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게 무엇을 뜻하는 지 모두 아시겠지요!”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누군가 금제를 펼쳐 우리를 가두었군요!”

까무잡잡한 남자도 얼굴색이 어두워져서는 주변을 살폈다.

“한 수사의 말대로 저도 조금 이상하다 여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상대가 우리를 감지하고는 영술을 펼친 모양이에요. 전면전을 피할 수 없나 봅니다.”

남롱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립의 말에 동조했다.

수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을 금제에 가둘만한 법사라면 고계 법사라는 소리였고 거기다 지원군이라도 도착하면 큰일이었다.

더 이상 노부인 등 원영기 수사들은 각자 다채로운 빛을 뿜어대며 더는 존재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립도 한 팔을 펼쳐 푸른빛 줄기가 튀어나오자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곧 모래폭풍처럼 보였던 허공에 파문이 일며 얇은 종잇조각처럼 찢겨졌다. 너무 쉽게 금제가 깨지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의아해할 때 한립은 찢겨진 틈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 금제를 빠져 나왔다. 확실히 금제 바깥에는 여전히 모래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부자연스러운 압력은 사라졌다. 한립은 한시름 놓았지만 주변을 훑어보며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 지며 모래폭풍의 어딘가를 응시했다. 눈동자에 은은하게 남색 빛이 일렁이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평온한 표정이었다.

“한 수사, 가만히 서서 뭐하는 겁니까.”

뒤따라 나오던 남롱후가 한립이 어딘가를 응시하며 꼼짝 않고 서있자 의식을 퍼트려봤지만 아무런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 중이었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돌리며 담담히 답했다.

“모래폭풍 안에서는 의식도 퍼트리기 힘든데 열심히 쳐다본다고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본 후에게 정성반(定星盤) 이보(異寶)가 있으니 써봅시다.”

남롱후가 허리춤을 스쳐 붉은색 옥쟁반을 꺼냈다.

그가 한 손으로 이보를 들고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자 손가락에서 금빛이 튀어나와 둥근 옥쟁반에 닿자 금빛과 붉은빛이 섞여 옥쟁반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옥쟁반 위로 금빛 별들이 떠오르며 마치 밤하늘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한립이 넋을 잃고 보는 동안 백의 노인 등 다른 수사들도 합류했다.

남롱후가 옥쟁반에 기운을 쏟다 한 손을 뒤집자 순식간에 이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본 후를 따라오시지요!”

말을 마친 남롱후가 금빛으로 변해 먼저 어딘가로 쏘아져 나갔고 그 뒤로 노부인, 무표정한 얼굴의 수사 등이 즉시 그를 쫓았다. 아무래도 그들은 이 원영 중기 수사의 능력을 꽤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왕천고 역시 다시 검은빛을 뿜어 왕선과 연여언을 한데 엮어 뒤따랐다.

그는 한립을 지나치며 힐끗 시선을 주었는데 한립이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연스레 마주보았다. 검은빛 사이로 은은하게 왕선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보면 아주 얌전한 성격인 줄 알겠어? ’

반대로 연여언은 빛나는 눈동자로 한립을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까지 홀로 남은 한립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푸른 빛줄기로 변해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그들이 머물던 자리를 슬쩍 돌아보는데 표정이 묘했다. 한립이 조그맣게 냉소하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립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바라보던 곳에 눈부신 노란빛이 일더니 거무튀튀한 구멍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새까만 빛의 요충이 기어 나왔다.

이 요충은 굉장히 매우 커서 길이만 여섯 장은 되었고 너비는 네 장 정도 되는 타원형의 요수였다.

세모난 머리에서 깜빡이는 열댓 개의 눈과 더듬이 그리고 한 쌍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등에는 네 개의 투명한 날개가 끊임없이 파닥거렸다.

그런 요충의 등에 세 명의 인영이 타고 있었는데 한 명은 온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댔고 다른 한명은 청록색 안개로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한 명은 은은한 남색 번개가 전신에서 번뜩거려 번개의 신이 세상에 강림한 느낌이었다.

“대상사(大上師)님, 이렇게 저들을 놔줘도 되겠습니까?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백광으로 빛나는 이는 한립 등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우려를 표했다.

“흥! 놔주지 않으면 겨우 이런 환영진으로 저들을 얼마나 가둬두겠더냐?  저들 중 대부분은 원영기 노괴들이다. 각각이 나와 맞먹는 힘을 지닌 존재란 말이다. 가장 약한 두 명도 결단 후기의 수사이니 우리 황사부만으로 저들을 막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녹색 안개 속의 인영이 서늘하게 소리치는 것이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풍부(天風部) 목 상사님 쪽에는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저희에게 어떤 수를 써서든 저들을 붙잡아 두라 이르지 않았습니까?  이번 선봉에 선 부락들은 그들이 잠시 동안 지휘하기로 한데다 이미 다른 대상사님께도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부락의 성물인 마진번(魔塵幡)을 발동하면 저들을 죽이지는 못해도 가둬두는 것은 가능할 텐데요.”

백광으로 빛나는 인영의 제안에 녹색 안개 속의 인영이 대노하며 질책했다.

“허튼 소리! 36개의 마진번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더냐! 멸족의 위기가 아니고서는 절대 함부로 발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마진번이다. 게다가 상대가 저렇게 강한데 만일 반격이라도 당해 깃발이 상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부족의 성물 없이 우리가 십대부족 연합군의 지위를 유지할 성 싶더냐?  다른 부족의 멸시를 받아 멸족의 위기에 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제자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백광 속의 법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서둘러 사죄하였다.

“상사의 지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번만은 봐주겠다. 어차피 우리가 그냥 놔준 것이 아니라 적의 능력이 대단해 놓친 것뿐이다. 목 대상사의 생각이야 뻔하지. 우리 황사부로 하여금 적을 가두게 하고 둘이 양패구상을 한 틈을 파 다른 대상사들과 이득만 취하겠다는 거 아니냐! 공로도 전리품도 그들 몫이 되겠지. 이번 기회에 우리 황사부에 보복을 하려는 게야!”

녹색 안개 속의 대상사가 하는 말로 미루어 보아 목 상사에 대한 인상이 아주 나쁨을 알 수 있었다.

“목 상사가 저희를 겨냥하고 얕은 수를 쓰고 있는데다, 어차피 두 부족은 원래 우호적인 관계도 아닙니다. 저희는 연합군에 속한 것이지 상명하복을 해야 하는 주종관계는 아니니 전력 손실은 막대하고 득도 없는 일에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천풍부의 법보인 어풍차(御風車)의 소름끼치는 속도면 저들을 쫓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번개가 번뜩이는 모란 법사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어풍차의 속도는 확실히 놀랍지. 허나 충분한 인원을 모아 출발을 하려면 늦을 수도 있을게다.”

녹색 안개 속의 대상사가 이어 중얼거렸다.

“쫓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들이나 우리나 별 상관없겠지만. 한 가지 의문인 것은 가장 먼저 진을 깨고 나온 젊은 수사가 아무래도 수미공동(須彌孔洞) 속의 우리를 발견한 것 같은데…… 기이한 일이로다. 이 수미충(須彌蟲)은 상고시대부터 유명한 기충으로 전투력은 강하지 않아도 공간에 균열을 일으켜 몸을 숨기는 데는 천부적인 것을. 아직 유충이라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크더라도 원영 중기 수사들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원영 초기의 수사가 알아보다니. 그 청년은 절대 평범한 수사가 아니다. 분명 어떤 특수한 비술을 익혔을 게야.”

* * *

한립은 남롱후 등의 뒤쪽에서 날아갔다. 수십 리의 거대한 풍진을 빠져나오는데 법사를 한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의 명을 받고 일부러 그들을 막지 않은 것이다.

이에 한립은 금제를 깨고 나올 때를 떠올렸다.

사방의 모래바람에 막혀 의식을 퍼트릴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영력을 눈으로 돌려 명청영안를 시도해 보는 중이었다. 명청영수로 눈을 씻은 지도 여러 해이니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결과는 그의 예상을 초월했다. 누렇고 뿌옇던 시야가 한순간에 맑아진 것이다. 한립은 더없이 기뻤지만 곧 멀지 않은 곳에 거무튀튀한 원형의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다.

이에 대량의 영력을 불어 넣은 한립은 검은 그림자 속에서 몇 개의 인영을 식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지금의 명청연안의 한계였다.

어찌 되었든 한립은 몇몇 법사들이 주변에 은닉해 몰래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기이한 술수를 사용해 이렇게 많은 원영기 수사들의 이목을 피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저런 능력을 발휘할 자들은 법사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한립 일행의 수행이 너무 강해 바로 맞붙기 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공격을 감행할 배짱이 없는 것처럼 한립의 일행들도 어차피 그곳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고계 법사가 출현해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나 대량의 법사 군대가 그들을 포위하는 것이나 아찔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남롱후 등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속도를 높여 날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겨우 반나절 만에 모란 초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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