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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82화 (139/2,000)

# 382

382화. 혼석과 상고시대 괴뢰술

천정 진인도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서늘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더욱 조심하면서도 태평한 얼굴을 가장해 다시 한 번 저물대를 스쳐 손바닥만 한 옥함을 꺼냈다.

옥함이 열리고 도사 앞의 탁자 위에는 조금 전의 것보다 훨씬 큰 수정이 놓였다.

천정 진인의 서늘한 얼굴이 흔들리더니 크게 놀랐다.

“이렇게 큰 혼석을 대체 어디서 얻은 겝니까?  더 있는 것입니까?”

노도사가 진지하게 물어왔지만 한립은 그저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한 수사의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수사도 이것들을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노도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고 한립은 이미 예상한 바라 바로 제안에 응했다.

“수사의 말대로 빈도는 몇몇 친우들과 상고 시대 수사의 유적지를 찾아 상고시대 괴뢰술의 제련법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꼭두각시들은 강력한 만큼 더없이 진귀한 재료를 필요로 하지요. 게다가 반드시 혼석이 있어야 제련에 성공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허나 그간 혼석을 찾으러 다녀도 몇 개밖에 구하지 못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교환회를 주최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제 수사의 차례입니다. 이렇게 많은 혼석은 어디서 난 겝니까?”

천정 진인이 냉담하게 물었다.

“혼석의 출처는 간단합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혼석이라 불리는 것도 몰랐지만 음명수라는 요수의 체내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얻게 된 것들입니다.”

“음명수?  처음 들어보는데 어디에 있는 요수입니까?”

도사가 눈을 빛내며 조금 다급히 물어왔다.

“진인이 얻은 괴뢰술을 한 모도 볼 수 있겠는지요?”

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한립은 차분히 그리고 느긋하게 물었다.

한립의 말에 늙은 도사는 다급한 기색을 지우고 다시 얼굴을 굳혔다.

“지금 빈도를 협박하는 겝니까?”

“협박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떤 실질적인 대가도 없이 무상으로 귀한 혼석을 몇 개나 넘겨 드렸습니다. 만일 수사께서 불편하셨다면 방금 질문은 못들은 걸로 하시면 됩니다. 이미 드린 혼석은 돌려받지 않을 것입니다.”

한립은 담담했지만 천정 진인의 안색은 혼란스러웠다.

“내 괴뢰술을 넘긴다면 수사는 바로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겠지만, 음명수에 대한 정보는 거짓이 아닌지 빈도가 어찌 확인하겠습니까?”

“솔직히 수사가 음명수가 어디에 서식하는지 안다고 해도 갈 방법이 없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 운이 좋아 들어간다고 해도 살아나오지 못할 테니까요. 당년 저도 운이 좋아 겨우 살아나왔습니다. 수사께서 제 말은 믿지 못하셔도 혼석은 분명히 진짜가 아닙니까. 제가 지닌 혼석의 일부를 괴뢰술과 교환한다고 해도 수사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괴뢰술을 지니고 있다한들 혼석이 없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의 온화한 언사에 천정 진인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조급한 기색을 비추었다.

“좋습니다. 수사가 말하는 혼석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을 할 수 없지만 혼석이라면 다르지요. 일단 얼마만큼의 수량으로 괴뢰술과 교환을 할 것인지 제시해 보십시오. 수량이 너무 적다면 빈도가 홀로 괴뢰술을 독점하는 것이 나을 테니.”

“일단 수사가 지닌 상고시대 괴뢰술의 가치를 따져봐야지요. 만일 낮에 보여주신 꼭두각시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면 저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한립은 내심 좋아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다.

“낮에 보인 것들은 그저 유적지의 잔해 속에 있던 것입니다. 수사의 뜻은 더 위력이 높은 꼭두각시를 제련할 수 있다면 거래할 혼석의 양도 많아 질 거란 말이군요.”

“바로 그러합니다! 원영기 이상의 수사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꼭두각시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혼석 2, 30개를 내드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부 처음 거래했던 혼석의 크기로 말입니까?”

천정 진인은 진심으로 구미가 당기는 것 같았다.

‘원영기 수사를 상대할 만한 꼭두각시를 제련할 수 있다는 건가? ’

한립이 기쁨 속에 장담했다.

“절대 허언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이게 바로 그 상고시대 괴뢰술이 담긴 옥간입니다. 빌려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수사에게 드리지요.”

도사는 재빨리 저물대 속에서 새하얀 옥간을 꺼내서 한립에게 주었는데 얼굴에 간사한 표정이 스쳤다. 한립은 상대의 거동에 놀라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의식을 불어넣어 옥간을 살폈다.

한참 후 한립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의식을 회수하곤 천정 진인을 응시하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분명 원영 중기 수사의 공격에 가까운 신기를 발휘하는 꼭두각시도 기재되어 있을 텐데 수사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습니까?”

노인은 다 안다는 듯 웃고 있었다.

“흥! 부합하지요. 하지만 그런 꼭두각시를 제련하기 위한 주재료가 뜻밖에도 만년 된 철목(鐵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재료일 뿐만 아니라 부재료 역시 구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더군요. 몇몇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어디 가서 찾으라는 것입니까?”

한립이 노한 기색을 드러냈다.

“헤헤! 그 점에 관해서는 빈도도 모르는 일입니다. 허나 각각의 재료에 대한 도안이 그려져 있으니 인연이 닿으면 구할 날이 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 천정 진인 쪽이 한결 느긋해졌다.

“천정 수사께서는 이런 재료들을 모두 모은 것인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혼석을…….”

“빈도는 직접 꼭두각시를 제련한다 말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저 고대 수사의 유적지에서 찾아낸 미완성품을 완성해 쓰려던 것이었습니다. 혼석만 융합하면 시도해볼 만하지요.”

“…….”

마지막에서야 가장 중요한 사실을 실토하다니 말로는 당해내기 힘든 노인네였다.

“그럼 괴뢰술을 넘겼으니 수사께서는…….”

“드리지요!”

도사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을 맺기 전에 한립이 편치 않은 기색으로 소매를 털었다 녹색 빛이 반짝이며 혼석 한 무더기가 허공에 나타났다.

수정은 정말 기이한 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천정 진인이 크게 기뻐하면서도 조금 민망한지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한립이 손을 저어버렸다.

“이번 거래는 한 모가 크게 손해를 보았지만 수사를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지요.”

한립은 울적한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늙은 도사가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그리고 수정의 개수를 확인하고는 저물대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에게는 무용지물인 괴뢰술 서적과 이렇게나 많은 혼석을 바꾸었으니 대만족이었다. 이 정도 수량이면 미완성 꼭두각시들 중 몇 개는 완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혼석을 지닌 한립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늙은 도사는 몰랐지만 울적한 얼굴로 건물을 뛰쳐나간 한립은 손에 옥간을 들고는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만년 된 철목이라니,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에게는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구하기 어렵지 않은 재료였다. 게다가 다른 보조 재료 역시 그의 기억대로라면 허천전에서 가져온 꼭두각시들의 잔해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었다.

만일 운이 좋아 원영기 수사를 상대할 만한 꼭두각시들을 여럿 제련해 낸다면 다시금 괴뢰술이 그의 비장의 무기 중 하나로 거듭나는 것이다.

결단기 수사급의 꼭두각시들도 이전처럼 몇 백 마리를 제련해 낸다면 원영기 수사에게 한방 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각각 제련하는데 웬만한 법보 제련만큼의 비용이 들 것이다.

이전에 천죽교의 3급 꼭두각시를 수백 마리 만들어 낼 때도 거의 파산할 뻔했고 이를 위해 요수의 부속도 상당 부분을 처분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 얻은 꼭두각시 제련에 드는 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 그가 전천성 서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꼭두각시 같은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자신의 본명 법보의 위력을 높이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일단 법보의 위력이 증가되면 그 효용은 무궁무진 했으니까.

경정의 주인이 원하는 것이 너무 대단한 것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지닌 요단을 가지고 교환할 수 있다면 가장 최적의 결과였다.

* * *

반 개월 후, 백년에 한번 열리는 교환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고 천남 각지에서 몰려온 수사들이 전부 전천성 안으로 들이닥쳤다. 며칠간 연달아 열린 경매소의 열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특히 성 내의 경매소에서는 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수많은 수사들이 가산을 탕진하게 만들었다.

“76만 영석! 경정은 수사에게 돌아갑니다!”

경매소 대청 앞에 선 한 중년 수사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흑단목 테이블 위에 놓인 비취색 쟁반 위에는 복숭아 크기의 금빛 광물이 놓여 있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은색 장포에 얼굴이 모호한 수사가 일어나 영석을 지불하고 경정을 받아갔다. 경매를 지켜보던 한립은 한숨을 내쉬며 경매소를 나와 버렸다. 이후 어떤 물건이 경매에 오르던 그와는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 날 밤 한립은 손쉽게 경정의 주인을 찾아냈지만 상대는 7급 요수의 알이 아니면 전설로만 들어오던 법보 재료인 파일신니(化逸神泥) 중 하나랑만 물물거래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가 말하기를 지니고 있는 경정의 크기가 작아 얻어 봐야 비검 예닐곱 개에나 쓸 수 있을 분량인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 혹시 몰라 경매에 참여한 한립은 가격이 50만 영석을 넘었을 때 철저히 포기해 버렸다. 보아하니 대경검진은 단시간 내에는 실현될 수 없을 듯 했다.

한립은 다시 경매소로 돌아가지 않고 시장을 돌며 상고 시대 꼭두각시 제련에 필요한 부 재료들을 매입했다.

비록 아직 재료가 부족하고 만년 된 철목을 배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으나 원영기 수사에 맞먹는 꼭두각시를 제련해 내기만하면 그의 전투력은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전천성의 어딘가로 향했다.

벌써 교환회 나흘째였으니 일전에 남롱후가 말했던 때였다. 그는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옥간에 적힌 곳을 찾아 걸어갔다.

한립이 의식으로 미리 살피자 머지않은 곳에 평범해 보이는 석조 건물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겨우 방 두 개를 지닌 단출한 건물이었다.

그가 걸어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대문이 웅웅거리며 자동으로 개방되었다. 문 앞에는 옥관을 쓰고 자줏빛 장포를 입은 긴 수염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한 수사 드디어 도착했군요. 소개할 수사들이 있으니 얼굴이나 익히십시다.”

남롱후는 벌써부터 한립이 오는 것을 알았던지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군후께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예의상 인사를 건네며 한립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부 상황에 한립이 멈칫했다.

텅텅 빈 건물 안에 어찌 아무도 없단 말이지?

그리고 의식을 이용해 건물을 훑고 나서야 내부에 금제의 파동이 진동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롱후가 한립의 행동을 파악하고 웃었다.

“이런 사소한 속임수로 수사를 속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따라 오시지요!”

말을 마친 남롱후가 수결을 맺자 금빛 안개가 그의 소매에서 쏘아져나갔다.

금빛 안개가 닿은 석실의 한 구석이 기이하게 빛나더니 환영처럼 어둑어둑한 계단을 드러냈다.

남롱후가 걸어가자 한립도 주저하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계단이 길지 않아 발을 들이자마자 크지 않은 지하실을 볼 수 있었다. 몇 개의 월광석이 내는 은은한 빛이 어둠을 밝혔다. 안에는 7명의 수사 중 5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일남일녀는 딱 붙어 서있는 것이 일행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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