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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80화 (137/2,000)

# 380

380화. 부적 조각

그 후 천정진인이 주관한 교환회는 막을 내렸고 수사들이 잇달아 계단을 내려갔다. 한립 등 세 수사도 그 중에 섞여 정룡각을 빠져나왔다.

누각을 나서자 화룡동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선약이 있으시다면 어서 가보시지요. 숙소가 멀지 않으니 기회가 되면 또 보십시다.”

려락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화룡동자가 한립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바로 다른 길로 걸어갔다.

“참 남다른 분입니다.”

그가 멀어지자 한립이 웃으며 하는 말에 려락이 설명을 해주었다.

“남 수사는 어릴 적 어떤 영초를 잘못 먹는 바람에 그 후로 계속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네. 그래도 성격이 담백하고 호쾌해서 왕래를 할 만한 몇 안 되는 수사 중 하나지. 고검문 수사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낙운종에 우호적인 장로이기도 하고 말이야.”

한립이 그 말을 듣고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럼 고검문의 다른 장로들은 낙운종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말이군.’

“한 사제는 이제 어찌할 텐가?  숙소로 돌아가 쉬어도 좋고 아니면 다른 곳을 둘러볼 생각인가?”

“전 필요한 재료가 있어 시장을 잠시 둘러보려 합니다. 혹시 의외의 수확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숨길 일도 아니라 한립은 사실 그대로 말하였다.

“좋은 생각이야. 난 경매소에 내놓을 물건이 있으니 그럼 잠시 따로 움직이세.”

려락이 한립이 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헤어져 각자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 * *

전천성의 몇몇 시장들은 굉장히 규모가 컸다. 운몽산 삼파의 시장과 비교하면 몇 배나 될 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립이 시장 골목을 거닐며 쉼 없이 양쪽의 점포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특수한 재료 몇 가지를 구비해서 고계 부적들을 제련할 계획이었다.

아무리 요수 가죽과 같은 고계 요수의 부속이 남았다고 해도 고계 부적이나 고계 단약을 제련하려면 부수적인 재료들도 필요했다.

또한 강령부를 제련할 준비도 미리미리 해놓는 게 좋았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제부술(制符術)을 높이는 것이다.

아직 강령부 제련에 대한 연구를 마치지는 못했지만 적힌 바에 따르면 위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으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위력이 대단한 만큼 제련의 어려움도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부적 제련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그의 실력을 높이는 것 외에도 부적을 그리는 데 필요한 붓도 새로 구해야 했다.

그러나 붓은 정말 좋은 물건을 찾기 어려워 시장에 있던 가게 2곳을 둘러보았는데 만족스러운 붓을 보지 못했다. 그 중 최상급 붓을 보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고급 부적을 제련하는 데는 충분했지만 강령부 같은 부적을 제련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런 붓은 오직 제부사(制符師)나 쓰는 법기였기에 구하는 사람도 맞지 않았고 있어봐야 저계 물품이 많았다.

왜냐하면 법력이 부족한 제부사가 최상급 붓을 사용했다가는 부적 제련의 성공률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대폭 커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결단에 이른 제부사들은 천남 전체를 통틀어도 몇몇에 불과했고 부적 제련에 사활을 걸면서 원영까지 성공한 수사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 이미 원영기에 든 노괴가 겸사겸사 자신이 필요한 부적 제련에만 숙련되어 있어 전문가는 아니었다. 또한 귀한 재료에 비해 성공률은 극도로 낮았다.

이렇기에 고계 부적이 수도계에서 최상급 법기와도 맞먹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다.

고계 부적 중 오행법술을 담은 것들은 대부분이 법보의 위력에 비하면 약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일단 결단을 하게 되면 오행법술의 수련을 그만두는 수사들도 있을 정도로 법술의 위력이 법보의 위력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계 법술이 완전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립이 알기로 원영기 수사조차 막기 어려운 강대한 위력의 오행법술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법술은 깨달음을 얻어 수련을 하는 과정도 막막했지만 실전에서 펼치기에도 너무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시간에 그냥 법보를 이용해 공격을 하거나 방어를 하는 것이 나았다. 허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모란(慕蘭)의 법사들은 이런 한계를 깨버렸다고 한다.

한립은 원영을 응결한 이후에도 자신의 모자란 자질을 알았기에 가장 기본적인 고계 법술에만 도전했었다. 그렇게 서너 개 정도 익히기는 했으나 법술을 펼치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아마 실전에 사용하려면 목숨이 일곱 개여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저계 부적을 가지고 그랬던 것처럼 수십 장의 고계 부적을 한꺼번에 던져버리면 동급 수사들은 물론이고 원영 후기 수사라도 얼이 빠져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마치 수십 명의 원영기 수사가 하는 공격을 일시에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아무리 공법이 대단하고 방어력이 뛰어난 법보로 몸을 보호하고 있어도 당해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수사들은 이런 수를 그저 상상만 해볼 뿐이었다. 어쨌든 단 한 번의 공격에 수만 개의 영석을 버리는 꼴이니 너무 사치스러운 공격이었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며 거리를 걸었다. 열심히 거리 양쪽에 위치한 점포들을 훑어보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 조금 규모가 큰 곳이어야 이런 희귀한 물건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리에는 한립 외에도 많은 수사들이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물건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인 축기기 수사였고 가끔 결단기 수사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다만 연기기 수사들은 전천성에 거주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한립은 수행을 다시 결단 중기 정도로 감추고 있었기에 축기기 수사들이나 눈치를 보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지 않으며 대형 점포를 둘러본 한립은 실망한 채로 누각 1층에서 걸어 나왔다. 어느새 시간도 반나절이나 지나버렸다.

어둑해진 하늘과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점포의 월광석들을 보며 그가 머뭇거렸다. 그만 숙소로 돌아갈지 아니면 몇 군데 더 돌아볼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다투는 것 같은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시오?  그쪽 낙운종 수사들은 전부 이리 무뢰하오?  남의 집 물건을 망가트려놓고 배상도 안 하시겠다?”

“배상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방금 전에 다른 물건을 사느라 그렇게 많은 영석이 남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소. 거기다 겨우 초급 중계 화운부 한 장이 어떻게 영석 300개나 한단 말이오?  기껏해야 100개 남짓이지. 게다가 내가 영패를 맡겨두고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가 동문 사형제들에게 금방 영석을 빌려온다지 않소!”

한립이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이 낙운종에서 그가 아는 누군가 같아서였다. 턱을 쓸어내리며 잠깐 생각을 하던 그가 뒤를 돌아 소란스런 점포를 향해 걸어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을 파악하자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낙운종 삼대 장로 중 한 명으로서 모른 척 하고 내빼는 것도 온당치가 않았다.

잠시 후 한립은 멀리서 수사들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화가 난 얼굴의 흑의 청년은 뜻밖에도 검술대회에서 만난 적 있는 화운봉 손화였다.

겨우 20년 만이었으니 손화의 얼굴은 그다지 변한 바가 없었지만 수행은 크게 늘어 있었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이들은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주인장과 그 직원들 같았다.

짧게 콧수염을 기른 주인이 눈을 부라리며 손화에게 고함을 쳤다.

“쓸데없는 영패를 받아놓고 어디다 쓰라고 이러쇼! 만일 영패를 나몰라하고 낙운종으로 돌아가 버리면 난 만 리 밖까지 쫓아 계국에서 돈을 받아 오란 소리요?  헛소리 그만하고 영석이 없으면 저물대 속의 물건이라도 내놓으시오.

그리고 이 화운부는 보통 물건이 아니라 우리 전천성에서 제부사로 이름 높은 대사의 걸작이오! 어딜 저급한 다른 부적과 비교를 하오?  내 영석 300개로 퉁 쳐주는 것도 다행인 줄 아쇼! 설마 낙운종 수사들은 다 이렇게 가난뱅이요?”

말을 마치며 주인이 직원이 들고 있는 목함을 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정말 큰 손해라도 본 얼굴이었다.

“하! 아주 되는 대로 이야기 하는군. 평범한 부적이 그쪽 말 한 마디에 제부사의 걸작으로 탈바꿈 되고 말이오!”

손화도 너무 화가 나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당신이 대사의 걸작인지 아닌지 구별이나 하겠소?  아니면 진짜 배상을 안 하려고 버티는 거요?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내가 본 성의 집법사에게 고발해도 너무하다 탓하지 마시요!”

주인이 냉소하며 거침없이 협박을 했다. 손화도 그 말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구국맹 집법사가 나타난다면 누구 편을 들을 지야 뻔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시비를 가리기가 애매모호하며 어찌 되었든 곤욕을 치를 것이다.

한동안 어두운 얼굴로 있던 손화가 결국에는 발을 구르며 맹렬히 한 손으로 저물대를 스쳤다.

동시에 다양한 색깔의 부적들이 나타났는데 저계 부적들이었다.

“이만큼이면 저계 부적이라도 족히 영석 이삼백 개는 될 겁니다.”

손화는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주인은 부적들을 보고는 안색을 조금 풀었다.

“뭐 대충 되기는 하겠소!”

그리고는 손을 뻗어 부적을 가져가려했다.

“어, 잠깐! 이건 아니오!”

주인이 부적을 건들기 전에 손화가 그것들 중 하나를 보더니 안색이 달라졌다. 그가 황급히 그 안에서 반절뿐인 부적조각을 골라내고는 나머지만 넘겨주었다.

“흥! 그까짓 찢어진 백지 부적이 뭐라고 그리 긴장을 하쇼?  정말 낙운종은 빈터털이 소굴인가 보구만.”

잠깐 놀라던 점포 주인이 만면에 비웃는 기색이 가득해져서는 다시 손화의 부적을 쥐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인영이 번뜩이더니 누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부적을 가로챘다.

손화는 화들짝 놀랐고 점포 주인도 서둘러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오!”

“뭘 하려는 게 아니라. 듣자니 계속 우리 낙운종이 이렇다 저렇다 하던데. 이 한 모 앞에서 다시 한 번 말해보겠소?”

둘 사이에 끼어 든 수사가 냉랭히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놀라운 기세가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태산과 같은 영기의 압력에 인근의 수사들까지 대경실색해서는 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뒤로 밀려났다. 몇몇 수행이 얕은 이들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꺾이기도 했다.

마침 주변을 지나던 결단기 수사들이 잠시 비틀하더니 즉시 놀라 소리쳤다.

“원영기 수사! 선배님이 어찌…….”

한립이 고개를 꺾어 소리를 친 결단기 수사를 쳐다보자 그가 하려던 말을 꿀떡 삼키고는 입을 다물었다. 길을 지나가던 두 결단기 중년 수사들의 얼굴이 낯설었다. 한립은 모르는 자들이었다.

이때 한립 앞에 서 있던 점포 주인과 그 직원들은 지척에서 쏟아진 영기의 압력에 거의 바닥에 엎어진 채로 꼼짝도 못했다.

그들은 ‘원영기 수사’라는 말을 듣고는 얼이 빠져 살려 달라 애걸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영기가 강해 숨쉬기도 어려워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립 바로 뒤에 서있던 손화 만이 한립이 특별히 손을 써두었기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곧 한립을 알아본 그가 표정이 달라지더니, 서둘러 예를 올리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제자 손화, 한 사조님을 뵙습니다.”

엎어져 있는 수사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몸을 돌린 한립이 손화가 들고 있는 반절짜리 부적에 슬쩍 시선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 신분을 아는 모양이구나.”

“제자가 당시에는 사조님의 수행을 몰라보고 망언을 일삼았으니 용서를 청할 따름 입니다!”

손화는 성지에서 한립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에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아직 본 종의 장로가 아니었으니 되었다. 다만 네가 손에 든 부적이 나와 인연이 있는 물건 같구나.”

“예?  설마 사조님께서 바로…….”

손화가 눈을 부릅뜨고 희색을 드러내려는데 멀리서 은빛이 감도는 빛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지.”

한립이 손을 휘저어 손화의 말을 막고는 멀리서 다가오는 빛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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