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379화 (136/2,000)

# 379

379화. 추마골(墜魔谷)

“아직 주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 제가 펼칠 수 있는 능력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들 견식이 있는 분들이시니 충분히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시겠지요?  원영기 수사에게 효과가 있는 단약 한 병과 바꾸고자 하니 거래를 원하시면 나서주십시오.”

부인이 다시 곤선환 법보를 손바닥만 하게 만들어 손에 쥐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야 다들 본명법보가 따로 있었지만 많을수록 좋은 것이 또 법보였다. 게다가 아직 주인을 인식하지 않은 법보라면 문하의 제자에게 주어 사용하게 할 수도 있었다.

원영기 수사가 직접 제련한 법보라면 보통의 결단기 수사가 제련한 것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수사들이 법기나 법보 제련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기술에 능한 원영기 수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법보의 출현에 많은 이들이 거래를 하고 싶어 했다. 부인은 그들 중 하나가 내놓은 단약을 받고 아주 순조롭게 거래를 마쳤다.

이어 또 다른 수사가 천정 진인이 부르기도 전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내가 거래하고 싶은 건 성강사(星鋼沙)요. 거래하고 싶은…….”

그 후로도 교환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연달아 원영기 수사가 내놓은 물건들은 어느 것 하나 진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 이전에 장시에서 만나던 물건들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결단기 수사는 전 재산을 털어도 살 수 없는 보물들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거래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몇몇은 귀하지만 너무 생소해 어떻게 다루는지 알지 못하는 물건을 내놓기도 했고, 또 몇몇은 원하는 물건이 나타나지 않아서 거래를 하지 못했다.

또한 원영기 노괴들은 다들 물정에 밝아 누군가 크게 손해를 보거나 물건의 가치를 속여 거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화룡동자와 려락도 거래하고 싶은 물건을 차례대로 내놓았다.

화룡동자가 내놓은 사발만한 세 가지 색의 기이한 약초는 역시 단약 제련을 위한 재료로 비록 적정지만은 못해도 역시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다만 그는 독부목(毒符木)이라는 재료와 거래를 원했는데 아쉽게도 지니고 있는 이가 없었다. 화룡동자는 어쩔 수 없이 실망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에 반해 려락의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한립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어떤 영초의 즙을 붉은 색의 작은 검 법보와 교환했다. 아마 누군가에게 주려고 교환한 것 같았다.

려락이 거래를 마치고 이제 한립 차례가 되었다.

그가 금포 수사의 손에서 적정지를 교환해 가는 것을 보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가 내놓을 거래품에 기대를 보였다.

담담하게 일어난 한립의 손에는 하얀색의 옥함이 두개 들려 있었다.

“저는 6급 불 속성 그리고 물 속성 요단 하나씩과 천령초 두개로 경정(庚精)과 교환하고자 합니다. 만일 경정이 없으시다면, 경정의 행방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둘 중에 하나는 넘겨 드리겠습니다.”

한립이 말을 마치고 두 손을 흔들자 푸른빛이 반짝이며 두 개의 옥함이 열렸다. 붉은색과 남색의 요단 그리고 파릇파릇한 영초가 수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경정?”

한립의 거래 조건에 곳곳의 수사들이 다들 괴이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요단과 천령초가 비록 귀한 물건이기는 하나 경정과 비교하면 가치가 훨씬 떨어졌다. 그런데 또 경정에 대한 정보만을 교환하기에는 6급 요단이든 천령초든 너무 과했다.

경정의 행방을 아는 것과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수많은 보물과 상고시대 수사의 유적지가 어디 있는지 공개되어 있지만 너무 위험한 곳이라 다들 건드리지 못하는 이치와 같았다.

그 중에서도 천남 대륙의 중간에 위치한 추마골(墜魔谷)이 그랬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은 상고 시대의 전쟁터였다. 만황시기 수많은 마도수사가 기상천외한 금제를 깔아놓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움을 했다고 한다. 최후에는 그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공간의 균열이 생겼고 산골짜기 전체의 공간 자체가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미친 듯이 싸우던 수사들도 그곳에 함께 묻히고 말았다. 공간의 균열과 고대 진법과 금제가 층층이 쌓여 추마골은 극히 위험한 곳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오랜 세월 자신의 능력을 믿고 보물과 고대 공법을 찾아 추마골로 진입했던 수사들 중 살아 나온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되니 이곳에서 죽은 고계 수사들만 얼추 800명은 넘었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각종 보물들도 고스란히 그 안에 쌓여 있었다.

이후 근 만 년 동안에는 아무도 이곳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천남 제일의 흉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교환회 상의 인물들은 경정의 행방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다들 그를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일어나 거래를 하려 하거나 전음을 보내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한립은 조금 실망했다.

더 좋은 보물을 내놓지 않은 것은 겨우 첫 번째 교환회에서 경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괜히 자신의 부를 다른 이들에게 떠벌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소식을 아는 수사조차 없다는 사실에는 기운이 빠졌다.

그가 속으로 탄식하면서 별 생각 없이 다른 수사들을 한번 훑어보았는데 곧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게 아무도 나서는 사람 없이 차례는 다음 수사에게로 넘어갔다.

한립은 옆의 수사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보다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그는 우연히 천정 진인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시선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는 경정을 지니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무언가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도 성질이 급한 부류는 아니었기에 즉시 전음을 보내기 보다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이미 실마리를 잡았으니 그는 분명 상대의 입을 열게 할 자신이 있었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지금 할 일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막 사람까지 차례가 돌아갔다. 천정 진인이 다시 몸을 일으켜 걸어 나왔고 미소를 띤 채 이야기 했다.

“대부분 원하던 거래를 하신 듯합니다! 아직 거래에 성공하지 못하셨더라도 이곳에 모인 분들은 전천성 내의 원영기 수사들 중 일부에 불과하니 곧 다른 기회가 있겠지요. 저 천정만 해도 곧 더 큰 규모의 교환회를 열 생각이니 그 때도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저도 교환을 하고 싶은 물건이 좀 있습니다.”

늙은 도사가 말을 마치고는 두 손에서 하얀 빛을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일고여덟 개의 물건을 탁자에 늘어놓았다.

한립을 비롯한 다른 수사들은 그 물건을 보고는 안색이 달라졌다. 그것은 탁자 위의 물건들은 전부 크기가 다 다른 꼭두각시 요수들이었던 것이다. 하얀 늑대부터 파란 구렁이, 붉은 송아지까지 다양했다.

보기에는 그냥 꼭두각시 인형 같았지만 엄청난 영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립의 저물대 속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었다.

보아하니 결단 초기 정도의 능력을 지닌 것들이었는데 그가 지닌 괴뢰술 관련 경전에 기재된 종류는 아니었다. 이게 그가 크게 놀란 점이었다.

‘설마 천죽교 출신 수사인 건가?  하지만 천죽교에는 원영기 이상의 수사가 없을 텐데? ’

게다가 저건 그들이 만드는 종류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한립이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신중한 눈빛으로 눈앞의 꼭두각시들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알아내기도 전에 맞은편에 앉은 합환종 뚱보가 벌써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천정 수사! 언제부터 괴뢰술을 다 익혔습니까?  본래 익히던 정광공(晶光功)은 포기한 겁니까?”

“국 형,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이렇게 늙어먹어서 수련하는 공법을 바꾸다니요! 이 꼭두각시들은 빈도가 몇몇 다른 수사들과 고대유적지에서 찾은 것입니다.

요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여 이것들이라도 내놓고 거래를 좀 해보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저희 같은 수사들에게는 별 게 아니더라도 갖고 있으면 꽤 쓸 만할 겁니다.”

천정이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호오, 꼭두각시라니 흥미롭군요. 제자에게 주어 호신용으로 쓰게 하면 좋겠어요. 천정 진인께서는 무엇으로 교환을 원하시는지요?”

또 다른 수사가 길게 늘어뜨린 수염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허허, 빈도가 교환하려는 물건이 비교적 희귀해서요. 상고시대에는 혼석이라 불리던 물건인데 개당 제 꼭두각시 요수 한 마리와 거래하겠습니다. 이 꼭두각시들은 상고시대 수사가 직접 제련한 것이니 어딜 가도 이만한 물건은 보기 힘듭니다.”

천정 진인이 온화하게 답했다.

“혼석이요?”

낯선 단어에 앉은 수사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 당연히 갖고 있지도 않았다.

천정 진인이 예상했다는 듯 손이 저물대 쪽으로 향하더니 곧 엄지손가락 만한 청록색 원석을 꺼내들었다.

언뜻 보면 나무 속성의 영석과 비슷했는데, 의식을 이용해 자세히 살핀 수사들은 바로 혼석에서 음산한 정체 모를 파동을 느꼈다.

“아마 지니고 계셔도 이름을 모르고 계실 수 있어 보여드립니다. 저도 우연히 얻은 것인데 다들 보시지요.”

“허! 기이합니다. 귀기와도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훨씬 정순한 기운이에요.”

전신을 검은 의복으로 가린 수사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빈도 역시 혼석에 깃든 기운이 무엇인 줄은 모릅니다. 허나 절대 일반적인 귀기는 아니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귀한 꼭두각시들과 바꾸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시겠지요.”

천정 진인이 시원스레 답하자 흑의 마도 수사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원석을 본 한립은 가면 아래 안색이 크게 달라졌고 시선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혼석은 분명 그가 음명의 땅에서 모아온 음명수의 수정이었다! 물론 이런 호칭은 음명의 땅의 토착민들이 부르는 것일 테고 상고시대 수사들은 ‘혼석’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천정 진인이라는 자가 이렇게 많은 꼭두각시를 내놓으며 혼석을 찾다니. 허천전에서 보았던 꼭두각시들이 혼석을 품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저 자는…….’

한립이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그러나 이 혼석에 대해서는 정말 다들 잘 모르는 눈치였다. 수사들 중 하나가 머뭇거리며 한 덩이를 들고 나와 꼭두각시 중 하나를 골라갔을 뿐이었다.

천정 진인이 몇 번 더 물었지만 더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막 꼭두각시들을 회수하려는데 누군가 홀연히 일어나서 다가왔다. 늙은 도사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수사도 혼석이 있습니까?”

앞으로 나선 이는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한 한립이었다. 그가 소리 없이 손바닥을 뒤집으니 청록색 수정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수정은 거의 달걀만큼 커서 육안으로도 그 음산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방금 꼭두각시를 바꿔간 수사의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천정 진인은 내심 너무 좋았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이렇게 큰 혼석은 정말 보기 드물지요! 이렇게 하시죠. 수사가 손해를 보게 할 수 없으니 꼭두각시 중에서 두 개를 골라 가져가세요.”

“두 개요?”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너무 적다 싶으십니까?  그럼 몇 개면 되겠습니까?”

“이걸로 나머지 전부를 거래하면 어떻겠습니까?”

“여섯 개 전부를?  너무 욕심을 부리시는 게 아닌지요.”

이번에는 도사도 미간을 좁히며 불만을 드러냈다.

“하하, 과욕인지 아닌지는 천정 진인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혼석은 본래 크기가 전부가 아닌데다, 이렇게 큰 혼석이라면 진인에게는 그야말로…….”

한립이 천정 진인을 응시하며 말을 하다가 끝을 맺지도 않고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천정 진인이 미미하게 표정이 달라져서는 한립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잠시 뒤 그가 답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렇게 큰 혼석은 찾기도 힘들고 저도 급히 쓸 데가 있으니 수사의 뜻대로 거래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누각에 모인 수사들이 한동안 한립과 그의 손에 들린 달걀 크기의 혼석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렇게 많은 고계 꼭두각시와 바꿀 만한 물건을 어찌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립이 당연하다는 듯 수정을 건네주곤 탁자 위로 소매를 휘저었다. 그러자 여섯 마리의 꼭두각시들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한립이 잠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입술을 달싹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천정 진인만이 눈에 이채를 띠더니 즉시 평소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갔다.

한립 역시 꼭두각시들을 회수해서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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