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378화 (135/2,000)

# 378

378화. 원영기 수사들의 모임

가면을 들고 있던 한립은 려락의 것과 비교해 보았지만 차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다.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그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놀랍게도 가면은 피부에 닿자마자 약간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내며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녹아들었다.

2층에 이르자 천정은 물론이고 사방에 주먹만 한 월광석이 백여 개 박혀 있어 대낮같이 밝았다.

그러나 한립을 놀라게 한 것은 2층이 1층에 비해 몇 배는 더 넓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상을 하고 있던 건물이 안에 들오자 도리어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다만 2층은 1층처럼 텅텅 비어있지 않았다. 사면에 벽을 따라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었고 이미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수사들이 앉아 있었다. 의복이나 머리 모양을 보아서는 사내와 여인이 섞여 있었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화룡동자를 선두로 새로이 세 명의 수사가 올라오자 서늘한 시선과 의식들이 동시에 셋을 훑었다.

그러나 얼굴을 가릴 생각이 없다는 듯 당당한 화룡동자를 확인한 수사들의 반응은 판이하게 갈라졌다. 누군가는 호의를 또 누군가는 적의를 드러냈고 몇몇은 심지어 은근히 살기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화룡동자는 그러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한립과 려락을 데리고 빈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았다.

한립도 그제야 다른 이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사들은 한립의 강대한 의식으로도 진면목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영기의 파동만 보아도 원영기 수사들이 틀림없었다. 그 중 두 명은 뜻밖에도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녔는데 각자 맨 안쪽과 바깥에 자리 잡고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작은 누각 내부에 동시에 스무 명이 넘는 원영기 수사들이 모여 있다니 누가 본다면 기함할 만한 일이었다.

한립도 이렇게 많은 원영기 노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신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마주치게 되는 세상도 달라진 것이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내부를 훑다가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그곳에는 천정 진인의 말대로 몇몇 성질 급한 수사들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주고받거나 저물대에서 병이나 옥함 같은 물건들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것이 딱 봐도 물물거래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다른 수사들은 대부분 명상을 하거나, 다른 수사에게 정체를 들킬까 말을 아끼며 전음을 이용해 밀담을 주고받았다.

조용한 2층의 모습은 위압감이 느껴지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가면을 쓰지 않은 화룡동자는 2층에서도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면을 쓰지 않은 이가 그뿐인 것은 아니었다.

한립과 맞은편에 앉은 뚱뚱한 사내도 가면을 쓰지 않았다. 허리통이 정상 남자의 4배는 되어 보였는데 의자가 거의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고 한립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미소를 보냈다.

뚱보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가면 사이로 드러나는 매력적인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여기 모인 수사들 중 누구하나 능구렁이가 아닌 자가 없었으니, 그런 미인이 앉아 있음에도 모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립이 그런 모습을 지켜보자 귓가에 려락의 전음이 들려왔다.

“한 사제, 조심하게. 저 뚱보가 보기에는 순박해 보여도, 옆에 앉은 여수사와 더불어 합환종 비차쌍마(肥姹雙魔)로 불리는 자일세! 저 부부가 비술을 써서 협공하면 원영 중기의 수사와도 필적한다니 건드리지 않는 게 좋네.”

곧바로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한립이 바로 경계 대상에 둘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다른 이들처럼 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교환회의 시작을 기다렸다.

몇몇 원영기 수사들이 가면을 쓰고 속속들이 들어오며 또 한참이 흘렀다.

천정 진인이 나타났을 때에야 모든 수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눈을 떴는데, 도사가 하얀 빛으로 나무 탁자를 휘감아 올라오는 중이었다.

“시간도 얼추 되었고 오실 분들도 다 모였으니, 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교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천정 진인께서 그리 말씀 하시니 참을성이 부족한 이 노인네부터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천정 진인 옆에 앉은 금포 수사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리 급하시다면 그러시지요.”

천정 진인이 웃으며 뒤로 물러나며 금포 노인부터 시작할 것을 허용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흐흐! 천정 형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금포 수사가 바로 거들먹거리며 일어나더니 좌우로 번갈아 가며 포권을 한 후 한 손으로 저물대를 스쳤다.

그러자 붉은 빛이 번뜩이며 손바닥만 한 목함이 나타났다.

목함은 어떤 기이한 목제로 만들었는지 청록색의 표면 위로 붉은 빛이 번들거렸다. 그 위로 금색과 은색 부적이 교차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물건이 들어있는 듯 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금포 수사가 가면 너머로 그들을 훑어보며 부적을 가리키자 금색과 은색 부적이 떨어지며 목함이 열렸다.

잠시 후, 붉은 빛이 범람하며 붉은 안개에 휩싸인 괴이한 버섯이 드러났다.

버섯은 수 촌 크기에 전신이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이었고 붉은 안개가 휘감고 있는 모습이 선가(仙家)의 물건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적정지! 적어도 3,000년은 된 것이겠군요! 용암지대에서 자라는 것이라 보통 수사는 보기도 어려운 물건인데. 이런 물건을 갖고 있다니 수사의 수완이 굉장합니다.”

온 몸을 흑의로 가린 수사가 길게 탄식하며 중얼거리는 말에는 부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적정지?  그럼 이게 바로 빙화정지(氷火精芝) 중의 적정지란 말입니까. 광채나 불 속성의 영기만 봐도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다른 수사들도 웅성거리더니 몇몇은 거리낌도 없이 서로 속삭이기까지 했다.

금포 수사는 흑의 수사가 한 눈에 자신의 물건을 알아보는 것을 보고 이채를 띠더니 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았으니, 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3,000년 된 적정지는 불 속성 영단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최상급의 제련 재료이지요. 영석 10만 개 아니면 흙 속성 동급 연단 재료와 교환하겠습니다.”

‘영석 10만 개? ’

한립은 가격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것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가 아니라 그의 예상보다 너무 낮아서였다.

난성해에 있을 때 고계 요단을 구입하려면 만여 개의 영석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이렇게 진귀하면서도 드문 것이면 화형이 가능한 구곡영삼보다는 못해도 다른 영약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립도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구미가 당겼다.

한립이 속으로 가늠을 해보는 동안 다른 수사들도 관심을 보였다.

몇몇이 금포 수사에게 다가가 무어라 전음을 주고받으며 어떤 물건들을 꺼내 보여주고는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포 수사는 고개를 숙여 얼른 물건을 훑어보고는 거침없이 거래를 거절했다. 거래를 거절당한 이들은 씩씩거리면서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도 없습니까?  이 3,000년 된 적정지는 저도 굉장히 공을 들여 구한 것입니다. 얻는데 5~6년은 걸렸지요! 영석 십만 개면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그러나 웬만하면 흙 속성 동급 재료와 교환을 원하니 조금 떨어지는 재료더라도 거래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

금포 수사는 정말 수중의 재료를 어서 처리하고 싶은지 잠시 아무도 나서지 않자 조급하게 외쳤다. 한립이 다른 이들을 훑어보았지만 몇몇이 탐욕스런 눈빛을 보내면서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보아하니 가격이 비싸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당장 교환할 만한 적합한 재료가 없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옆의 화룡동자만 보아도 만면에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수련하는 공법이야 두말 할 것도 없이 불 속성 공법이었으니 불 속성의 적정지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금포 수사도 이런 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목함을 들어올렸다. 불 속성의 적정지를 회수하려는 것이었다.

한립이 입을 달싹였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흙 속성의 요단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금포 수사가 손을 멈추고는 바로 시선을 돌려 전음을 보내고 있는 한립을 찾아냈다. 그가 놀라서는 얼른 전음으로 답했다.

“요단이 있다고요?  그래도 이건 적정지입니다. 적어도 7급 요수의 요단은 되어야 거래가 가능합니다. 6급이라면 반드시 두 개 이상은 되어야 하고요.”

한립이 잠시 이해타산을 따져보았다. 그가 지니고 있는 요단은 단약을 제련하는데 거의 다 써버리고 이제는 굉장히 고가인 진귀한 요단 몇 개만을 남겨두었다.

만일 7급 요단 하나로 적정지를 얻는다면 그에겐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적정지는 녹액을 이용해 계속 키워나갈 수 있지만 요단은 그럴 수 없을 테니까.

다만 이런 점을 제외하고 두 개를 저울질하기는 어렵다.

난성해였다면 7급 요수의 요단이 아무리 귀해도 적정지보다는 가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여긴 천남 지역이었다. 7급이 아니라 6급, 5급 요단이라 해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쨌든 천남 대륙에는 고계 요수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여러 가지를 따져보아 7급 요단 하나와 3,000년 된 적정지의 교환이 나름 공정하게 느껴졌다.

마음을 정한 한립이 돌연 몸을 일으켜 금포 수사에게 걸어갔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려락과 화룡동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한립은 그대로 금포 수사 앞까지 걸어가서는 손에든 옥함을 던져주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금포 수사가 긴장한 기색으로 옥함을 열어보더니 눈에 희색이 만연했다.

“거래하겠습니다!”

그가 손을 펼쳐 적정지를 다시 목함 속에 봉인하고는 그대로 한립에게 건넸다. 그리고 한립에게 받은 옥함은 신속하게 그의 저물대 속으로 사라졌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건네받은 목함을 저물대에 챙겨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자리로 돌아왔다.

려락과 화룡동자는 궁금했지만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고 전음으로 그저 축하 인사만을 전했다. 이제 많은 원영기 수사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그를 살피고 있었다.

적어도 적정지에 상당하는 재료를 내놓을만한 수사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원영 후기 수사를 만나지 않는 한 누군가 자신을 급습해도 몸을 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좋습니다. 첫 번째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그 옆 수사 분부터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정 진인이 금포 수사 옆에 앉은 여수사를 웃음 띤 얼굴로 보며 물었다.

“그러죠. 그럼 저부터 물건을 내보이겠습니다.”

연두빛 치마를 입은 부인이 우아하게 일어났다.

“전 옆에 계신 수사처럼 기연이 따르지는 않아 그만큼의 귀한 보물은 없습니다. 다만 연기술에 솜씨가 있어 아직 주인이 없는 곤선환(困仙環) 법보가 하나 생겼네요. 주인을 각인시키는 의식을 거치면 본명법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법보입니다. 금정 등 재료는 평범한 축에 속하지만 위력은 절대 약하지 않으니 공격과 수비에 모두 귀히 쓰일 것입니다.”

부인이 차분하게 자신이 거래할 물건을 설명하며 한쪽 소매를 털자 수 촌 크기의 하얀 팔찌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인의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하얀 고리는 크기가 작아졌다 커졌다하며 쉼 없이 반짝였다.

부인이 조용히 손끝으로 가리키자 고리가 진동하더니 바람처럼 일 장 크기로 불어나 놀랄만한 영기를 뿜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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