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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71화 (128/2,000)

# 371

371화. 육익상공(六翼霜蚣)

잘못된 판단을 후회하기는 했지만 함운지는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옥 접시 이보를 거둔 그녀가 한숨처럼 붉은 입술 사이로 수정 구슬을 뱉어냈다.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구슬이 그녀 면전을 맴돌더니 거대한 새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한 그녀가 수결을 맺어 구슬을 가리키니 눈부신 빛이 방출되며 영수가 두 날개를 펼쳐 속도를 높였다.

키하학!

거대한 새의 긴 울부짖음 뒤에 이동 속도는 배로 빨라졌으나 그만큼 함운지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위급한 때를 위해 아껴두던 원기를 비술을 펼치는데 소모했기 때문이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고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막 비술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이들이 들었던 벼락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도 울렸다. 드디어 적이 그녀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최선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으니 보호막에 영력을 더 주입해 강화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결단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이 공법을 선택했기에 실질적은 공격력은 뛰어나지 못했다.

콰르릉! 콰쾅!

은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날개를 단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푸른빛이 너무 강해 상대의 용모는 볼 수 없었지만 함운지가 죽음을 직감하고 절망 속에 두 눈을 감았다.

“허! 너는…….”

그림자가 함운지의 얼굴을 보고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바로 사라졌다.

함운지가 이상해 눈을 떠보니 천둥소리나 날개를 단 사내의 그림자나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

콰콰쾅!

그녀가 멍하니 사태를 파악하려할 때 뒤에서 천둥이 내리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푹’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그녀의 보호막을 뚫고 들어왔다.

함운지는 전신이 마비되며 영수에서 떨어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 드는 느낌을 받았다. 은은한 사내의 체취에 수치스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기억이 끊어졌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함운지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자마자 쪽빛 하늘을 보게 되었다.

‘내가 왜? ’

화들짝 놀라 서둘러 몸을 일으켜보니 이름 모를 산 중에 자신이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조류 영수가 가만히 앉아서 졸고 있었다. 아무래도 금제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손쉽게 금제를 푼 그녀가 영수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제압당한 곳에서 멀지 않은 산이었다.

함운지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스로의 의복과 몸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 했고 저물대며 품속의 이보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죽이지도 범하지도 않고 살려 보내다니? ’

너무 혼란스러워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지만 정신을 잃기 직전 상대가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기억났다.

‘원영기 수사가 나를 알아보고 살려 준 걸까. 내가 아는 수사일지도.’

그리고 기억을 한참 더듬어 봐도 어령종 사조들을 제외하면 그럴만한 원영기 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체격도 평범해서 더욱 누군가를 특정 짓기가 어려웠다. 유일하게 목소리를 들었다지만 워낙 찰나였고 이에 부합하는 가까운 수사도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멍하니 있던 그녀가 겨우 마음을 정하고는 녹색 옥 접시를 품에서 꺼내었다.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우니 하얀 법결이 튀어나가 옥 접시에 닿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점은 붉은 점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 밖에 표시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류 사매조차 당했거나 이미 이보의 감응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았다. 물론 전자의 가능성이 훨씬 크겠지만.

함운지가 탄식하며 옥 접시를 회수하고는 영수를 몰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수만 리 밖에서는 한립이 젊은 여인을 안고 푸른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미녀를 품에 안고도 그의 표정은 놀랍게도 냉랭했다. 함운지를 기절시키고 바로 방향을 틀어 또 다른 어령종 수사를 포획한 것이다.

그녀는 한립의 추격을 받자 대경실색해서 한 자 길이의 날아다니는 지네 영수를 풀어놓았다. 평범한 지네와 달리 칠흑 같이 검은 껍질에 등에는 한 쌍의 하얀 날개를 지닌 영수들이 내뿜은 서릿발 같은 냉기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한립은 그것들을 보고 놀라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 기뻐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험상궂은 지네는 기충방 18위에 해당하는 육이상공(六翼霜蚣)이었던 것이다. 그의 서금충과 마찬가지로 만황시대에 활동하던 상고영충 중 하나!

얼음 속성에 용의 혈통을 타고나 일단 성체가 되면 전신이 새하얗게 변하고 날개가 6개로 늘어나는데 이것이 뿜어내는 한기는 백 리 내 만물을 꽁꽁 얼려버릴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아직 유충에 불과했지만 지네 영수는 이미 보통 수사들은 두려워할 만한 냉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람빙염을 지닌 한립은 겨우 이정도 기운에 뒷걸음질 칠 자가 아니었다.

한립이 특별한 술법도 펼치지 않고 수매를 펄럭이며 지네의 냉기를 체내로 흡수해 버리자 여인의 얼굴이 더없이 파리해졌다.

그 기회를 틈타 번개처럼 움직여 그녀를 기절시켜 끌고 온 것이다. 의식의 통제를 잃은 날개 달린 지네들도 자연히 영수대 속으로 돌아갔다.

한립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순간 머뭇거렸다.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렇게 하면 전설의 기충인 육이상공을 얻는 일은 요원해진다. 보통 영수나 영충을 부리는 수사들은 자신들이 죽고 원수에게 영물이 넘어갈까 특별한 금제를 걸어 놓는다. 주인이 죽으면 영물의 정신도 붕괴해 자폭해 죽게 만드는 금제였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후인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면 취소도 가능한 금제겠지만 말이다. 한립도 서금충에 비슷한 금제를 걸어 두었다.

육이상공의 알을 얻어 부화 시키고 싶었고 어령종 특유의 영충을 다루는 비술에도 욕심이 났다. 어령종은 영충이나 영수를 다루는 능력으로 천남 지역에서 이름이 높았으니 분명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이다.

점점 커가는 서금충들을 더욱 강력하게 다스릴 술법이 필요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이 상대의 영력을 봉하고 단시간 내로는 깨어나지 못하게 여러 장의 부적을 붙여 여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함운지는 오래 전 누이를 떠올리게 했던 여인이라 잔혹하게 죽일 수 없었다. 본래 그는 잔악무도한 인물이 아닌데다. 어차피 자신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판단해서였다.

게다가 서둘러 계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의 정체가 밝혀진다 해도 어령종과 귀령문에서 낙운종 장로인 그를 어쩌겠는가?

본래 천도맹과 마도는 적대 관계여서 몇 년 전, 천살종 종주가 친히 현신해 운몽산 산파의 성지를 유린했을 때도 이렇다 할 대가를 치르게 하지 못했었다.

전쟁을 벌인 게 아니라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입씨름을 하는 정도에서 일단락 될 터였다.

마도의 원영기 노괴의 추격 범위를 얼른 벗어나 돌아가면 끝이었다.

쿵!

귀령문 결단기 수사들이 몰살당하는 순간 검은 장포를 걸친 쇄혼진인이 엄월종 밀실을 박차고 나왔다.

아끼던 제자들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더는 폐관수련이나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음산한 얼굴로 전음부를 월국 귀령문 분타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일단 그쪽에서 사정을 파악하게 하고 직접 방문해 감히 쇄혼 문하의 제자들을 죽인 이를 찾아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은 행보였다.

귀령문에서 마도 수사들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수색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립은 월국을 떠나 원무국 방면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쇄혼진인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제자들이 이름 모를 원영기 수사에게 당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상대는 이미 월국을 떠났을 테니 아무리 노발대발을 해봐야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열흘 후 함운지가 가슴을 졸이며 천라국 기령산으로 돌아와서는 스스로 석실 앞에 무릎 꿇고 죄를 청했다. 그녀의 해명에 노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수백 리 밖에서 상대가 너희를 찾아냈다고?  그런데 다른 제자들과 귀령문 수사들이 모두 그자에게 당하고 너만 살아남아 도망쳤고?”

“예, 사백님. 저와 류 사매 등 본 종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으나 다른 이들의 생사는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함운지는 자기도 모르게 흉수인 원영기 수사가 자신을 알아보고 살려주었다는 사실은 빼고 설명했다.

“…… 지목령영을 속박할 자라면 원영기 수사일 가능성이 클 줄은 알았다만 수 백 리 밖에서 너희가 뒤쫓는 것을 알아차리다니 신통력이 대단하구나. 천남 전체를 통틀어도 원영 후기에 이른 자가 몇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 중 하나란 말인가!”

노인이 중얼거리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상대의 의식이 강력해 더는 추적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멀리서 마지막으로 확인하였을 때 월국을 떠나 원무국 방면으로 날아갔으니 정도나 천도맹 인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임무에 실패하고 저만 살아 돌아왔으니 사백님께 벌을 청합니다.”

“네 잘못이 아닌데 벌을 청할 게 무어냐! 그자가 진정 원영 후기의 수사라면 내가 갔어도 어쩌지 못했을 것을.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할 도리를 하였다. 본디 너와 류옥의 감응 능력이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도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이미 그리 멀리 달아났으니 지목령영은 되찾을 수 없겠구나. 고생하였으니 이만 가서 쉬고, 함 사제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고 하니 찾아 뵙거라.”

부글부글 끓는 속과 달리 노인의 어조는 온화했다.

“사백님의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 함운지가 석실을 나가자 노인의 얼굴이 확 달라졌다.

“네 사매의 말이 사실이더냐?  정말 원영 후기의 노괴가 지목령영을 갈취해 갔단 말이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찌 운지 녀석만 무사히 살아왔다는 게야?”

노인의 추궁에 석실 뒤쪽이 흐릿해지며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을 지닌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사백님, 비술을 펼쳐 확인해본 결과 사매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살아 돌아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평정이 흐트러졌으니 숨기는 바가 있겠으나 이야기의 큰 틀은 사실입니다.”

“큼! 함 사제의 후인만 아니었어도 저 녀석을 그냥 두지 않았다! 어떤 비열한 수를 써서 홀로 살아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의 얼굴을 보지 말고 부처님의 얼굴을 보라’는 말이 있듯 함 사제의 면을 보아 겨우 참았다.

혼백을 샅샅이 털어 이실직고하게 만들었다가는 정신이 나가 버릴 테니! 유일한 후인이라고 함 사제가 운지 저 아이를 목숨처럼 아끼지 않더냐. 심지어 저 녀석의 결단을 위해 다량의 원기를 소모하며 역천의 대법을 펼쳐 벌모세수를 시켜주기까지 했지.

그보다 지목령영이 원영기 수사의 수중에 떨어진 게 문제로구나. 그나마 다른 두 개의 령영이 아니라 지목령영이기에 다행이야. 언제고 오행령영(五行靈嬰)이 다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으려나…….”

노인의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행령영의 비술은 본 종이 실전했던 강력한 술법을 사백님께서 살려내신 것이 아닙니까. 몇 년 전 사백님께서 우연히 지토령영을 제련해 내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일단 오행령영의 준비가 완료되고 비술을 펼쳐 본문 제자들과 융합을 시키면 저희 어령종은 갑자기 원영기 수사 다섯이 늘게 됩니다. 그러면 합환종과 마도의 우두머리 자리를 두고 경쟁할만한 세력으로 거듭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원영기 수사의 실력은 지녀도 걸맞은 수명을 지니지 못할 거라는 점이 아쉽지만 말입니다. 이번에 잃은 지목령영은 초기에 제련하여 가장 흉포한 령영이었습니다. 이전에 이미 본 종 원영기 수사의 원영을 잡아먹었을 정도로 악랄하고 사나워 융합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허허, 그걸 내가 모르겠더냐?  그 지목령영은 천여 년 전에 무슨 기연이 닿았는지 스스로 이지를 갖추더니 몰래 우리 어령종 서가에 들어가 비술과 공법을 익혀 달아나려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원영 후기의 장로가 제압하였으니 망정이니 안 그랬다면 큰 후환이 되었을 것이야! 그래도 그런 령영이기에 융합에만 성공하면 단번에 원영 중기에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더냐.

우스운 것은 융합 전에는 오행령영의 수행을 최대한 줄여놔야 문내 제자들이 융합을 하며 거꾸로 삼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지목령영을 원무국 건금곡(乾金谷)으로 이송해 그 기운을 누르려 했건만!”

“…….”

중년 남자도 더 이상은 사백의 심기를 나아지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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