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365화 (122/2,000)

# 365

365화. 현목화영대법(玄牡化嬰大法)

“어쩌면 좋습니까. 또 며칠이나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흔적조차 찾지 못했으니 정말 3개월 내로 못 찾아내면 종 내에서 집법사(執法使)를 파견할 겁니다.”

겉으로는 사나워 보이는 사내가 조급히 다른 이들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흥! 우리더러 3개월 내에 원영을 회수하라 이르신 것은 사조가 화가 나 하신 말씀에 불과할 겁니다. 지목령영(至木靈嬰)이 일단 금제를 벗어나면 우리 축기기 수사 몇으로는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약간의 실마리조차 찾아 내지 못한다면 큰 화를 입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또 다른 음침한 인상의 중년 문사가 음울하게 말하자 평범하게 생긴 녹의 여인의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요. 지목령영을 지키라 명을 받은 저 사숙이 우리를 따돌리고 령영과 융합을 시도하다 잡아 먹혀 생긴 일 아닙니까!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요.

아무리 령영과 상극인 데다 그것을 추적할 수 있는 법기를 지녔다지만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면 어찌 쫓는단 말이에요. 게다가 령영이 금제를 벗어난 이후로는 기운이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문사가 코웃음을 쳤다.

“사매, 그 말은 아껴두었다 집법사가 도착하면 하게. 그래도 함 사숙과 류 사숙이 지원을 나와 주신다니 그분들의 나무 속성 영근과 수행을 생각하면 다시 구속할 방법이 있겠지.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말이야. 지목령영 같은 사납고 흉포한 것을 어찌 상극의 법기도 없이 누군가 통제를 하고 있는 가야.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군.”

일행 중 말이 없던 노인이 서늘하게 일갈했다.

“됐다! 그 자가 어찌 령영을 데려갔든 놈의 행방을 찾아야만 우리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광 사조님께서 친히 움직이신다는 말을 전해 듣지 못했더냐.”

“이 사형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은 살고는 봐야지요. 하지만 하필 지금 전송진이 말썽이라 두 사숙께서는 이틀이나 비행을 해 이곳으로 오실 수 있지 않습니까. 아마 하루 이틀 내로는 오시겠으나 그 안에 령영을 데려간 자가 원무국을 떠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가 어느 나라 수사인지도 모르니까요.”

사나운 인상의 거한이 미간을 좁히며 우려를 표하자 노인이 음울하게 답했다.

“히히! 사제들은 모르는가보군. 함, 류 사숙은 이미 오래 전에 지목령영과 융합되기로 간택된 분들이네. 수 년 전에 비공을 전수 받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령영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지. 령영을 데리고 사라진 수사가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두 사숙을 피할 길은 없을 거야.”

노인의 말에 나머지 세 수사의 안색이 한결 편해졌지만 곧 문사가 눈을 빛내며 의문을 표했다.

“허나, 지목령영을 통제하는 자가 부 가를 멸문 시킨 수사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령영이 사라지고 며칠 만에 부 가가 멸문을 당했어요. 이걸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부 가의 힘을 빌리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고요. 누군가 우리와 부 가의 암중 결탁을 알아내고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니겠죠.”

여수사가 고개를 저으며 분석했다.

“아무리 상대의 능력이 뛰어나도 우리 어령종과 부 가의 관계를 알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은 과한 추측입니다. 십중팔구 우연이겠지요. 다만 같은 곳에 동시에 원영기 노괴가 둘이나 나타나는 것은 말이 안 되니 같은 수사의 소행일 가능성은 높겠습니다.”

“오, 동일한 수사의 소행이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에도 들려주겠니?”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축기기 수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커다란 나무 뒤에서 하얀 빛이 어른거리며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백의 여인 둘이 나타났다.

“류 사숙님! 함 사숙님!”

백의 여인들을 발견한 네 명의 녹의 수사들이 앞 다투어 예를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됐으니 일어나게. 방금 하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보아라.”

눈이 크고 안색이 창백한 여인은 부드럽게 말하였으나 요염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바로 한립과 왕년에 약간의 인연이 있던 함운지였다! 비록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몸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날렵해져 사내를 홀리는 미색의 미녀로 성장해 있었다. 그녀의 수행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 이미 결단 초기였다.

노인이 사제들을 대표해 신중히 입을 열었다.

“예, 사질 명을 받습니다.”

그녀가 미소를 보이며 깨끗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버들잎 같은 눈썹과 가늘고 긴 눈초리를 지닌 또 다른 여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는 사문에 큰 죄를 지었다. 지목령영을 찾아 내지 못하면 너희 사부라 하여도 구명하여 주지 못할 것이야.”

등장하기 전 그들을 향해 나른한 물음을 던진 어령종 제자였다.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성실히 답했다.

“사질도 이번 일에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말 억울합니다. 두 사숙께서 사조께 말씀을 잘 좀 올려주십시오.”

“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나 보자. 어차피 령영을 데려간 자는 벌써 만 리 밖에 있으니 바로 따라 잡을 수는 없을 터. 급할 것도 없어.”

여인이 나른히 몸을 기대며 붉은 입술을 달싹이자 노인이 공손히 그 날의 상황을 전하기 시작 했다.

“예, 저 사숙과 저희가 명을 받아 지목령영을 데리고 곤목산을 지날 때부터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당시 저 사숙이 저희를 속이기를…….”

함운지가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반면 또 다른 결단기 여수사 류옥은 쉼 없이 눈을 반짝이며 노인의 말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 * *

이틀 후, 한립은 원무국과 월국 국경 지대에 나타났다 푸른빛을 번뜩이며 사라졌다.

그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월국은 이제 완전히 귀령문의 천하였다. 그리고 귀령문의 본문은 당년 엄월종 종문이 있던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예전 그가 몸담았던 황풍곡이 위치해 있던 태악 산맥에도 귀령문의 분파가 위치해 있었고 말이다.

한립은 월국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태악 산맥으로 방향을 잡고 질주했다.

* * *

“모든 것이 그대로구나!”

한립이 거대한 암석 더미 위에 서서 적막한 눈빛을 보였다.

당시 동굴 거처가 마도에 발각이 될까 직접 산 자체를 무너뜨리고 떠났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곳이 완전히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이런 거대한 암석더미 아래 어떤 수사가 거처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입을 달싹 거리며 한 팔을 들자 빛이 요동을 치며 거대한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나타났다.

거대 원숭이들은 재빨리 움직이며 흩어진 암석 더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이 정리지 꼭두각시들의 열 손가락에서 끊임없이 각양각색의 빛기둥이 발사되어 거대한 돌덩이들을 잘게 부수는 작업에 가까웠다.

잠시 후 직선의 통로가 뚫렸다.

한립은 꼭두각시로 하여금 입구를 지키게 하고 직접 푸른 빛줄기로 변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급히 떠날 당시와 한 치도 다름없는 모습에 아무도 이곳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이 옛일을 회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안의 샘, 영안천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수중에 영안의 돌이 변한 영안옥과 영안지물 중 최고라 불리는 영안수가 있다지만 영력을 뿜어내는 영물들은 많을수록 좋았다.

이곳에 있는 영안천은 규모가 작았지만 월국까지 온 김에 가져가려는 생각이었다. 밀실 안에서 잘 보존된 영안의 샘이 하얀 영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는 한립의 머릿속에 그 옛날 막 축기에 성공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며 영안천을 발견했던 일 등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기에 더욱 남다르게 느껴지는 기억이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한립이 숨을 고르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수 개의 법결이 튀어 나가 영안천을 때렸다. 그러자 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인근의 지반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립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가부좌를 하고는 괴이한 수인(手印)을 맺어가며 입으로 주술을 읊조렸다.

곧 불가사의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샘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마치 무형의 손이 물살을 헤집듯 소용돌이치며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이어 한줄기 희뿌연 영기가 샘물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분출되더니 석실 지붕을 투과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립도 이것을 보고 안색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영기가 바깥으로 누출되는 상황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머뭇거림도 잠시뿐 다시 서늘해진 얼굴로 술법의 속도를 높였다.

이제 지면의 진동이 점점 심해지며 영안천 주변으로 눈을 찌를 듯한 노란빛이 방출되었다. 노란 빛이 수축할수록 영안 역시 작게 변했다.

잠시 후 그가 낮게 숨을 들이 마시자 모든 빛이 일순간에 사라졌고 주먹만 한 노란 구슬이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안천이 있던 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립이 작게 미소 짓다가 돌연 안색이 어두워졌다.

입구 밖에 세워둔 꼭두각시들이 공격을 당했는데 아직 부서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밀리고 있었다. 아마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한립이 오래 고민 할 것 없이 바로 옥갑을 하나 꺼내 노란 구슬을 조심스레 넣고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 결과 흑의를 걸친 수사 몇 명이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에게 맹공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이, 삼 십장 떨어진 곳에서 서른 살 쯤 되어 보이는 음산한 인상의 사내가 의혹이 어린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나오는 것을 보고 공격을 하던 수사들은 흠칫 놀랐고 음산한 인상의 회의 사내가 ‘그만!’이란 명하자 즉시 뒤로 물러났다.

푸른 빛 줄기가 허공에서 멈춰서더니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감정 없는 얼굴로 말없이 서 있었지만 일신의 기세가 범상치 않아 원영기 수사임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다.

“선배님 악의를 지니고 공격한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문하의 제자들이 우연히 영기의 이상을 감지하고 호기심에 몰려든 것 같습니다. 저는 귀령문 우홍이라 하옵고 귀령문 쇄혼(碎魂) 진인(眞人)의 제자입니다. 절대 선배님께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회의 사내는 한립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얼굴에는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쇄혼 진인이라!”

한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귀에 익다 싶었는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였다.

귀령문 원영기 노괴 중 하나였다. 손속이 잔인하고 독하기로 소문이 난데다 자신의 사람들을 편애하고 뒤끝이 길다고 알고 있었다. 낙운종 백발노인마저 그를 언급하며 주의하라 일러주었으니 말이다.

한립의 생각에 잠긴 얼굴을 보고 회의 사내는 그가 자신의 사부를 안다고 확신하곤 조금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었기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사부님을 아시다니 사부님의 벗은 아니신지요! 정말 큰 결례를 하였습니다. 미리 찾아 주신 줄 알았다면 결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요. 무엇이든 완배가 힘을 보탤 일이 있다면 분부를 하시옵고 아니면 저희는 먼저 물러나 선배님께서 자유롭게 일을 보시도록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회의 사내의 인상은 험악했으나 혀는 부드럽게 움직여 상대의 의중을 떠보는 말을 아주 잘했다. 홀로 정체불명의 원영기 수사와 마주친다는 것은 웬만큼 담이 큰 수사라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를 일이었다.

한립이 무표정하게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대답 대신 의식을 퍼트려 반경 백 리 안에 다른 수사의 기운을 찾아보았고 정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우연히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온 것이라면…….

한립은 살의가 일었다.

이전 황풍곡 수사의 신분이든 현 낙운종 장로의 신분이든 귀령문 수사들을 살려 보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옛날 귀령문 소주가 그를 죽일 뻔한 일을 아직 갚아주지도 못했지 않은가?

게다가 월국에 잠복을 한 정체 모를 원영기 수사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이후 거동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는 동급 원영기 수사들에게 쫓겨 죽자 사자 달아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헛! 저 자는…….”

한립이 바로 출수를 하려고 할 때 검은 의복의 수사 중 한 명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퍼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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