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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63화 (120/2,000)

# 363

363화. 옛사람의 후인

결단기 수사 셋이 상황을 파악하러 대청을 나서는 모습을 사람들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대청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용울음 같은 청명한 소리가 들려와 세 수사가 걸음을 멈춘 것이다.

찰나의 순간 십 여 개의 푸른 빛줄기가 하늘에서 쏘아져 내려와 세 수사를 휘감았다. 그 빛이 어찌나 강력한지 대청 내의 대부분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릴 정도였다.

순간 푸른빛이 다시 대청 밖으로 사라졌다.

푸른 장포의 노인과 마염문 두 호법은 수사들을 등지고 그대로 멈춰 서서 굳어 있었다. 대청 안의 수사들이 크게 놀란 와중에도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돌연 어떤 여수사가 내지른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녀 옆에 서 있던 부 가 관사하나가 목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 외에도 이미 열댓 명의 부 가 수사들이 관사든 제자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잃었다.

“푸른빛이, 방금 푸름 빛이! 누, 누군가 법보를 이용해 기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 가 식솔들이 위험…… 헉!”

아무래도 부 가와 교분이 깊은 수사였던지 누군가 남색 장포 노인에게 경고를 하려는데 숨이 막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귀빈들을 등지고 서있던 남색 장포 노인 외 세 결단기 수사들도 몸이 동시에 사분오열되며 조각이 나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축하를 하러 참석한 이들도 두려움에 손발이 저려왔다. 그들은 미친 듯이 눈을 굴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오색 창연한 갖가지 보호막들이 생겨나고 수 백 명의 수사들이 기괴한 법기며 부적 등을 꺼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이들은 한데 모여들어 서로 등을 맞대고 사방을 경계했다.

순식간에 세 명의 결단기 수사와 열댓 명의 축기기 수사들을 해칠 수 있는 존재라면 원영기 수사가 나섰을 가능성이 컸다!

만일 원영기 수사가 등장했다면 대청 안의 모든 수사들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

생각할수록 공포가 밀려와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는데 덕이나 보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생일대의 위기에 직면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청 안은 말 그래도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직 남아 있던 결단기 수사들이 의식을 퍼트려 습격이 시작된 대청 밖을 살피려 했으나 경계를 강화한답시고 의식에 제한을 두는 결계가 처져 있었던 탓에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속으로나마 부 가에 대한 욕설이 저절로 나왔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 대청 밖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한 시진후까지 누구라도 밖으로 나오려한다면 죽인다! 한 시진이 지나고 너희는 알아서 갈 길을 가면 된다.”

그 속에 담긴 살기로 인해 듣는 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많은 수사들이 한 시름을 놓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용 상 그들을 전부 죽여 살인멸구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한 시진은 길다면 길었고 또 짧다면 짧았다.

그동안 대청 안은 낮게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종종 들리기는 했으나 대청 밖의 처참한 비명에 금방 사그라지곤 했다. 비명은 항상 단말마였고 이어지는 법술의 소리도 대화도 없었다.

누군가 부 가 전체를 멸살하고 있었으며 어느 하나 맞설 능력이 없었다. 대청 안에서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수사들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어쩌다 멍청하게 원영기 수사와 척을 진 거지? ’

대단한 수행의 인물을 건드렸거나 고귀한 가문에 밉보인 것이 틀림없었는데 부 가의 멸문 현장을 지켜보며 고소해 하는 인물도 상당했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것이 안전만 보장 되면 즐거운 때도 있는 법. 그러나 겨우 일다경이 지났는데 이제는 비명마저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드디어 결단기 수사 중 하나가 용감하게 대청을 나섰다. 그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다른 이들이 분분히 그 뒤를 따른 것은 당연했다.

대청 밖은 이미 텅 빈지 오래였다. 바닥에 흥건한 피를 제외하면 수사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 가 직계 수사들은 전부 살해를 당해 시체조차 남김없이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하고 떠나기 위해 허공에 날아올라 주변을 둘러본 이들은 곧 눈치를 챘다. 성 밖에 기거하는 범인들이나 부 가의 방계 저계 제자들은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다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이번에 손을 쓴 수사는 방계나 범인들은 놔두고 직계들만 전부 없앤 듯 했다.

이런 변고를 겪고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수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바로 법기를 타고 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갔다. 남은 일부도 지금의 사태를 어찌 할 것인지 잠시 논의를 하다가 하나 둘 자신들의 근거지로 날아갔다.

부 가의 멸문은 그들과 우호관계였든 아니든 다른 문파와 가문들에게도 가벼운 소식이 아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진다면 원무국 수도계에 한동안 파란이 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마염문 호법 까지 둘이나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그 쪽에서도 무언가 반응을 보일 터!

그들이 지금 할 일은 이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가문이나 종파에 알려 이 파란 속에서 이득을 선점하고 위험을 피해가게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수사까지 급히 성을 벗어 난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낯선 얼굴의 수사들이 어슬렁어슬렁 자도산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이 이미 해체된 방어용 결계를 보고 한동안 멍해졌다. 이때 성 밖의 방계 제자들도 성 내의 변고를 알아채고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저계 수사들이 놀라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녹의 수사 무리가 할 말을 잃었다.

원무국 제1의 가문인 부 가가 원영기 수사로 추정되는 신묘한 인물에게 단 하루 만에 멸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겨우 며칠 만에 원무국 수도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원무국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술렁였다.

그 중에서도 마염문 고위층은 호법 둘이 살해당한 것에 분노를 표하며 문파 제자들을 파견해 진상 조사에 나섰고 심지어 문내의 원영기 사조들을 찾아뵙고 흉수를 상대해 주십사 청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허나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는 자라면 이것이 남 보여주기 식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마염문 입장에서는 두 호법이 사사로이 부 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득을 취한 사실도 거슬릴 터였고, 그 와중에 사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 부 가를 찾은 원영기 수사를 만나 당한 것은 그들이 운이 없어 생긴 일에 불과했다.

게다가 원영기 수사가 부 가를 멸문하고는 바로 자리를 털고 사라져 버렸는데 마염문이 아무리 세가 강해도 어찌 찾겠는가?

또한 원영기 수사는 죽이거나 제압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동급 수사 세, 네 명이 힘을 합치거나 미리 함정을 파서 엄청난 위력의 결계를 쳐놓지 않는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마염문에서 겨우 결단기 호법 둘의 보복을 하고자 그 많은 원영기 수사들이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들이 어찌 나오던 간에 원무국 수도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 것은 확실했다.

일단 부 가가 점유하고 있던 영맥이며 방시 등에서 나오는 이익들을 다른 세력들이 뜯어먹으려 달려들 것이었으나 한립과는 무관했다.

지금 그는 다른 수사들의 추측과 달리 바로 원무국을 뜨지 않고 겨우 수일 거리의 작은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허공에 뜬 그가 얕은 산을 둘러싼 짙은 안개를 내려다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이전과 똑같아. 금제가 여전하다는 것은 다른 수사가 살고 있다는 것인가.”

삼색 서금충이 화한 비검들로 부 가의 직계 제자들을 없애고 부 가 가주의 수급만을 챙긴 그는 신여음이 은거했던 이름 모를 작은 산으로 바로 가는 길이었다.

신여음과 제음소는 그와 인연을 맺었고 둘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 주었으니 부 가 노인의 수급을 두고 제를 올려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신여음의 거처가 그대로 존재하니 이상했다.

한립이 잠시 고민을 하다 몸을 날려 산허리 쪽으로 날아갔다.

지금 그의 수행으로 이 정도 금제야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 짙은 안개 앞에서 다섯 손가락이 꿈틀거리자 다양한 생의 법결이 뻗어 나가 금제 속으로 사라졌다.

곧 안개가 요동을 치며 자동으로 통로를 만들어냈다. 한립이 즉시 푸른 빛줄기로 변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개가 사라진 곳에 이전과 똑같이 대나무로 만든 누각이 눈에 들어왔다.

신여음이 직접 지었다는 바로 그 거처. 누런기가 깃든 크고 작은 대나무 집들을 보며 한립의 눈에 회한이 스쳤다.

인걸은 간 곳 없는데 산천은 유구했다.

그때 대나무 문을 밀고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부인이 걸어 나왔다. 수려한 외모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은은한 영기가 느껴지는 것이 연기기 삼성 정도 되어 보이는 저계 수사였다.

다만 한립은 그녀가 낯설지 않게 느껴져 미간을 좁혔다.

“아, 당신은…… 누구시죠?  어찌 여기까지 들어온 겝니까.”

중년 부인이 아무 것도 모르고 나오다 한립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해 물었다. 그 후 허리춤으로 손이 향하더니 바로 붉은 부적 두 장을 꺼냈다.

적의가 가득했지만 의외의 모습은 아니었다.

결계까지 쳐놓은 자신의 거처에 모르는 수사가 쳐들어왔는데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더욱 이상했을 것이다.

게다가 여인의 낮은 수행으로 한립의 진정한 수행을 알아볼 수도 없을 테니 그저 무궁무진하게 느껴지는 영기에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저, 혹시 선배님은 한 씨 성을 쓰시는 한립 선배님이 아니신지요?”

한립이 턱을 만지며 그녀의 내력을 물으려 할 때 여인이 그를 자세히 살피더니 놀랍게도 단번에 그의 이름을 알아 맞혔다. 놀란 그가 잠시 침묵하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입을 열었다.

“너는 매 소저와 무슨 관계이더냐. 닮은 구석이 있구나.”

“매 소저요?  아, 제 조모님을 말씀 하시는가 봅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시며 제게 신 가 아가씨의 거처를 맡기셨습니다.”

부인은 한립의 입에서 조모의 성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제대로 보았음을 깨닫고 깊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네가 그 아이의 후인이라고?  하, 생각도 못했구나. 그 어리던 아이가 할머니가 되고 또 세상을 떠났다니.”

그녀의 말을 들은 한립은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확인할 것은 확인을 해야 했다.

“나는 어찌 알아본 것이더냐.”

“당년 조모께서 친히 그리신 선배님의 초상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그것을 보며 자랐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요.”

“내 초상을?  직접 볼 수 있겠느냐.”

“당연하지요. 잠시만 들어가 기다려 주시면 바로 준비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몸을 살짝 비틀어 공손히 한립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한립은 조금 망설였으나 거절하지 않고 상대가 걸어 나온 문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상당히 깔끔하고 단정했다. 그가 의자에 앉자 부인이 서둘러 차를 끓여 대접했다.

당연히 이전에 신여음이 내주던 영차에는 못 미쳤지만 역시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며 평범한 찻잎과는 격이 다른 명차였다.

그가 차를 한 모금 드는 것을 지켜보고 부인이 조용히 나가 초상화를 찾으러 갔다. 여인은 주거 공간과 상당히 떨어진 구석진 건물로 들어갔다.

1층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2층에는 기다란 황목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두 개의 칠흑 같은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의식을 통해 그녀를 따라간 한립은 각각 제운소와 신여음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한립의 마음 한쪽이 먹먹했다. 당시 아름답게 웃던 젊은 연인과 그들의 말소리가 귀에 선명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이리 오래 지났다니.

부인은 공손히 위패를 향해 예를 올린 후 나무 탁자 뒤쪽의 협소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찾아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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