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361화 (118/2,000)

# 361

361화. 지목령영(至木靈嬰)

벽사신뢰를 이용한 그물은 ‘금뢰죽’이란 영물의 발견 이후 한립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활용법이었다.

오랜 세월 벽사신뢰를 운용하며 한립은 이것이 마공이나 사술에 즉효일 뿐 아니라 오행 영기를 구속하거나 봉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 전 수라성화나 요수 풍희의 바람의 기운도 벽사신뢰에 의해 갇혀 달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예상치 못한 발견은 한립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결단기 때는 수행이 낮아 벽사신뢰로 만든 금빛뇌전의 그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지만 지금은 수행이 크게 늘어나 있었다. 거기에 대연결 4성을 연공하는데 성공했기에 의식 역시 강해졌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눈앞의 소인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결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아니었다. 아마 수사의 원영과 비슷한 변종으로 기이한 힘의 결정체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금빛뇌전의 그물로 가두는 것을 시도해 볼만했다.

소인은 금뢰죽 법보와 그 효용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이런 숨겨진 활용법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니 이리 쉽게 맨몸으로 금빛 그물에 대항하다 걸려든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은 순식간에 났다. 기고만장하던 소인을 한립이 단숨에 잡아버린 것이다. 한립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푸른빛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 금빛 공을 휘감아 돌아왔다.

“감히 날 가둬?  어서 날 놓아주지 못하겠더냐! 그렇지 않으면 네 혼을 뽑아 고문하고 죽일 것이야!”

금공이 부들부들 떨리며 안에서 노한 소인이 괴성을 방출했다. 극히 귀에 거슬리는 고음이었다.

“내 혼을 뽑아 고문을 해?  아무래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 안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좀 해보시지요.”

콰콰쾅.

그의 손에 있던 금공이 튕겨나가며 얇은 금빛이 한 겹 한 겹 겹쳐졌다. 수중의 벽사신뢰의 거의 절반을 소비하고 나니 금공의 크기가 훨씬 커져 있었다.

안에서 욕설과 고함을 질러대는 여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한립이 저물대를 스쳐 하얀 옥으로 만든 함을 꺼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금공을 옥함에 넣은 후 저물대 속에서 결계용 부적을 여러 장 꺼내 꼼꼼하게 붙여버렸다.

동시에 옥함 속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제야 고음에 찌푸려졌던 한립의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는 혼백을 잃고 육체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뚱뚱한 수사를 보다가 불꽃을 튀겨 재로 만들었다. 이후 한립은 다시 차분하게 성 내로 날아 돌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객잔 안에서 생활을 이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무국 수사들은 멋모르는 산수들을 죽이고 그들의 보물을 약탈했던 팽역쌍흉이 어느 날부터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어떤 수사나 고인에게 잘못 걸려 당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했다.

* * *

천라국(天羅國), 원무국 천리 밖 마도육종의 본거지.

천라국 서부 기령산은 수만 리를 뻗어 있었고 산세가 험악한데다 온갖 영수와 기충들이 범람하는 곳으로 바로 어령종 산문이 위치한 곳이었다.

한립이 소인을 봉인한 순간, 기령산 한쪽의 칠흑 같은 석실 안에서 돌연 노인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냐, 누가 감히 지목령영을 가둔 게야! 여봐라! 어서 원무국으로 어령종 제자들을 보내거라, 어서! 만일 3개월 내에 지목령영을 찾아 내지 못하면 모두 목숨으로 그 죗값을 치룰 것이야. 또한 절대 마염문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

석실 안의 노인은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명을 내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했다.

“존명! 분부하신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석실 밖에서 진중한 남자의 목소리가 답을 하자 노인이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렸다.

“잠깐! 그 외에도 운지와 옥이를 불러 직접 원무국에 다녀오라 이르거라. 나무 속성 영근을 지녔으니 지목령영을 찾기에는 가장 적합한 인선일 게야. 다만 지목령영을 가둔 자의 재간이 보통은 넘을 것이니 만전을 기하고 직접 대항하지 말고 찾아만 내라 명하거라. 그 자는 내 직접 상대할 것이니.”

“예, 제가 직접 사매들에게 당부하겠습니다. 그럼 사질은 이만 물러갑니다.”

이어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 * *

자도산 산중 보라색 안개로 모습을 감춘 성곽 안에있는 부 가 가주 부천화는 혈색이 좋고 원기가 왕성한 노인네였다.

평소 엄격하던 노인네가 요즘 자애로운 얼굴을 하며 사람들을 대해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400세 생일 연회가 곧 다가오는데다 부 가의 가장 나이 많은 결단기 수사로서 마염문의 두 호법까지 직접 축하하러 와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부 가의 어린 연배들은 조금도 모자람 없이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청아, 마염문 귀빈들은 아직 이더냐. 일이 있어 연회 전까지 당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매처럼 예리한 눈초리의 부 가 어르신이 내당의 태사의에 유유히 앉아 묻고 있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위엄이 깃들어 있어 지난 100년 간 부 가의 부흥을 이끈 기개가 느껴졌다.

40대로 보이는 얼굴이 뽀얀 수사가 공수를 하고 즉시 답했다.

“아룁니다. 마염문 손 선배께서 이미 제자를 보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와 막 호법이 이번 연회에 직접 찾아올 것이라고요. 하루 이틀 내로는 분명 당도할 것입니다.”

“어르신, 그렇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두 분 선배와 저희 부 가의  100년이 넘는 교분을 생각할 때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이 마염문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저희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게다가 가문에서 가장 빼어난 미색을 갖춘 여 제자들을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하얀 얼굴의 중년인 옆에서 가는 눈썹의 노인이 거들었지만 부 가 노인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웃음기가 가셨다.

“난 오랜 벗들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연회가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심란한 것이, 마치 무슨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그러는 것이다. 혹여나 최근 귀한 가문이나 고인과 마찰이 있지는 않았더냐?”

부 가 노인의 말에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생각에 잠겼던 두 사람 중 백면의 중년인이 조심스레 답을 올렸다.

“저희 가문이 오랜 세월 세력을 쌓으며 수많은 가문들과 은원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 중 가장 저희를 적대시하는 가문은 역시 담 가와 호 가이겠지요.”

“그들은 아닐 것이다! 우리와 경쟁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지금의 판을 뒤엎을 만한 고계 수사가 없는 가문들이야.”

부가 노인이 싸늘하게 고개를 저은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두 가문이 연합을 하고 다른 약소 문파 등의 힘을 모은다면 기회가 영 없는 것은 아닐 터. 당년 마염문과의 관계를 위해 그들을 대신해 두 가문의 수사들을 적잖이 죽였으니…….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원한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야.”

장포 노인이 신중하게 물었다.

“그럼 어르신의 뜻은.”

“겉으로는 풀어주되 안으로는 조여야지! 성 내 초소의 병력을 평소의 두 배로 늘리고 보호 결계를 개방해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말거라. 특히 신분이 불분명한 산수의 경우 감시를 붙이도록.”

“예!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백면 중년인이 바로 밖으로 향했고 대청 내에 남은 다른 이들은 부 가 어르신의 불편한 심기 때문에 함부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천운, 네 삼숙을 불러 오거라. 철배(鐵背)성수를 영수대에 담아 나와 함께 연회에 참석하라 일러야겠다. 오직 그 만이 우리 부 가의 성수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으니!”

갑작스런 노인의 말에 장포 노인이 깜짝 놀랐다.

“예?  원래 삼숙께서 수행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니 연회 일로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흥! 원래는 원래고 지금은 지금이다. 도를 수행하는 우리 같은 수사들은 길흉화복을 점칠 수는 없더라도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을 느끼지. 이 예감을 무시했다가는 지금의 부 가도 없었을 것이야. 노인네의 쓸데없는 걱정일망정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예! 바로 삼숙에게 출관하라 이르겠습니다.”

장포 노인이 부 가 노인의 모습에 찔끔해서는 바로 그러겠다 답하고 대청을 나왔다. 그러고 나서도 부 가 노인의 여러 분부가 이어졌고 여럿이 이런저런 명을 받아 급히 나가고서야 조금 마음을 놓은 듯 했다. 이 정도 준비를 해두었으니 어떤 위기가 와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 * *

3일 후, 자도산 자색 운무 밖에 적지 않은 산수들이 모여들었다. 어림잡아도 30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은 보라색 운무를 가리키며 무어라 떠들어댔다. 한립은 홀로 그 무리 속에 섞여 상황을 관망했다.

원무국에 이렇게 많은 축기기 수사들이 나타나다니 예상 밖이었다. 그만큼 부 가 가주라는 노인네의 생일잔치가 대단한 기회인 듯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 월국 칠대선파 시절의 산수들 중에서 축기에 성공한 수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였다.

100년이 순식간에 지나 이런 변화를 직면하게 되니 세월의 흐름이 절로 느껴졌다.

한립은 몰랐지만 이는 당초 정마 양도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축기단을 거대 종파와 가문들이 독점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백여 년간의 혼란을 겪으며 수많은 문파와 가문들이 멸문지화의 화를 당하니 그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도 당연했다. 이렇게 되니 축기단 역시 수사들을 따라 세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물론 그 수량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산수 무리 속의 축기기 수사가 늘며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고 극소수는 기연을 얻어 금단에 성공하기도 했으니 큰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분명했다.

정마 양도 혹은 천도맹 어느 쪽이든 이런 산수들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흡수를 하거나 철저하게 억누르려 노력했다. 그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뤄 위협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한립이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검을 타고 붉은 천삼을 걸친 남녀 수사 무리가 날아왔다.

선두에 선 두 명의 결단기 수사 중 한 명은 온 얼굴에 마진 자국이 남아있는 추남이었고 다른 한명은 평범한 외모였지만 눈빛의 냉기가 진동을 했다. 그들은 각각 꽃같이 아름다운 여 수사들을 대동했는데 그 뒤를 따르는 제자들은 모두 축기기 수사들이었다.

“마염문 수사다.”

누군가 그들을 보고 하는 말에 모여 있던 산수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염문에서 문파 외부의 일을 주관하는 손 호법과 막 호법이네. 옆에 선 여 수사들은 아마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부 가의 여 제자들이겠군. 듣자니 두 분 선배님들의 시첩으로 바쳐졌다던데.”

견식이 넓은 수사 한명이 일행에게 작게 소곤거렸으나 한립의 강력한 의식에 이런 사담들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의 시선이 마염문 결단기 수사들과 그 옆의 여 수사들을 스쳤다.

확실히 절색이라 불릴 만한 미모였다. 마염문 수사들은 모인 산수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즉시 농염한 안개 앞으로 가 전음부를 날렸다.

잠시 후 보라색 안개가 요동을 치며 자동으로 출입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 뿐 아니라 부 가의 제자들이 아주 공경스러운 태도로 직접 마중을 나오기까지 했다.

한립이 그 기회를 틈타 부 가 제자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들은 마염문 제자들이 통로로 들어가자 안개로 다시 입구를 덮어버렸다.

그 후로도 한두 시진 동안 초대받은 손님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보라색 안개가 안쪽에서 걷히며 귀찮은 기색의 중년의 관사가 걸어 나왔다.

“오래 기다리게 한 저희 부 가의 결례를 괘념치 말아주십시오. 아무래도 연회의 규모가 크다보니 한 번에 많은 분들을 접대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제는 준비가 되었으니 저를 따르시지요.”

번지르르한 말에 산수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산수들은 두말할 것 없이 중년 관사의 뒤를 따라 안개 속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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