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
359화. 동행
주인장이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슬쩍 주방에서 찬물이나 들이키려고 기회를 보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주위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든 그가 화들짝 놀랐다.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괴상한 인상착의의 세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삿갓에 삼베옷을 입은 작고 뚱뚱한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대머리에 험상궂은 얼굴을 지녔다. 마지막 사내는 머리를 산발해고는 살기가 그득한 얼굴로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놀라긴 했어도 그간의 경험을 살려 아얼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
“저희 객잔에서 묵으시려 하십니까?”
뚱뚱한 사내가 작은 눈을 부릅뜨며 커다란 은자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러지 않을 거면 우리가 여기 왜 서 있겠느냐? 가장 좋은 방 세 개로 안내하고 술상이나 거하게 차려 방으로 올려 보내거라.”
아얼이 답하기도 전에 이쪽을 주시하던 주인이 달려 나와 득달같이 은자를 품에 넣고 알랑거렸다.
“그러믄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으로 드시지요. 술상은 바로 올려 보내겠습니다. 아얼, 어서 제일 좋은 방을 정리해 두거라.”
“네.”
비록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아얼이 어쩔 수 없이 답했다. 매번 손님들이 주는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갈취해 갔다.
속으로 객잔 주인을 욕하면서도 아얼은 한결같이 밝게 웃으며 세 명을 2층 방으로 안내하고 물러났다.
잠시 후 술상이 준비 되자 아얼은 다른 점원을 도와 그것을 방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그러자 세 사람이 마침 둘러 앉아 있었다.
아얼이 이상하다는 듯 슬쩍 보는데 산발한 사내가 시선을 느꼈는지 냉랭히 쳐다보았다.
“…….”
그 눈빛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아얼은 모골이 송연하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 도망치듯 방에서 나왔다.
그때 방 안의 세 사람도 막 입을 열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내가 방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실실 웃으며 머리를 산발한 이에게 말했다.
“한 동생, 어찌 일개 범인에게 경혼술을 쓰는가? 설마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 겐가?”
산발 수사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점소이가 영근의 자질이 있더군요. 그렇지만 자질이 나빠 수행을 해도 3, 4성 정도 밖에 이르지 못하겠지만요.”
“영근? 그거 참 의외구만. 그래도 직접 살피지도 않고 한 눈에 그것을 파악하다니 한 동생의 능력이 대단하네 그려.”
“수행은 두 분과 비슷하나 비술을 익혀 그러합니다.”
뚱뚱한 수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겸손하구만. 그래나 겨우 그 정도 자질이면 수도계에 들어도 전도가 밝진 않겠어. 운이 좋아 자네나 우리처럼 축기기에 이르러도 기댈 가문이나 문파가 없으면 무시당하기 일쑤이지!
이번에 자도산을 찾은 것도 부 가 어르신의 생신 연회를 기회삼아 마도 종파에 들어갈 길이 없나 살피기 위함일세. 다만 우리 같은 산수는 연회 당일에나 들어갈 수 있으니 열흘 넘게 기다려야겠지만 말이야.”
산발 노인이 냉랭히 고개만 끄덕였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뚱뚱한 수사가 대머리 거한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거한이 입을 뗐다.
“한 형, 우리도 부 가 연회로 길을 서두르다 며칠 전에 만난 사이입니다. 솜씨가 평범하지 않은데 이전에는 어디에서 수행을 하였습니까?”
질문은 대머리 거한이 던졌으나 뚱뚱한 수사가 눈을 빛내며 산발 사내를 주시했다.
“본래 월국 수사로 최근에야 원무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제 이름을 들어보셨을 리 없겠죠.”
뚱뚱한 수사가 작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월국이면 귀령문의 영역이 아닌가. 귀령문을 찾아가지 않고 어찌 먼 원무국까지 오게 되었는가?”
“라 형의 말씀이 맞지만 찾아가도 입문할 길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현재 월국은 귀령문이 독점하고 있어 다른 가문이나 종파의 수사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까지와 기회를 잡으려 하는 것이지요. 저도 부 씨 어르신의 생신 잔치 소식을 듣고 서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랬구만. 보아하니 고생이 많았겠어.”
이후에는 한립의 출신성분을 캐묻기 보다는 수도계에 떠도는 소문 등을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술자리를 마치고 일어난 산발 수사가 옆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가 방을 나서자마자 뚱뚱한 사내의 얼굴에서 싱글벙글하던 미소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인상을 구긴 뚱뚱한 수사가 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수결을 맺으니 빛이 나며 방 안 전체가 밝은 빛으로 감싸였다.
라 수사가 법술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대머리 거한이 서둘러 물었다.
“라 형, 저 놈이 정말 산수일까요?”
“산수는 절대 아니지. 아마 어느 작은 종파의 제자나 될 것이다!”
뚱뚱한 수사가 거만하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들려주었다.
“이곳까지 날아오면서 저자가 탄 비검을 보지 못했느냐? 분명 최상급 법기였다. 게다가 허리에 차고 있는 저물대 수도 많고,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영수대였어. 일개 산수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어찌 가지고 다녀!
분명 작은 종파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나온 수사일 것이다. 만약 대단한 가문의 제자였으면 콧대가 높아 우리 같은 것들이랑 동행을 했을 리 없고. 자도산(紫道山)에서 초청장도 꺼내 보이지 못했다.
그러니 마도천하인 세상에 별 볼일 없는 문파의 수사라면 거들먹거리고 다니지 못 할만하다. 차라리 산수라 속이고 조용히 다니면 마도 수사들의 눈 밖에 나 사문까지 화를 끼칠 일은 없지 않더냐? 그러니 지닌 기량도 상당하고 법기도 쓸 만하지만 얼굴이 낯설 수밖에.”
대머리 거한의 두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거, 라 형의 말씀을 들으니 한 가 녀석은 틀림없이 별 볼일 없는 가문의 제자가 맞겠습니다. 그럼 눈치 볼 것 없이 해치우죠? 우리를 약간 경계하긴 해도 수행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축기 중기인 우리 둘이서 초기 수사 하나쯤 없애는 거야 식은 죽 먹기죠.”
뚱뚱한 수사가 두툼한 입술을 혀로 축이더니 음산하게 일렀다.
“그래야지.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경계심을 좀 낮춰놓자고. 까맣게 모르고 있을 때 불시에 습격하면 쉽게 없을 수 있을 테니까! 부 가 노인네를 위한 잔치 이틀 전이면 딱 적당하겠어. 그때까지 최대한 친분을 쌓았다가 한 번에 쓱싹!”
“좋습니다! 전부 라 형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이번 건은 쏠쏠 하겠는데요?”
“헤헤. 저렇게 퉁퉁하게 살이 오른 어린 양이 나타났는데 당장 잡아다 불에 올려야지!”
그들이 살인을 모의하는 동안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발 수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꼭 저렇게 죽고 싶다면야. 소원풀이를 해줘야겠지.”
산발수사의 눈에 한기가 스치고는 다시 두 눈이 감겼다. 그는 바로 모습을 바꾼 한립이었다.
사실 그는 벌써 두 달 전, 원무국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몇몇 정도나 마도에 속한 국가를 지났지만 이미 원영기에 이른 그가 수행을 숨기니 다른 이들이 눈치 챌 리 없었다.
원무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크게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현지의 산수들에 섞여 교류회 등을 돌며 부 씨 가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부 가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 한립은 고민스러웠다.
부 가에 속한 결단기 수사들 때문이 아니라 마도 마염문(魔焰門)에 귀의한 부 가의 여러 제자들이 걸리적거렸다. 아무리 그라도 다짜고짜 아무 상관없는 마염문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이들을 놔두고 부 가에 남은 식솔들만 제거했다가는 금방 부 가는 재건되고 명성을 회복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렇다면 당시 부 가를 철저히 멸문시키겠다는 약속은 저버리는 꼴이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원무국 각지에 곧 부 가 어르신의 생신 축하 행사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 퍼졌다.
한립은 쾌재를 불렀다.
부 가 어르신의 생신이면 직계 제자란 제자는 모조리 모여 축하를 올릴 것이고 그럼 마염문에 입문한 이들도 본 가로 돌아올 테니 그때 일망타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 가는 어중이떠중이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가문이나 문파에 관련된 사절들이 아니면 산수는 적어도 축기기 이상은 되어야 담을 넘을 수 있었다.
상황을 고려한 그가 1개월 넘는 시간을 기다린 끝에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다.
다만 한립을 노리는 놈들은 우연히 마주친 자들이었다. 그가 지닌 법기가 비범한 것을 보고는 아주 신이 나서 달라붙은 똥파리들이다. 그들은 한립이 부 가 연회에 참석차 가는 중이라는 소리에 동행을 제안했다.
한눈에 검은 꿍꿍이가 있을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겨우 축기기 수사들에게 당할 자신도 아니었고 같이 움직이면 신분을 속이기 수월할 듯해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오늘 자도산 아래까지 갔다가 초청장이 없는 수사들은 당일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게 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당일이 되어야 사람들이 다 모일 테니 미리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후 십여 일 간 그는 이 자들과 어울리며 낮에는 주변을 돌아보고 밤에는 객잔에서 연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 놈들은 한립을 ‘한 형제’라 칭하며 마치 몇 년간 동고동락한 친 형제 대하듯 살뜰하게 챙겼다.
시간이 지나자 부 가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산수들이 꾸준히 늘어만 갔다. 산수들이야 노숙에 익숙했지만 세속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성 내로 들어와 두 개 뿐인 객잔 중 하나에 묵었다.
이렇게 되니 한립도 같은 객잔에 머물게 된 산수 몇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곁에 뚱뚱한 수사나 대머리 수사를 보자마자 안색이 달라져 거리를 두었다. 생각보다 두 놈들의 악명이 멀리까지 퍼져있는 모양이었다.
뚱뚱한 수사가 혹시나 한립이 이런 상황에 자신들을 오해할까 더욱 말을 꾸며대며 단속을 한 것은 당연했다.
다시 이틀이 지나고 뚱뚱한 수사가 갑자기 주변에 유명한 명소가 있다며 함께 구경을 가자고 청했다.
한립은 이제야 이놈들이 자신을 치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바로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소위 그 ‘명소’를 향해 가게 되었다.
세 사람은 열심히 날아 성곽에서 백 여리 떨어진 어느 호젓한 산골에 내려섰다.
“한 형, 보이십니까? 이 산만 넘어가면 작은 계곡이 나오는데 푸른 계곡물이 졸졸 흘러가는 광경이 신선들이 산다는 선경(仙境)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곳을 보고 나면 다른 풍경은 눈에 차지도 않을 걸요?”
외모는 별로였지만 입 놀리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한립은 그저 가만히 들으며 속으로만 코웃음을 쳐댔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지나면 정말 숨겨진 골짜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경치는 그저 그랬고 대신 은은하게 영기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그들은 정말 살인이나 강도짓에 이골이 났는지 미리 적을 가두는 진법을 설치해 숨겨두고 있었다.
만약 한립이 정말 축기 초기 수사고 이런 진법에 빠진 틈에 동급 수사들이 암습한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일 것이다.
“글쎄요. 이곳 경치도 괜찮은데 멀리 갈 것 있겠습니까? 만일 여기서 수사 하나 죽어나간다 해도 시체만 치우면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요.”
한립의 말은 들은 뚱뚱한 수사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한 형, 섭섭하게 그 무슨 말씀 입니까? 설마 우리 두 사람에 대해 무슨 오해라도…….”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도 그의 살집 오른 손은 이미 저물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대머리 수사도 티가 나게 상대의 측면을 노리고 신호를 기다렸다.
이런 수상한 행동들을 하는데 한립이 뒷짐을 지고 제자리에서 유유자적 기다리고만 있자 뚱뚱한 수사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