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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52화 (109/2,000)
  • # 352

    352화. 원영 (1)

    한립은 단약을 제련하는 연습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구곡영삼을 이용해 단약을 제련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해둬야 했다.

    이렇게 수련과 단약 조제로 시간은 흘러갔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한립은 거처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수련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반드시 폐관수련을 해야 할 때는 은월을 시켜 자신의 모습을 하고 동문 사형제들을 상대하게 했다.

    은월이 여우 요수의 몸을 빌려 대량의 단약을 삼키며 수련에 정진한 결과 수행도 무척 빠르게 높아졌고 환술도 더욱 교묘해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던 모 가 여인도 한립이 검술 대회이후 시종일관 낙운종의 외진 약재 밭을 지키며 두문불출하자 결국에는 의심을 거둔 듯 했다. 그를 다시 평범한 연기기 제자와 동일하게 대하며 이후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한립은 더욱 안심하고 낙운종에서의 삶을 영위했고 낙운종에서 연기기 제자로 스무 해를 살아냈다.

    드디어 그가 원영을 응결할 날이 임박했다.

    * * *

    동굴 거처 단약 제조실 안, 한립은 입에서 손가락 굵기의 푸른 단화를 뿜어내며 반 촌 크기의 은백색 솥을 불사르고 있었다.

    세 발 달린 연단용 솥은 석실 가운데의 진법 위에 떠서 쉼 없이 돌아갔다. 긴장한 얼굴의 한립도 전신이 영력으로 인해 반짝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석실 내부에 은은하게 약초의 향이 감돌자 한립의 얼굴에서 옅은 희열이 느껴졌다. 향의 농도가 짙어질 무렵 그가 갑자기 두 손으로 법결을 맺자 단화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가라!”

    동시에 법결이 쏘아져 나가 석실 바닥의 진법 위에 떨어져 내렸다.

    진법이 한동안 낮게 울리더니 붉은 색과 녹색이 교차로 분출되어 올라와 은백색 솥으로 쏘아져나간 것이다. 작은 솥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덮개가 걷혔고 그 안에서 우윳빛의 단약이 나왔다.

    마치 수정과 같이 반짝이는 엄지 손가락만한 단약이었다. 그 주위에 하얀 빛무리가 지며 영약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단약을 본 한립은 숨길 수 없는 기쁨에 젖어들었다.

    구곡영삼으로 만든 단약을 드디어 제련해 낸 것이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거쳐서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정말 마노각이나 반요초가 떨어져 다음 기회도 기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립은 구곡영삼을 단약으로 제련할 때 뿌리 전체를 이용하지않고 잔뿌리만 이용했다. 이렇게 하면 단약의 화신인 흰 토끼의 원기가 크게 상해 숨만 붙어 있는 꼴이 되긴 했지만 살길을 열어주었다.

    이것을 보고 한립은 며칠을 숙고하다 결국에는 몇 겹의 금제를 설치하고 구곡영삼에 녹색 액체를 떨어뜨려 성장하게 만들었다. 만약을 위해 처음에는 아주 묽게 희석한 액체를 이용하다가 점점 농도를 높였다.

    어쨌든 스스로 화신을 만들어 낼 만큼 영험한 영물은 분명 일반적인 약초와는 다를 터였다.

    그 결과, 녹색 액체를 주입하자마다 구곡영삼은 원기를 적잖이 회복했고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해본 후에야 안심하고 마음껏 녹색액체를 주기 시작했다.

    잔뿌리를 이용해 단약을 제조해보고 다시 원기를 회복할 때를 기다리니 구곡영삼은 끊이지 않고 공급할 수 있는 재료가 되었다.

    이제, 한립은 손가락으로 우윳빛 단약하나를 집어 들고 상세히 관찰했다.

    겉보기에 향은 약방에 기재된 것과 같았는데 구체적인 약효가 어떨지는 원영을 맺을 때 직접 복용해 봐야 알 듯 했다. 가볍게 숨을 내쉰 그는 단약을 조심스레 옥함에 넣고는 석실을 나섰다.

    그는 이미 오륙년 전에 대연결 4성에 이르러 또 한 번 의식이 크게 성장했다. 또한 청원검결 역시 수개월 전에 9성의 경지를 원만히 이뤄내 수행으로 치면 거의 원영에 근접한 수준까지 다다랐다.

    이제 단약이나 공법 상 모든 준비를 끝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원영 응결에 들어갈 계획은 없었다. 그 대신 홀로 거처를 나와 운몽산 동쪽 산맥 부근의 경치 좋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지금까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어릴 적 부모님 슬하에서 가족끼리 보낸 단란한 시간과 어린 누이와 장난치던 기억, 셋째 숙부의 추천을 받아 칠현문에 입문해 려비우와 문 대인을 조우한 일, 다시 장춘공을 익혀 태남소회를 기점으로 진정으로 수도계에 발을 들인 일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본래 흐릿해졌던 기억들이 점차 선명해지며 한립의 표정이 희로애락에 흔들렸다가 다시금 본래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렇게 3일을 보낸 후에야 한립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는 이제 삶의 작은 굴곡까지 선명하게 기억해내며 고요히 세상사의 도(道)에 대해 깨달음을 구한 것이다.

    다시 한 달이 흘러 그가 은밀히 마련한 공간에서 나왔을 때에는 몸과 마음이 충만한 상태였다.

    한립의 마음은 돌을 던져도 파문조차 일지 않는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그가 바로 약재원의 동굴 거처로 돌아와 일신의 모든 강력한 진법 금제들을 층층이 설치했다.

    그리고 은월을 향해 단 두 마디를 남겼다.

    “문을 지키거라. 어떤 일이 있어도 날 방해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한립은 푸른 옷자락을 흩날리며 밀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소리 없이 닫힌 석실의 문이 빛나며 부호와 주술이 나타났다. 그가 석실 안쪽에 따로 금제를 설치한 것이다.

    한립이 무엇을 하려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월도 그의 다음 행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약간의 선망, 높은 경지에 대한 갈망 등 온갖 감정이 섞여 있었다. 조용해진 석실을 한참 지켜보던 은월이 길게 탄식하며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한립과 명운을 같이 하고 있는 지금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더라도 그가 무사히 원영기에 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3개월 후 약재원에서 백 여리 떨어진 공중에 모 여인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겉보기에도 무언가 답답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한 얼굴이었다. 가문의 몇몇 장로가 반드시 언 가 사내와 혼인을 할 것을 명하는 서신을 보내왔으니 그녀는 앞날이 캄캄해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결단기 수사였다면 겨우 가문의 장로들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문파나 가문에서 결단기 수사는 귀한 인력이라 공경과 대우를 받기 마련이었다.

    모 씨 가문의 가장은 자신의 손자를 언 가의 포악한 여인과 혼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혼인을 대가로 내건 것이다. 이런 황당한 혼사를 강요당하는 중이니 그녀는 겉보기에만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는 상태였다.

    자존심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돌아다녔지만 심란하고 답답한 마음이야 그 누가 알겠는가?

    원래 그녀의 계획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가문의 결정을 거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혼례를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아 결단에 성공한다면 그까짓 혼약이야 걱정할 것이 못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친 듯 수련을 했음에도 겨우 축기 후기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축기기 최고봉에 이르고 진정으로 결단을 시도하려면 최소한 2, 30년은 더 필요했다.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지만 모 가의 장로들은 아니었다. 이제는 대놓고 당장 혼례일을 정하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수련 상에 필요한 일체의 영석을 제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와 가까운 혈족들에게 불이익이 갈 거라 통보해 왔다

    강단 있는 여인이었지만 거부 할 수 없는 집안의 명에 대항할 힘은 없었다.

    그녀가 낙운종 내에서 봉주와 여타 사형제들의 신임을 받고 있기는 했으나 일단 수도대가가 연루된 사적인 가문의 일에 누구도 함부로 나서서 끼어들기 어려웠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그 간사한 언 가가 무슨 소식을 들었는지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천천봉으로 달려와 치근덕 대기 시작했다. 만일 그녀의 성취가 언 가보다 높지 않았다면 벌써 무슨 일을 당했을 것이다.

    여인은 당장이라도 그 쥐새끼 같은 놈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오늘은 마침 몇몇 약재원에서 약재를 거둬들이는 날이라, 모 가 여인은 이 일을 핑계로 일찍 천천봉을 나서 언 가 놈을 따돌린 참이었다. 이미 두 곳은 들렸고 다음은 한립이 맡고 있는 약재원 차례였다.

    한립은 묘한 자였다.

    분명 연기기 제자에 불과한데 항상 무언가 꿰뚫어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검술대회 일까지 있고 나니 그녀는 상대가 수행의 경지를 속이고 있거나 또 다른 신분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살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문파의 규칙을 잘 지키며 어떠한 의심스런 정황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거의 약재원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고 교류하는 제자들도 손에 꼽힐 정도로 수가 적었다.

    이에 스무 해가 흘러 여인은 철저히 자신의 추측을 거두어들였다.

    상대는 기껏해야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보통 제자에 불과했고 자질도 떨어져서 축기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모 가 여인이 십리 정도를 더 날아가는데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영력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돌연 알 수 없는 느낌이 몸을 억누르며 몸이 덜덜 떨려왔다.

    방비를 하지 않고 있던 그녀는 순간 놀라 법기에서 떨어져 추락할 뻔 했다. 모 가 여인이 크게 놀라 황급히 전신의 영력을 끌어 올려 간신히 균형을 잡고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눈에 기이한 현상들이 포착되었다!

    백여 장 높이의 허공에 무수히 많은 빛 덩이들이 나타났는데 오색으로 빛나며 깜빡거렸다. 빛덩이들은 아주 정순한 영력을 함유하고 있어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모 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빛덩이들의 흐름이 끝도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그녀는 법기를 타고 허공에 뜬 채 눈앞의 괴이한 형상에 넋을 잃고 말았다.

    한립의 거처를 중심으로 방원 백 리 정도를 이 기이한 빛덩이가 감싸고 있었으니 여인 뿐 아니라 다른 수천수만의 낙운종 수사들도 이 괴이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얼이 빠져 있었지만 좋은 쪽으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축기기 이상의 제자들은 조금 불편할 뿐 영력을 끌어 올리면 안정을 찾을 만 했는데 연기기 제자들의 경우 엄청난 압력에 숨도 쉬기 어려웠다.

    산맥의 깊은 곳에서 수련을 하던 수사나 심지어 수천리 밖의 수사도 놀란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중 다수는 이런 광경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몇몇 이 이채로운 풍경의 의미를 파악한 이들은 크게 놀라거나 기뻐하고 또는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낙운종 주봉의 어느 곳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은발의 노인이 좋지 않은 낯빛으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수 백 리 밖에서 빛덩이들이 출현한 찰나, 은발 노인의 하얀 눈썹이 꿈틀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을 부릅떴다.

    주저할 겨를도 없이 노인은 즉시 수련하던 공법을 거두고 당장 하얀 빛 줄기로 변해 동굴을 빠져나와 정상에 올라 한립의 거처 방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 노란 빛 줄기가 하늘 어느 편에선가 나타나 은발 노인의 거처로 쏘아져 내려오다가 그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방향을 틀어 내려섰다.

    빛이 사라지니 얼굴이 새파래진 중년인이 나타나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정 사형, 느끼셨습니까?  제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지요?  우리 낙운종에서 누군가 원영을 응결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런 걸 착각할 수 있겠나. 우리도 이미 겪어 보았듯이 확실히 종 내에 모처에서 원영에 성공한 수사가 출연하겠군. 이미 마지막 단계라 고지가 코앞이네.”

    눈을 가늘게 뜨며 정 수사에게 중년인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종 내의 결단 후기 수사라면 풍 사질과 첩자들에게 당했던 호 사질 뿐인데. 풍 사질은 겨우 2년 전에 후기에 이르렀으니 아직 원영에 근접한 법력을 쌓지도 못했을 겁니다.”

    “흥! 풍 사질의 수행을 내가 모르겠는가?  저 수사는 비록 우리 낙운종 내에서 원영을 응결하고 있지만 결코 낙운종 사람은 아니네. 어떤 담 큰 녀석이 몰래 숨어 들어왔거나 신분을 숨기고 잠입한 것이겠지. 운몽산의 영기가 충만하니 원영을 하기에는 확실히 최상의 입지가 아닌가.”

    중년인이 바로 미간을 좁히며 탐탁지 않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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