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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9화 (106/2,000)

# 349

349화. 궤변

저계 제자들이 좌불안석한 와중에 황의 수사까지 사라지자 각자 자기 종파 제자들끼리 모여 낮은 목소리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한립, 두동, 모 가 여인과 손화 네 수사도 한자리에 모였다.

“고검문 백 사숙이 정도맹 첩자였다니 기겁을 했습니다! 산수 출신으로 결단의 경지에 올랐다고 이전에 얼마나 존경어린 마음으로 대했는데 울화가 치미는 일 아닙니까!”

손화의 탄식하는 말소리에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런 청년을 모 가 여인이 냉담하게 쳐다보며 아무 감정 없이 답했다.

“정말 가문의 지원 하나 없이 산수로 결단까지 이른 이가 얼마나 된다고 봅니까. 손 사제의 경우 산수 출신으로 축기를 해 이미 그 자질을 증명했으니 적지 않은 가문에서 사윗감으로 원할 테지요. 그 중에 적당한 곳을 찾아 입적한다면 이후 수련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청년이 의연한 얼굴로 냉소하는데 상당히 호기로워보였다.

“헤헤! 손 모는 그런 말은 믿지 않습니다. 좋은 가문의 지원을 얻지 못한 산수라고 결단에 이르지 못할 리가 있나요! 저는 결코 가문 따위에 의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 얼음장 같은 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손화를 보며 모 가 여인이 입을 다물었다.

두동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백 사숙도 가련하지 않습니까?”

“가련하다?  아니, 두 사질 그건 또 무슨 일이지?”

손화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보자 모 가 여인도 의아하다는 빛이 역력했다.

몸집이 큰 두동이 평소의 순박한 성품과 달리 두 사숙들을 외면하고는 서늘하게 한립을 향해 물었다.

“한 사제도 이 두 모의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백 사숙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제가 어찌 함부로 백 사숙을 평하겠습니까.”

갑작스레 돌변한 그를 앞에 두고도 한립은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런가?  그래도 내 생각에는…….”

“두 사질, 이 무례한 녀석을 보았나!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한 배분 아래인 두동 사질이 자신을 고의로 무시하는 것을 지켜보던 손화가 화가 나 꾸짖으려는데 두동이 그를 돌아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눈에 한기가 서리며 험악한 표정을 하고 마주선 것이다.

“나 귀 안 먹었는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시나?  네 말소리야 당연히 들었다만 그런 헛소리에도 대꾸를 해 줘야겠나?”

“뭐라! 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모 가 여인의 손이 저물대로 향했다.

“정체가 무엇이냐.”

그녀의 냉랭한 물음에 드디어 다른 종파의 제자들도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는 놀란 얼굴로 이곳을 주시했다. 그런데 답은 석실 바깥에서 들려왔다.

“헤헤! 마도 천환종 직계 제자시다. 이제 두 사질의 궁금함이 풀렸는지 모르겠군.”

이어 펑!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밀실의 커다란 돌문이 조각나 흩어졌다. 실내의 제자들이 놀라 황급히 각자의 법기를 방출하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곧이어 익숙한 사내의 모습이 먼지를 뚫고 나타났다.

“백 사숙!”

고검문 제자 중 하나가 즉시 그를 알아보고 외치니 제가 말해 놓고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다른 제자들이야 갑자기 나타난 청포의 문사를 보며 똑같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제압당해 끌려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어찌 이곳에 등장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주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전혀 고문을 당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두동이 백 수사를 보더니 놀라는 기색도 없이 차갑게 따져 물었다.

“이제야 오면 어떡합니까! 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움직이려 했습니다.”

“흥! 그 노괴의 검사(劍絲) 위력을 몰라 하는 말이오. 미리 대비를 했어도 당하는 순간에는 제압을 안 당할 도리가 없더군. 상대가 꺼리는 바가 있어 절대 내 목숨을 취하지는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면 내가 이 일에 협력 했겠습니까?”

“헤헤! 우리라고 알았겠어요?  그 늙은이가 직접 나설지. 하지만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않는 선에서 일이 착착 진행되는 중입니다. 분 사숙과 귀 각의 진 선배께서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니까요.”

두 사람이 전음도 아니고 이렇듯 태평 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는 저계 제자들도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 고검문 제자 하나가 기민하게도 이 틈을 타 법기를 타고 붉은 빛줄기로 변해 입구로 달아나려했다. 안타깝게도 살기어린 눈빛의 백 가 수사의 옆을 지나치는 것은 실패했지만.

흐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수사와 법기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서 풀썩 떨어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동문 제자가 별안간 죽어나가니 다른 이들도 안색이 창백해져 다채로운 빛을 뿜으며 방어막과 방어용 법기를 방출했다.

그들 대부분이 뚫어져라 청색 장포를 입은 문사를 주시하며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잠시 동안 아무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 석실 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 가 여인 역시 대경실색해 즉시 두동과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명주 끈 형태의 법기로 몸을 보호했다.

손화도 문사의 출현과 동시에 벌써 멀찍이 물러나 불신 어린 눈빛으로 두동과 문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다만 소리 없이 석실의 한 구석으로 이동한 한립은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화악!

이때 두동의 몸에서 갑자기 영력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검은 빛이 그의 온 몸에 드리웠다. 그의 얼굴과 목에 가느다란 검은 기호와 주술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몸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빛이 가시고 난 후의 그는 이전에도 장신이었지만 이제는 키가 두 장에 이르는 거한으로 변해 있었고 청록색의 두 눈과 악귀 같은 얼굴을 지닌 명실상부한 결단 중기의 수사가 되었다.

백 가 수사가 그 해괴한 광경을 보며 좋은 구경이라도 하듯 박수를 쳐댔다.

“대단하오! 용모를 변화시키거나 숨는 기술에 한해서라면 천환종이 천남 지역 제일이라 해도 나무랄 데가 없겠어요. 귀 종 고유의 법술인 대라천환결의 명성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흥!”

모습을 변하는데 성공한 두동이 상대의 말에 그저 비죽 웃고는 바로 음산한 눈빛으로 한립을 쳐다보았다.

슉!

털썩.

거한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광풍처럼 보호막을 두른 한립에게 다가가 추호의 망설임 없이 보호막을 깨고 그의 심장을 뽑아낸 것이다! 한립의 시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허물어지는데 까지 채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헛!”

다른 제자들이 피와 살이 튀기는 참혹한 광경에 낮게 신음했다. 드디어 상대가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으니 모두 간담이 서늘해진 것이다.

“흠.”

너무 순조롭게 상대를 죽이고는 거한의 얼굴이 도리어 이상해졌다. 지금까지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자가 이리 쉽게 당한 것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가 손에 쥔 붉은 심장을 쳐다보았으나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문사가 돌발행동을 한 두동을 향해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뭐하는 겝니까! 여기 있는 자들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것도 모르오! 이 중에는 천한 노괴의 후계도 있을 뿐 아니라 대단한 가문의 직계 제자들이 허다하단 말입니다. 아무렇게나 죽여선 안 돼요!”

“당신은 죽여도 되고 왜 난 안 되지. 게다가 이 녀석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만일을 위해 미리 제거한 것이오. 어차피 나와 같은 때에 입문한 제자이니 절대 그 늙은 괴물의 후인일 수도 없고.”

그제야 문사의 얼굴이 펴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았는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천한 노괴의 후인이 사내인지 여인인지 도무지 어느 종파에 입문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어찌 되었든 그 늙은이의 재간이 대단하여 어떤 종파든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하니 분명 그 후인을 선발해 명청영수로 눈을 씻을 기회를 내주었을 터.

만일 정말 실수로라도 그 녀석을 죽였다가는 일이 여간 복잡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인 녀석은 내력을 꿰고 있어 절대 노괴의 후인이 아님을 아는 자였어요!”

“알아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함부로 건들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으니 한숨 자고 일어나게 합시다!”

두동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몸에서 검은 빛이 꿀렁꿀렁 흘러나와 석실 안을 휘감았다.

두 결단기 수사의 말을 들으며 간신히 안심을 하던 저계 제자들은 그 검은 빛에 순식간에 뒤덮여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석실 내의 제자들이 전부 기절한 것을 확인한 문사가 흡족하게 웃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으니 가십시다.”

두 사람이 즉시 큰 보폭으로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나 두동은 문가에 이르러서도 무언가가 걸려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뚫린 한립의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

“……훗.”

청년의 시체 하나가 피 웅덩이 속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가 피식 웃고는 안심한 채 문사와 걸음을 맞춰 사라졌다.

두 수사가 떠나니 자연히 석실 내부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하지만 이내 석실 내에 젊은 여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하, 한 형! 제 천호미령대법이 그 대라천환결인지 뭔지 보다 대단하지 않아요?  저렇게 수행이 높은 자가 자신이 죽인 것이 가짜 수사인지도 모르다니,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피에 흠뻑 젖어 쓰러져 있던 한립의 시체가 하얀 빛을 내더니 한 척 크기의 여우로 변해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한립의 목소리는 여우의 수 척 뒤 벽면 안에서 유유히 들려왔다.

“실로 대단하기 하군. 분명 생전에 은월랑족 이었다는 네가 여우 일족의 법술에도 이리 능한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야! 아마 두 사람의 수행이 결단 후기에라도 이르렀다면 이리 쉽게 속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라천환결 역시 비범하기 이를 데 없고. 최소한 그 법술을 펼치면 나같이 강력한 의식을 지닌 수사도 상대의 진정한 수행을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한립은 석실의 벽 속에 숨어들어 있었고 우두커니 서 있던 육신은 은월이 백호의 몸에 깃들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이런 가짜 육체를 만들어내는 법술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두 명의 결단기 수사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은월이 불퉁대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 공법이 그리 대단하다고요?  한 형은 한 눈에 이상하다는 걸 알아 봤잖아요?”

“난 대연결을 수련했기에 원영 초기 수사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지로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대라천환결이 천남 제일이 아니라 천하제일의 은닉술이었겠지.”

이렇게 까지 설명을 해주자 보송보송한 털을 가지 여우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한립이 석실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며 아직도 정신을 놓고 쓰러져 있는 이들을 돌아보다가 결국에는 흑의 청년인 맹적을 찾아냈다.

작은 여우가 그의 생각을 알아채고 펄쩍 뛰어 청년의 몸에서 저물대를 물고 돌아와 얌전히 건넸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그것을 받아 정령단이 든 옥갑만 꺼내고는 다시 청년의 몸 위에 던져주었다. 어차피 상대에게 큰 쓸모도 없을 물건이니 자신이 흔쾌히 써줄 요량이었다.

“가자꾸나. 그 둘이 이미 영안수가 있는 동굴 안에 들었을 것이니 따라가 봐야겠지.”

옥갑을 잘 챙긴 한립이 폭이 넓은 소매 속에 여우를 회수하며 푸른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아직도 바깥에서는 폭발음과 진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립의 얼굴이 설핏 의문이 어렸지만 그 이상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가 동굴 바깥에 도착 했을 때는 석문은 개방되어 있었고 금제의 흔적도 사라진 후였다. 두 결단기 수사가 이미 안에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동굴 안 저 멀리서 분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 형,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도 아니고 이제와 아니 하겠다니. 설마 종주의 크나큰 은혜를 저버릴 작정입니까! 아니 아무리 낙운종에서 머문 시간이 길다지만 자신이 본래 천살종 제자의 신분인 것을 어찌 잊을 수가 있냐는 말입니다!”

바로 두동이 열이 뻗쳐 지르는 고함 소리였다. 한립이 의식을 퍼트려 내부 정황을 파악하려다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파악한 바가 틀리지 않다면 동굴 내부에는 뜻밖에도 일고여덟 명의 수사가 자리하고 있었고 심지어 원영기 수사도 한 명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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