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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8화 (105/2,000)

# 348

348화. 영안수

“됐다, 내 볼 일은 다 보았으니 너희 셋은 이제 할 일을 하러 가 보거라. 이 중늙은이는 이번 판의 득실이나 따져보아야겠으니.”

동자가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젓고 정말 바둑판으로 돌아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회색 의복의 우 노인 등이 주저 없이 답하고는 월 노인의 뒤를 따라 대청의 다른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백교원 중년 수사가 석실을 빠져 나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탄식했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백 수사가 그런…… 월 사형! 사형께선 미리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겝니까?”

“몰랐습니다. 남 선배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 감히 먼저 물어나 보았겠소?”

말마따나 그의 안색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밝지 못했기에 중년인이 더 따지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뒤 쪽의 젊은 제자들은 방금 일에 대해 당연히 더욱 함부로 떠들 수 없었다.

그들은 곧 기다란 회랑을 굽이굽이 걸어간 끝에 노란 색 돌문 앞에 도착했다. 그 앞에는 머리를 산발한 인물이 미동도 없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비록 정리 안 된 머리카락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회백색으로 센 머리카락이 상대의 나이가 상당함을 알려주었다. 황의 수사가 그를 보곤 정중히 나아갔다.

“위 형, 검술대회 제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지금 들여보내도 될 런지요?”

“왔으니 들어가십시다. 순액이 예상한 시간보다 더디게 흘러나와 제자들이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요.”

추레한 몰골과 달리 아주 진중한 음성이었다. 한립이 그의 몸을 바람처럼 훑고는 눈길에 서늘함이 묻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결단 후기로 거의 원영기에 근접해 있었고, 이는 다른 이들에 비해 더욱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란 뜻이었다.

우 노인이 추레한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는 뜻밖에도 황망히 나서 물었다.

“위 사형. 괘, 괜찮으십니까?”

머리를 산발한 수사가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고는 유유히 답했다.

“우 사제였군. 몇 해 못 보았다고 사제도 나이 먹은 티가 나는구만.”

“사형, 어찌하여…….”

“그래, 우리 사형제가 여기서 다시 만난 것도 아직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는 하늘의 뜻이겠지. 당년의 일은 언급하지 마세. 이곳에 들어오며 원영을 이루지 않고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 스스로에게 맹세를 했으니 말이야. 두 사숙께 종 내의 일을 풍 사제가 잘 꾸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네.”

위 사형이란 사내의 평온한 어투에 우 노인이 얼굴이 어두워지며 본래 하려던 말을 삼켰다. 산발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사제들은 잠시 기다리시지요. 바로 금제를 열 테니 제자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의 소매 속에서 법결이 빠르게 빠져나와 노란 석문을 때리니 돌로 만들어진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한립은 미처 안의 상황을 확인하기도 전에 정순하면서도 농도 짙은 영기가 덮쳐오는 것을 감지했다. 과연 영안수가 있는 곳이었다.

비교를 해보니 영력의 정순함이 절대 영안의 옥에 뒤지지 않았다. 심지어 더 나은 듯도 하니 영력을 뿜어내는 것들 중 영안수가 최상위라 일컬어 질만했다.

위 수사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거대한 규모의 종유석 동굴이 이어졌다.

이 동굴은 수백 장 너비에 높이가 스무 장은 넘어 보여 마치 갑자기 지하세계에 라도 들어온 듯 남다른 경치를 만들어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지면에 형성된 종유석 기둥이 어찌나 빽빽한지 천연의 돌 숲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길을 찾기 어려울 터이니 종유석 미궁과 다름없었다.

한립이 세심하게 살펴보니 돌기둥에서 은은히 영력의 빛이 보이는 것이 누군가 어떤 금제를 걸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가 암암리에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머리를 산발한 위 노인이 그들을 이끌고 돌기둥 숲의 가장자리로 가서 손바닥을 뒤집었다.

손바닥만 한 하얀 청동거울을 손에 쥔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니 거울 속에서 희끄무레한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돌 숲으로 향했다.

파직.

빛 기둥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 제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있는 와중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쿠쿵.

크고 작은 종유석 기둥에 우윳빛이 어리는가 싶더니 그 중앙에서 거대한 노란 빛이 연달아 솟아올랐다. 종유석 기둥들이 꽃봉오리를 터트리듯 중앙을 중심으로 갈라지며 하나의 똑바른 길을 만들어냈다.

다른 제자들이 어안이 벙벙해 넋을 놓는 동안 한립도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니 돌기둥 숲의 중심부에서 드디어 고대하던 영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겨우 한 장 높이의 물체를 보고 한립은 약간 허탈해졌다.

‘이게 그 영안수라고? ’

팔뚝 굵기에 은은한 녹색의 곧은 물체는 나무라기보다는 돌기둥이라 불러야 말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동굴을 가득 채운 엄청난 농도의 영기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것은 이 ‘푸른 돌기둥’이 확실했다.

게다가 옅은 금색 보호막이 돌기둥 외부에 뿌리부터 꼭대기까지 삼엄히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눈앞에 있는 것이 영안수가 맞았다.

한립이 이런 허탈함을 느끼는 동안 우 노인 등 수사들은 각각 숨길 수 없는 열망과 흥분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 나무 밑에서 수련할 수 있다면 특별한 고비가 오지 않는 한 수행이 갑절은 빨리 늘 것이다. 한립이 영안수를 집중해서 바라본지 얼마 안 되어 뿌리 부근의 작은 옥병을 발견했다.

반 자 정도 크기의 옥병에서 익숙한 약제의 향이 물씬 풍겼다.

아마 지금 정제중인 명청영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들 영안수 수 장 밖에서 걸음을 멈추었을 때 오직 위 노인만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은은한 금색 보호막의 저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영안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손을 뻗어 손바닥을 영안수 중간에 놓고 영력을 움직이자 다섯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녹색 빛이 반짝거렸다.

보호막 바깥에 선 이들 중 대부분은 지금 위 노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한참 후 산발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그가 손을 거두었다.

“영안수 안의 순액이 아직 적합한 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세 네 시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니 제자들은 근처에서 쉬게 하시지요.”

“위 형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진중한 목소리에 중년 수사와 황의 수사가 답했고 우 노인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립 등 저계 제자들은 결단기 수사들의 분부 하에 각각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위 노인이 몸을 굽혀 영안수 아래의 옥병을 잡아 흔들자 즉시 은은하던 금색 보호막이 돌연 눈을 찌르는 듯 강렬해져 안의 상황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야 개의치 않는 듯 했으나 한립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의 부름에 바로 은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형, 왜 불렀어요?”

“네가 토둔술에 능하니 결계 아래 지면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거라. 눈에 띌만한 행동은 삼가고 뿌리 조각만 가져오면 된다.”

“잠시만요! 기령으로 변해서 해볼게요.”

대답을 마친 은월이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아기 늑대로 변해 아무도 모르게 한립의 발 아래로 스며들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미간을 좁힌 한립이 가늘게 두 눈을 뜨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수사들 틈에서 소리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동은 마치 정순한 이곳의 영력을 마음껏 흡입하며 수련에 매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립은 입꼬리가 슬쩍 한쪽으로 올라간 채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만일을 대비해 의식을 통해 두동을 주시하던 한립이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 할 리 없었다.

지금 두동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앉아 입술을 아주 미세하게 달싹이고 있었다. 누군가와 전음을 통해 은밀하게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안에 두동의 한패가 있다.’

상대의 경계심을 키우지 않기 위해 전음을 엿듣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으나 그의 의식을 피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네 명의 결단기 수사 밖에 없었다.

이어 한립이 쉼 없이 머리를 굴리며 그들을 한 사람씩 살폈으나 특별히 의심이 가는 이를 찾지 못했다.

그때 한립의 머릿속에 은월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형, 영안수 뿌리 부근 역시 보호막이 쳐져 있어요. 억지로 뚫고 들어가자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데 다른 결단기 수사에게 들킬 수도 있어서요. 어떻게 할까요?”

“경거망동 할 것 없다. 억지로 뚫고 들어가는 것은 마지막에 써도 될 하책이니까. 내 생각대로라면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혼란스러워질 테니 그 때 가서 행동해도 늦지 않아.”

은월이 그의 말에 따라 소리 없이 은색 늑대의 모습으로 한립의 체내로 돌아갔다. 이후 한립은 눈을 감고 두동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동이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이제 움직이는가 싶어 한립도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데 두동이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굉음이 들려와 종유석 동굴 안에 광풍을 일으켰다.

고요 속에 앉아 있던 수사들이 놀라 두 눈을 두릅 뜨고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감을 넓혔다.

우 노인 등 세 명의 수사도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황의 수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벌떡 일어나 먼저 석문으로 향했다.

그가 문에 도달하기도 전에 종유석 동굴의 대문이 자동으로 개방되면서 기다란 얼굴의 노인이 침중한 얼굴로 나타났다.

황 수사가 다급히 물었다.

“호 사형, 무슨 일이 난 겝니까!”

“이곳이 노출 되었습니다! 골짜기 바깥에서 복면을 한 수사들이 결계를 공격하는 중인데 결단기 수사 뿐 아니라 원영기 노괴 까지도 섞여 있어요. 감히 이렇게 큰 사단을 일으킬 다른 세력이 있을 리 없으니, 정도맹과 마도 육종의 인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 선배님이 벌써 이곳을 지키는 거대 결계를 지탱하기 시작하였으나 상대가 워낙 많아 모두 나가 힘을 보탭시다! 이곳에는 위 사형만 남아 있으면 될 듯 합니다. 저계 제자들의 일은 미루어야겠으니 월 수사께서 모두를 데리고 밀실로 가시지요. 앞으로 누구든 이곳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위 사형께서 즉시 베어버리셔야 할 겝니다.”

보호막 안에서 산발 머리 노인의 차분한 음성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호 형! 이곳은 걱정 마시고 적을 맞으러 가시지요.”

기다란 노인이 조금 안색이 밝아져 고개를 끄덕이곤 우 노인과 백교원 중년을 대동해 서둘러 동굴을 나섰다.

노란 의복을 입은 월 수사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저계 제자 무리에게 분부했다.

“다들 들었겠지. 명청영수로 눈을 씻는 일은 미뤄졌으니 모두 나를 쫓아 신속히 이동한다.”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노인을 따라 젊은 수사들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뒤를 쫓았다. 한립이 두동 역시 저계 제자들과 함께 종유석 숲을 지나 동굴을 빠져 나오는 것을 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바깥의 소란과 두동이 관련되어 있는 것인가? ’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공교로웠다. 두동이 이곳에서 바깥의 인물과 연락을 주고받기라도 한 것일까?

점점 의혹이 생기는 가운데 열 명의 제자들이 황의 수사를 따라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길을 빠져 나와 비교적 규모가 있는 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월 가 노인은 몇 마디 당부를 하고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이때도 바깥의 폭발음은 점점 커져 갔고 땅이 울리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은 것이 마치 고전을 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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