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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7화 (104/2,000)
  • # 347

    347화. 사내아이

    대회가 끝나고 10위 권 제자들은 각자 최상급 법기를 하나씩 받았고 맹적이란 흑의 청년은 따로 정령단이 들어 있는 작은 옥갑 하나를 얻게 되었다.

    한립은 그 옥으로 만든 작은 곽을 보며 홀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에 일이 잘 풀려 영안수의 뿌리를 구하면 상관없겠으나 안 되면 고검문 제자의 손에서 저것이라도 빼앗아야겠다.’

    어쨌든 원영을 응결하는데 정령단이 한 알이라도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될 터였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부 노인이 벌써 제자들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젊은 수사들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벌써 희색이 만연했다.

    가장 먼저 백 가 수사와 백교원 중년 수사가 먼저 사라지고 이어 저계 제자들도 둘 씩 전송진에 올랐다. 한립도 잠시 후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황량한 돌무지 속에 도착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가 무의식적으로 의식을 퍼트려 이곳이 어디인지 살피려는데 의식이 채 수십여 장을 가지 못해 알 수 없는 금제에 막혀 튕겨 돌아왔다.

    ‘흠.’

    예상보다도 더 강력한 결계에 뜨끔한 그는 더욱 조심히 움직여야겠다고 판단했다. 앉아 있던 노인이 모두 전송이 완료 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한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노란 법결이 빠져 나와 농무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곧 사방의 짙은 안개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더니 길을 트며 사라졌고 시야가 밝아지며 잔뜩 이끼가 낀 암벽이 드러났다.

    백의 문사가 이런 광경이 익숙한 지 다른 두 고계 수사가 나서기 전에 서늘히 경고했다.

    “잘 듣거라. 너희가 운몽산 삼파의 금지 속에 들어올 기회를 얻은 것은 단지 명청영수가 정제가 끝나자마자 사용해야 하는 속성을 지녀서다. 평소라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곳이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딱 하루 밤 동안만 머무를 수 있으며 이튿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야 한다. 내부 곳곳에 금계가 설치되어 있으니 함부로 나다니다가는 큰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저계 제자들이 모두 알아들었음을 밝혔다. 이제 이끼 낀 암벽 방향에서 목이 잠긴 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됐으면 이제 나머지는 들어오게 하시죠. 입구를 개방하겠습니다.”

    월 수사가 이리 말하자 암석이 갑자기 물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녹색 빛을 사방으로 분출해 아무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게 되었다. 잠시 후 모두가 다시 제대로 눈을 뜨고는 변화를 관찰했다.

    암벽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석문 두 짝이 굳게 맞닿아 있었다.

    석문에 빼곡하게 새겨진 주술과 부적들이 오색찬란한 빛을 번뜩이니 얼마나 강력한 금제가 설치되어 있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석문 바깥으로도 누런 보호막이 층층으로 둘러싸여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십여 장 높이의 거대한 석문 앞에 뒷짐을 진 누런 의복의 인물이 나타났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월 수사는 새까맣고 두꺼운 눈썹 아래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백교원 중년 수사가 황의 수사의 살기등등한 얼굴을 보면서 도리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허! 월 사형의 귀살결(鬼煞訣)이 또 적잖이 진보하였습니다. 성수 근처에서 수련을 하니 하루하루가 다르겠지요.”

    “흥! 이런 곳에 오륙십 년 꼼짝 않고 앉아 금지를 지킬 자신만 있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네. 허나 사제가 그런 인내심이 있는지 모르겠소!”

    백교원 중년인이 계면쩍은 기색을 비추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이곳을 지키는 월 사형과 그리고 위 사형, 전 사형의 노고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방금은 그저…….”

    “됐고. 그만 서두릅시다! 이 금제는 내가 세 종파의 원영기 사숙 몇 분과 공동으로 설치한 것이라 입구를 열 수 있는 시간이 촉박 하외다.”

    황의 수사가 바로 손바닥을 뒤집어 노란 영패를 꺼냈다.

    그가 신중히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영패에서 돌연 노란 빛이 흘러나오며 황색 보호막을 닿는 대로 녹여 수 장 길이의 통로를 뚫었다.

    “전부 들어간다! 서둘러라!”

    백 수사가 그것을 보고 재촉하곤 자기도 하얀 빛줄기로 변해 뛰어 들었다. 회의 노인과 백교원 중년 수사도 비슷한 명을 내리며 화살처럼 쏘아져나갔다.

    한립 등도 그들의 움직임을 보곤 법기를 타고 따라붙었다.

    일행이 모두 석문 앞에 이르자마자 황의 수사가 영패의 빛을 흩어버리니 순식간에 통로가 사라졌다. 그가 빠르게 제자들의 머릿수를 확인하고는 냉담히 말했다.

    “따르거라.”

    이어 열 손가락이 금을 연주하듯 허공을 튕기며 복잡한 수결을 맺어 맹렬히 돌아 양 손을 펼쳤다. 다홍빛과 노란 빛이 양 손을 떠나 금제로 빽빽하게 봉인된 석문을 때렸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푸른 대문 위의 주문들이 하나 둘 요동을 치며 웅장한 진동과 함께 숨겨두었던 기다란 방원형의 통로를 드러냈다.

    황의 수사가 말없이 성큼성큼 먼저 들어갔고 다른 이들도 잠시 멈칫하고는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한립은 무리의 중앙에 서서 걸으며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걷는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의식을 이용해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이 방원형 통로는 법기를 이용해 산맥 내부를 향해 깎아낸 것으로 사면이 기이한 빛을 내며 몇 걸음마다 심오한 의미가 담긴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걸어가면서 순간순간 완전히 주술을 이해할 수야 없겠으나 절대 장식용으로 새겨놓을 법한 종류가 아니었다.

    통로는 길지 않아 백여 장 정도를 걷자 눈앞이 밝아지며 정결한 대청이 나왔다. 대청은 오륙십 장 너비에 높이가 일곱 장 정도 되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청의 중간에 수 척 크기의 돌 탁자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종횡으로 새겨진 가로 열 줄 세로 열 줄의 선으로 보아 뜻밖에도 거대한 고대 바둑판이었다. 그 위에 흑백의 말들이 빼곡하게 진을 이루니 승부가 최고조에 이른 듯 했다.

    그 바둑판의 양 측에 노인과 아이가 자리했다. 나이가 많은 쪽은 비단옷을 걸친 기다란 얼굴의 오십 대 노인이었고, 어린 쪽은 일곱 살 정도로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신선도 속에 나올 법한 동자였다.

    백 수사가 어린 사내아이를 보곤 당황해 극진히 예를 다했다.

    “나, 남 사숙님! 어르신이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남 사숙님?”

    회의 노인과 백교원 중년 수사는 낯선 사내아이를 보고 멍하니 있다가, 백 수사의 말에 안색이 급변했다.

    다시 보니 짧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손에 금가락지를 낀 채 맨 발로 앉은 아이의 모습이 소문으로만 듣던 어느 인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두 사람도 놀라 서둘러 예를 올렸다.

    “완배 두회가 남 선배님을 뵈옵니다!”

    “완배 우산안, 남 선배님을 뵙습니다!”

    “일어들 나고. 내 지금 호 사질과 중요한 승부를 보는 중이니 결판이 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거라.”

    살결이 부드럽고 목소리도 영락없이 아이였지만 어투는 근엄한 노인의 것과 같았다.

    “존명!”

    백 수사 등 결단기 수사 셋이 즉시 한쪽에 비켜서서는 조용히 서 있었다.

    아이와 마주 앉은 기다란 얼굴의 노인만이 그들을 향해 쓴웃음을 보였지만 따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무리를 이끌고 들어온 황의 수사도 대청에 들자마자 단정하게 서서 스승을 모시는 제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젊은 수사들은 세 사조들이 뜻밖에도 눈앞의 어린 꼬마에게 사숙이라 칭하는 것을 보고는 술렁였다.

    그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아무리 연기기 제자들이라 해도 어찌 모르겠는가. 다들 눈이 튀어 나올 듯 동자를 주시하며 속으로나마 격동하는 중일 것이다.

    한립도 동자를 발견한 순간 속으로 깜짝 놀란 참이었다.

    ‘아니 원영 초기의 수사가 왜 여기에? ’

    원영 초기 수사의 적수는 못 되어도 지금의 그라면 달아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 때문에 이곳에 자리한 것 같지도 않았으니.

    한립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묵묵히 원영기 수사의 출현이 그의 계획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만을 분석했다. 결국 아이와 노인이 일각 여를 번갈아 말을 두다가 기다란 얼굴의 노인이 먼저 공손히 말했다.

    “남 선배님의 고명한 솜씨에, 제자 패배를 받아들일 뿐입니다!”

    동자가 그 말에 언뜻 신나하더니 곧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호 사질, 고의로 진 것은 아니겠지! 이 늙은이가 미리 말하지 않았나. 바둑을 둠에 있어서는 절대 봐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그의 질의에 안 그래도 기다란 얼굴이 더욱 홀쭉해진 호 노인이 황급히 부인했다.

    “완배가 어찌 감히 선배님을 기만하겠습니까! 명명백백하게 선배님의 바둑 솜씨가 워낙 출중하여 제가 상대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히히, 내 보기에도 내 실력이 이전보다는 나아졌구나. 보아하니 속세의 바둑 고수들과 기예를 논한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어.”

    동자가 곧 웃음기를 싹 거두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 이제 바둑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할 일을 해볼까?”

    이후 아담한 몸을 돌린 그가 공손히 기다리고 있는 결단기 수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스쳐 결국 문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 사질, 고검문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되었지?”

    “입문한지 백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백 년이라! 흐흠, 애석하게 되었구만.”

    청색 장포의 백 수사가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지만 예의상 미소를 유지했다.

    “사숙님 그게 어인 말씀이신지요.”

    “무슨 말이냐고?”

    그를 바라보는 동자의 얼굴이 음산해졌다.

    “정도 호연각 각주의 마지막 제자가 본문에 이리 오래 머물다니! 고검문은 귀하 같은 거물을 더 이상 모실 수 없을 듯한데. 이제 귀문의 사부에게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소?”

    백 수사가 아이의 말에 얼굴이 파리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회의 노인과 백교원 중년인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순식간에 그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중년 선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백 수사, 남 선배님의 말씀이 사실이오?”

    백 수사가 우물쭈물하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왕 사숙께서 모든 것을 알아 채셨으니 백 모가 부인해봐야 소용은 없겠지요! 그러나 저도 맥없이 끌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더니 화살처럼 뒤 쪽의 제자 무리로 들이닥쳤다. 하얀 빛 무리 속의 손이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잡아챌 기세였는데 바로 구령검체를 지녔다는 흑의 청년 맹적이 그 표적이었다!

    “뭐하는 게냐!”

    “이런!”

    회의 노인과 중년 수사가 노호하며 영력을 끌어올렸지만 한발 늦은 것이 분명했다.

    맹적이 예기치 못한 습격을 받으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무시무시한 검기를 방출해 자신을 잡아채려는 거대한 손을 갈랐다.

    허나 두 수사의 수행 차이가 확연하니 어찌 막아내겠는가.

    검기는 영력으로 만들어진 하얀 손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맹적이 막 잡히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백 수사의 몸이 흐느적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하얀 빛의 거대한 손 역시 수정처럼 깨져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흑의 청년이 영문을 모르고 넋을 놓는데 아이가 무표정하게 작은 두 손을 문지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본문 태백화기수를 잘은 익혔다만. 이 늙은이가 여기에 정말 바둑을 두러 온 줄 알았더냐?  그런 수에 놀아나게?”

    대청 안에 인물들은 한립을 제외하고는 그가 어찌 백 수사를 제압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 멍해졌다.

    한립도 지금 막 쓰러진 문사와 아담한 아이를 번갈아 보며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사가 충동적으로 맹적에게 손을 쓴 그 순간, 한립의 의식에 다른 곳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아주 가느다란 붉은 실 같은 것이 아이의 몸에서 번뜩이며 분출되어서는 문사의 몸에 박힘과 동시에 상황이 종결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암습을 위한 바늘 형태의 비침 법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붉은 실이 매서운 한기를 함유한 검기를 제련해 만든 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립도 대단하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수법이었다!

    이전에 듣기론 검 형 법보를 이용한 수행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마음 가는대로 검기를 변형해 천 가지 법보와 만 가지 법술을 깰 수 있다더니 그저 헛소문은 아니었다.

    오늘 두 눈으로 직접 검기로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함께 바둑을 끝낸 기다란 얼굴의 장로에게 일렀다.

    “호 사질, 이놈은 아직 쓸 데가 있어 잠시 살려 둘 것이니 곤룡굴에다 가둬두게!”

    호 노인이 긴장하며 앞으로 나와서 쓰러진 문사를 데리고 석실 바깥으로 사라졌다. 이 광경에 한립이 힐끗 두동을 곁눈질했다.

    표정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상황이 이러니 그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립이 그저 미미하게 웃으며 신경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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