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346화. 운몽산 3파 검술대회 (2)
보호 결계 밖이 떠들썩했다.
대머리 심판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청년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본 후 큰 소리로 선포했다.
“낙운종 한립, 승!”
한립이 전혀 개의치 않고 거한을 향해 예를 올리고는 점잖게 보호 결계를 걸어 나왔다. 이후 고검문에서 제자들이 달려 들어와 기절해 버린 요봉을 들쳐 매고 나갔다.
위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강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비록 저계 제자가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면 숨겨진 한수가 있으리란 것은 알았으나. 저런 식으로 자신이 기대를 걸었던 제자를 단번에 꺾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비무 시작 전 홍의 노인을 비웃었던 그는 우스워진 꼴이 되었다.
그 민망함이 짜증스러움으로 돌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홍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백교원 부 노인이 한립의 승리를 보곤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단 형, 재미있는 제자를 두었습니다. 뜻밖에도 한 번에 수십 장의 부적을 뿌리다니, 그 꾀도 대단하지만 동시에 그 많은 부적을 발동하는 술법 솜씨 또한 녹록치 않습니다.”
각진 얼굴의 홍의 노인이 못마땅한 얼굴을 한 고검문 강운을 보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뭘요, 저 녀석은 원래 부적을 제련하는 제부사니 부적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다만 한 번에 저리 많은 부적을 사용한 것은 저 역시 의외였습니다.”
강운이 씩씩 거리며 중얼거렸다.
“흥! 겨우 부적에 힘입어 이기다니. 이제 모두 그 녀석의 수법을 보았으니 다음에는 떨어질 것이 분명하겠군.”
“그러합니까?”
홍의 노인이 그저 씨익 웃으며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청색 장포를 입은 문사가 낙운종 무리 속으로 돌아가는 한립을 힐끗 보더니 악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 종의 제자가 마지막에 쇄도한 신법은 아무래도 속세의 경신술 종류인 듯 보입니다. 안 그랬으면 요 사질이 이리 빨리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백 수사가 안목이 있습니다. 본 종 제자가 입문 전 산수로 돌아다니며 잡다한 방면을 두루 익혔으니 너무 개의치 말아주세요.”
홍의 노인의 말에 백 문사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리가요. 저 역시 속세의 무공에 잠시 관심을 두어 수련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범인들의 무공이 고계 수사에게는 이렇다 할 효과가 없어도 연기기 제자가 운용한다면 본 수행의 3할은 넘게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지요. 게다가 귀 종파의 제자가 보여준 숙련된 솜씨로 보아 이런 전투를 한두 번 치른 자가 아닙니다. 본문 제자가 진 것도 억울할 일은 아니지요.”
그들이 이런 한담을 나누는 동안 심판은 낙운종의 험상궂은 노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번째 경기, 백교원 완천사 대 고검문 주욱!”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교원과 고검문에서 두 청년이 나와 서로 포권을 취한 후 법기 비무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단기 수사들은 방금 있었던 비무를 잊고 정신을 집중했다.
방금 속전속결로 비무를 마친 한립의 영향을 받아 서인지 두 수사 모두 방어에 치중한 신중한 결투를 벌여 곧 회장 밖의 사람들은 지루하고 답답해졌다.
결국은 검 형 법기를 수련한 고검문 제자의 실력이 나은 것으로 판명되어 상대의 방어 법기를 뚫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1차전이 장장 이틀에 걸쳐 지나갔다. 그 중 고검문 수사들의 실력은 정말 남달랐다. 한립 등 소수의 수사들을 제외하면 고검문과 겨룬 양 파 제자들이 명백한 열세 속에 분분히 탈락했다.
대회가 다시 예상대로 진행되자 강 가 수사도 눈가에 웃음을 되찾았다.
백교원 결단기 수사들과 낙운종 홍의 노인은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속으로야 어떠하든 간에 겉으로는 전혀 이렇다 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량과 기개에 있어서 만은 왜소한 강 가 노인의 윗줄이었다.
2차전에서 한립은 용맹한 얼굴의 백교원 연기기 여수사와 맞닥뜨렸다. 그녀는 시합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비행 법기를 방출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무래도 한립의 부적 공격을 피하기 쉽고 또 기묘한 경신술에 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인 듯 했다.
한립이 그 모습에 가볍게 숨을 내쉬고 또 한 번 불 속성의 화탄부 한 뭉치를 꺼내 던졌다.
여인이 의기양양하게 부적 공격을 피하려는 찰나, 한립의 두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수결을 맺으니 불꽃들이 공중에서 수십 개의 주먹만 한 화염 불새로 변해 꺾어졌다.
백교원 여 수사가 흠칫 놀라며 법기를 발동해 보호막을 치려했지만 한립이 기회를 줄 리 없었다. 겉으로는 주술을 읊고 열심히 수결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의식만을 이용해 불새들이 여 수사의 사방에서 충돌하게 만들었다.
여 제자가 급히 물 속성의 보호막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맹렬한 공격을 연달아 수십 개나 버티기에는 너무 초라한 대비책이었다.
보호막이 산산조각 나 흩어지자 여인이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항복을 선언했다. 이 비무를 끝으로 한립을 그저 부적과 재력에 의존해 실력도 없이 검술대회에 출전한 녀석으로 여기던 양 파의 제자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 * *
닷새 후 황혼 무렵 운몽산 중부 이름 없는 골짜기.
이 골짜기는 아주 편벽한 지역이 있는데다 오랜 세월 해가 들지 않는 농무에 휩싸여 그 안에서는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음침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 안개 속에는 독전갈이나 독사와 같은 치명적인 존재를 지닌 짐승과 독충들이 범람했다.
골짜기 자체가 규모가 작고 각 문파와 멀리 떨어져 있어 종종 몇몇 수사들이 그 위를 지나가도 굳이 내려와 탐사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해가 들지 않아 안개가 짙은 가운데 산골에 빛이 어른 거리며 두 인물이 나타났다. 한 수사는 회색 의복을 걸친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였고 다른 이는 푸른 장포에 옥이 박힌 허리띠를 한 기품 있어 뵈는 문사였다.
분명 그들 외에는 돌 더미 주변에 아무도 없어보였는데 어디선가 목이 잠긴 쇳소리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검문 백 형과 낙운종 우 수사군! 검술대회는 막을 내린 게요?”
고검문 백 수사가 전혀 흔들림 없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월 형께서 당직을 서고 계셨군요. 대회는 잘 마무리 되었고 저희 둘이 먼저 성지의 명청영수가 잘 준비 되어 가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바로 선발된 열 명의 제자를 전송하려 합니다.”
다만 곁의 노인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서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단기 수사 셋이 돌아가며 밤낮 없이 지키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겨우 저계 수사 몇이서 무슨 풍파라도 일으킬까 걱정이시구려?”
백 가 수사가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영안수에 관한 일이니 아무래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명청영수의 정제 마지막 단계에서 순액을 넣어 완성을 하면 그 즉시 사용해야 제 효력을 볼 수 있지요! 대회를 위해 힘쓴 보람이 없을까 저어되어 확인하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하십시오.”
목이 잠긴 사내의 목소리가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명청영수 정제가 막바지에 이렀으니 바로 진행 합시다. 이곳에 전송이 될 제자들은 금제에 층층이 둘러 싸여 제가 어디 머물다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갈 테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그럼 우 형께서 잠시 남아계신 동안 저는 다른 수사들에게 알려 제자들을 전송하라 이르겠습니다.”
곧 떠나려는 백 수사를 보고 사내가 급히 무언가를 떠올리며 물었다.
“잠깐! 이번 검술 대회는 그래 누가 이겼습니까? 설마 또 고검문입니까?”
청포 문사가 씨익 웃었다.
“이번 대회 우승은 저희 고검문의 맹적 사질이 차지하였습니다. 월 형께 실망을 안겨드린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흥! 고검문의 검을 이용한 수행이 일단 축기기에 이르면 보통 수사들에 비해 좀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결단기에 이르러 어떤 종파의 공법이 앞서는지는 비교를 해봐야 알 일이겠죠. 기회가 되면 귀 종 셋째 사형에게 말을 전해 주시오. 이 월 모가 다시 한 번 실력을 겨루어 보고 싶다고요.”
나른한 어조였지만 이런 결과가 탐탁지 않다는 뜻이 분명했다. 백 문사가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다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도 그 해 저희 셋째 사형과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계시는군요. 아쉽지만 조만간은 월 형의 뜻을 전할 길이 없겠습니다. 셋째 사형이 이제 막 결단 후기에 이르러 폐관수련에 들어가서요.”
“결단 후기에 이러,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사내의 쇳소리가 약간 뜸을 들이더니 결국에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럼.”
고검문 백 수사가 바로 팔을 저으니 그에게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이 주변의 돌덩이 중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암석에 가 닿았다.
곧 돌무더기에서 빛이 반짝이며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 가지로 백 수사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듯 보이는 돌무더기가 사실은 교묘한 수법으로 전송진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회색 의복을 걸친 낙운종 우 노인이 그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근의 평평한 암석을 골라 좌정했다.
전송진은 백교원의 어느 석실 안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곧 백 문사가 진법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주위를 부 노인 등 세 종파의 고계 수사들이 둘러쌌다.
백 수사의 출현에 곧장 강 수사가 입을 열었다.
“사제 그쪽은 준비가 차질 없이 되고 있던가?”
“염려 마시지요. 성지에서는 순조롭게 준비가 끝나가고 있으니 제자들을 전송해 보내도 될 듯합니다.”
부 노인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었군요. 수고스럽겠지만 단 형께서 열 명의 후배들을 데리고 들어와 주시겠습니까? 규정대로 세 종파에서 결단기 수사 한 명씩 함께하면 되겠지요. 저희 쪽은 왕 장로가 대기 중이고 낙운종 역시 우 봉주가 가 있습니다. 강 형, 고검문에서는 어느 분이 가십니까?”
붉은 장삼을 걸친 단 노인이 부 노인의 말에 바로 석실을 나서는 것을 보며 강 노인이 유유히 답했다.
“성지야 뭐 볼 것도 없고. 그냥 백 사제가 한 번 더 다녀오면 될 듯합니다.”
부 노인이 웃음을 보였다.
“그도 그렇군요. 백 수사께서는 당초 검술대회 10위권에 들었던 분이니 어릴 적 추억이나 돌아볼 겸 다녀오면 되겠습니다.”
청색 장포를 입은 문사가 단정한 얼굴로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때 석실 바깥에서 여러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며 홍의 노인이 세 종파에서 뽑은 열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이번 대회에서 낙운종이 우승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네 명이나 10위권에 들었다. 이에 붉은 장삼의 단 노인도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자못 흐뭇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히 그의 시선이 낙운종 제자 넷에게 머물렀다. 천천봉의 모 수사, 냉랭한 얼굴의 화운봉 손화. 그리고 다른 두 명은 바로 한립과 두동!
한립이야 그렇다 치고, 두동을 보는 화운봉 봉주의 눈빛에 조소가 스쳤다.
그리고 이번 대회의 우승은 이변 없이 고검문 제자 맹적이 차지했다. 검은 의복을 입은 이 청년이 바로 그 구령검체를 타고 났다는 제자였다. 구령검체는 수도계에서 검형 법기를 수련하는데 가장 적합한 체질 중 하나로 꼽히곤 했다.
그는 최상급 검형 법기 한 자루 만으로 절대적 우세를 자랑하며 모든 비무 상대를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려 1등을 차지했다.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홍의 노인도 고검문의 제자 복을 질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한립이 냉담한 눈으로 방 안의 ‘결단기 고인’들을 바라보며 초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연달아 세 번을 이긴 후 그는 일부러 백교원의 축기 제자에게 져주었다. 그리고 다른 다섯 제자와 7위부터 10위권 경쟁에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그는 갖고 있던 부적을 다 소진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는 형식으로 9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두동이란 자도 그와 비슷한 전략을 택한 것인지 네 번째 비무에서 진 후 하위권 경쟁에서 일부러 그에게 져 말석을 차지했다.
낙운종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검술대회에 출전한 손화란 청년은 실력이 상당해서 놀랍게도 3위를 차지했다.
한립이 볼 때 만약 손화가 자신이 수련한 공법과 어울리는 법기를 쓰기만 했어도 2위를 한 백교원 제자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