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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5화 (102/2,000)

# 345

345화. 운몽산 3파 검술대회 (1)

낙운종 주봉의 중턱, 지난번 결단기 수사들이 모여 논의를 하던 누각에서 풍 노인이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가 눈을 번쩍 뜨자 알 수 없는 방향에서 불꽃이 날아들었다. 노인이 조용히 한 손을 펼치자 하얀 운무가 뻗어 나가 불꽃을 잡아채니 곧 재로 변해 사라졌다.

전음부가 남긴 청의 여인의 음성은 간단했다.

“한립은 무탈하나 두동의 속내가 어둡습니다.”

하얀 수염의 노인이 냉랭히 중얼거리는데 얼굴에 한기가 어렸다.

“흥! 따로 속셈이 있었군. 그럴 줄 알았지. 당시 두 씨 가문과 백교원에서 권력을 지닌 부 씨 가문의 교분이 그리 두터웠는데 어찌 하필 우리 낙운종 문하에 들어왔단 말인가!”

노인이 조금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송 사매의 통명령서(通明靈犀)의 신통함이 날이 갈수록 매서워지는군. 두 분 사숙을 제외하면 나도 그 능력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 * *

두 달이 지나 운몽산 서부 산맥의 백교원 종문 안 산골짜기 안에서 백교원 제자들이 각양각색의 복색을 하고 중앙 광장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흥분한 낯빛으로 웅성거리면서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허공을 살폈다.

수천의 백교원 제자들 앞에 마련된 단에 수십 명의 화려한 인사들이 자리했다.

앞쪽의 일고여덟 명의 수사들은 전부 결단기 수사들이었고 후면의 수십 명 남녀 제자들은 축기기 이상의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백교원의 원주들과 장로 그리고 여러 가지 중책을 맡은 관사들이었다. 누군지 모를 눈치 빠른 제자 하나가 흥분해 소리쳤다.

“온다!”

동시에 거의 모든 저계 수사들이 하나둘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빛이 번뜩이더니 가지각색의 빛으로 이뤄진 무리가 날아들었다.

“고검문 제자들이 전부 검형 비행 법기를 타고 오고 있어!”

다들 그들을 가리키며 동요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가장 앞 쪽에 있던 기골이 장대한 노인 하나가 안색이 어두워지며 싸늘히 일갈했다.

“조용! 뭣들 하는 것이냐. 다른 종파들 앞에서 우리 백교원을 우스갯거리로 만들 작정이더냐?”

한기가 도는 음성이 천여명 제자들의 귓가에 울리니 경거망동을 하던 이들도 앞다투어 입을 다물어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우람한 노인이 그것을 보고서야 안색이 나아졌다.

다른 결단기 수사들도 서로 웃음을 보이며 이 광경을 보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때 고검문 수사들이 바로 광장 위까지 날아 왔는데 누군가 모두 검을 타고 날아 왔다 일렀지만 그 중 몇몇은 법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태연히 허공에 떠 있었다.

고검문 수사 중 대략 오륙십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왜소한 노인이 웃으며 먼저 내려왔다.

“이런! 부 형과 다른 분들이 친히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강 모의 영광이올시다.”

그와 함께 곁에 청색 장포를 걸친 문사 차림의 사내와 백의 여인이 미소를 보이며 따라 내려왔는데 둘은 부부의 연을 맺은 듯 보였다.

동시에 고검문의 다른 저계 수사들 역시 하나둘 법기를 하강해 내려섰다.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 차분한 얼굴로 셋을 향해 공수하며 인사했다.

“이번에 강 형께서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오신다는데 직접 맞이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게다가 명성이 자자한 백벽쌍검(白璧雙劍) 부부께서도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됐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추켜세운다고 지켜보는 완배들이 속으로 비웃고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낙운종에서는 아직 입니까?  나날이 검술대회에서 실력 발휘를 못 하고 말단에 머물더니 이번에도 자신이 없나 봅니다, 허허!”

강 씨 수사는 마치 낙운종이 별 볼 일 없단 듯 깔아뭉갰지만 부 노인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백교원은 고검문과 달라 이런 말에 가벼이 동의했다가 낙운종 고위층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한바탕 풍파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부 노인이 어찌 답을 해야 하나 마음을 정하기 전에 그의 뒤에서 진푸른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 나서 끼어들었다.

“강 수사 그리 조급해 마시지오! 이번에 낙운종 인솔자로 백봉봉 송 선자가 나선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세 개 종파를 통틀어 보기 드문 미인이 대회를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온다하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평소에는 두문불출해 다른 종파의 수사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는 송 선자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고검문 강운도 관심이 가는 얼굴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석 형이 말하는 송 선자가 백봉 선자를 일컫는 것이겠죠. 듣자니 미모가 대단하다던데 한 번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지요. 이번에 정말 그녀가 인솔자로 온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볼만 하겠습니다.”

고검문 남녀 제자들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 중의 청포를 입은 문사차림의 사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백봉 선자라면 천영근을 타고나 백년도 되지 않아 결단에 성공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수도계의 천재 중의 천재 아닙니까. 이번 검술 대회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니 상당히 의외입니다.”

“그러하네요. 같은 여인의 몸이지만 저도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들어온 송 선자가 퍽 궁금합니다. 오늘 만나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문사의 부인인 백의 여인은 얼굴은 평범했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가 듣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했다.

“그건.……, 아! 낙운종 수사들이 오는군요.”

부 씨 성의 노인이 웃으며 무어라 말하려다가 허공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드니 동쪽 방향에서 거대한 검은 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고검문 강 수사의 안색이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다. 잠시 후 거대한 괴조의 형태를 띤 무언가가 놀라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낙운종 수사들이었다.

“흥! 이종 청광조(靑光雕)로군. 겉만 번드르르 하지 겨우 몸의 크기나 키울 줄 아는 오급 요수에 불과하지만.”

강 수사의 언사에 곁에 있던 백교원 결단기 수사들이 마치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젊은 제자들은 처음 본 큰 영수를 보고 환호했다.

거대 독수리는 엄청난 속도로 날갯짓 몇 번 만에 좌중의 머리 위까지 날아들었다.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펼치자 그 그늘에 광장 전체가 뒤덮였다. 동시에 피비린내가 나는 맹렬한 바람이 광장을 덮쳐 일부 저계 제자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멈추거라!”

괴조 위에서 불현듯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자 독수리가 날갯짓을 멈추었다. 그제야 그 위에서 여러 수사들이 법기를 타고 분분히 날아 내려왔다.

부 노인이 그 선두에선 홍의 노인을 보고 눈이 밝아져 서둘러 나섰다.

“오, 화운봉 당 형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운주에서 뵙고 오랜만입니다!”

허허 웃던 홍의 노인의 시선이 부 노인 뒤편을 훑었다. 부 노인이 예상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창정 장로를 찾으시지요. 공교롭게도 하필 일이 생겨 창 사제가 외부로 나선 참입니다. 허나 대회가 열리기 전엔 돌아 올 것입니다.”

홍의 노인이 눈에 희미하게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으나 바로 원래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와 그 옆의 절색의 여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러합니까, 어쩔 수 없지요! 옛 이야기나 나눌까 했더니 연이 닿지 않았어요. 우 사제는 모르는 분이 없을 테고 송 사매는 모두 초면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슬쩍 시선을 옮긴 부 노인이 아름다운 송 선자의 미색에 놀라 감탄했다.

“백봉 선자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랩니다. 오늘 보니 조금도 허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려!”

“부 사형, 과분한 말씀입니다. 선자라는 칭호 역시 민망할 따름입니다.”

여인이 미소를 짓자 평안한 호수의 돌이라도 떨어진 듯 주변 사내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몽롱해진 얼굴의 저계 수사들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지만 고계 수사들 역시 눈빛에 열기가 감도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때 홍의 노인이 고검문 수사들을 보고 먼저 나아가 인사를 했다. 강 수사는 비록 데면데면한 태도였으나 그래도 마지못해 몇 마디 대꾸를 해주었다.

예상 밖으로 백의 여인이 송 선자의 손을 붙들고 다정하게 떠들어 대는 것이 누가 보면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송 가 여인이 시종일관 온화하고 우아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후 백교원은 다른 두 개의 종파를 맞이한 후 고검문과 낙운종을 위해 거대한 저택 두 채를 내주고 내일 있을 정식 비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튿날 아침, 운몽산 3파의 치열한 비무대회가 시작되었다.

시합은 총 3개의 조로 진행되어 각 파의 10명씩이 모두 한 조를 이루었다.

매 조에서 쌍으로 겨루어 단 4사람만을 뽑고 그 후 12명의 제자들이 추첨을 통해 서로 경합해 우승자를 포함한 최후의 10인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정식 검술대회의 참가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대회장을 여럿 준비하지 않고 그저 순서에 따라 같은 곳에서 비무를 치르면 되었다.

출전 순서는 인솔자들이 무작위로 추첨을 통해 결정하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만 심판의 경우 대결에 참가하지 않는 제3의 문파에서 수사를 파견해 판결하니 한쪽에 치우칠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많은 백교원 제자들이 물 샐 틈 없이 대회장을 둘러싼 가운데, 대머리 거한 한명이 보호 결계 안에 서서 유유히 대회 시작을 알렸다.

“제1조, 낙운봉 한립 대 고검문 요봉!”

이어 낙운종과 고검문 무리 속에서 한 명씩 걸어 나와 대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백교원 제자들이 순식간에 웅성대기 시작했다.

“봤어?  한 명은 연기기 11성인데 다른 한 쪽은 축기기 초기야.”

“수행 차이가 너무 나잖아!”

등에 장검과 단검을 교차해 맨 고검문 제자의 얼굴에도 이상하다는 눈빛이 스쳤다. 이런 수행 차이라면 상대를 꺾고 승리하는 것은 훅 입김을 불어 촛불을 끄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푸른 경장 차림의 평범하게 생긴 청년은 이마를 찌푸리며 난감하다는 듯 서 있었다.

보호결계 밖 허공에서 따로 모여 있던 결단기 수사들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검문 강운이 낙운종 참가자를 본 순간 실소한 것이다.

“단 형, 낙운종은 정말 이번 대회는 그냥 포기한 겁니까?  어찌 저런 연기기 제자를 선발해 내보낸 것인지. 그냥 아무나 뽑아 인원만 채운 거 아니에요?”

홍의 노인이 그 말에 전혀 동요 없이 답했다.

“오, 11성이라 나쁘지 않군요. 내부 선발전에서는 연기기 10성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이 적지 않은 진보를 했어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기기 10성의 수행으로 선발전을 통과했다고요?  농을 하시는 겝니까?”

강운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에 홍의 노인이 그저 웃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강운이 그것을 보고 무언가 꺼림칙한지 고개를 다시 대회장 안으로 돌렸다.

대머리 장한이 공중에서 힘차게 외쳤다.

“비무를 시작하라!”

청년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거침없이 양 어깨를 으쓱하는가 싶더니 붉은 빛과 남색 빛의 비감들이 그의 등 뒤에서 솟구쳐 머리 위로 떠올랐다. 이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빛이 방출되어 녹색의 보호막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재빨리 수결을 맺어 비검을 구동해 공격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숙련된 몸놀림으로 이 모든 것을 해냈을 때는 벌써 눈앞에 오륙십 개의 불덩이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 화염의 파도에는 흉흉한 기세가 어려 있었다.

“아!”

요봉이라는 축기기 수사가 놀라 안색이 일순 새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축기기 수사인지라 불시의 공격에 익숙했기에 급한 와중에도 법기를 구동하는 주술을 멈추지 않았고 바닥 쪽으로 몸을 던져 불덩이들이 등 뒤로 벌떼처럼 지나가는 것을 감지했다.

놀란 그는 온몸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에 더욱 화가 난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워 상대를 노려보는데 머리 위에 돌연 거무튀튀한 거대한 발이 튀어 나오며 인정사정없이 그를 깔아 뭉겠다.

그러자 고검문 요봉이 눈앞에 흐려지며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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