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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4화 (101/2,000)

# 344

344화. 작아진 제혼

한립은 벌써 돌 산 안의 동굴 거처 안에 돌아와 보기 드문 진중한 얼굴로 석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대회를 이기고 내려오자 몇 명의 천천봉 제자들이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몸 안에 있던 명혼주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화끈한 통증에 퍼뜩 정신을 차린 한립은 제혼이 드디어 다음 단계로 진화하려고 그를 부르는 중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예상치 못한 기쁜 소식에 서둘러 거처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한립은 영수가 자고 있던 석실 바깥에서 의식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컴컴해진 석실 안에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던 것이다. 곳곳에 새까만 귀기가 휘몰아치며 소름 돋는 서늘한 음기를 뿜어댔다.

석실 한 구석에는 제혼으로 예상되는 한 장 크기의 누에고치 같은 것이 새까만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립은 설레는 마음을 뒤로하고 근심되는 바가 있어, 제혼이 있는 석실 바깥에 주저앉았다.

경전에 따르면 영수가 진화를 시작하면 주인이 그 곁을 지키며 한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코 함부로 진화 과정에 끼어들거나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진화가 실패해 영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만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립은 오늘 그 가르침대로 움직여볼 참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립의 예상대로라면 적어도 여러 날은 걸릴 일이었는데 석실 앞을 지키기 시작한 다음 날 아침 검은 고치에서 변화가 보였다.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하던 한립이 돌연 들려온 파열음에 크게 기뻐하며 두 눈을 떴다.

음산한 기운의 귀기들이 어떤 강력한 기운에 끌려가기라도 하듯 석실 한 구석으로 모여들었고 바로 그곳에 까만 고치가 놓여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부신 빛이 번뜩여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빡인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을 가진 무언가가 석실 안에 출현했다.

두 눈썹을 끌어 올리며 벌떡 일어난 한립이 양팔을 가볍게 펼치자 제혼의 석실 돌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을 살피니 이미 쪼글쪼글한 껍질만 남은 고치가 두 동강 났지만 석실 안 어디에도 제혼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의식을 퍼트리려는 찰나 석실의 허공에서 검은 빛이 번뜩이더니 낮은 울부짖음과 함께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본래 즉시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으나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립은 마음을 바꾸어 자리를 지켰다.

그 결과 작고 차가운 물체가 그의 품속에 쏙 안겼다.

“이건?”

한립이 그것을 잡아 올리며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주먹만 하게 변한 아기 원숭이는 진화를 한 제혼이 틀림없는데 몸의 털이 은백색에서 검은 색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면 별 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분히 제혼의 신체를 살핀 한립이 결국에는 두 가지 차이점을 발견해 냈다.

제혼의 커다란 코 밑 그러니까 두 개의 콧구멍 사이에 또 다른 미세한 구멍이 생겨났다.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작은 변화였다.

제혼이 귀기나 혼백에 상극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코 속에서 뿜어내는 혼을 물어 가는 빛 덕분이었다. 그런데 코 아래 또 하나의 구멍이 생기다니 이 흉악한 짐승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 졌다는 뜻일까?

또 다른 변화는 영수의 등 부분 털가죽에 핏빛의 악귀 형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무늬 속의 악귀는 눈이 셋 달린 머리에 다리 한 짝이 달린 간단한 생김새였지만 어찌나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악랄하고 흉악한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은월도 제혼의 변화에 한립의 머릿속에서 종알종알 떠들어 댔지만 딱히 쓸 만한 정보를 주지는 못했다.

명혼주를 제련해 놓은 탓인지 원숭이는 한립에게 매우 친밀한 태도를 보였고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를 그의 옷자락에 계속 비비적거렸다.

한립이 작은 원숭이를 한 손에 올려놓으니 은은하게 희로애락의 감정이 전해져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동안 그에게 장난을 치며 놀던 제혼이 곧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꾸벅꾸벅 졸자 한립은 조심스레 작은 원숭이를 영수대 속으로 넣어 주었다.

그러고 제혼의 석실 옆에 위치한 서금충 석실에 시선을 주니 이제 금은색 서금충은 겨우 수십 마리 정도가 남아있었다. 서로 잡아먹는 사태가 끝나갈 무렵이니 곧 산란기에 들어갈 것이다.

이전과 비교해 확실히 크기가 조금 커진 딱정벌레를 보며 흡족해진 그는 수련실로 돌아가 정해진 수련을 이어나갔다.

최후 선발전 날, 한립의 승리를 선포한 심판이 말해주기를 선발대에 뽑힌 이들은 결단기 수사들의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전에 스스로 고행을 쌓는 시일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결단기 수사의 지도는 그의 차례가 되면 전음부로 통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한립이야 당연히 결단기 수사의 지도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고, 그냥 부르면 시키는 대로 며칠 시간을 보내고 올 참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영안의 옥을 들고 밀실 안에서 묵묵히 수련을 했다. 그리고 기령 은월 또한 여우 요수의 몸을 빌려 그 옆의 밀실 안에서 동시에 수련을 쌓았다.

생각해 보면 은월이 다른 요괴의 몸을 빌려 자신의 수행을 쌓는 행위는 정말 불가사의한 면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기령으로서의 은월의 수행은 결단 후기였지만 여우 요수의 몸에서는 그저 저계 요수의 수행과 같다고 했다. 그러니 여우 요수의 몸을 빌려서는 아주 짧은 시간 밖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령 자체는 아무리 수련을 해도 절대 수행을 증진시킬 수 없으니, 지금은 수련을 통해 여우 요수의 수행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여우 요수의 몸에 깃든 은월은 한립이 제공하는 저계 단약을 복용하며 나날이 실력이 나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한립이 동굴 속에서 고된 수련을 쌓은 지 3개월이 지나갔다.

이 기간 동안 규환 등이 한 차례 찾아 미안한 기색으로 그가 부적을 제련하는 기술을 익힌 것을 사문 장배들에게 고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차피 자신의 본 실력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깔아 놓은 연출이었기에 그 일을 거북해 할 리 없었고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래 돌려보냈다.

천천봉에서도 한립이 스물 네 명의 제자 명단에 들었다는 것이 놀라운 소식이었던지 서늘한 모 가 여인이 약재원을 한차례 방문해 반나절 동안 한립이 현빙결을 익히며 막히는 부분은 없는지 지도해주고 돌아갔다.

이 두 번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날 역시 한립이 동굴 거처의 밀실에서 청원검결을 수련하고 있던중 돌연 공법을 회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밀실을 나와 약재원에 나오자 전음부가 변한 불꽃이 약재원 바깥의 짙은 농무 속을 마구 헤매고 있었다.

한립이 손짓만으로 금제를 풀고 손바닥을 펴니 강력한 열기가 고분고분 그의 수중에 떨어져 내렸다. 그가 손바닥을 접자 재로 사라져 버린 전음부를 보며 한립이 중얼거렸다.

“백봉봉, 송 사조! 낙운종 제일 미녀라 불리는 결단기 여 수사가 아닌가. 이 여인이 나를?”

그다지 좋지 않은 얼굴로 한립이 비검 법기를 방출해 백봉봉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백봉봉은 낙운종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다른 다섯 봉오리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마치 설원 속의 고아한 매화꽃처럼 봉우리의 상징적인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비록 다른 봉우리와 비교해 가장 규모가 작고 높이도 낮았지만 꽃과 나무들이 울창하니 경치는 주봉에 못지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이 백봉봉 부근에 나타났다.

이곳은 주로 여인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백봉봉에 일을 보러온 다른 봉우리의 남자 수사들은 우선 산중턱 입구에서 외문제자에게 보고를 하고 입산 허가를 받아야 했다.

괜히 백봉봉에 펼쳐진 금제 중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골로 가기 십상이었다. 한립은 착실히 산중턱 봉우리 입구에 법기를 착지했다.

산문 밖에는 연기기 여수사 세 명이 웃음 섞인 담소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들이 낯선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립이 그들에게 다가가 공수하고 말했다.

“저는 천천봉 한립이라 합니다. 송 사조님의 지도를 받으러 찾아뵈었으니 사제들이 고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젊은 여인이 그의 말을 듣고 미소로 화답했다.

“당신이 한립이군요. 사조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셨으니 한 사제는 직접 봉우리 정상의 조봉각으로 가면 돼요. 사조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한립은 바로 다시 법기에 올라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가 날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인들이 다시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방금 저 한 사제가 정말 검술대회에 나간단 말이야?  보기에는 수행이 높아 보이지 않는 걸?”

“게다가 생긴 것도 평범하고.”

“헤헤, 너희가 잘 몰라서 그래. 한 사제 경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본 내 의견으로는 말이야…….”

여기까지 들었을 때 한립이 쓴웃음을 지으며 의식을 거두어들이고 정상으로 향했다. 백봉봉은 원래 그리 높지 않았기에 순식간에 정상에 도달했다.

방원 백여 장의 평평한 분지는 주위를 표표히 떠다니는 하얀 구름과 충만한 영기로 마치 신선이 살법한 신선도를 방불케 했다.

그윽한 분위기 속에 오직 누각 하나만이 분지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하얀 목재로 지어진 누각은 총 3층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건축 양식이며 새하얀 모습이 우아함 그 자체였다.

한립이 누각 앞에서 법기를 멈추고 주저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제자 한립, 송 사조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희미한 의식이 그의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립은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누각 안에서 여인의 온화하면서도 고혹적인 음성이 전해졌다.

“예까지 왔으니 그냥 바로 2층으로 올라오너라.”

“존명!”

한립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나서 나무문을 열어젖혔다.

누각의 1층은 텅텅 비어 있어 공법을 연마하는 용 진법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한립이 한번 쓰윽 둘러보곤 바로 2층으로 향했다.

2층 역시 적막하고 간결하기는 마찬가지라 법기와 옥으로 만든 서책이 가득 놓여 있는 책장 몇 개를 제외하면 낮은 돌 탁자와 그 주위의 의자들이 전부였다.

푸른 의복을 입은 여인이 그 의자들 중 하나에 앉아 죽간을 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결단 초기로 보이는 여인은 아무래도 어떤 공법을 연구 중인 듯싶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입을 떼려는 찰나 여인이 먼저 고개를 살포시 들어 절색의 자태를 드러냈다.

“네가 한립이더냐?”

겉보기에는 스물대여섯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여인의 음성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예, 사조님.”

“그래, 기왕 여기까지 찾아 왔으니 나와 인연이 있는 것이겠지. 내 최선을 다해 너를 지도하겠다만 조봉각에서 네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사흘뿐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어 진보할 수 있을 지는 네 노력 여하에 달렸다.”

여인의 맑은 눈이 응시하자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단 초기에 불과한 상대가 한립처럼 강한 의식을 지닌 존재에게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상대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알 수 없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한립은 겉으로는 더없이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속으로 대연결 공법을 발동해 전신을 흐르게 했다.

한립이 마음을 들어 내지 않으며 경계를 철저히 하는 동안 청의 여인의 맑은 눈에 이채가 어렸다 사라졌다. 그녀가 노곤한 기색을 보이며 두 눈을 감았다.

“수련 중인 공법 구결 전체를 외워 보거라. 그리고 1층에서 기다리며 내 분부가 있기 전에는 올라오지 말거라. 내 구결을 살펴보고 네게 난해한 부분을 설명해 주겠다.”

“예. 제자가 수련 중인 공법은 모 사숙이 주신 현빙결로 이 공법은…….”

한립이 차분히 구결을 외워나갔다.

일다경이 지나 한립이 구결을 다 외우자 청의 여인이 작게 고갯짓을 하고 손을 저어 그를 내려가 있도록 했다.

한립은 예를 올리고 1층으로 내려갔다. 청의 여인이 연기기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좁혔지만 의자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저어 푸른 빛깔의 방음 결계를 주변에 생성했다. 이어 전음부 한 장이 날아올라 불꽃으로 변해 방음결계를 뚫고 창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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