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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43화 (100/2,000)

# 343

343화. 누각 안의 논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한립은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적수를 가늠해보았다.

푸른 적삼을 걸친 깔끔한 차림의 청년은 허리춤의 저물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법기를 지니지 않았다.

상대의 앳돼 보이는 얼굴에 신중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아무래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한립이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린 사내를 보고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지만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바로 저물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마주선 어린 제자도 두 손을 뻗어 하얀 빛의 얼음 기둥 두 개를 쏘아 보냈고 곧 몸에서 푸른빛이 어른거리며 바람처럼 한립을 향해 치고 들어왔다.

뜻밖에도 한립의 수법을 그대로 모방해 먼저 빙추부(氷錐符) 두 장을 던져 선공을 하고 불시에 경신술로 쇄도한 것이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신영이 흔들리더니 얼음 기둥들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청년이 그것을 보고 희색을 들어내며 얼음 기둥을 피하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한립을 향해 노란 빛을 쏘아 보냈다.

그때 한립의 몸이 흐릿해졌고 라연보를 시연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공연히 허공을 덮친 꼴이 된 어린 제자는 법기를 거둘 새도 없이 사방을 돌아보며 한립의 흔적을 찾다가 돌연 뒷통수에서 느껴진 극렬한 통증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천천봉 한립, 승!”

이번에는 마른 수사의 눈에도 이채가 스쳤다.

한립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상대의 등 뒤에서 나타나 손날로 가격해 끝내는 것을 본 것이다.

곧 수사 여럿이 들어와 쓰러진 어린 제자의 상태를 점검하더니 허공의 마른 수사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큰 이상이 없다는 뜻이었다.

어린 사내가 실려 나가자 멍하니 지켜보던 이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라졌다 나타났어! 밖에서 지켜보면서도 찾을 길이 없다니.”

“뭐야?  무슨 법술을 사용했기에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멍청하긴. 저게 어떻게 법술이냐. 분명 속세의 무공을 익혔구만. 하지만 이렇게 고명한 경지는 나도 처음 보는군.”

세상 경험이 풍부한 몇몇만이 한립의 신법이 법술이 아니라 무공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낙운종 내부 시합 제 13번째날, 드디어 선발전 마지막 날이 밝았다.

주봉의 중턱의 누각 안에서 장로급 결단기 수사들이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천천봉의 봉주 신 가 중년인과 부봉주 우 노인 외에도 남다른 기세의 인물들이 여럿 보였다.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얼굴에 주름이 진 푸른 의복의 노인이 먼저 운을 띄웠다.

“대회 인솔을 누가 할 것인지, 사제들 중 자원하는 분이 있겠습니까?”

입술 위로 염소수염이 난 중년인이 나른하게 투덜댔다.

“풍 사형, 세 개 종파가 연합을 해 주최한다지만 매번 우리 두 종파가 고검문 녀석들 기만 세워주는 대회가 아닙니까! 이번에는 특히나 고검문 인솔을 강운 녀석이 맡았다니 그 독사 같은 혓바닥에 열 받아 명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안색이 노르스름한 노인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몇 년 전 고검문 문하에 구령검체(九靈劍體)를 지닌 제자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이번 대회에도 출전하겠지요. 그리 되면 대회결과를 기다릴 게 무어랍니까?

아무리 우리 종 내에서 특수한 자질을 타고난 제자를 몇 내보낸다지만 그 녀석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지요. 게다가 백교원 쪽에서도 대단한 가문의 직계 제자를 내보낸다던데 연기기에 이미 스스로 제련한 법기를 이용해 가문 장배를 이긴 실력자랍니다. 이번에는 안 되겠어요!”

흰 수염을 늘어뜨린 풍 노인이 그들을 타일렀다.

“두 사제들의 말씀도 맞습니다. 검술 대회가 고검문이 위세를 떨치는 장이 된지 오래지요. 허나 우리가 참가하지 않으면 순액의 사분의 일마저 얻을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다가 고검문이 우리 낙운종에 적의라도 품게 되는 날이면 운몽산 내에서의 우리 입지가 아주 불안해집니다. 얼마나 많은 가문들이 운몽산 3대 종파 자리에 욕심을 내는지 다들 알지 않습니까! 작은 틈이라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풍 노인 맞은편에 앉은 붉은 장삼을 걸친 노인이 입을 열었다.

“풍 사형이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참가자 인솔에 저를 넣어주세요. 어차피 백교원 장로인 창정을 본지도 오래니 안부나 나눌 겸 다녀오겠습니다.”

그의 말에 풍 노인이 오히려 미심쩍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단 사제는 화운봉 봉주로 문하의 제자들이 무수한데 이리 쉽게 자리를 비우는 것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화운봉이야 려 사제도 있는데 무슨 큰일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운몽산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일정으로 서쪽 산맥에 잠시 다녀오는 것뿐인 것을요.”

이렇게 까지 말하자 풍 노인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곧 시선이 우 노인에게 고정 되었다.

“우 사제가 지금 별 다른 직무가 없는 것으로 아네만. 이번에 단 사제를 따라 한번 다녀와 주는 게 어떻겠는가?  신 사제는 어떻게 생각하오.”

가야할 이는 우 사제였는데 풍 노인은 신 가 중년인의 의중을 더욱 중히 여기고 있었다. 천천봉 봉주인 신 가 중년인이 담담히 웃었다.

“우 사제가 원한다면야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지요. 제가 가겠습니다.”

일이 일단락 나자 풍 노인이 온화하게 정리를 했다.

“이번 인솔자는 단 사제를 위주로 우 사제와 백봉봉 송 사매가 보조를 맡으면 되겠습니다. 오늘 선발대회가 끝나기를 기다려 서른 명의 제자가 선발되면 잘 좀 지도해 봅시다. 우리 제자들 중에도 실력이 나쁘지 않은 녀석들이 몇 있으니 고검문이나 백교원과 한번 붙어볼 만은 하지 않겠어요?”

시종일관 나서지 않던 약삭빠르게 생긴 수사가 경악해 소리쳤다.

“아니, 송 사매도 이번 대회 인솔에 참여한단 말입니까?  어찌 그 중요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우 사제를 대신해 가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누각에 모인 다른 수사들도 동요하는 빛이 역력했다. 풍 노인이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흥! 맹 사제, 방금 전까지 귀한 시간을 내어 한참을 논의 할 때는 한 마디말도 없더니 이제 와서 송 사매가 간다니 가겠단 게요?  있는 그대로 말해주자면 송 사매가 이번 인솔단에 참가하는 조건이 그녀가 참가한다는 것을 다른 사제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안 그랬으면 사매의 성격에 어찌 이리 쉬이 백봉봉을 떠날까.”

풍 노인은 이미 결단 후기의 경지였으나 약삭빠르게 생긴 맹 사제는 이제 겨우 결단 초기였다. 노인의 호된 언사에 안색이 변한 그가 고개를 숙이고 감히 따지지 못했다.

다른 이들 역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차마 나서지 못했다. 그때 방 밖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께 보고 올립니다. 최종 결승이 끝나 총 세 명의 축기기 제자와 스물 한 명의 연기기 제자가 선발되었습니다. 제자, 명단을 들고 왔습니다.”

풍 노인이 즉시 굳은 얼굴을 풀고 온화하게 답했다.

“오, 결과가 나왔더냐. 어서 들어와 보거라.”

“예!”

공손이 답한 사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서른 살이 조금 넘은 축기 후기의 제자로 용모도 훌륭하고 풍채도 좋았다. 사내가 품에서 하얀 옥으로 만든 서책을 꺼내 두 손 모아 노인에게 받쳤다.

“스물 네 명의 이름과 자료입니다.”

“그래, 살펴보마.”

풍 노인이 즉시 옥간(玉簡)에 의식을 주입했다.

“호오?”

조금 당황한 듯한 노인의 반응에 홍의 수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명단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는 없습니다. 사제들도 살펴보시죠.”

다시 차분해진 얼굴로 풍 노인이 옥간을 곁의 노르스름한 얼굴의 노인에게 넘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옥간을 돌려본 이들의 얼굴에 희비가 갈렸다. 그 중에서도 천천봉 신 가 중년인은 생각지 못한 내용에 눈빛이 흔들렸다.

염소수염이 난 중년인이 탄식하듯 말했다.

“이번에 천천봉에서만 여섯 명이 입선하다니 다른 봉들에 민망하고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보아하니 신 사제가 제자들 교육에 힘 꽤나 쏟은 듯합니다!”

“그러니까요. 보아하니 신 사형이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큰 가봅니다. 그러니 이리 열심히 저계 제자들을 양성한 거겠죠.”

이어진 약삭빠른 인상의 맹 수사의 말투에 질투가 묻어났다. 그가 있는 은검봉에서는 겨우 세 명이 선발되었으니 면이 서지 않은 것이다.

신 가 중년인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우리 천천봉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선발된 것은 저조차도 의외입니다. 다른 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연기기 10성의 제자가 둘이나 뽑히다니. 한립과 두동이라, 제 기억에는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이들로 아는데 어찌 선발이 된 것인지 기이한 일입니다. 고 사질, 이 두 제자들이 어찌 승리하였는가?”

방에 들어와 있던 축기기 청년이 사숙의 물음에 즉시 답했다.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두동이란 사질은 얼음 속성 최상급 법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법기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공격과 수비에 모두 강해 적수가 없었지요. 대부분이 영문도 모른 채 이 법기에 얼어붙어 바닥에 곤두박질 쳤으니까요.”

“오! 어떤 법기가 그리 신묘하던가. 자세히 좀 설명해 보게.”

염소수염이 난 중년인도 관심을 보였다.

“바퀴 모양의 법기로 직경은 한 자 가량 되었고 상면에 초승달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발동을 하면 백광을 뿜으며 순식간에 얼음 속성의 보호막을 형성하고 거대한 새 형상을 한 냉기를 뿜어 공격합니다.”

“그건 200년 전 멸족을 당한 두 가의 가보, 한월륜(寒月輪)이 아닌가. 두동이란 녀석이 설마 두 가의 후인이었던 겐가!”

염소수염 중년인의 말에 풍 노인도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유유히 고갯짓을 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두 가도 당시 꽤나 융성한 일족이었으니 직계 제자 한 둘 쯤은 횡액을 피해 달아나 살아남았을 지도 모르죠. 아마 세월이 오래 지나 적들의 추적도 없을 테니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나 봅니다.”

“사형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두동이라는 자가 두 가의 한월륜을 지니고 있다면 입선한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한립이란 자는 또 어찌된 걸까요.”

염소수염 중년인의 물음에 축기 후기의 남자가 잠시 곤혹스런 미소를 짓다 답했다.

“한 사질이 어떤 법기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아주 통이 크다는 것입니다.”

“응?  그게 무슨 뜻이더냐. 선발전과 통이 큰 것이 무슨 연관이 있어?”

“한 사질은 매 시합마다 수십 장의 불 속성 부적을 뿌려 상대가 법기를 발동시키거나 보호막을 완성하기도 전에 쓰러뜨렸습니다. 몇 번의 시합에서는 속세의 무공과 화염을 조종하는 등의 교묘한 술법으로 부적을 보조해 상대를 압도하기도 하였고요.”

풍 노인이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무공이나 특이한 술법이야 드문 일이 아니나, 그렇게 많은 부적을 내버리며 시합을 하다니 많은 영석을 지닌 자라는 소리구나. 고계 수사에게는 얼마 안 되는 양이나 일개 연기기 제자가 지닌 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워. 조사는 해 보았더냐.”

청년이 공손히 답했다.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자와 교류가 있던 다른 제자들의 말로는 산수로 떠돌 당시 이미 부적을 제련하는 법에 정통해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량의 저계 부적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 노인이 다시 예의 그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오, 그러면 이야기의 앞뒤가 맞구나. 보아하니 두 사람도 문제될 것 없겠어. 가만, 그 녀석이 부적에 능한 것을 보니 화운봉에서 데려다 가르쳐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말에 신 가 수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풍 사형 그리 말씀 하실 순 없지요. 저희 천천봉에도 부적에 정통한 제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기기 제자 하나 가르칠 여력은 된다고요. 단 사형이 설마 천천봉 제자를 데려갈 생각은 없으시겠지요?”

홍의 노인이 손을 휘저으며 거드름을 피우듯 받아쳤다.

“허허! 우리 화운봉이야 부적 제련에 자질이 뛰어난 제자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신 사제의 사질을 빼앗아 올 정도로 궁할까요.”

신 가 중년인이 짐짓 미소를 짓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어 결단기 수사들이 다른 종 내의 사무를 논하고는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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