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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29화 (86/2,000)

# 329

329화. 입문 (1)

고검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검술(御劍術)에 능했는데 법기, 법보를 막론하고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검 형태를 띤 병기로 펼치는 문파의 절학 태백검결(太白劍訣)은 계국에서 매섭기로 명성이 대단했다.

그러나 이 고업검결을 익히기 위해서는 뛰어난 자질이 필요했는데 영근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이는 입문할 수 없었다. 세 종파 중 가장 빈번하게 제자를 모집하지만 실제 입문하는 이들은 가장 적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검문 제자가 수행에 일정한 성취를 이루면 검결의 강력한 공격성 덕분에 동급 선사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정예 제자들로 인해 운몽산의 가장 강력한 종파로 꼽혔고 중앙 산맥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낙운종은 백교원과 조금 비슷했다. 공법은 조금 잡다한 것이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단약을 제련하는 기술로는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전설 속의 정령단 역시 계국에서 오직 이 종파의 몇몇 장로들만이 제련해 낼 수 있었다. 세력이 다른 종파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운몽산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는 이런 점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낙운종은 새로 들이는 제자의 수가 세 종파 중 가장 많아 입문하기가 가장 쉬웠다. 기본적으로 단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되었다.

만일 영근 자질이 뛰어나 좋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면 어느 종파와 마찬가지로 반갑게 제자로 맞았다. 아니면 수행이 일정 정도에 이르러 기초 공법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면 영근 자질이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역시 받아들였다.

낙운종은 단약을 제련하는 기술 외에도 기타 잡다한 방면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보였는데 많은 저계 제자들을 부려야 이 모든 것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자질이 좋지 않은 이들은 입문할 때부터 전도가 밝지 않을 것을 스스로 알았지만 한립과 마찬가지로 큰 나무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며 일생을 살기 위해 낙운종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낙운종은 제자를 받아들이는데 까다롭지 않았고 소문으로만 듣던 정령단의 유혹도 있었기에 선택했다. 한립도 조금 고민하긴 했으나 마침 낙운종이 곧 신입 제자들을 선발한다는 이야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두 여인과 헤어지며 자신의 구체적인 계획을 공유하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날아왔다.

산 밑에서 며칠을 기다리다가 점차 연기기 수사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차분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미 넉넉잡아 한 시진 정도를 오른 후였다.

산은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었지만 계단에 환술을 걸어놓아 끝없이 이어지는 듯 했다. 이것은 입문하러 올라오는 수사들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는데 겨우 이런 것도 참지 못한다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때 한립 앞에서 걸어가던 남녀 수사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서로 속삭이다 이 환술이 뜻하는 바를 깨달았는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반 시진을 더 걸어가고서야 석회암 계단이 끝이 났다. 젊은 남녀 수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립은 평안한 얼굴로 마지막 계단을 올라 차분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앞에는 백여 장의 평탄한 공간에 작은 정자를 제외하면 곳곳이 희뿌연 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로 만든 정자 앞에는 다양한 복색을 수십 명의 수사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감히 정자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한립은 이런 광경에 실소했다. 연기기 산수들은 절대 알 수 없겠지만 그가 의식을 통해 주변의 환진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은 돌로 만든 초라한 정자가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백옥 누각으로 환운당(幻云堂)이라는 금색의 편액이 당당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누각 앞에서 세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연기기 수사들을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진법의 환상을 믿고 전혀 기척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셋 중 둘은 축기 초기, 나머지 하나가 축기 중기인 것으로 보아 이곳에 모인 이들을 낙운종으로 안내하기 위해 온 수사들 같았다.

한립은 말없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 외곽에 자리를 잡고 정좌를 한 채 두 눈을 감아버렸지만 의식을 이용해 세 수사들의 대화 내용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스물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하얀 얼굴의 청년이 모인 이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불만스레 말했다.

“추 사형, 아직 시간이 남긴 했으나 생각보다 수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태반이 부적격자들인 듯한데 정말 우리 낙운종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여기나 봅니다! 겨우 기초공법 칠, 팔성을 익힌 자들도 감히 입문을 하려 하다니요.”

추 사형이라 불린 축기 중기 수사가 하얀 장포를 입고 각진 얼굴로 눈을 빛냈다.

“어찌 하겠는가?  3년 전에 제자를 한 무리 받아들이고는 또 모집을 하는 것이니 이 정도면 많이 모인 게지. 게다가 저번에는 금 사숙께서 일손이 급하셔서 사형제들이 예외적으로 겨우 팔성에 이른 산수를 둘이나 받아 주었으니 외부에서 보기에는 착각 할만 해. 우리 낙운종의 문턱이 또 한층 낮아졌다고 여기겠지.”

또 한 명의 혈기 왕성해 보이는 청년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최근 들어온 저계 제자들은 수행은 물론이고 영근 자질이 영 엉망이어서 한 장로께서 이미 장문인께 무어라 말씀을 올린 모양이에요.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이번에는 인원이 부족할지언정 아무나 채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얀 얼굴의 청년이 다시 한 번 장내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조소했다.

“아무렇게나 채우지 않았다가는 열 명만 받아 들여도 성공일 듯 한데요?  이곳의 80여 명 중 태반이 쫓겨나야 할 지경이에요!”

추 사형이 청년을 힐끗 보며 담담히 말했다.

“류 사제, 이들을 너무 우습게 보지 않는 것이 좋아. 이들 중 아직 자질을 발견하지 못한 천재가 있을 지 또 누가 알겠는가?  손화 사제만 해도 처음에는 산수의 신분으로 입문했으나 겨우 오륙 년 만에 축기에 성공했지. 적합한 공법을 선택했고 공을 세워 축기단을 받은 것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야.”

“흠, 사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제의 언사가 적절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백의 청년이 헛기침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추 사형이란 이를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류 사제…….”

추 사형이 청년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흥미를 잃은 한립이 의식을 거두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이미 기운을 갈무리해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딱 연기기 십성으로 보였다. 이 정도라면 낙운종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몇 시진이 흐르자 계단을 올라오는 이들이 더욱 많아져 해가 넘어갈 즘에는 백 명 가까이 되는 연기기 선사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이 젊은 남녀 수사들이었으나 수행이 조금 높은 중년인들도 눈에 띄었다.

바로 그때 눈앞의 정자에서 돌연 붉은 빛이 치솟더니 안개처럼 환상이 걷히고 십여 장 높이의 거대한 누각과 세 명이 모습이 드러났다.

추 사형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두를 훑어보며 침착하게 외쳤다.

“낙운종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희 사형제들이 이번 제자 선발 심사를 맡게 되었으니 이 추 모의 말을 잘 듣고 따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주변 환경의 변화와 추 사형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낙운종이라는 수도 대파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눈앞의 3인에게 달렸으니 자연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고분고분 귀를 기울이는 군중의 모습에 추 사형이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말씀 드리지 않아도 본 종의 제자 선발 기준은 모두 알고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긴 말할 것 없이 이, 삼종 영근자와 특수 영체를 지닌 자 그리고 기초 공법이 육성 이상인 스무 살 미만의 수사들은 먼저 앞으로 나오시지요.”

엄숙한 추 사형의 분부에 군중에서 잠시 동요가 있더니 겨우 네 명의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희의 자질을 점검할 테니 류 사제를 따라 가거라.”

추 사형의 말에 하얀 얼굴의 청년이 나서서 두 말 할 것 없이 소매 속에서 빛을 뿜어냈자 거대한 비단 한 폭이 펼쳐져 공중에 떠올랐다.

“모두 오르거라. 자리를 이동해 자격을 검증하고 불합격자는 다시 이곳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먼저 비단 위에 오른 하얀 얼굴의 청년을 보며 서로 시선을 마주친 젊은 이들도 역시 법기에 올라갔다.

청년의 법결과 함께 비단이 순식간에 빛으로 변해 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추 사형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공법 십성 이상의 선사는 영근 자질과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 나오십시오. 유 사제를 따라 가면 출신이나 내력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입문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입문을 위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며 탈락자는 몇 년 후 다음 기회를 기다려 주십시오.”

이 말에 무리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이전 보다 기준이 엄격해 진 탓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여든 이들이 상심한 것이다. 자격에 미달하는 자도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희망을 주지만 그저 관례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왔는데 어떤 기회도 주지 않고 쫓아내기는 서로 민망하지 않은가?

시험이란 것이 기초 공법이 십성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는 너무 엄격해서 칠, 팔성의 수사는 거의 가능성이 없었고 구성은 되어야 겨우 통과했다.

또한 구성에 이른 수사라 해도 시험에 통과해 입문한 경우는 손에 꼽혔다. 통과했던 이들은 공법에 대한 자질을 부족해도 다른 의미에서 남달랐다.

예를 들어 수도자로서의 전도는 밝지 않아도 기타 잡학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지니고 있다면 낙운종이 이런 이들을 마다할 리 없었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며 한립과 다른 여섯 수사가 걸어 나갔다. 추 사형이 모두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충만한 유 수사가 지체 없이 구리 사발 행태의 비행 법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시키기도 전에 한립과 다른 이들이 얌전히 법기에 올라탔다.

구리 사발은 노란 빛으로 변해 운몽산 깊은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는 구리 사발 위에서 자못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과 함께 올라탄 여섯 수사들을 보고 있었다.

사내가 넷, 여인이 둘이었는데 노란 의복을 입은 여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른 살 이상으로 보였다. 심지어 청색 장포를 걸친 수사는 50살은 돼 보였고 무리 중 가장 수행이 높은 연기기 십이성의 성취였다.

만일 위영근을 지닌 한립의 자질로 신비한 병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청색 장포의 수사처럼 50대가 되어서도 오륙성에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느라 잠시 넋을 놓았다.

그밖에 다른 이들에게는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그저 흥분에 겨운 모습이었다. 다만 얼굴 가득 구레나룻과 수염을 기른 거한에게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는데 뜻밖에도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한기는 은밀하게 감춰져 있어서 한립의 수행으로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놓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절대 겨우 오해의 기초 공법만을 익힌 자의 영기 파동은 아니었다. 아마 특수한 다른 법결을 익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기기 십성인 것은 또 사실이니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여러 추측을 해보는 사이 거대한 구리 사발은 유 수사가 운용하여 안개로 뒤덮인 공간에 도달했다.

안개는 하얀 기운이 요동치고 농염한데다 그 안에서 천둥번개 소리가 들려오니 만만히 볼 것은 아니었다. 한립이 흥미를 보이며 의식을 퍼트려 보았으나 무언가에 막힌 듯 더는 탐색할 수가 없었다.

흠칫 놀란 그가 서둘러 의식을 회수했는데 아무래도 낙운종을 지키는 호법대진이 만들어낸 금제인 듯 했다. 괜히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눈길을 끌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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