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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28화 (85/2,000)

# 328

328화. 사대세력

남주(嵐州)는 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지역이었으나 서쪽 변방에 위치한데다 산맥과 울창한 숲이 많은 곳이라 몇몇 크고 작은 도시들과 수도로 통하는 길을 제외하면 오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더욱이 험준한 고산지대는 독충과 맹수가 살아 보통 사람들은 감히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특수성 때문에 기이한 약초와 영수를 기르기에는 적합해 계국 수도자들은 선호하는 지역이었다.

계국 수도 종파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으며 몇몇 강대한 수도 문파 역시 일부 영기가 충만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운몽산(云夢山)은 천남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영기의 성맥이 흐르는 곳이었다.

산 깊은 곳에 수도계 삼대신목 중 하나인 영안수(靈眼樹) 즉, 영안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천뢰죽이나 양혼목 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영안수의 뿌리에서는 200년 마다 순액(醇液)이라는 액체가 흘러나왔는데 직접 복용할 수는 없었지만 영약을 제련하는 데는 최상의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정령단(定靈丹)이라 불리는 전설 속의 성약도 반드시 이 순액이 있어야 약효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정령단은 안혼단(安魂丹)이라 불리기도 해서 수행을 증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수사가 심마에 빠질 위험을 낮춰주는 작용을 했다. 만일 원영을 성공해야 하는 이가 미리 복용을 하면 원영기에 드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원영은 결단을 할 때와 다르게 적당한 수행과 인연 이외에도 환상과 심마를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단전이 영아의 모습으로 화하는 과정이니 수도자의 마음의 안정과 엄청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운몽산이 이런 보물을 품고 있는데다 일반적인 영맥과는 차원이 다른 농후한 영기를 뿜어냈으니 문파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발을 들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오랜 투쟁과 암투의 결과 현재는 고검문(古劍門), 낙운종(落云宗), 백교원(百巧院)이라는 세 종파들이 연합하여 이 산을 점거하고 있었다.

원래도 각각이 계국 종파들 중 최상위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런 세력들이 연합하자 다른 종파들은 아쉽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운몽산 어느 봉우리에서 반 개월 후, 한립이 석회암 계단을 오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뿐만 아니라 몇몇 젊은 남녀들도 함께였다. 그들은 모두 설렘 가득한 얼굴로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간 낙운종에서 제자를 모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연기기 남녀들은 각자 희망을 가득 품고 열심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한립 역시 연단술로 유명한 낙운종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결단기 선사의 신분이 아니라 연기기 제자의 신분으로 섞여 들어갈 작정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그의 수행과 무명 구결의 신묘한 작용이 더해지면 원영 중기 이상의 선사가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발각될 일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계획을 세웠을 리 만무했다.

그는 계단을 오르며 자령, 매응과 헤어진 뒤 벌어진 상황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적당한 곳에 동굴 거처를 마련해 일단 수행을 결단 후기의 최정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 통령의 기운을 흡수해 수행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완전히 원영기 직전까지 끌어올렸다 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운기행공을 하기 전 준비한 단약을 복용했는데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육급 요수의 요단으로 제련한 것은 물론이고 칠급 요수의 요단으로 제련한 단약조차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뜻밖이기는 했으나 또 의외의 상황은 아니었다.

단약의 힘을 빌리면 남들이 천일을 갈 길을 단 하루 만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수행이 일정 정도에 오르면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욱 효과가 큰 단약을 찾아내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축기기에 복용하던 단약이 결단기에 이른 이후 아무 효험을 볼 수 없는 것 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전에는 경계를 넘어서 크게 성장할 때 이런 한계가 찾아 왔지만 지금은 아직 원영기에 미치지도 못하였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한립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경전들이나 원영기 선사의 깨달음 보았을 때도 육급 요수의 요단으로 만든 단약은 몰라도 칠급 요수의 것으로 만든 단약은 원영기 이전에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적혀 있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단약이 자신에게만 미리 효험을 잃은 것이 너무 장기간 복용해 생긴 내성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이것도 검증되지 않았으니 벽염주나 통령의 기운을 흡수한 영향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나는 원래 인간이 음용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다른 하나는 소위 말하는 칠대 기운 중 하나였으니 알 수 없는 후유증이 남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 원인을 탐색하며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해결책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아직 팔급 독교의 요단 한 알이 남아있기는 했으나 아무리 많은 영석을 주어도 구할 수 없는 것이라 아까워 아직 단약으로 제련을 하지 않았다. 제련을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컸고 한, 두 알이 성공한다 해도 원영기에 이르기에는 부족했다.

이렇게 되니 이제 남은 방법은 다른 수사들처럼 하루하루 조금씩 법력을 쌓아가는 길 밖에는 없었는데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답답한 시간이 될 터였다.

어차피 필요한 법력에 도달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영기가 충만한 곳에서 십여 년 정도만 집중적으로 수행을 하면 가능할 듯도 싶었다. 물론 영맥이 괜찮은 지역을 골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괜히 변변치 않은 곳에서 자리를 잡아봐야 세월을 몇 배로 허비하게 된다.

하지만 난성해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곳은 섬은 많고 인구는 적은 데다 드넓은 바다를 끼고 있었지만 천남 지역은 대륙의 면적은 좁은데 선사들은 바글바글 했다.

일단 영기가 충만하다 싶으면 어떤 곳이든 크고 작은 문파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너무 규모가 좁아 문파나 세력이 미치지 못한 곳은 또 산수들이 들어가 있으니 정말 남은 공간이 없다 해도 틀린말이 이니었다.

수도자들에게 제공되는 자원만 놓고 보면 난성해보다 훨씬 안 좋은 환경인 것이다. 그러면 수도 가문이나 문파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의 능력으로 못할 것도 없었지만 또 다시 원영기 노괴들의 눈에 들어 쫓고 쫓기는 생활을 반복할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은 그저 평안히 원영에 이르기 위한 수련을 하고 싶었다.

일단 수도 가문에 들어가는것은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겨우 가문의 역량으로 월등한 영맥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낮았고 배타적인 특성상 외부에서 제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수도 문파는 달랐다. 비교적 세력이 큰 종파들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계 선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일이 생겨도 자신이 수행을 중단하고 도울 일도 없을 것이다. 가지 많은 노목의 그림자 아래서 한가로이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원영을 응결하는 데만 성공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신분이 드러나더라도 해악을 끼치기는커녕 서로 자신의 종파에 끌어들이려 노력할 것이다.

그가 영기가 넘쳐 흐르는 곳에 위치한 문파를 떠올려 보니 명성이 자자하던 운몽산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곳을 차지한 세 개의 수도 문파들이 그의 최종 고려 대상이 된 것이다.

일단 문파에 들어가려면 세력들의 특징과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했다.

두 여인들과 헤어지기 전에 현지의 작은 시장에서 천남 지역 수도계의 근 백 년 간 일어난 일을 알아봐 두었다. 사실 그녀들이 한립보다 이곳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 했다.

현재 천남은 그가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이전처럼 각 국가 별로 수도계가 존재하던 시대는 끝났고 천남 지역 전역을 마도, 정도, 천도맹(天道盟) 및 구국맹(九國盟)이 나누어 점령하고 있었다.

정도나 마도 그리고 구국맹은 그가 알던 세력들이었고 천도맹은 그가 난성해로 떠난 이후 만들어진 거대한 조직이라 했다. 정도와 마도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열댓 개 국가들의 수도 종파들이 연맹을 맺은 것이다. 세력으로 보아 정도나 마도 어느 쪽보다 컸지만 정마가 연합한 것에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도와 마도가 암암리에 밀약을 맺어 여러 국가들을 집어 삼키기는 했으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적대관계였기에 장기적으로 연합을 논할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마는 새로 생긴 이권을 분배하느라 내부적으로 투쟁이 일어나 천도맹을 상대할 흥미도 여력도 없었다.

천도맹 역시 느슨한 연맹의 형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정도나 마도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주도적으로 침략을 도모할 의도는 없었다. 이렇게 되니 세 세력이 묘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 전란이 발생하지 않은 주요 원인은 구국맹과 연관되어 있었다.

구국맹은 월국의 칠대 선파를 흡수한 후 정도와 마도에 의해 쫓겨난 여러 수도 종파와 산수들이 합쳐져 순식간에 세력을 키웠다. 그래서 당연히 막란 초원의 법사들을 제압할 거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그들과 다툼을 벌이던 막란 부족들이 돌연 막란족 제 이, 제 사 부족의 강력한 원군을 불러들여 법사의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쌍방에서 대량의 사상자가 나왔고 구국맹은 대부분 지역에서 밀리며 일부 영토를 잃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구국맹은 정마와 천도맹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는데 원군을 파견해 주지 않으면 아예 모든 인원을 물려 막란의 법사들이 쳐들어오도록 방치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정도와 마도 그리고 천도맹은 달갑지 않았지만 정말 구국맹이 물러서면 막란 법사들의 맹공이 있을 것을 염려해 일부를 파견해 주었다.

그 결과 최후의 결전이라 볼 수 있는 격전 끝에 천 명 이상의 수사들이 죽고 구국맹은 막란인들의 침공을 완전히 막아내 안정화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구국맹도 깨달은 바가 있어 이후 각 세력이 돌아가며 공동으로 막란 법사들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언을 해버렸다.

길고 긴 협상 끝에 네 개의 세력이 결국엔 공동으로 막란인과 맞서겠다는 협약을 하게 되었다.

이 협약문 때문에 백여 년 동안 이미 차지한 영토와 이권 배분이 끝나 안정기에 이른 정마가 호시탐탐 뒤를 노리는 막란인과 구국맹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활동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국과 주변 두 개 국가는 천도맹에 속해 있었는데 고검문, 낙운종, 백교원 세 개 문파들은 그 핵심 문파들이었다.

세 종파 중 처음 한립의 마음을 끈 것은 법기 제련으로 이름 높은 수도 명가 백교원이었다.

이 종파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독문 공법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파 제자들도 각종 등급의 법기를 제련하는데 뛰어났다. 심지어 최상급 법보를 제련하는 비법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초 월국 제일의 수도 가문이었던 연가의 건곤탑 법보도 이를 응용해 제련해 낸 것이었다고 하니 끌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점은 백교원이 월국 칠대 수도 문파들처럼 기본적으로 수도 가문의 제자들 위주로 신입 제자를 받아들인다는데 있었다. 게다가 종파 자체가 세력이 강한 수사 가문의 연합으로 유지되어 운몽산의 서쪽 산맥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한립이 충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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