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
327화. 매응
물고기는 네 장 길이에 푸른 비늘 갑옷을 두르고 날카로운 이빨과 지나치게 큰 두 눈을 지니고 있어 무척 험악하게 생겼다. 거기다 얼굴에 있는 굽은 가시가 눈길을 끌었다.
잠시 허리를 굽혀 그것을 관찰하던 한립이 검광을 휘둘러 물고기를 반 토막 냈다. 이어 손짓을 하자 검은 무언가가 그 안에서 튀어나와 손에 들어왔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특유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시 형아수(馨牙獸)로군.”
손에든 것을 내던지며 한립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자령과 매응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형아수라뇨?”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의아한 얼굴의 여인들을 보며 한립이 옅게 웃음 지었다.
“난성해에는 없는 이곳 특유의 독특한 심해수이니 들어보지 못한 것이 당연합니다.”
자령이 미간을 좁히며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한 형의 어투로 보아 이곳은 이미 난성해가 아니군요.”
“이곳은 난성해는 아닐 겁니다. 직접 와보진 못했으나 추측이 맞다면 무변해(無邊海)겠지요.”
“무변해라면……?”
이 역시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그러나 자령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온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 형께서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 듯하니 저희 자매에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는지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변해라는 것은 천남 사람들이 통상 그렇게 부르는 명칭으로 아마 이곳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
한립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무변해에 관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해 주었다.
“무변해라는 곳은 소위 천남 지역의 북쪽 끝으로 어류가 거의 서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섬도 없다는 뜻이네요.”
자령의 의아해하는 얼굴에 한립이 차분히 답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섬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남 대륙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말에 두 여인이 탄식했으나 한립은 이미 이후의 일을 결정한 후였다.
“그래도 한 동안 버틸만한 충분한 영석이 있으니 남쪽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날아가 봅시다. 대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라야겠지요.”
“그렇게 해야죠. 하늘이 돕기를 바랄 뿐이에요.”
매응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으니 세 선사는 무작정 남쪽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매응과 자령은 한립의 설명이 한 치의 과장도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오는 내내 어떤 섬도 찾아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해수면도 죽은 듯 고요해 몇 마리 흉악한 어류를 제외하고는 요수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곳을 처음 겪어 보는 두 여인은 그저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함께 공생공사하며 환난을 이겨내다 보니 자연히 세 선사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무척 단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아름다운 여인 사이에서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도 했다.
하지만 무변해로 온 뒤로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서릿발 같은 얼굴의 여인은 따로 있었다.
‘남궁완!’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을 쳐 이것이 미련인지 애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답답함인지 스스로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세 선사는 각자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넉 달 가까운 시간을 날아 결국엔 녹음이 드리운 땅을 보게 되었다. 희망을 갖고 날아왔지만 항상 불안감을 떨칠 수 없던 그들도 드디어 크게 기뻐하며 대륙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 * *
계국(溪國)은 천남 지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국가로 한립이 태어난 월국과 비교해 규모가 3분의 2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중 민주(閔州)가 계국의 일곱 개 주들 중 가장 면적이 넓고 무변해와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 봉일성(封日城)이 이곳의 가장 큰 성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섬에 도착해 인근의 작은 성의 주루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령이 애교스럽게 투덜거렸다.
“한 형, 이곳 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을 보니 천남 지역 출신이었군요. 우리를 이리 오래 속이다니 너무 하세요.”
이미 두 여인에게 자신의 대략적인 출신을 밝힌 지라 모두 한참을 경악한 후였다. 무변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직접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뭐 딱히 말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우연히 난성해로 갔을 때는 이렇게 빨리 천남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빙그레 웃음 짓는 모습이 꽤나 기분이 좋은 상태인 것 같았다.
“추격을 받아 난성해로 떠날 때 사문과는 연락이 끊겼으니 이곳 사람이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이건 특별히 두 선사를 위해 제작한 천남 지역 언어와 문자에 대한 서책이니 익혀 두시지요. 아마 단시일 내로 난성해로 돌아가긴 어려울 테니 그러는 편이 편할 것입니다.”
뜻밖의 선물에 잠시 멍하던 자령과 매응이 서책을 받아 들었다.
“하하!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한립이 맑은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두 분께서는 이후 어떻게 할 계획이신지요. 저는 천남 지역의 판세가 백여 년간 어찌 바뀌었는지 알아본 후 바로 폐관 수련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결단 후기의 막바지에 이른 듯하니 원영 준비를 해야 해서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여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자 자령이 눈을 빛내며 한립과 매응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는 이제 막 결단에 이른 터라 아무래도 경지가 굳건하지 못합니다.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 저 역시 한동안은 수련을 해야겠지요. 매응 동생은 어찌할 생각이야?”
“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축기 중기이긴 하나 자질로만 따지만 결단을 할 가능성이 낮으니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영단이나 기연을 얻지 못 한다면 고계 수사의 첩이 되어 함께 수련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겠지요.”
망설이다 매응이 중얼거리듯 늘어놓은 말에 한립과 자령은 꽤나 놀랐다. 자령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첩이라니?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지.”
하지만 한립은 그저 미간을 좁힐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자령이 말을 이었다.
“말이 좋아 첩실이지 사실상 노정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될 수도 있어. 만일 이상한 성정의 고계 선사를 만나면 거의 착취만 당하다가 수련은 꿈도 꿀 수 없게 될 거야.”
매응은 그녀의 설득에도 붉은 입술을 달싹거릴 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걱정스레 보던 자령이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만일 정말 함께 수련할 반려를 찾는 것이라면 잘 아는 이를 선택하는 것이 맞겠지. 예를 들어 한 형 같은 분이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생각지 못한 화제의 전환에 한립이 잠시 멈칫하긴 했으나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코를 긁적였다.
“…….”
“아…….”
매응은 그저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그래도 자령의 말에 반대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사실 한립은 이미 결단 후기에 이른 고계 수사에 곧 원영을 맺기 위해 준비에 들어갈 이였다. 게다가 음명의 땅에서 고난을 함께하며 겪어 본 바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내였다.
별실의 위기가 자령의 말 한마디로 묘하게 변해갔다.
자령이 말이 없는 한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형이 보시기에는 매응이 어떠한지요? 이런 아리따운 여인을 설마 마다하지는 않으시겠지요.”
한립의 시선이 고운 매응을 향했다.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붉어진 뺨이 자령의 말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가 차분하게 뜻을 밝혔다.
“매 소저의 미색이면 첩실은 당연하고 고계 선사의 반려가 되기에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찍이 뜻을 세우기를 평생 오직 수도의 길에만 매진하며 남녀 간의 정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게다가 현재는 쫓기는 몸이니 무슨 자격으로 첩을 들이겠습니까? 매 선사가 저와 함께 한다면 위험에 처할 뿐입니다.”
매응이 그 말을 듣고 몸을 떨더니 붉던 뺨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에 자령이 먼저 이런 미인을 거절하는 한립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결단 후기 선사인 한 형이 원영기 노괴들을 제외하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곧 원영을 맺으시면 천하에 누가 선사 곁의 여인을 어찌 하겠어요.”
“자령 선자가 오해를 하셨군요. 한 모가 동급 선사 중 수행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줄곧 강대한 실력자들과 원한을 맺어 왔습니다. 게다가 아직 원영에 성공한 것도 아니니 충분한 수행에 이르기 전까지는 누군가와 인연을 맺을 마음이 없습니다.”
완전히 수긍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령도 한립의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조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기에 그저 탄식했다. 드디어 안정을 되찾은 듯 매응이 고개를 들고 한립을 직시했다.
“그럼 만일 원영기 선사가 되신다면 매응을 받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원영기에 들 수 있을 지도 확실치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 소저가 아무리 기다리기를 원한다 해도 백 년이 지나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단호한 한립의 말에 매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축기기 선사인 그녀의 수명으로는 백 년이 아니라 이, 삼십 년을 기다리기도 어려웠다. 상대가 아무리 좋은 반려의 조건을 지녔다 해도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며 불확실한 결과에 기대를 걸 수는 없다.
한립과 그간 함께하며 어느 정도 호감이 생겼다지만 깊은 애정이 생겼다거나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매응을 보던 한립이 한숨을 쉬더니 품에서 작은 병 두 개를 꺼내 건넸다.
“안에 든 것은 요단을 이용해 제련한 수행 증진에 도움이 되는 단약입니다. 매 소저가 그렇게 수행에 뜻이 있다면 복용을 하며 수련에 힘을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자령 선사처럼 스스로 금단을 맺을 날이 오기를 바라겠소.”
축기기 선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단약은 지금의 한립에게는 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여인이 입맞춤을 통해 그에게 통령의 기운을 전해준 인연도 있었으니 그 정을 생각해 단약을 내어 준 것이다.
“요단으로 제련한 단약이요?”
매응이 바로 반응을 보이며 병 하나를 열어보았는데 향기로운 단약의 맑은 기운이 별실을 가득 채웠다.
“최상급 단약이 아닙니까……?”
옥으로 된 작은 병 두 개를 꼭 쥔 그녀가 한립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매응은 상대가 음명의 땅에서 분명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 생각했는데 첩으로 들여 달라는 것은 거절하고 또 이런 귀한 단약은 내주니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령이 단약을 보며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했으나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한 형께서 과연 통이 크십니다. 선사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받아 두는 것이 좋겠어. 정말 수행을 통해 결단을 한다면 우리 자매가 서로 의지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잖아.”
그제야 복잡한 심경으로 한립을 향해 감사를 표한 매응이 천천히 약병을 저물대에 담아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립이 고개를 돌려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주 익숙한 풍경에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일들이 떠올라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령과 매응이 그의 달라진 표정에 서로 시선을 마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