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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24화 (81/2,000)

# 324

324화. 강령부(降靈符)

돌아가는 길에 등이 굽은 노인이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우리를 밀고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를 왜 밀고하겠는가?  무슨 좋은 일이라고?  여인은 모르겠으나 한 가 녀석은 제법 총명해 보이던데 그런 미련한 행동을 할 리가 없네. 일단 두 선사가 폭풍산에 오르기 전에 한계를 깨닫고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봐야지.

게다가 알고 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미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봉천극을 없애주지 않았는가?  이제 두 선사만 합류하면 문제가 없을 게야.”

백발노인이 말하자 얼굴이 붉은 노인도 동조했다.

“영민한 자이긴 하더군요. 일이 잘 되어가긴 하나 만일을 대비해 몰래 사람을 붙여 감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들키지 않게만 조심한다면 운 선사의 말대로 하지. 다만…….”

백발노인이 말을 잇지 않자 등이 굽은 노인이 재촉했다.

“무엇이 걸리십니까?”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이곳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 듯해서 말이네. 아무리 폭풍산이 위험한 곳이라 설명을 해주어도 진심으로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어. 설마 정말 정상에 오를 계책이 있는 것은 아닐지…….”

등이 굽은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산에 부는 음풍만 해도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산에 남아 있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도 모두 허황된 꿈을 쫓아 산을 오르다 그리 된 게 아닙니까!”

“그렇지. 내 착각일 게야.”

하지만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금 선사는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세 노인이 떠난 후 한립과 매응 역시 거처를 나섰다.

그들은 촌락을 돌며 주변의 지리와 다른 촌락의 위치 그리고 음명수의 분포 등 필요한 자료들은 수집해 외우기 시작했다.

한립은 촌민들의 말을 기반으로 손대중으로 지도를 제작했다.

이틀째 되는 날 준비를 마친 한립은 대장로에게 폭풍산에 가려 함을 알렸다. 뚱뚱한 노인이 아쉬운 마음에 이곳에 머물 것을 권했으나 이미 결심이 확고한 그의 모습에 결국에는 동의하고 말았다.

한립이 매응과 거처로 돌아와 하루 밤 휴식을 취하고 촌락을 떠나려는데 누군가 몰래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운 선사 아니십니까.”

“한 선사, 내 짧게 말하겠소이다. 선사가 정말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 찾아 왔습니다. 만일 바깥에 나가게 된다면 이 함을 천부문에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한립을 응시하며 품에서 유골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무슨 뜻입니까?”

함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 부탁이나 들어줄 수는 없었다. 불그스름한 얼굴의 노인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직접 함을 열어 그 안의 작은 뼈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천부문의 삼대 부적 중 하나인 강령부의 제련 구결인데 오직 문중 장문인 만이 익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천부문이 절학을 잃는 것이 안타까워 선사가 탈출에 성공한다면 이 노인네를 대신해 본 문에 돌려주기를 청할 뿐입니다.”

“장문인에게만 전수되는 강령부라니. 그럼 선사가 바로 천부문의 장문인이란 말입니까?”

노인의 얼굴이 더욱 발갛게 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게도 운 모가 바로 천부문의 27대 장문입니다. 본 문은 대진 화운주(華云州)에 위치한 작은 문파인지라 저 같은 축기기 선사도 장문에 오를 수 있지요.”

“강령부를 제련하는 방법은 오직 장문인에게만 전수된다 하였는데 이리 맡겨도 되는 것입니까?  또한 대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이전에도 가본 적이 없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지 모릅니다.”

의문이 가득 담긴 한립의 말에 노인이 불쾌한 기색 없이 답했다

“이것을 선사께 맡길 때에는 부적의 제련법을 살펴보아도 좋다는 묵인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실 선사가 흥미를 느낄 만한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요.

강령부의 제련법은 본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기는 하나 두, 세 명의 선배님께서 몇 장을 제련하신 이후로는 아무도 강령부를 제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가 약해진 본문에서 전해지기에 아까운 물건입니다.

또한 선사가 정말 진국에 가주실지 이 부적의 구결을 본 문에 전해 주실 지는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어쨌든 저희 문파의 사조께서 직접 연구해 만들어 주신 제련법인데 이대로 실전된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꼭 천부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수도자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그 편이 이 노인네의 마음이 편할 듯합니다. 이후 저 세상에서 사문의 어른들을 만나더라도 드릴 말씀이 있지 않겠습니까?”

애석한 얼굴의 노인을 보고는 한립도 할 말을 잃었다.

보아하니 천부문의 장문인이라는 노인은 그저 마음의 위안을 위해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별 다른 의무는 없고 이익만 있는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제련하기 어렵다는 강령부가 어떤 물건인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여러 경전을 통해 익힌 바로는 수도계에 오행 법술을 담은 보통의 부적 외에도 불가사의한 효험을 부리는 특수한 부적이 존재한다 했다.

이런 비술이 단긴 부적은 오행의 도술로 분류하기 어려웠고 각 종파의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제련되니 외부인은 알아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그가 허천전에서 성궁 장로의 암습에 거의 죽을 뻔 했을 때 보았던 화신부나 성궁의 특제 전송부도 이런 비밀 부적에 속했는데 당연히 전자가 후자에 비해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으나 그리 큰 희망을 갖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헤헤, 그것이면 됐습니다! 한 형의 그 말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후련합니다.”

노인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한립에게 몇 마디 당부를 하고는 눈치 있게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다 유골함을 살피니 가볍고 투박한 것이 별다른 기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뒤에서 말없이 서있던 매응이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강령부란 이름은 처음 듣는데 정말 대단한 위력을 지녔을까요?”

“그건 모르겠소만 평범하지는 않을 듯하오.”

물건을 가지고 방 안으로 돌아온 한립이 가볍게 뼈 조각 하나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음?”

“왜요?  제련법에 문제라도 있어요?”

얼른 따라와 그의 옆에 앉은 매응이 반짝이는 눈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입맞춤까지 한 상대라 그런지 한결 친밀하고 편하게 느끼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 부적 제련에 필요한 재료가 너무 대단하여 그러오. 천부문에서 제련법을 보유하고도 부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었군.”

“한 형에게도 그렇게 대단한 재료들인가요?”

“다른 재료들도 문제지만 주재료는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오. 화형기 요수의 혼백이 있어야 제련할 수 있는 부적이라니 엄청나다 여기지 않으시오?”

한립의 담담한 미소에 매응이 놀라 입을 벌어졌다.

“화형기 요수의 혼백이라고요?”

그녀는 한립이 뼈 조각을 살피며 점차 묘한 얼굴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 *

하루 밤을 보낸 한립과 매응이 호위들의 걱정스런 눈빛을 받으며 촌락을 떠났다.

다시 검은 암석들이 쌓인 곳에 도착한 한립은 노랗게 먼지가 일은 사막을 바라보며 방향을 정한 후 매응을 데리고 인근의 또 다른 촌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립의 생각은 간단했다. 여인의 오라비가 살아있다면 분명 이곳 촌락 중 하나에 머물고 있을 것이고 그를 찾으면 폭풍산으로 향하면 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사막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한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피처럼 붉은 지형에 회색 의복을 걸친 열댓 명의 남녀가 조용히 흙더미를 포위하며 다가서고 있었다.

흙더미 위에는 목이 굵은 청록색 괴수 몇 마리가 몸을 말고 잠에 빠져 있었다. 벽섬수라 불리는 못생긴 두꺼비 괴수는 독이 없어 식용으로 삼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명수 중 하나였다.

이들은 벽섬수들을 사냥해 촌락의 식량 위기를 해소할 요량이었다.

기민하게 움직인 터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건만 거대 두꺼비 중 하나가 붉은 눈을 번쩍 뜨더니 이십 여 장 거리로 다가온 인간들을 발견했다.

“쳐라!”

인간들의 함성과 벽음수의 경고가 담긴 괴성이 겹쳤다. 순식간에 열댓 개의 하얀 창들이 날아갔다.

그 결과 대부분 벽섬수들이 펄쩍 뛰어오르기도 전에 창에 찔렸고 가장 민첩한 두 마리만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두 마리도 완전히 몸을 피하지 못해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벽섬수는 가장 하위에 속하는 음명수로 입으로 음기를 발산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공격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뛰어오르고 멀리 도망갈 수 있었다.

살아남은 두 마리가 큰 입을 벌려 검은 음풍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여덟 장 정도를 뛰어 올라 훌쩍 인간들의 포위를 벗어났다.

뒤늦게 여러 창들이 하늘을 갈랐지만 괴수들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했다. 한 번 더 튀어 올라 기암괴석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아나던 벽섬수들이 푸른빛이 번뜩이며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한참 낙심해 울상을 짓던 청년 남녀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슉슉.

음명수의 몸에서 푸른 빛 두 개가 연달아 인근의 바위 뒤로 돌아간 뒤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인상에 맑은 눈을 가진 사내와 수려한 외모에 온화한 인상을 지닌 여인은 바로 한립과 매응이었다. 두 사람은 옅은 남색의 요수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립의 손에 들린 푸른 소검에 반투명한 요수의 힘줄이 걸려 있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선 한립의 일격에 당한 음명수 두 마리를 확인하고는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는 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벽섬수들이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손을 썼지만 가져갈 생각은 없으니 걱정 놓으시지요. 다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답해 주시겠습니까?”

호의를 담아 미소를 짓는 한립을 향해 비교적 나이가 있는 청년이 나서서 응답했다.

“정말 벽섬수 고기는 가져가지 않는 겁니까?”

“식량이 부족하진 않으니 당연히 필요치 않습니다.”

그 말에 잠시 망설이던 청년이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물어 보시오!”

“여러분은 혹시 이 인근 홍토촌(紅土村) 사람입니까?”

청년이 이맛살을 찌푸리긴 했으나 곧 성실히 답했다.

“그러합니다. 우리는 홍토촌 촌민들입니다!”

“잘되었습니다. 혹시 귀 촌에 최근 새로 들어온 외부인이 있지 않는지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촌민은 없었고 공간의 균열이 생겼을 때 음명수가 활동하던 곳에서 남녀의 백골을 몇 구 발견하긴 했습니다. 불운하게도 벌써 음명수 무리에게 잡아먹힌 것 같았지만.”

“백골…….”

한립 뒤에 서있던 매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난 한달 반 남짓 동안 이미 세 개의 다른 촌락을 다니며 오라비의 행방을 수소문 해왔지만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두 몰살당했다고 하니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청년은 한립 일행이 정말 사람을 찾는 것이 목적인 듯하자 경계심이 조금 줄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유골은 우리가 매장했지만 지니고 있던 물건은 촌락의 창고에 보관 중인데 가서 살펴보겠습니까?”

“그러지요.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말을 잃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죽은 자들이라도 신분을 확인해야 한다. 정말 그들 중 여인의 오라비가 있다면 탐색을 중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음명수의 시체를 챙기라 분부한 청년이 한립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 왔다.

“헤헤, 처음 말투만 들어도 외부인인 줄 알았습니다. 아마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 분들인가 보군요.”

한립은 그저 미소로 응할 뿐이었다. 그들을 따라 몇 리를 걸어가니 낯선 촌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다른 곳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았다. 비록 돌로 만든 담이 마을 전체를 보호하고 있기는 했으나 겨우 네 장 높이에 이곳저곳이 부서져 있는 것이 수리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또한 촌락의 규모로 보았을 때 기껏해야 백여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청년이 비교적 크기가 큰 건물을 가리키며 알아서 살펴보라 일러주었다. 아무래도 벽섬수의 고기를 처리하는 일이 급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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