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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16화 (73/2,000)

# 316

316화. 귀무의 출현

이제 금빛 빛기둥은 마지막 보호막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콰콰쾅!

한립이 작게 탄식하며 풍뢰시를 발동한 순간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는 빛기둥에 의해 뚫려나갔고 말이다.

수십여 장 밖에서 나타난 그가 다시 한 번 사라졌다.

“……!”

온천인이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발밑의 붉은 불꽃을 번뜩이며 몸을 피했다.

‘흠? ’

거의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한립은 손에서 푸른 검빛을 뿜으려다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풍뢰시를 발동했다.

이번에는 온천인도 피하기보다는 미간 사이의 뿔에서 금빛을 방출했다. 작은 거울들이 동시에 허공으로 치솟으며 무수히 많은 금빛을 방출해 하늘을 뒤덮을 규모의 보호막을 펼쳐낸 것이다.

온천인의 십여 장 뒤에서 나타난 한립은 이에 휘말려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그는 풍뢰시를 발동해 벗어나보려 했으나 이미 온몸이 굳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가 두 손을 뻗어 비검을 날려 보냈지만 난동을 부리는 칼날들에도 금빛들은 전혀 손상이 없었다.

한립이 서둘러 입에서 손가락 굵기의 금빛 뇌전을 분출했으나 사방을 휘감은 금빛이 잠시 반짝거렸을 뿐 역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때 그를 지키고 있던 보호막이 정신없이 반짝였다. 당장이라도 영기를 잃고 금빛을 투과시킬 기세였다.

안색이 파리해진 한립이 옥패에 미친 듯이 영력을 불어넣자 보호막의 색이 점차 변하기 시작하며 은색이 찬란해졌다. 그제야 금광에 맞서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온천인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는 듯 더욱 악랄한 얼굴로 법결을 뿜어냈다. 그의 거울 법보들이 한립의 머리 위로 날아와 금빛을 뿜어내자 동일한 색의 화염이 쏟아져 내렸다.

이제 온천인 역시 더욱 신중한 기색으로 양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복잡한 수결을 맺어댔다.

이어 벌어진 그의 입에서 핏방울들이 분출되고 그때마다 온천인의 안색이 한결 창백해졌다. 여덟 번이나 핏덩이를 토해낸 그는 이제 아예 핏기가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금색 화염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변해갔다. 음산한 온천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전설 속의 금광신염 속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네 수행으로 잠시라도 버틴다는 것이 대단할 지경이니!”

온천인은 화염 위로 이동해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나 두 눈을 감은 채 뿔에서 뿜어낸 금실로 화염을 북돋는 온천인을 보면서도 한립은 차분했다.

그는 금빛 화염이 출현한 순간 평소의 대여섯 배의 영력을 방출해 은색 보호막을 안정시켰다.

상대는 아마 한립의 영력이 바닥날 때를 기다려 산채로 화염 속에서 태워 죽일 생각일 것이다. 그가 미리 늑대 머리가 새겨진 옥패의 보호막을 강화하는 술법을 익혀두지 않았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립이 분석할 때 금광신염의 위력은 건람빙염이나 수라성화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확실히 극음의 천도시화보다는 대단했다.

만일 평범한 결단 후기 선사였다면 금빛 화염 속에서 얼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립이 누구인가?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저물대에서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병을 내려다보던 한립은 그저 한숨이 나왔다. 방금 얻은 만년영액을 이렇게 써버리다니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그가 원요에게서 만년영액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금빛 화염 속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원요를 외면하고 떠났다면 이런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만년영액을 지닌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를 가둔 금빛 광채나 금빛 화염을 불러내는 온천인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을 리 없다. 상대의 이런 무리한 공격은 한립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이 보호막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심신을 평안히 했다. 육도의 후계자가 법력이 바닥나 흔들리는 순간 그를 끝낼 생각이었다.

이때부터 괴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허공에서 눈을 감고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수장 높이의 금빛 화염만이 소리 없이 활활 타올랐다.

자령이 그 광경을 맑은 눈으로 지켜보며 속으로나마 탄식했다.

그녀의 생각으론 한립이 온천인의 금빛 화염에 갇힌 순간 이 대결의 승패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지금은 한립의 은색 보호막이 버티고 있지만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섬에서 수십 리 떨어져있는 매 씨 오누이와 소노인 등의 저계 선사들도 거리가 멀어 한립과 온천인의 대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화려한 빛들과 폭음은 미미하게나마 감지하고 있었다.

모두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하얀 그림자가 섬에 있는 결단기 선사와 대결하는 중일 거라 예상했기에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으니 도무지 승패가 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 *

섬의 다른 방향에서 흉악한 영수들이 끄는 마차를 지키고 있던 여인들도 수군거리며 걱정이 태산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의상으로는 온천인의 시녀들이었으나 모두 시침을 드는 첩과 다를 바 없는 여인들이었다.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맹으로 복귀한 시녀들이 어떤 일을 당할 지는 자명했다.

이렇게 자꾸만 시간이 흘러갔다.

해가 저물었고 다시 해가 떠오를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반나절이 넘도록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섬 주위에 다른 선사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근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에 보물이라도 나타난 것인가 해서 분분히 날아든 것이다. 그 중 대다수가 축기기 선사였으나 분수를 모르는 연기기 선사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섬 주변에 있는 노인 일행과 마차 주위의 여인들을 마주치고는 더 이상 섬으로 접근하지는 못했다. 마차에 있는 여인들이 역성맹의 이름을 내세워 경고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결국 결단기 선사들도 조금씩 등장했는데 뜻밖에도 그 중 하나는 황명도의 부도주였다.

그들은 온천인의 시녀들을 만나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시녀들은 결단기 선사들에게 예의바르게 온천인의 신분을 드러내며 완곡히 돌아가기를 청했다.

이에 두 결단기 선사도 깜짝 놀랐다.

아무리 황명도가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지만 육도 극성과 같은 마도의 일인자나 역성맹의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두 선사는 자연스레 아무 구실이나 둘러내며 즉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섬에 어떤 보물이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육도의 후계자가 뛰어든 일이면 그들이 어찌 해볼 사안이 아니었다.

역성맹의 이름을 듣고 물러난 이들을 제외하고 노인 쪽에 모여든 저계 선사의 수가 거의 마흔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어지러운 틈을 타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없을까 기대하며 섬 밖에서 눈치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섬의 한쪽에서 청록색 빛기둥이 나타나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요동을 치던 먹구름이 점차 평정을 찾으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차지한 공간은 줄고 있었으나 그 농염한 기운의 밀집에 마치 폭풍전야를 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섬을 주시하던 모두가 흠칫 놀랐다. 두뇌 회전이 빠른 이들은 빛기둥을 보물 출현의 전조로 보고 눈을 빛냈다. 주체 못할 탐욕에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 무리가 열댓 명씩 무리를 이루어 섬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많은 축기기 선사가 모였는데 아무리 결단기 선사라 해도 모두 단번에 어찌 할 수는 없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신중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전긍긍하던 온천인의 시녀들 역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마차를 끌고 섬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다만 섬의 백여 리 밖 망망대해에 갑자기 기이한 검은 빛이 반짝이며 틈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다량의 검은 안개가 분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안개는 처음에는 겨우 수 장 크기였으나 순식간에 범위를 넓혀갔고, 짙은 검은 안개 속에서는 귀신의 곡소리인지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모를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기괴한 검은 뇌전들이 번뜩였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검은 안개 부근에 있던 어류들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안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휩쓸고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검은 안개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그러나 원요가 환혼술을 펼치는 섬 가까이 다가온 미지의 귀무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금빛 속에 갇힌 한립은 다시 한 번 작은 병을 기울여 만년영액 한 방울을 삼켰다.

벌써 다섯 방울 째였으나 금빛은 전혀 어두워질 기미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주변의 금빛 화염이 작아졌다는 것인데 상대도 법력 소모가 어마어마한 것이 분명했다.

손에 든 병을 냉랭하게 쳐다보던 한립이 고개를 들어 먹구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방금 녹색 빛기둥이 치솟아 생긴 변화는 그도 지켜보고 있었다. 빛기둥이 산골짜기에서 출발한 것을 확인했으니 원요가 행한 법술은 확실했으나 아직도 먹구름이 걷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환혼술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금빛 속에 갇혀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작게 숨을 토해내자 몸 안의 법보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 * *

금빛 화염 위에 떠있는 온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이 회백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화염의 크기가 줄고 금빛 결계의 빛이 탁해질 때마다 그의 뿔도 이미 3분의 2나 줄어들었던 것이다.

육도의 후계자로서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음울한 얼굴 속에는 공포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금빛 결계와 화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법보의 주인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바였다.

처음 한립이 그 안에서 잠시라도 버틸 것이라 예상했던 것도 그를 많이 치켜세워준 것이었다.

처음 상대가 그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솔직히 의외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 시진이 지나고도 상대의 기운이 여전하자 점차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자신이 멍청한 일을 벌였으며 상대가 전혀 법력을 소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급속도록 법력을 회복해 주는 보물이나 신묘한 공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마의 화신들을 불러냈다가 태반을 소실했고 이어 무리해서 팔문금광경까지 펼쳤으니 원기가 상해 수행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지금 한립과 다시 맞붙는다면 승산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만년영액 같은 보물이 무한정할 리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이번에 상대를 죽이면 원래의 수행을 되찾기 위해 이, 삼십 년을 고생해야 하겠지만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금빛 화염 속의 은색 보호막은 전혀 붕괴할 조짐이 없었다.

온천인은 평정심을 점차 잃어 어떻게든 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을 연구하던 차에 청록색 빛기둥을 보고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가 입꼬리를 비틀며 자령 선자를 향해 냉랭히 외쳤다.

“자령! 당장 그가 날아온 방향으로 가 일행을 잡아 오거라. 술법이 극에 달했으니 반항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전의 온화하고 자상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자령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총명한 그녀는 온천인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역성맹 소주라는 자가 인질을 붙잡아 한립을 위협하려는 치졸한 수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립이 그 자의 호법을 서주며 대신 적을 맞아 준 것으로 보아 교분이 깊을 것이다. 이런 부도덕한 방법까지 쓰려는 것을 보면 정말 육도의 후계자도 막바지에 이른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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