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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14화 (71/2,000)
  • # 314

    314화. 음마참과 육극진마

    한립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온천인은 차분히 두 손을 합장하더니 그 사이에서 작은 깃발을 불러냈다.

    사 촌 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였으나 보랏빛이 눈을 찔렀고 엄청난 영기를 내뿜었다.

    “……!”

    그제야 수많은 비검들을 확인한 그가 황급히 깃발을 발동해 보라색 운무를 뿜어내 몸을 감추었다. 막 오행환을 발동해 상대를 제압하려던 한립으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주저 없이 다섯 개 고리를 하나로 합쳐 방어구로 변화시킨 그가 날듯이 양손을 움직여 수결을 맺었고 청죽봉운검들을 향해 검영분광술을 펼쳤다.

    스물 네 개의 푸른 비검들이 순식간에 아흔여섯 개로 변화해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이미 백여 장 밖으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소녀는 놀란 와중에도 왠지 모를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른 비검들이 보라색 안개 속을 무수히 헤집고 다녔지만 수백 개의 구멍이 뚫리고도 온천인은 반응이 없었다. 한립의 얼굴이 굳어갔다. 간단히 제압하리라 여긴 것은 아니나 육도의 후계자답게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미친 듯 질주하던 비검들이 두 개의 거대한 검으로 합쳐져 보라색 운무를 향해 내리 꽂히고 있었다.

    그 순간 한립의 손이 허리춤의 영수대로 향했다.

    웽웽웽웽웽-

    무수히 많은 서금충들이 벌떼처럼 날아올라 한립의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그때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한립의 귓가를 울렸다.

    “저것은!”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그의 시선이 멀리 떨어져 떠있는 소녀에게 닿았다. 입을 벌린 소녀는 기이하게도 희미한 희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쿠콰쾅!

    그가 소녀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는 찰나 거대한 진동이 전해졌다. 보라색 안개 속에서 낡은 청동 방패가 하얀 빛을 분출하며 나타나 두 거검의 공격을 가뿐히 막아낸 것이었다.

    한립은 작게 탄식했다.

    줄곧 비검 법보들을 배양할 시간이 없어 특수한 재질에는 위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본인의 수행이 결단 후기에 이렀으니 그 격차는 더욱 심해져서 거검술을 이용해도 동급 선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두 개의 거검이 위로 솟아올랐다 떨어져 내리기를 반복했으나 방패 고보에 막혀 소용이 없었다.

    이때 한립이 무언가를 낮게 읊조리니 머리 위의 서금충 대군이 보라색 안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안개가 무엇으로 이뤄진 줄은 모르나 삼색의 딱정벌레 떼가 물어뜯지 못할 것은 없었다.

    보라색 안개 속에 몸을 감춘 온천인이 곤충 떼의 습격에도 냉소하며 소리쳤다.

    “흥! 겨우 곤충 요수라니 스스로 죽을 자리를 파는구나!”

    그 말에 한립은 화가 나기보다는 즐거웠다. 상대가 서금충을 보통의 곤충 요수로 보아 경시한다면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속으로 온천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와중에 다시 한 번 온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라!”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라색 안개 속에서 금빛이 폭발하더니 무수히 많은 금빛 실들이 솟구쳐 사방팔방으로 덮쳐오는 벌레들을 향해 뿜어져 나간 것이다.

    그 금실은 서금충들의 천적이라도 된다는 듯 법보로도 손상을 주지 못했던 딱정벌레들의 단단한 외피를 닿는 족족 뚫어버렸다.

    ‘말도 안 돼!’

    두 눈을 부릅뜬 한립이 날카롭게 주술을 외웠고 곤충 무리가 그 즉시 방향을 틀어 그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실은 여전히 서금충들을 놓아줄 마음이 없는지 그 뒤를 추격해 대량의 딱정벌레들이 빗방울처럼 추락했다. 안색이 나빠진 한립이 저물대에서 바구니 고보를 꺼내 들었다.

    바구니가 허공을 가르며 하얀 빛으로 변했고 서금충들을 그대로 통과해 금실들에게 당도했다. 한립이 눈을 빛내며 고보를 향해 법결을 뿌리자 하얀 빛이 급속도로 회전하며 크기를 키워갔다.

    본래 쾌속으로 서금충들을 쫓던 금실이 하얀 빛의 범위에 들며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자 딱정벌레들이 이 틈을 타 한립의 영수대 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삼색 서금충을 만 마리 가까이 잃은 한립의 얼굴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바구니 고보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전멸했을 것이다.

    도무지 이런 압도적인 위력을 선보인 금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서금충이 제대로 능력 발휘도 못하고 처참하게 당한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가 대책을 생각하는 찰나 하얀 빛 속의 금실이 또 변화를 일으켰다. 미친 듯 반짝이던 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금실의 정체는 뜻밖에도 아주 얇은 금색 침이었다!

    한립은 궁금하던 법보의 정체를 알자 할 말을 잃었다.

    육도의 후계자는 제련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침 형태의 법보를 적어도 수백 개는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금침 하나하나가 폭발적으로 금빛을 방출하더니 하나로 결합해 얇은 검의 모습을 만들기 시작했다. 몸을 부르르 떨다 순식간에 솟구친 금빛 검은 순식간에 바구니 고보의 금제를 벗어나 한립을 기습했다.

    이에 한립이 또 다시 저물대를 뒤져 푸른빛이 찬란하게 도는 부적을 꺼내 들었다. 바로 허천전에서 청역 거사에게 받은 부보였다.

    마침 동일한 침 형태의 부보였으니 위력을 시험해 볼 요량이었다.

    펑.

    코앞에 당도한 금빛 검이 스스로 터져나가며 다시 한 번 무수히 많은 금실의 형태로 분사되었다. 한립의 입에서 푸른 기운이 방출되어 손에 들고 있던 푸른 부보에 흡수되었다.

    순식간에 발동된 부보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보호막을 벗어났고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푸른빛들이 다가오는 금색 실들과 동일한 형태를 드러냈다.

    보라색 안개 속의 온천인도 이번에는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찌…….”

    금실과 푸른빛이 한립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허공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놀란 기색을 수습한 온천인이 돌연 냉랭히 물었다.

    “청명침이라니! 청역 거사와는 무슨 관계이더냐?  노인네가 목숨처럼 아끼는 청명침으로 부보를 제련해 주다니 직전제자라도 되는 것이냐!”

    “…….”

    일일이 답하기도 귀찮은 한립이 전신의 법력을 운용해 상대가 머뭇거리는 찰나 금색 실들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온천인이 열이 받아 서늘하게 소리쳤다.

    “입을 열지 않겠다니 나 또한 청역 노괴의 체면을 보아 봐주지 않겠다! 난성해 제일 마공인 육극진마공(六極眞魔功)의 위력을 느껴보거라!”

    금실이 청명침과 겨루기를 포기하고 보라색 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돌아갔다. 한립은 그 김에 푸른 침들을 움직여 상대의 안개를 들쑤셨다.

    그러나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속에 아무도 없다는 듯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얼굴로 한립이 청명침들을 회수해 부보를 다시 저물대 속으로 넣어버렸다.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면 강력한 위력의 부보를 낭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잠시 아무 반응이 없이 고요하기 만한 보라색 안개를 지켜보던 한립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결정을 내렸다.

    그 찰나의 순간 보라색 안개가 아무 전조도 없이 끌어 오르니 반경 수십 리의 천지영기가 요동을 치며 범람하는 물처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보라색 안개는 크기를 키우며 점차 회백색으로 변해갔다.

    와드득.

    기이한 소리가 처음에는 작게 울려 퍼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치 옆에서 천둥이 치는 듯 커져만 갔다.

    한립도 더 이상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맹렬히 왼팔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손을 등 뒤로 보내 흉악한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라색 안개는 아직도 천지영기를 흡입하며 크기를 키우고 있었고 간담이 오그라들 만큼 끔찍한 소리를 냈다.

    거대한 회백색 안개의 등장에도 한립은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는 은은한 검은 기운이 막을 이루며 스스로 수축하며 농축되었다. 그리고 진한 먹처럼 변했을 때야 한립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부풀어 오르면서 평상시보다 3배가량 굵어졌고 검다 못해 붉은 핏빛을 방출하며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미 삼십 장 가까이 몸집을 키운 회백색 안개를 바라보며 한립이 작게 읊조렸다.

    “깨버려라!”

    검붉은 기운이 어깨를 빠져 나와 손바닥에 고이더니 곧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며 쏘아져 나갔다. 검붉은 기운은 길게 꼬리를 남기며 쾌속으로 회백색 안개에 도달했다.

    이에 온천인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거검을 막고 있던 청동 방패 고보를 앞세웠다. 하지만 한립의 검붉은 빛은 움직임을 멈출 줄 몰랐다.

    잠시 후, 소리 소문 없이 청동 방패가 두 조각나 추락해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회백색 안개가 갈라지더니 엄청난 빛을 내며 조금씩 소실되기 시작했다.

    이때 한쪽 안개에서 온천인의 노성이 들려왔다.

    “감히 내 팔 다리를 자르다니 목숨으로 보상하거라!”

    이어 다른 반쪽 안개가 사라지며 팔뚝 하나가 공중에서 나타났다. 팔뚝에 걸친 의복의 소매를 보니 분명히 온천인의 왼팔이었다.

    ‘화겁대법(化劫大法)!’

    기이한 광경에 한립의 동공이 수축했고 불현듯 마도의 비술 중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신체의 일부를 미리 꼭두각시처럼 제련해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받았을 때 모든 여파를 대신 지게 하는 아주 요사스런 술법이었다.

    온천인이 이런 술법을 펼치게 만든 것은 한립의 음마참(陰魔斬)이란 비술 때문이었다. 혈령찬과 원리는 다르지만 비슷한 효과를 내었는데 특수한 방법으로 원기의 일부를 체내에 응결시켜 방출해 단 한 번의 공격에 제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갈라버렸다.

    음마참은 수련자의 수행과 응축한 원기의 양 그리고 배양 시간 등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었는데, 전해지는 바로는 허공을 가르고 공간을 비틀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한 번의 공격에 엄청난 원기를 소모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한립도 그저 일부를 이용해 제련해 놓았을 뿐이었다. 아직 공간을 비트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비슷한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비술을 이용해 목숨을 부지했지만 원기가 크게 상한 것은 물론이고 팔 한쪽이 잘려나갔으니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안개 속에서 금빛이 나와 잘린 팔을 회수해 갔다.

    “크하하하학.”

    그리고 괴이한 포효 속에서 회백색 안개가 걷혔다. 한립이 서늘한 시선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온천인은 한 손으로 잘린 팔을 들고 증오심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그 뒤로 희미하게 여섯 개의 허상이 나타났다.

    어떤 것은 머리에 뿔이 달렸고 또 어떤 것은 온몸에 비닐이 뒤덮여 있었지만 모두 흉악한 몰골로 회백색 기운을 띄고 있다는 것만은 동일했다. 마치 악귀들이 지옥 속에서 뛰쳐나온 것 같았다.

    “육극진마?”

    한립의 중얼거림에 온천인이 살기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육극진마의 위력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육성의 환영에 불과하지만 일개 결단기 선사를 아작 내기에는 충분할 터!”

    육도의 후계로 태어나 지금의 수행에 이르기까지 순탄하게 살아온 그가 한립에게 당하자 더욱 살심을 불태웠던 것이다.

    그가 잘려나간 팔을 제자리에 붙이자 뒤에 서있던 뿔이 둘 달린 마른 혼영이 입을 벌려 은은한 붉은 기운을 뱉어냈다. 그리고 팔을 감싸던 기운이 흩어진 자리에는 앙상하던 팔이 부풀어 올라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일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놀란 기색의 한립을 보고 온천인이 비웃으며 두 팔을 펼치자 여섯 개의 환영이 동시에 몸집을 키우며 흔들거렸다.

    그 모습에 한립이 신속히 상대의 머리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푸른 거검 두 자루가 맹렬히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야 말로 온천인을 조각낼 기세였다.

    그러나 온천인이 냉랭히 한립을 응시하는 사이 여섯 허상 중 키가 가장 큰 흉악한 인상의 환영이 재빨리 날아올라 두 검을 잡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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