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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11화 (68/2,000)
  • # 311

    311화. 하늘의 징조

    3일 후 비교적 황폐한 작은 섬의 상공에 한립과 여인이 나타났다.

    “확실히 농염한 음기입니다. 사저의 원신이 받을 손상을 줄이기 위해 이런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인데 대단하십니다.”

    “당시 인근 해역 자료를 살필 때 이전에 요수의 무덤이라 불렸던 작은 섬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난성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할 때는 저계 요수들이 수명을 다하면 이곳에 모여 들어 숨이 끊기기를 기다렸다더군요.

    비록 인간 선사의 세력이 융성해지면서 이런 사실이 잊혀 졌지만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이곳의 음기는 엄청나게 쌓였지만 규모가 작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아는 이가 거의 없었지요.”

    말을 마친 원요가 바로 하강을 시작했고 한립 역시 차분히 그 뒤를 따랐다. 작은 섬의 한쪽에 내려선 그녀가 한립을 데리고 어느 산골짜기로 들어섰는데 주변이 온통 주먹만 한 까만 돌로 이뤄져 있었다.

    원요가 하얀 손을 뻗으며 법결을 외자 붉은 빛이 방출되었고, 풍경이 변하면서 십여 장에 이르는 복잡한 진법이 드러났다. 보기만 해도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진법이었다.

    그러나 한립의 눈길을 끈 것은 중앙에 있는 옥으로 만든 관이었다. 전체가 무결한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놀랍게도 값을 따질 수 없는 한옥(寒玉)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그 안에는 연려를 위한 육체가 들어있을 것이다.

    한립이 알기로 환혼술을 펼칠 육신은 조건이 극히 까다로웠다. 영근 속성은 물론 태어난 일시와 심지어 죽은 일시 그리고 원통하게 죽어 원기가 있는 지 등 따져야 할 것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가 옥관을 살피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원요가 더없이 신중한 얼굴로 품에서 검은 목함을 꺼내 옥관 위에 올려 두고 바로 뒷걸음질 쳤다.

    원요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립을 향해 부탁했다.

    “두 시진 후면 하루 중 가장 음기가 왕성해지는 때가 됩니다. 그때 환혼술을 시작하면 대략 2, 3일이 걸릴 것이니 그동안 한 형만 믿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골짜기를 둘러보았다.

    “이곳엔 환형진을 제외하면 보호용 결계가 충분치 않은 듯 한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소녀도 알고 있으나 당장 수중에 마땅한 진법 법기가 없는데다 시간이 부족해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알아서 하지요. 대단한 위력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진법 법기 몇 벌을 설치해 방어하겠습니다.”

    어차피 좋은 일을 하는 바에 아낌없이 도와줄 생각이었다. 자연히 원요는 희색을 드러냈다.

    “진법에도 정통하셨다니 더욱 마음이 놓입니다. 그럼 한 형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그저 작게 미소 지은 한립은 바로 허공으로 떠올라 지형을 살폈다. 잠시 후 마음속에 어찌할지 그림이 그려지자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진법을 설치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이 펼쳐지니 열댓 마리의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나타났다. 그가 저물대에서 꺼낸 법기들을 분배하자 곳곳에 진법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잠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꼭두각시들을 지켜보던 원요도 눈길을 거두고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환혼술은 간단한 술법이 결코 아니었기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이미 준비해 놓은 거대한 진법 역시 다시 한 번 살피며 단 한 군데라도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한립은 열댓 마리의 꼭두각시들을 이용해 겨우 한 시진 만에 다섯 개의 진법을 설치했다. 결단기 선사들이야 막아내지 못하겠지만 축기기 선사는 쉽게 침범할 수 없을 것이다.

    골짜기 중심에 있던 원요의 작업도 막바지에 달했다. 진법 곳곳에 영석을 설치하고 진법의 눈에 법결을 쏘아 보내니 금방이라도 발동될 기세였다.

    우웅.

    검은 빛이 번뜩이며 음산한 기운이 곳곳을 뒤덮었다. 그 검은 기운들이 진법 한 가운데의 옥관으로 모여 들자 원요는 만족한 얼굴로 법결을 쏘아 진법의 운용을 멈추었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한립 곁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원 소저 마지막으로 묻지만 정말 금단을 포기하고 수도자로서의 성장을 포기할 것입니까?  이후 다시 결단기에 이를 가능성은 없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어차피 지금까지 제가 살아 있는 것도 모두 사저의 덕이니까요.”

    바삐 돌아다니느라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원요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한 형께서는 저와 사저의 관계를 모르시니 하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동고동락한지 수십 년 째라 친자매 보다 더욱 가까운 사이입니다.

    청양문 소주를 죽일 때도 사저가 저 대신 마지막 일격을 맞아 지금의 상황에 처한 것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양혼목 속에 있을 사람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 연려 사저의 원신만 흩어지지 않는다면 단전이 망가지는 것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한립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지만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진법 안으로 들어가 옥관 앞에 자리를 잡은 원요가 가부좌를 하고 때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으나 하늘을 살피며 시간을 가늠하던 여인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때가 되었으니 술법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번 환혼술의 성패와 상관없이 소녀를 위해 나서주신 한 형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먼저 원요의 인사를 받으시지요.”

    그녀가 한립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더니 주저 없이 두 손을 뻗어 진법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쉰 한립은 말없이 산골짜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짜기와 멀지 않은 곳에서 걸음을 멈춘 그가 안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엑!

    이미 진법을 중심으로 엄청난 음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였으며 은은히 귀곡성이 전해지고 있었다. 환혼술이 얼마나 역천의 술법인지 보기만 해도 느껴질 정도였다.

    무표정하게 그곳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한립이 천천히 의식을 퍼트려 섬 주변 해역의 동정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 * *

    반나절 후에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던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원요가 자신에게 호법을 서달라고 간청한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환혼술이 요란스러운 술법인 줄은 알았지만 이것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산골짜기는 음기의 돌풍으로 모래와 암석이 가득 차 이미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었고 귀곡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그 중심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을 찌를 듯한 검은 빛도 너무 강해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한립이 정말로 놀란 것은 섬 위에 형성된 십여 리 규모의 먹구름이었다!

    엄청난 음기를 품은 먹구름이 어찌나 천둥 번개를 쳐대는지 마치 하늘에서 원요의 술법을 손가락질 하듯 이곳을 가리키며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기상천외한 이변에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는 선사들은 모두 놀랐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현상은 엄청난 보물이 출현했거나 누군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공법을 펼칠 때 일어나곤 했으니 다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이 고민에 빠진 찰나 갑자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 * *

    섬의 서남쪽 방향에서 일고여덟 개의 빛줄기가 등장하더니 겨우 십여 리를 남기고 멈춰 섰다.

    무리를 이끄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축기기 노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어린 연기기 남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동일한 남색 옷을 입은 것이 같은 문파의 제자들인 듯 했다.

    노인이 전방을 살피며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때 20대 초반의 여 제자가 입을 열었다.

    “소 사백님, 어서 가서 살펴봐요. 무슨 보물이 나타났는지도 모르잖아요!”

    “혜령이 너는 너무 성급한 것이 문제로구나. 저런 이변을 일으킨 것으로 보아 보물이 나타났다 한들 마기가 낀 흉기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어느 고인이 마도 비술을 연마하는 중에 난입하기라도 하면 죽으러 가는 것 밖에 더 되겠느냐?”

    여인은 아직도 할 말이 남은 눈치였지만 고개를 숙이고는 더 나서지 않았다. 그때 다른 제자가 먹구름이 낀 섬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저희는 이곳에서 기다리고만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요란스런 기운에 다른 이들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으니 걱정 말거라. 그들이 어떻게 하는 지 지켜보다가 기회를 보아서 움직이면 그만이다. 우리 태양종(太陽宗)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신중을 기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큰 이익 앞에서도 머리를 먼저 굴려야 목숨을 오래 부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

    노인은 섬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어린 제자들에게 훈계했다. 역시 노인의 말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섬의 다른 쪽에서 노란 색과 녹색의 두 빛줄기가 날아들어 노인 일행과 백여 장을 남기고 멈춰 섰다.

    빛이 사라지고 남녀가 나타나더니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했더니 태양종 소 선사셨습니다. 저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목석같은 사내는 검은 옷을 두르고 있었고, 여인은 수려한 얼굴로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 역시 남녀를 알아보았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매 선사들도 오셨군요. 노부 역시 멀리서 이변을 발견하고 이곳에 당도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두 분께서 견식이 넓으니 어떤 징조인지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겸양이 지나치십니다. 선사께서 몰라보시는 것을 저와 오라비가 알아볼 리가요?  다만 음기가 강한 것으로 보아 이보가 나타났다 해도 길조는 아닐 듯싶습니다.”

    여인이 조잘조잘 화답할 동안 옆의 사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노인이 이에 개의치 않고 헛기침을 하며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였다.

    멀리서 피리소리 같은 것이 들리며 또 다른 녹색 빛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매 소저의 고운 얼굴이 그 소리에 묘하게 변했다가 즉시 평정을 되찾았다.

    소 노인 역시 잠시 그녀를 응시하니 옆에선 여인의 오라비가 안색을 굳혔다. 잠시 후, 놀랍게도 젊은 청년이 옥으로 만든 피리를 타고 날아왔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하얀 의복을 펄럭이는 것이 꽤나 근사해 보였다.

    백의 청년이 멈추자 피리 소리도 멎었다. 그가 매 소저를 보며 상당히 친밀하게 소리쳤다.

    “역시 매 소저가 이곳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부 선사께서도 오셨군요.”

    여인은 간신히 미소를 짓고는 있었으나 상대를 전혀 반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여인 옆에 있던 중년 사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누이가 당신의 반려가 되지 않겠다 말했거늘 어찌 매번 이리 귀찮게 구는 것입니까?  설마 결단기 사부를 믿고 이러는 것이오?”

    “소생 진심으로 귀 댁의 매 소저를 좋아할 뿐입니다. 매 소저가 다른 반려를 정하기 전에 제 마음을 보여 꼭 감동시키고 말 것입니다.”

    백의 사내가 홀린 듯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것이 푹 빠져있음에 분명했다. 그의 직접적인 언사에 여인은 얼굴이 붉어져 다시는 백의 사내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오라비만이 목석같은 얼굴을 흉악하게 구기며 그 자를 응시할 뿐이었다. 소 노인이 그들을 살피다가 돌연 화제를 돌렸다.

    “흠, 이럴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텐데 정말 보물이라도 나타난 것이라면 어서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다. 결단기 선배라도 나타나면 방법이 없어집니다.”

    그 말에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세 선사도 정신을 집중했다. 백의 사내가 섬을 보더니 안색이 달라졌다.

    “섬 위의 이상 현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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