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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03화 (60/2,000)

# 303

303화. 뇌둔술

몇 시진이 지난 후 화염 연못 속에서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찬란한 하얀 빛 줄기가 솟아올라 그대로 밀실의 천장을 뚫고 사라졌다.

곧 작은 섬 상공에 나타난 하얀 빛이 엄청난 속력으로 도처를 배회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얀 빛이 가시자 구급 요수 열풍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겉모습은 멀쩡한 것이 화염 연못이 그에게 전혀 해를 가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한 손에는 아직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거북 요수의 거대한 몸이 들려 있었다.

거북 요수는 몸을 보호해 줄 보물을 지니지 못했으니 전신이 그을리고 익어 머리카락과 수염마저 몽땅 사라져 있었다.

열풍수는 음산하게 눈을 빛내며 곳곳을 살피다가 곧 모종의 술법을 펼치며 손끝에서 하얀 빛을 내뿜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방향을 정한 그가 다시 한 번 하얀 빛 줄기로 변해 허공을 갈랐다.

이때 만 리 밖에서 핏빛 피풍의를 입은 한립은 식은땀을 쏟고 있었다. 방금 벽사신뢰로 감싸두었던 바람의 기운이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행히 빠른 대응으로 피풍의에 쏟아부었던 영력을 회수해 몸의 이상을 억누를 수 있었다.

결단 후기에 이르러 언제든 고보로 흡입되는 영력을 차단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립의 안색을 굳게 만든 것은 열풍수가 활개를 치며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금 피풍의에 엄청난 영력을 주입해 달아나는 속력을 높였다. 상대를 이렇게 자극해 놓았으니 잡히면 껍질이 벗겨져 타 죽든, 영혼을 뽑혀 말려 죽든 좋은 꼴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 그를 울적하게 한 것은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상대가 금제를 발동해 바람의 기운을 움직였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예상 밖의 일이라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두 세 시진마다 체내의 바람의 기운이 발작을 일으켰다. 항상 적시에 통제하기는 했으나 상대가 위치를 파악해 쫓아올 것이 두려워 번번이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람의 기운에 감응한 열풍수는 쉼 없이 그를 쫓았다. 이렇게 되니 한립과 열풍수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광활한 해수면을 날아다니며 쫓고 쫓아다니게 되었다.

한립은 두려우면서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열풍수의 추적을 피하려면 몸 안의 바람의 기운을 제거해야 했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봐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결단기 선사가 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는지 한립은 이제 바람의 기운을 제거하는 것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열풍수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만일 그의 위치를 즉각 알아차렸다면 아직까지 붙잡히지 않은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수천 리 밖에서 그를 쫓고 있는 열풍수 역시 머리가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한립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만년영액 속에 섞인 이물질을 찾아내 영력으로 감싸 놓기는 했으나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이물질이 발작을 했다. 그때마다 추격을 멈추고 발작을 잠재우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용히 앉아 요양을 한다면 이물질을 제거해 버릴 수 있으나 한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동하면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거북 요수는 벌써 몸을 회복했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 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

나날이 한립의 발작 주기가 길어졌다.

처음에는 매 시진 마다 벌어지던 일이 이제는 며칠에 한번 있을까 말까였고 위력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결국에는 마지막 발작이 있은 후 바람의 기운이 안정을 되찾았다.

열풍수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술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이야말로 멀리 사라질 절호의 기회였다.

한립은 거침없이 만년영액 한 방울을 마시고는 한 방향을 정해 날아갔다. 그와 수만리 떨어진 어느 무인도에는 열풍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동굴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추격해 그나마 얼마 없던 법력을 대부분 소진하자 몸 안의 이물질을 제어할 수 없게 된 탓이다.

요수는 한립처럼 만년영액을 복용해 법력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외딴 섬에 멈춰 철저히 후환을 제거한 후 추격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온갖 역경을 거쳐 제련해낸 풍뢰시 만은 반드시 회수해야 했다. 구급 열풍수가 뼈에 사무친 원한을 반드시 갚아주기로 맹세하며 두 눈을 감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 * *

한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한립 역시 어느 낯선 섬에 도착했다.

인근에 인간 선사나 고계 요수가 감지되지 않자 바로 섬으로 내려간 그는 간단히 동굴을 하나 만들어냈다. 동굴 입구에 흔적을 감춰주는 몇 가지 진법을 설치하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풍뢰시를 꺼내보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든 아담한 날개 한 쌍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풍희 본인도 오직 바람의 속성만을 지니고 있었으니 바람과 천둥의 속성을 모두 가져야 풍뢰시를 구동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벽사신뢰를 마음대로 불러일으키는 한립이 법보를 조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란 의미였다.

열풍수가 주구장창 설명했듯 그렇게 뛰어난 법보라면 하루라도 빨리 장악해 자신이 살아남는데 보탬이 되게 하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손에 든 은백색 날개의 표면에 은은히 불안정한 빛이 보였다.

아마 너무 일찍 제련을 마쳐 안정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상대가 경고했듯이 완전히 위력이 흩어질 정도는 아니나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약해질 것이 분명했다.

한립은 차분한 얼굴로 손가락에 상처를 내 피 한 방울을 날개에 떨어뜨렸다. 주인을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붉은 피가 날개에 스며들자 눈을 빛낸 한립이 공중으로 그것을 던졌다.

풍뢰시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멈췄다. 한립의 열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이며 미세한 뇌전이 분출돼 날개로 날아갔다. 천둥소리가 커지며 그의 손에서 뿜어 나오는 뇌전들도 조밀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금빛의 뇌전보호막이 형성되었고 그 안에는 날개 한 쌍이 담겨 있었다. 천둥소리 역시 점차 잦아 들었다.

그 안에서 풍뢰시가 조금씩 벽사신뢰의 뇌전을 흡수하는 것을 확인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후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한립은 벽사신뢰를 이용해 풍뢰시를 안정화 시켰고 은색이던 날개들에 은은하게 금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법보가 완전히 안정되자 뇌전을 회수한 그가 푸른 기운을 분출해 풍뢰시를 감싸 체내로 흡수했다. 이후 동굴을 떠나 다시 섬의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법보의 성능을 시험할 차례가 되었다.

허공에 선 한립이 길게 숨을 내쉬더니 체내의 풍뢰시에게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등 뒤로 영기가 전해지며 일장 길이의 날개가 생성되었다.

은백색 날개에 미세하게 금광이 번진 모습이었다. 한립이 가볍게 풍뢰시를 움직여 보았다.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호기심에 손을 뻗어 보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뿐 아무런 촉감도 전해지지 않았다. 미간을 좁히고 손에 힘을 주니 놀랍게도 날개를 뚫고 손이 들어가 버렸다.

“응?”

멍해진 그가 바로 몸 안을 살펴보았다.

역시 손바닥만 한 풍뢰시가 여전히 단전에 머물며 하얀 빛을 방출하고 있었다. 지금 등 뒤에서 부유하고 있는 법보는 영력으로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력을 주입하니 날개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오며 가볍게 날아올랐다. 허공을 몇 바퀴 돌아보더니 멈춰선 한립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속도가 평범한 것이 아무래도 뇌전을 이용해봐야 할 듯 했다. 한립은 바로 벽사신뢰를 움직여 두 줄기의 은은한 금색 뇌전을 양 날개로 보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날개에 은빛이 번지더니 한립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십여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뇌둔술(雷遁術).”

다시 한 번 날개를 가볍게 펄럭여 보니 또다시 천둥소리가 울리며 이, 삼십 장 밖에서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뇌전으로 변한 듯 백 여 장 밖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니 귀신이 따로 없었다.

“비행술중 최고라더니 속도가 다른 오행둔술에 비할 바가 아니군. 앞으로 더 제련을 하면 얼마나 놀라운 속도를 보여줄지 기대되는데… 구급 열풍수가 탐낼 만 해. 이미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속도를 지녔는데 거기다 풍뢰시까지 얻는다면 인간과 요족을 통틀어 그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없을 거야.”

그의 몸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날개 한 쌍이 사라졌다.

한립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 마음이 없었고 일단 심연을 벗어나 외성해로 간 다음 내성해로 돌아갈 방법을 강구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열풍수를 따돌렸지만 상대의 기이한 속도를 생각할 때 이곳에서 머문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었다.

내성해는 인간 선사들의 천하였으니 아무리 능력이 대단해도 감히 쳐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내성해로 돌아가 원영을 이루는데 성공만 한다면 열풍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진다.

다만 허천정의 뒤를 쫓는 원영기 노괴들은 이미 삼, 사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력을 다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단 후기에 이른 한립은 만호자 등을 만나지 않는 이상 극음 등 원영 초기의 노괴들에게선 달아날 자신이 있었다.

마음을 정하고 동굴로 돌아온 그는 이번에는 거북 요수와 독교의 저물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안에는 뜻밖에도 꽤 많은 요수의 요단과 희귀한 원료 등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는 검은 거북 등딱지와 백여 조각의 붉은 비늘이 있었는데 두 요수 선사들이 화형기에 이르면서 몸을 탈피하며 떨어뜨린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놀랍기도 했지만 정말 기뻤다. 두 가지 재료로 갑옷을 제련하면 만호자의 황린갑 이상의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한립은 동굴 밖 법기를 회수한 다음 묘음문 시장이 있던 해역으로 날아갔다. 묘음문이 전송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거의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억지를 부리든 사정을 하든 그 전송진을 이용해 내성해로 돌아가야만 했다.

묘음문 시장의 위치와 개최 일시는 알 수 없었지만 소식에 정통한 인간 선사를 만나 알아보면 알것이었다.

한립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때 겨우 살아난 거북 요수는 수천 장 해저 밑에서 독교가 살해당한 사정을 해역의 교룡족 족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족장의 수행은 화형기 중기로 풍희와 동일한 구급 요수 이화교(離火蛟)였다.

* * *

한립은 겨우 반 개월 만에 이전에 묘음문 시장이 열렸던 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의식을 퍼트려 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그는 사방을 살피며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묘음문 시장이 이 섬에서 열렸으니 아무리 장소를 옮긴다 해도 주변 해역일 것이 분명했고, 비교적 많은 인간 선사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강력한 의식으로 그들을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어느 섬에서 인간 선사의 흔적을 발견했다. 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한 무리였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려다보자 몇 명의 남녀 선사들이 해수면 근처에서 사 급 요수 두 마리를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그 중 익숙한 얼굴을 둘이나 찾아낸 한립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미소를 머금었다.

이후 환형결을 이용해 아무렇게나 용모를 변형한 그는 까만 얼굴의 중년인이 되어있었다. 그가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튕겨 쏘아 보낸 푸른 검기 두 줄기에 두 마리 요수가 머리가 뚫려 죽었다.

동시에 선사들도 놀라 분분히 고개를 들고 한립을 확인했다. 결단기 선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작은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서로 상의를 한 후 그들 중 비단 옷을 입은 장한이 한립을 향해 날아왔다.

금의 장한은 공손하기 그지없었으나 두 눈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완배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십니까?”

이곳으로 함께 전송되어 온 역 선사를 보던 한립의 눈이 가늘어졌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허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을 제외한 류 부인 등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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