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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02화 (59/2,000)
  • # 302

    302화. 교룡을 갉아먹다

    한립이 입을 벌려 방출한 푸른 기운이 푸른 거검에 흡수 되어 사라졌다. 푸른 기운을 품은 거검은 즉시 기세를 떨치며 열풍수를 감싼 하얀 빛을 향해 연달아 떨어져 내렸다.

    쿵! 쿵!

    두 번의 충돌음이 들렸지만 거검들이 하얀 빛과 만나 겨우 수 촌을 밀어내고는 밀려나 버렸다. 이 모습에 한립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풍희는 고통 속에서도 그를 비웃었다.

    그제야 한립이 그를 살피니 그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기는 하나 사지나 머리에는 멀쩡했다. 아무래도 약효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한립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다른 두 요수들을 돌아보았다. 팔급인 독교와 거북 요수의 몸은 여전히 팽창한 상태였지만 팔 다리와 얼굴은 이미 한결 작아져 있었다.

    몸 안의 영력이 미친 듯 폭발하던 것을 제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체지 않고 두 개의 거검이 나뉘어 두 요수를 향해 날아갔다. 일단 열풍수를 어찌 할 수 없으니 다른 두 요수들이라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이후 영수대를 풀어내자 무수히 많은 서금충들이 날아올라 그의 낮은 읊조림과 함께 하얀 빛을 뒤덮었다. 두 요수는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거검의 공격에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터텅!

    맹렬히 떨어진 두 거검에도 요수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열풍수야 몸을 보호하는 보물을 지니고 있다지만 다른 두 요수는 분명 맨 몸에 검을 맞았는데. 설마 팔급 요수의 신체는 이렇게 단단하다는 건가? ’

    그래도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두 요수들을 향해 팔뚝만한 굵기의 뇌전을 방출하게 했다.

    파치치칙!

    독교와 거북 요수는 벽사신뢰를 맞고는 고통스럽게 몸부림 쳤으나 여전히 멀쩡했고 한립을 향한 시선이 더욱 흉악해졌다. 그들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한립을 갈기갈기 찢어죽일 것이다.

    한립은 정말 모골이 송연해졌다. 한립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저하는 사이 놀랍게도 열풍수가 입을 열었다.

    “인간! 감히 겨우 결단기의 선사가 화형기의 요족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더냐?  조금만 기다리면 내 앞에서 제발 죽게 해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그 말에 한립은 오히려 냉정을 되찾았다.

    “흥, 과연 그럴까?”

    웽웽웽웽-

    그의 손짓을 따라 수천수만의 서금충들이 날갯짓을 하며 다른 두 요수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두 자루의 거검은 아직도 밀실 중앙에 떠있는 보호막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다.

    풍희가 한립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기겁해 소리쳤다.

    “멈춰라! 어리석게도 평생 교룡 일족의 추격을 받을 것이더냐! 풍뢰시는 아직 제련이 끝나지 않아 지금 꺼냈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게다가 풍뢰의 힘을 지니지 않고서야 조종을 할 수 없으니 가져가 무엇 하려 그러느냐!”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는 한립은 냉소했고 서금충과 거검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제련용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이 방어능력이 뛰어날 리 없었다.

    두 거검의 맹렬한 공격 하에 보호막이 위태로운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 되었다. 열풍수의 녹색 눈이 붉게 충열 되며 흥분했으나 체내의 이물질로 인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독교 쪽에서도 참혹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딱정벌레 속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오며 그것에 닿은 서금충들은 곧바로 노란 연기를 뿜으며 검은 액체로 녹아 내렸다. 붉은 빛이 상상을 초월하는 맹독으로 이뤄져 있었던 것이다.

    독교는 서금충에게 물어 뜯겨 몸의 비늘 갑옷이 벗겨지고 말았다. 그러나 요수의 피부가 벗겨지고 살점이 들어나자 무수히 많은 핏빛이 방출되어 빽빽하게 독교를 둘러싸고 있던 서금충 대부분을 녹여버렸다.

    이미 비늘이 벗겨져 대량의 청록색 선혈을 쏟아내고 있는 독교는 한립을 향한 원한이 뼈에 사무칠 정도였다. 일반적인 법보로는 상처도 입히기 힘든 서금충들이 독이 스며든 빛에 닿자마자 죽어나가다니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립의 얼굴에는 냉소가 짙어질 뿐이었다.

    어차피 그가 데리고 다니는 딱정벌레의 양이 이것이 전부일 리 없었다. 아무리 많은 서금충들을 희생해서라도 세 요수 중 죽일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한립의 고개가 거북 요수에게로 돌아갔다.

    사각사각.

    서금충들이 무언가를 갉아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날벌레 무리 속에서 은은히 요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주저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한립은 또 다른 영수대 몇 개를 공중으로 흩뿌렸다. 엄청난 수의 딱정벌레 떼를 본 독교가 몹시 놀라 얼굴빛이 달라지더니 절망하기 시작했다.

    하얀 보호막 속의 풍희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한립은 그들의 놀란 표정을 개의치 않고 즉시 엄청난 무리를 독교에게 날려보냈다. 그 결과 부상당한 독교의 몸에서 또 다시 핏빛이 분출되었음에도 녹아내린 서금충의 자리를 새로운 서금충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핏빛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잠시 후에는 사색이 된 독교의 얼굴과 함께 핏빛이 철저히 사라져 버렸다.

    웽웽웽웽.

    딱정벌레 떼가 주저 없이 하강해 독교를 뒤덮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벌레 무리가 점점 더 작은 원을 만들어나갔다.

    비늘 갑옷이 뚫린 독교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서금충에게 갉아 먹혀 절명하고 만 것이다.

    “……!”

    그 모습에 안색이 변했던 풍희가 곧 평정을 되찾고는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한립을 주시했다. 한립이 낮게 읊조리자 딱정벌레 떼가 날아올랐고 독교는 잔해만 남아 있었다.

    잔해 속에는 주먹만 한 핏빛 요단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요단은 한립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곧바로 밀실의 문으로 날아올랐다. 한립은 생각할 것도 없이 손가락을 튕겨 푸른 검의 기운을 쏘아 보냈다.

    공격을 당한 요단은 흐느적거리더니 그 안에서 일 촌 가량의 초소형 교룡이 남색 빛과 함께 등장했다. 바로 독교의 혼백이었다. 독교의 혼백은 자신의 행적을 들키자 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립은 또 한 번 영수대 중 하나를 들어 원숭이 형상의 제혼을 꺼냈다. 한립이 영수의 머리를 가볍게 치자 제혼의 코에서 어쩔 수 없이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공중을 선회했다.

    노란 빛은 순식간에 보호막 인근의 허공으로 향하더니 피처럼 붉은 초소형 교룡을 잡아냈다.

    교룡의 혼백이 잠자코 당할 리 없었다. 제혼의 코 쪽으로 빨려 들어오던 중 눈을 찌를 듯한 남색 빛을 뿜어내니 놀랍게도 한동안 움직임이 멈추고 말았다.

    화형기에 이른 영수답게 혼백의 힘도 육, 칠급 요수에 달했다. 물론 제혼이 아직 어려 명성에 비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립도 정말 제혼의 뱃속에 교룡의 혼백을 넣어줄 생각은 아니었다. 팔급 요수의 혼백은 수도계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인데 어찌 이리 낭비를 하겠는가?

    한립은 제혼의 노란빛 속에서 버티고 있는 교룡의 혼백에게 다가가 푸른빛이 도는 손으로 그것을 잡아챘다. 겨우 일 촌 가량의 초소형 교룡이 그의 손가락 사이를 벗어나려고 요동쳤지만 미리 준비한 옥병이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푸른빛에 싸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뚜껑을 굳게 닫아 저물대 안에 병을 집어넣은 한립이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어 지체 할 새 없이 몸을 돌린 그가 이번에는 거북 요수에게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밀실 중앙에서 거검들의 공격을 받던 보호막이 붕괴되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 한립이 한 손을 들어 푸른빛을 뿜어내자 무방비하게 노출된 풍뢰시가 빛에 싸여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립은 살펴볼 생각도 없이 그것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열풍수의 얼굴이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약이 바싹 올라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거북 요수를 감싸고 있던 서금충들이 한립의 명에 따라 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요수의 피부는 만신창이였고 살점도 뜯겨 나가 있었지만 전신에 흙 속성 광채가 맴돌며 피와 살이 꿈틀거렸다.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상처의 대부분이 원상복구 되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몸을 가졌구나!’

    깜짝 놀라 멍해졌던 한립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계 요수라 하여도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하고 피와 살이 돋아나는 능력을 보유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계 요수에게서는 도리어 찾아보기 힘든 능력이라 수많은 육, 칠급 요수를 사냥하면서도 한 번도 그런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팔급인 거북 요수의 상처가 자연적으로 재생되고 있었으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단칼에 목을 치거나 금단을 부수지 않고는 상대를 죽이기 어려워진다. 최소한 재생 능력이 한계에 달하기 전까지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청죽봉운검을 제련한 지 수십 년이 흘렀으나 진정으로 법보를 몸 안에서 배양한 시간이 극히 짧았다.

    아무리 삼대 신목 중 하나라는 천뢰죽을 이용해 제련하고 희귀한 연정을 배합해 동급 수사에게는 치명적이더라도 팔급 요수 두 마리의 몸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두 요수에게 비검이 통하지 않자 처음에는 크게 놀랐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고계 요수들은 십중팔구 전문적으로 몸을 수련했고 어떤 종들은 태생적으로 단단한 몸을 지녀 동급 인간 선사의 법보에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게다가 요수의 수명은 보통 인간 선사의 몇 배 혹은 몇 십 배에 달했다. 그러니 대부분 고계 요수들은 몸을 제련할 시간이 충분해 인간 선사보다 놀라운 경지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독교는 비늘 갑옷을 가진 종족 중 하나로 팔급이지만 보통의 구급 요수에 달하는 방어력을 지녔고 눈앞의 거북 요수는 등딱지를 지녔으니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종이었다.

    한립이 그들에 비해 단시간 안에 배양한 비검이 두 요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 기이한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아쉽게 여긴 일이 없었다.

    원영기에 이르는 데만 성공하면 백여 년을 투자해 전문적으로 청죽봉운검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팔급 요수의 방어를 꿰뚫는 것은 손쉬운 일이 될 것이다.

    여러 상황을 헤아려 보던 한립이 회복중인 거북 요수와 하얀 보호막 안의 풍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위험을 무릅쓰고 건람빙염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외하면 단시간에 두 요수를 멸할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건람빙염을 사용한다 해도 엄청난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는 하얀 보호막을 없애고 풍희를 처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건람빙염으로도 상대를 멸할 수 없다면 엄청난 무기를 열풍수에게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상대의 실력이 크게 진보할 만한 일을 하느니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원영에 성공한 이후 건람빙염을 제련해 내면 앞으로 또 하나의 치명적 무기를 얻는 것이다.

    한립은 오래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거북 요수야 아직 몸이 불안정해 보였지만 열풍수의 배는 이미 많이 가라앉았고 요수의 얼굴에는 흉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풍희는 약효에서 벗어나 다시 법력을 운용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악문 한립은 빠르게 거북 요수의 저물대를 챙기고 아직도 꼼짝 못하는 그를 발로 차 화염 연못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독교의 저물대와 요단까지 손에 넣고는 다시 몸을 빛내며 열풍수에게 다가가 엄청난 기세로 불타오르는 화염 연못 속으로 차 버렸다.

    한립은 두 요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즉시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해도 그가 무인도를 골라 숨어들면 찾아낼 수 없다 여긴 것이다.

    쿵!

    석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한립이 종적을 감추자 법보를 제련하던 밀실이 즉시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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