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301화. 기습
이틀 후, 보호막 안의 풍뢰의 기운이 점차 커지자 풍희는 한립에게는 나무 속성 영력의 양을 늘리라 주문했다.
7일이 지나자 보호막 안의 은색 뇌전과 하얀 광풍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세 선사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계속해서 술법을 펼쳐 보호막으로 날렸고 열풍수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한립은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풍희의 지시에 따라 나무 속성의 영력을 주입하면서 무언가 해보려다 그만두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판단한 것이다.
다시 1개월 후, 세 요수 선사들은 초조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비록 손에서는 아직 법력이 분출되고 있었으나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보호막 속의 뇌전과 광풍은 흉악한 기세가 여전했으나 이제 기이한 공존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바람 속에서 은빛이 번쩍 이던가 뇌전 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세 선사들은 기대감에 눈을 빛냈다.
이튿날 법력이 가장 약한 거북 요수가 먼저 병 안의 만년영액을 입 안에 털어 넣고 법력을 회복했다. 그 후 며칠간 독교와 풍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립은 서늘하게 그것을 지켜보며 저물대 속을 만지작거렸다.
법보가 완성되기 전에 다시 세 요수들의 법력이 떨어진다면 그가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원래 이 계책은 한립이 최후의 수단으로 준비한 것이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 * *
다시 스무 날 정도가 지나가자 보호막이 안정을 되찾았고 광풍과 뇌전은 자취를 감추었다.
뇌붕의 뼈를 위주로 피와 살을 만들어 풍뢰의 기운을 지닌 날개가 만들어진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미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제 막 바람과 천둥의 기운을 억눌렀을 뿐이라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풍희 등은 이미 법력의 대부분을 소진했음에도 성공을 눈앞에 두고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풍희는 울적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세 방울의 만년 영액을 준비했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법력이 모자를 일은 없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풍뢰시를 제련하는데 필요한 영력이 그의 예상을 초월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최후까지 버티려면 아무래도 원기가 크게 상할 듯 했다. 이제 와서 법보 제련에 실패한다면 정말 낭패였으니 말이다.
구급 요수가 이런 속앓이를 하는데 돌연 밀실 안에서 미세한 영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아주 정순하기 그지없는 영기였다.
풍희의 안색이 변해 서늘한 눈으로 사방을 살피다가 한립의 몸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립 역시 안색이 변해 그를 향해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요수가 서늘히 일갈했다.
“내놓아 보시지요!”
“선배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그의 얼굴은 곧바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한 손을 미미하게 소매 속으로 감추는 것이 풍희의 눈에 들어왔다.
요수의 눈에서 한기가 스쳤다. 돌연 그의 손끝에서 날카로운 기세로 하얀 빛이 번뜩였다.
“크악!”
한립은 그것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고 곧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팔다리에서는 경련이 일었다. 얼굴은 까맣다 못해 보랏빛이 도는 것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중인 것 같았다.
“흥! 좋은 말로 해서 듣지 않겠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풍희가 악랄하게 그 모습을 보다가 한립의 소매에서 떨어져 내린 작은 병을 발견했다. 그가 손을 휘젓자 곧 작은 병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열풍수가 한립을 보며 물었다.
“바람의 기운이 발작을 하니 어떻습니까? 방금 전까지는 영력이 거의 남지 않아있었는데 지금은 또 영력이 넘쳐흐르다니 이 병 속에 영약이라도 들어있나 보군요. 우리가 법력을 잃은 동안 달아나기라도 할 작정이었습니까?”
요수가 술법을 멈추었는지 한립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다가 풍희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마치 속내를 들키고 크게 당황한 사람 같았다.
“어디 어떤 영약이길래 그런 효과를 보았는지 말해 보시지요. 만년영액을 제외하고도 그런 물건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독교 역시 호기심을 보였다.
“저 역시 그런 영약은 처음 들어봅니다만 저희가 복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와 거북 요수는 각종 술법을 펼치며 풍뢰의 기운을 공고히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법력을 소모해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풍희가 그의 제안에 잠시 주저하더니 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맑은 영기가 코를 찔렀다!
요수가 처음에는 병 안의 물질을 살피고 다음으로 냄새를 맡아 본 후 표정이 이상해졌다. 거북 요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그래서 어떤 물건입니까?”
풍희가 한립을 보더니 담담히 물었다.
“직접 이야기해 주시지요!”
“……만년영액 한 방울을 희석시킨 용액입니다.”
거북 요수가 정신이 번쩍 든다는 듯 반문했다.
“만년영액이라니!”
그는 셋 중 영력이 가장 부족했기에 끝까지 버티지 못할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풍희가 자세히 병을 살피며 의혹을 드러냈다.
“흥, 분명 다른 것을 섞었군요. 색깔이 옅은 녹색을 띄는데다 나무 속성 영력이 느껴집니다.”
“연력이 오래된 영초들을 섞었습니다. 제가 나무 속성 공법을 수련하니 당연히 관련 속성의 영력을 선호할 밖에요.”
풍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데 거북 요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래도 풍희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기로 할까봐 조급한 듯했다.
“풍 형, 제가 먼저 시음을 해볼 테니 이리 줘 보시지요. 지금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이렇게 나가다가는 원기가 크게 상해 수행이 퇴보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무래도 영력을 보충해야겠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생각에 잠겨 있던 독교 역시 입을 열었다.
“이리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병 안의 정순한 영기를 느낄 수 있으니 만년영액이 분명한 듯 합니다. 또 영액에 무슨 짓을 해놓았다 한들 우리가 독을 겁낼 것이 무엇입니까? 게다가 제가 체내에 천하의 수많은 독을 품은 독교인데 독이 있다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도 이대로 원기가 상하는 것이 꺼려지던 차였다.
“허허! 무 선사가 천하만독에 능통한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럼 저도 영력이 따라주지 않던 참이니 모두 셋으로 나눠 복용하도록 하지요. 이렇게 되면 법보 제련에 성공한 후에도 원기가 크게 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 빙그레 웃은 풍희가 영액의 삼분의 일을 먼저 입안으로 털어 넣고는 독교에게 건네주었다.
구급 요수인 그가 독약 같은 것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었고 스스로도 액체에서 풍기는 진한 영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독교 역시 병에 남은 반절을 마시고는 나머지를 거북 요수에게 넘겼다.
거북 요수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병을 완전히 기울여 입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법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자 모두가 안도했다.
그때 독교의 눈에 살기가 감돌며 풍희에게 전음으로 허락을 구했다.
“법보 제련도 이제 막바지에 이렀으니 저 인간 선사는 쓸모없어진 것 아닙니까? 제가 처리하게 해주시지요. 인간을 옆에 두고 있자니 눈에 거슬려 더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의 시선이 한립에게 옮겨지며 서늘한 기운을 숨김없이 발산했다. 그러나 풍희가 한립을 살피더니 반대했다.
“일단 조금만 더 살려 두시지요. 앞으로는 나무 속성 영기가 꼭 필요한 일은 없으나 아무래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풍뢰시가 완성된 직후에 처리하시지요.”
“그러지요. 겨우 며칠이니 참아보겠습니다.”
한립은 그들이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만 보았으니 대화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독교가 자신을 바라본 눈빛만 보아도 대충 예상이 가능했다.
한립은 다시 두 눈을 감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세 요수가 그것을 확인하고 잠시 멍해 졌으나 곧바로 풍뢰시에 영력을 주입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밀실 안에서 가장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립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 안의 청죽봉운검을 발동해 미세한 금빛 뇌전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터뜨리는 대신 늙은 요괴가 심어 놓은 기운을 휘감게 만들었다.
바람 속성 영력의 기운이 한립의 수행으로 제련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당장 벽사신뢰로 없앨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잠시 발작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건람빙주를 몇 달이나 몸에 품어보았던 한립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이때 반쯤 영력을 되찾고 여유 있게 작업을 하던 거북 요수가 독교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다 머리를 바닥에 박더니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을 크게 벌렸다.
곧이어 더욱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요수의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머리와 사지 역시 앞다퉈 울룩불룩해지더니 피부를 찢고 안에서 당장이라도 악귀가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을 쳤다.
이를 지켜보던 독교와 풍희가 안색이 급변했다. 모두 한립이 넘긴 액체를 떠올린 것이다.
독교가 분노에 차서 당장 핏빛을 흩날리며 한립을 향해 손을 쓰려했다.
쿵-
그러나 거의 동시에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움직이기는커녕 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풍희가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격노했다
“이 죽일 놈이!”
말소리 보다도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 그가 한립의 뒤에 나타나 손을 뻗었다.
쉑-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한 손이 맹렬히 그를 갈긴 것이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한립이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몸을 한쪽으로 비틀었을 뿐이다.
탕!
맑은 울림이 들려왔다. 한립은 엄청난 힘으로 밀려나가기라도 한 듯 열댓 장을 날아오르고서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구급 요수의 일격에 당한 것 치고는 너무 멀쩡했다. 풍희 역시 흠칫 놀라 서둘러 그가 뜯어낸 한립의 등 쪽을 주시했다. 방금 공격에 당해 너덜너덜해진 옷 안으로 은백색 비늘이 드러나 있었다. 만호자의 황린갑이 구급 요수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갑옷?”
약간 의외이긴 했지만 풍희는 냉소를 하며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것을 보면 최상급 법보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다시 한 번 막아낼 수는 없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이 틈을 빌어 안정을 되찾은 한립이 전신의 푸른 기운을 끌어올려 눈부신 금빛 전뢰들이 춤을 추게 만들었다. 청원검결의 방패를 펼친 것이다.
동시에 두 손을 들어 스무 개가 넘는 푸른 비검들을 토해내 그 안에 또 한 겹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대비를 마친 순간 풍희의 크고 마른 몸이 한립 앞에 당도했다.
요수의 눈에 광폭한 기운이 스치며 벌어진 입에서 하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색이 나빠진 한립이 상황이 좋지 못함을 직감했다. 가슴이 서늘해진 순간 풍희가 입을 벌리다 말고 비틀거리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배가 울룩불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행이 다른 이들에 비해 높아 약효가 늦게 발현된 것이다. 쾌재를 부른 한립이 즉시 손을 뻗어 스무 개가 넘는 청죽봉운검을 벌떼처럼 쏘아 보냈다.
요수의 온 몸에 비검이 꽂칠것이라는 생각에 미소를 짓던 한립이 그대로 굳어갔다.
열풍수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으나 온 몸에서 하얀 빛을 품어내 비검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게다가 고개를 들어 한립을 보는 눈빛이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분명히 몸을 보호할 만한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 법력을 조금이라도 운용할 수 있다면 방어가 아니라 당장 자신을 죽였어야 옳았다.
한립은 즉시 수결을 맺어 24개의 비검을 공중으로 불러 모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무리의 빛이 폭발하더니 수 장에 이르는 푸른 거검 두 자루가 한기를 뿜어내며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