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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94화 (51/2,000)
  • # 294

    294화. 검의 위력

    소개를 기다리는데 뜻밖에도 중년 선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구든 알아보는 이에게 넘길 것이니 인연이 없는 이는 탐하지 마시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다른 선사들은 할 말을 잃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다만 한립과 운천소만이 두 물건을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뼈 조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동전 조각은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 위로 괴이한 모양의 고대 문자가 적혀 있었는데 무명구결의 공법이 담겨 있던 책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였다.

    ‘둘이 관계가 있는 것인가? ’

    그 고대 서책은 줄곧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운천소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손 형께서 놀랍게도 팔급 요수의 뼈를 내놓으시다니 제가 다 마음이 동합니다.”

    그의 말에 소란이 일었다. 팔급 요수의 뼈라면 지금까지 나온 물건 중 가장 진귀한 것일 터였다. 강력한 위력의 팔급 요수의 뼈라면 결단기 선사에게는 구하기 힘든 보물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다른 의미로 흥분했다. 상대가 팔급 요수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여긴 것이다.

    손 선사가 운천소가 뼈의 정체를 알아맞추는 것을 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 이제 교환회는 정말 뜨겁게 달아올라 모두 격동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곁에 있는 여인들마저 탁자 위의 물건에 홀려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한립이 고개를 숙여 품 안의 문사월을 보니 역시 선망 어린 눈빛으로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물은 남녀구분 없이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을 뿜어내는 것이었다. 이제 뚱보 노인이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이 원하는 교환 물품을 제시했다.

    “천령자는 500년 이상 된 영초 몇 뿌리, 요단은 칠급 요수의 힘줄과 교환하고자 합니다. 물론 충분한 영석을 제시하신다면 그 역시 거래하겠습니다. 또한…….”

    그는 탁자 위에 진귀한 물품이 늘어나자 이전의 거만함이 한결 사라진 모습이었다.

    뚱보 노인은 요수의 힘줄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립 쪽을 훑었다. 마침 그의 물건 중에 조건에 부합하는 요수의 힘줄이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육급 요수의 요단이 부족할 리 없는 한립은 전혀 거래 의사를 표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회백색 머리를 늘어뜨린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육급 요단을 원하지만 거래할 요수의 힘줄은 없습니다. 얼마만큼의 영석이면 교환하시겠습니까?”

    뚱보 노인은 영석으로 요단을 바꾸는 것은 그리 원하지 않는지 가격을 올려 부르려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단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선사께서 원하신다면 영석 15,000개에 가져가시지요.”

    그때 백발의 노부인이 나섰다.

    “그 가격에 제가 거래하지요.”

    이어 저물대 하나가 뚱보 노인 쪽으로 떨어졌다. 조금 의외인 듯 했으나 저물대 안을 살핀 뚱보 노인이 만족스런 표정을 보였다.

    “청 부인이 역시 통이 크십니다. 우리 같은 가난한 선사들과는 격이 달라요.”

    뚱보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노부인에게 요단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청 부인은 콧방귀를 뀌며 요단만 챙기고 말을 섞지 않았다. 뚱보 노인의 물건은 대부분이 거래가 완료되었고 남은 재료들은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붉은 두건을 쓴 괴인의 차례가 오자 서로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괴인의 조건이 상당히 관대해서 누구든 고가의 물품이나 많은 영석을 내놓으면 알을 건네겠다 말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붉은 옷을 입은 선사가 진귀한 단약 여러 병을 내놓고 반려인의 알을 차지했다. 다시 대여섯 명의 차례가 지나 한립이 조건을 제시할 때였다.

    눈앞의 재료 더미를 보며 한립이 잠시 말이 없자 다른 이들의 눈에는 더욱 열망이 어렸다. 처음에 요수의 힘줄을 원했던 뚱보 노인 역시 그러했다.

    한립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문사월을 잠시 떨어뜨려두고 몸을 일으킨 그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물건은 필요 없고 정보를 원할 뿐입니다. 누구든 제가 원하는 정보를 지닌 분과 거래하겠습니다.”

    “정보라면?”

    의외의 조건이기는 했으나 모두 평범한 이들은 아니었기에 호기심을 품고 한립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운천소의 눈에서 역시 의혹의 빛이 스쳤다.

    “팔급 요수의 서식지에 대해 알려주시는 분께 모든 재료를 보답으로 드리겠습니다.”

    선사들이 한립의 말에 놀라 안색이 달라졌다. 뚱보 노인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농담을 하시는 게요 아니면 팔급 요수를 사냥이라도 할 참인 게요?”

    “당연히 사냥을 할 수야 없지요. 다른 이유 때문에 서식지를 알고자 하나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기 곤란하군요.”

    동시에 그의 시선이 선사들의 얼굴을 훑었는데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과 놀란 얼굴을 확인할수록 실망만 커졌다.

    마지막에 까만 얼굴의 손 선사에게 한립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는 한립의 표정을 보더니 무언가 깨닫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팔급 요수의 소식을 알고 있을 거라 여기신다면 려 선사가 착각하신 겁니다.”

    한립은 실망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깊이 탄식했다. 그때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정말 의외의 인물이 입을 연 것이다.

    “제가 팔급 요수의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만 재료가 아니라 다른 조건으로 거래하고 싶습니다.”

    한립 조차 멍하니 그녀를 돌아보았다.

    “팔급 요수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방금 이야기를 한 사람은 놀랍게도 그가 품에 안고 있던 문사월이었다. 문자월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예, 신첩 팔급 요수가 서식하는 위치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다.”

    범 부인이 놀라서 서늘히 호통을 쳤다.

    “사월아 그게 무슨 헛소리더냐. 네가 어찌 팔급 요수의 정보를 알아. 함부로 거짓을 고하지 말거라.”

    한립도 의심이 생기는 찰나 여인이 그에게 매달려 간절히 소리쳤다.

    “범 사백님, 제가 정말 아는 바가 있습니다. 려 선배님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니 믿어주십시오!”

    “네가 감히…….”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여인의 말의 진위는 제가 직접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범 부인이 눈을 부릅뜨며 무어라 하려는데 한립이 말을 끊었다. 운천소 역시 서늘한 눈빛으로 침묵하다가 돌연 미소를 지으며 찬성했다.

    “기왕 문 사질이 저렇게 말하니 려 선사께서 직접 물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범 부인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수락했다.

    “그러시지요.”

    한립이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으나 그다지 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운천소가 슬쩍 음침한 표정을 보였으나 순식간에 원래의 미소를 회복했다.

    이때 한립은 문사월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보며 질문을 시작하고 있었다.

    “방금 팔급 요수의 서식지를 안다고 했더냐.”

    그의 음성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어 여인을 불안하게 했으나 곧 마음을 굳힌 문사월이 결연하게 답했다.

    “제가 외성해에 나가 있을 때 우연히 어떤 지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물이 숨겨진 지도라 생각하고 몰래 그곳을 찾아갔었지요. 그 결과 새끼 열풍수(裂風獸)를 발견했는데 다행이 이, 삼 급의 수준이라 들키지 않고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아시겠지만 열풍수는 팔급 이상이 되어야지만 후대를 생산할 수 있고 일단 새끼를 낳으면 오급 이상이 되기 전에는 곁을 지킵니다. 그곳에 분명 팔급의 열풍수가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선배님께서 제 조건을 수락하신다면 제가 그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문사월이 차분히 팔급 요수에 대한 정보를 설명했다. 한립의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눈빛이 미미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여인의 말대로라면 성년이 된 열풍수가 존재했고 그 옆에는 반요초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응시하던 한립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 어떤 조건이면 정보를 넘기겠느냐?”

    문사월이 조금 얼굴을 붉히더니 망설임 없이 말을 내뱉었다.

    “소녀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첩으로 삼아 주십시오.”

    “음?”

    놀라운 조건이었다. 범 부인 역시 그 말을 듣고는 분노해 소리쳤다.

    “그 무슨 망발이더냐?”

    다른 선사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좋은 구경거리를 만났다는 듯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쪽에서 듣고 있던 운천소 역시 얼굴이 가라앉았다. 운천소가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리고는 서늘하게 말했다.

    “네가 방금 려 선사께 어떤 조건을 고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였으니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한립을 붙잡은 손이 덜덜 떨렸지만 차분한 얼굴의 한립을 보고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저는…… 려 선배님의 첩이 되어 묘음문을 나가겠습니다.”

    문사월은 간신히 목소리를 내기는 했으나 감히 운천소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푸학.

    운천소의 두 손에서 회색 불꽃이 나타나더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이한 회색빛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것이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백골음화(白骨陰火)!”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웃으며 상황을 즐기던 이들도 표정을 굳혔다.

    운천소가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서늘하게 명했다.

    “려 선사, 아무래도 계집이 수련을 하다 머리가 상한 모양입니다. 방금 이야기는 못들은 것으로 해주시지요. 여봐라! 당장 문사월을 데려다 금제 속에 가두고 반 개월간 면벽 수련을 하게 하거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축기 후기 사내 두 명이 들어와 한립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문사월이 애절한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잠깐!”

    운천소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범 부인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어찌 려 선사께서 본 문의 제자가 마음에 드시기라도 한 것입니까?”

    “그럴지도요. 다만 요수의 정보가 필요한 것이니 일단 조건을 듣고 결정 하시지요.”

    운천소가 생각이 많아지더니 잠시 후 회색 화염을 꺼트렸다.

    “너희는 일단 나가 있거라.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일단 한립의 체면을 살려주기로 한 것이다. 상대는 결단기 선사였고 이후 결단기 선사들의 역량을 빌려 큰일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한 명이라도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문 선사가 스스로 제 첩이 되기를 원하니 사정을 묻지도 않고 이리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제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차라리 이 재료들로 그녀의 자유를 사려하는데 운 형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거침없이 재료들을 밀어낸 한립이 묘한 표정으로 운 선사를 응시했다. 운천소가 의혹을 담아 냉랭히 반문했다.

    “이 재료들로 교환을 원하신단 말입니까?”

    눈앞의 재료들은 모두 육, 칠급 요수의 것으로 적어도 수만 영석은 할 것이었다. 그런 재료를 겨우 축기기 계집을 위해 쓰겠다니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지만 믿기지 않았다.

    ‘아니야, 팔급 요수에 대한 정보가 중요한 것일 터.’

    이번 기회를 잡아 상대를 크게 털어 먹고 싶은 생각도 치솟았다. 여러 생각이 오가다 운천소가 결정을 내리고 막 입을 떼려는데 곁에 있던 범 부인이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그 말을 들은 운천소의 안색이 급변해 다시 주저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절의 의사였다.

    “려 선사께서 아무리 많은 재료를 내놓으셔도 그 여인은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아무나 본 문 제자가 마음에 든다고 데리고 나가면 묘음문의 체면은 어찌 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오히려 다른 선사들이 의아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저렇게 많은 재료를 가지고 겨우 축기기 선사와 교환을 하겠다는데 거절을 하다니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한립 역시 여인을 이대로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 한립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묘음문?”

    “이 비밀 시장을 묘음문에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셨나 봅니다?  제가 바로 묘음문 장로로 범 장문이 본문을 관리하는 것을 돕고 있지요.”

    운천소가 은은히 세력을 들먹이며 위협을 했다.

    ‘겨우 결단 초기 선사이고 이곳이 근거지도 아니니 이 정도면 물러나겠지. 다만 저 재료들이 너무 아깝구나!’

    그는 아까운 마음이 가득할 뿐 전혀 한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때 한립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동시에 오른 손을 들어 올리자 빛이 터져 나오며 눈앞이 환해졌다. 운천소가 대경실색해 엄청난 회색 화염으로 몸을 감쌌다. 하지만 하얀 빛은 거침없이 화염을 공격하더니 돌연 열두 자루의 소검으로 변해 맹렬히 찔러 들어왔다.

    “악!”

    운천소가 혼비백산해 입에서 법보를 내뿜으려 할 때는 이미 회색 화염이 사라지고 그의 몸에 열두 개의 구멍이 뚫린 후였다.

    뒤늦게 나타난 회색 작살 역시 그의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다른 이들은 눈이 휘둥그렇게 변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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