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289화. 초대받지 못한 손님
밀실에서 전음까지 써서 내용을 전달하는 극음을 보며 제 도사가 의아해 하다가 놀라 소리쳤다.
“그게 정말입니까? 드디어 그 물건이 나타났다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원영기 선사들이 모일 일이나 있겠습니까?”
도사가 기뻐하며 슬쩍 서운한 기색을 비추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오 형도 너무하십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그 보물이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시다니요. 일찍 이야기해 주셨다면 더 많은 인원과 물자를 들여 벌써 녀석을 찾아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말은 제대로 하셔야지요. 제가 오랜 시간 비밀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다른 쪽에서도 이 일을 누설해 이곳은 벌써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이들도 눈치 채기 시작했을 테니 보물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허허!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답니까? 그럼 저는 먼저 가서 제자들을 더 풀겠습니다. 누구 보다 우리 쪽에서 먼저 그 놈을 잡아야지요.”
제 도사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대단한 소식에 조금 흥분한 기색이었다. 극음은 만류하지 않고 직접 대문까지 상대를 배웅했다.
다시 의자로 돌아온 그의 얼굴에 냉소가 맺혔다. 보물이라는 말에 상대는 자신보다 더욱 조급하게 불타올랐다. 허천정에 관한 정보를 흘린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한립 이 놈은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데도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벽운문 선사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기연도에 오는 척 다른 요수섬으로 달아난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시간 싸움이었으니 벽운문의 세력을 빌려 움직일 수밖에는 없었다. 극음은 이해득실을 따지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 * *
어느 해역에 청삼을 걸친 청년이 서늘한 시선으로 저계 선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대량의 금은색 곤충 무리가 요동쳤다.
저계 선사 중 중년인이 놀라 소리쳤다.
“충마!”
그 말에 청년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을 까딱했고 곤충 무리가 구름처럼 몰려 들어 저계 선사들을 덮쳤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법기 등을 이용해 막아보려 했지만 순식간에 날벌레에게 감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청년이 남겨진 저물대를 하나씩 수거하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 수행으로 발악을 하면 다냐? 멍청한 놈들.”
이어 그가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주더니 푸른빛으로 변해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 후 공중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며 새하얀 얼굴의 결단 초기 선사가 나타났다.
“…….”
어두운 얼굴로 청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그가 이를 악물고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 * *
반 개월 후 한립은 겨우 거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 년간 비워둔 거처였으나 모든 것이 그대로여서 그를 기쁘게 했다. 한립은 며칠 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그간 모아온 각종 진귀한 재료와 요단을 분류하며 단약을 제련할 준비에 들어갔다.
최근 몇 년간 대량의 단약을 제련하며 제단술에 어떤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 고비를 넘기면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립은 바로 육, 칠급 요단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오급 요단을 꺼내 한쪽에 쌓아두었다. 그의 자질은 평범했으나 그의 수준은 단약 제련 대가가 되기까지 머지않았다.
누가 그처럼 사치스럽게 재료를 소모해가며 수련을 할 수 있겠는가? 단약을 제련하는 일은 경험과 숙련도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일단 오급 요단을 제련하며 기술을 쌓고 어떻게 하면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연구해볼 계획이었다.
한립이 단약용 화로 솥을 보며 손을 휘젓자 오급 요단이 날아올랐고 그 위로 뚜껑이 덮였다.
단약 제련실의 대문은 그렇게 3년 간 열리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립이 담담히 그곳을 걸어 나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요단이 진귀한 단약으로 변한 후였다.
처음 2간은 오직 오급 요수의 요단을 이용해 단약을 제련하는데 집중했다. 그에게는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않겠으나 축기기 선사들은 오매불망할 단약들이었다.
이를 통해 그의 응용 능력이 한층 높아졌다. 어쨌든 정말 단약 제련의 대가라 해도 이렇게 많은 요단을 이용해 자유롭게 연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귀한 요단을 갖고 수많은 단약을 제련한 끝에 그의 기술은 대가보다 더 높아져 있었다.
그 결과 이후 육, 칠급 요단을 이용해 단약을 제련할 때도 성공률이 대폭 상승해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귀한 재료를 낭비할 뻔 했다. 단약 제련을 마친 후 한립은 1개월을 쉬었다.
그동안은 서금충을 중점으로 돌봤는데 삼색으로 진화한 신 서금충과 원래의 서금충들을 따로 기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관찰 결과 안 좋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초를 섭취 중인 삼색 서금충이 난폭해 지거나 흥분해 날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금충의 수량이 너무 많아서 소량의 예상초로는 부족해서 그런 거라 여겼다. 그래서 따로 수백 마리만을 모아 변화를 관찰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어떠한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삼색 서금충은 진화를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딱정벌레들을 이용할 때마다 발생하는 손실을 메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제 꼭두각시들을 시켜 아직 진화하지 않은 금은색 서금충에게만 예상초를 먹이기 시작했다. 이미 폭력적으로 변한 금은색 서금충은 다음 번식의 때가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서금충의 일을 처리한 한립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폐관실로 들어갔다. 준비된 단약의 도움을 받아 청원검결 팔성을 익히고 결단 중기에 이르기 위함이었다.
가부좌를 하고 밀실에 앉은 한립은 약병에서 붉은 단약을 꺼내 삼키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몸에서 미세하게 약효가 발현되기 시작하더니 뇌리에 청원검결 팔성의 구결이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단약을 복용하고 약성을 영력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미건조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공법을 대성해 힘을 키워야했던 한립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가 수련하는 동안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 16년이나 지나 있었다. 한립은 드디어 결단 중기에 이르렀고 청원검결 역시 팔성을 익히는데 성공했다.
고대하던 순간이었지만 바로 출관을 하고자 하는 충동은 없었다. 아직 단약의 대부분이 남아있었으니 모두 쓰지 않고는 수련을 그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결단 중기에 이른 그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로 공법 구성을 익히기 시작했다.
봄과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한 해 한 해가 물처럼 흘러갔다.
폐관실의 대문은 시종일관 닫혀 있었고 동굴 안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갔다. 마치 옛 무덤이나 고대 유적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 * *
짙은 안개가 낀 어느 바닷가에 바닷새 무리가 저공비행을 하며 지나갔다. 아침 해가 떠오른 지 얼마 안 된 푸른 바다에 새들의 지저귐이 더해지니 더없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잠시 후 하늘 저편에서 여러 빛줄기가 질풍처럼 날아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여인과 두 사내였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속력을 내고 있었는데 중년인은 축기 초기였고 나머지는 연기기 선사들이었다.
다급히 달아나면서도 쉼 없이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그들은 해무 근처까지 당도했다.
황의 소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년인에게 소리쳤다.
“손 사숙님! 앞쪽에 있는 해무 속에서 잠시만 쉬어가요. 저것들에게 당하기도 전에 다들 지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소녀는 통통한 얼굴에 검은 눈을 지녀 상당히 귀여웠다. 하지만 지금은 창백한 얼굴에 땀을 비오듯 흘리며 법력의 고갈을 호소하고 있었다.
중년인이 잠시 주춤하며 다른 세 명을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꾸나. 그래도 법력이 조금 회복되면 바로 떠나야 한다. 저 녀석들과 일단 거리는 벌렸지만 죽기 살기로 쫓아오는 것으로 보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게야. 만일 따라 잡힌다면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게다.”
동시에 어린 소년 소녀들이 희색을 드러냈다.
그들의 옅은 수행으로는 여기까지 쉬지 않고 날아 온 것도 무리였다. 위험천만한 상황에 휴식이 가당치 않다는 것은 알았으나 당장 죽을 것 같으니 다른 생각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방향을 틀어 해무 속으로 날아갔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희망을 드러냈다.
“안개가 상당히 짙은 것이 이곳에 숨어 있어도 될 것 같습니다.”
“허튼 소리 말거라. 상대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쫓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안개 따위로 속일 수는 없을 게야. 모두 저공비행을 하며 암석이나 쉴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 보거라. 모두 정좌를 하고 휴식을 취해야 법력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년인의 타박에 건장한 청년이 얼굴을 붉혔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쉴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황의 소녀가 돌연 놀라 외쳤다.
“엇! 여기에 섬이 있어요!”
그녀가 말하기 전에 다른 이들도 섬을 발견했다. 그 중 남색 치마를 입은 평범한 여인이 두려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곳에도 무슨 요수가 사는 것은 아니겠죠?”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어서 섬에 착륙해 휴식을 취한다.”
중년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작은 섬으로 떨어져 내렸다. 중년인이 의식을 퍼뜨려 섬을 살핀 후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쪽이 영기가 짙으니 가보자꾸나.”
그가 가리킨 방향은 섬의 유일한 작은 산맥 부근이었다. 중년인을 선두로 네 명의 남녀가 서둘러 그곳으로 다가갔다.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는 법력 회복이 시급했는데 운 좋게도 영근이 있는 섬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비취색 수목이 가득한 산맥에 도착했다.
이어 낮은 구릉 하나를 골라 가부좌를 튼 이들은 양 손에 영석 하나씩을 쥐고는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요 속에 안정을 취하자 모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한 시간이 지나자 모두 대부분의 법력을 회복해 안색도 많이 나아졌다.
중년인은 두 눈을 번쩍 뜨고 모두의 기색을 확인하더니 주저 없이 명령했다.
“잠시도 지체 할 수 없으니 출발 하자꾸나! 그것들이 언제 쫓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야.”
말을 마친 그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연기기 남녀들은 못내 아쉬웠지만 감히 항명하지 않고 각자의 법기를 꺼냈다.
모두가 날아오르려는데 작은 섬의 상공에서 갈매기 울음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며 안개가 요동을 쳤다.
“이런!”
중년인의 안색이 급변했고 다른 이들도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안개를 뚫고 열댓 마리의 회색 조류가 거대한 몸을 드러낸 것이다.
붉은 뿔이 난 괴조들은 추악한 모습을 푸른빛으로 감싸고 있었다. 괴조는 바로 그들을 덮치지 않고 섬 곳곳을 선회하며 선사들의 퇴로를 막았다.
영악하게 협력하는 괴조들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단 저 숲 속으로 들어가 기회를 보아 달아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중년인이 판단을 내리자 안절부절 못하던 어린 남녀가 바로 법기를 타고 숲 속으로 날아갔다.
키륵키륵키륵.
하늘 위의 괴조들도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포위 범위를 좁혀 왔다.
괴조의 이런 행동에 선사들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 졌고 그들은 더욱 빠르게 숲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섯 선사가 막 수풀과 세 장 거리의 상공까지 내려 왔을 때 비취색 불빛이 번쩍이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뿌옇게 변하며 주변 환경이 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