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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88화 (45/2,000)
  • # 288

    288화. 가짜 충마

    이야기를 다 들은 한립이 유유히 내용을 정리했다.

    “말씀대로라면 그 해부터 심연의 요수들이 난폭해지기 시작해 수많은 고계 선사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심지어 원영기 선사 역시 버텨내지 못했다는 뜻이로군요. 그러니 다른 해역에 선사들이 증가한 것이고요.”

    별일 아니라는 말투였으나 속으로는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심연의 요수들이 날뛰어 심지어 원영기 선사까지 화를 입었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어떻게 생각해 봐도 불길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충마에 대해 묻겠습니다. 저를 충마라 오인한 것은 어째서 인지요?”

    그 말에는 세 선사가 시선을 교환하며 쉽게 입을 떼지 못하였다. 그때 민 선사가 먼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 그것이 말입니다. 선사께서 소문 속의 충마와 흡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푸른 비검을 여러 개 다루는 청년이 결단기의 수행을 지니고 수천수만 마리의 곤충 요수를 부린다던데…….”

    그러나 그의 말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입 밖으로 내뱉고 보니 눈앞의 청년이 충마와 너무 흡사했던 것이다.

    민 선사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립의 눈이 이채를 띠며 담담히 물었다.

    “정말 저와 비슷하네요. 그럼 그 충마라는 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그리도 악명이 높은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충마와 연관된 일은 너무 많아서요. 그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4년 전 곤충 무리를 시켜 단숨에 일고여덟 명의 결단기 선사를 없앤 일입니다. 그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요.”

    조심스런 답변에도 전혀 표정 변화가 없는 한립이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원래 그 일이 후 잠적을 했었는데 1년 후 기연도 주변 해역에서 빈번히 선사들을 죽이고 보물을 강탈해 가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생존자들이 모두 충마의 짓이라 단언하며 날벌레를 부리는 결단기 선사에 당했다고 주장했지요.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니 당한 자가 100명에 달한다 합니다. 그러니 충마의 악명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긴장된 얼굴로 설명을 마친 민 선사가 한립의 눈치를 살폈다.

    민 선사뿐 아니라 노인이나 선 선사 역시 속이 타 들어갔다. 솔직한 답변에 상대가 화라도 내면 어찌한다는 말인가!

    눈앞의 청년이 그 충마일 가능성도 아직 배제할 수 없었다. 한립은 전혀 화내는 기색 없이 도리어 가볍게 실소했다.

    “흥미롭습니다. 정말 충마의 악명이 대단한 것 같은데 그 자의 생김새나 부리는 곤충 요수에 대해 아는 바는 없으신지요?”

    “생김새요?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충마의 인상은 평범한 듯 합니다. 다만 날벌레의 경우에는 금은 두 가지 색을 띤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님은 삼색의 딱정벌레를 부리시는 것으로 보아 정말 마두가 아니시군요?”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던 민 선사가 드디어 충마와 관련된 정보와 청년이 다른 점을 발견하고는 희색을 드러냈다. 노인이나 흉악한 인상의 장한도 그제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달라졌다.

    상대가 정말 충마라면 그들은 벌써 목숨이 달아났을 것이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헤아려 보던 그가 노인 등이 좋을 만한 내용을 전달했다.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다만 오늘 저와 만난 일은 다른 곳에서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충마로 오인 받아 화를 입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노인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저희가 꼭 비밀을 엄수할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지요. 그럼 저희도 갈 길이 바빠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시 바삐 이곳을 뜨고 싶어 하는 선사들을 보며 한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 선사는 깊이 예를 올리고는 바로 날아올랐다.

    한립은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제야 얼굴을 굳혔다. 지금이라도 저들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으나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살육을 즐기는 성정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행적이 드러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곳은 그의 거처와는 아주 동떨어진 곳이었는데 만일 해무가 낀 섬 주변에서 저들을 마주쳤다면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어차피 거처로 돌아가면 폐관을 하고 2, 30년은 나올 생각이 없었으니 그를 찾아 돌아다닐 이들도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다.

    다만 충마란 칭호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서금충으로 벽운문 선사들을 멸한 것은 사실이나 자신이 언제 보물을 탐해 선사들을 살육하고 돌아다녔단 말인가?

    누군가 자신을 가장해 흉악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립은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줄곧 외성해에서 그를 원수로 여기는 이는 벽운문 일가뿐이라 여겼던 것이다.

    당시 너무 급이 높은 요수를 끌어들일까 두려워 깊은 바다로는 나가지 않고 외성해 심해의 경계 부근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칠급 요수를 결계에 가두고 처리하려는데 여덟 명의 결단기 무리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벽운문 선사라 칭하며 오만하게도 자신을 죽이고 요수를 차지하려 들었다.

    그러니 한립도 어쩔 수 없이 십여 만 마리의 서금충을 풀어 그들을 죽인 것이다. 무리 중 강력한 고보를 지닌 결단 후기 선사가 있어 그가 소홀한 틈을 타 달아난 것은 그의 능력 밖이었다.

    그때 한립도 벽운문이 기연도에서 세력을 떨치는 무리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위험을 무릅쓰고 심해에 들어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수년간 심해를 돌아다녔으나 팔급 이상의 요수와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장 위험했던 때는 칠급 요수를 여러 마리 불러들였을 때였다. 그는 진법이며 서금충 그리고 온갖 법기를 이용해 간신히 그것들을 죽였다.

    이런 날들을 겪으며 단약을 제련하기에 충분한 수백 개의 육, 칠급 요단을 모았고 각종 재료들 또한 한 무더기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거처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유리수를 발견한 것이다. 희귀한 요수를 그냥 내버려둘 이유가 없으니 진법을 펼쳐 유리수를 가둔 순간 예상치 못하게 노인 등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이 놀라 자신을 충마라 부르는 것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벽운문이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자 곤충을 부리고 청죽봉운검을 운용하는 것을 본 따 가짜 충마를 내세웠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립은 몇 년간 심해 구역에 나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헛고생을 한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곤충을 부리는 고계 선사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서금충과 비슷한 날벌레를 찾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벽운문이 일을 꾸민 것이라면 어째서 그들을 죽였던 삼색 딱정벌레 떼가 아니라 금은색 날벌레가 등장했단 말인가?  죽다 살아난 결단 후기 선사가 착각해서 벌어진 우연은 아니었다.

    진화 전의 서금충을 아는 이라면 외성해에 오기 전에 만난 이들일 것이다.

    ‘혹시……. 허천전 노괴들이, 이곳까지? ’

    가슴이 서늘해졌다. 정말 그의 추측대로라면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있던 한립은 발을 굴러 당장 하늘 위로 떠올랐다.

    이후 푸른 빛 줄기로 변해 해무로 덮인 섬을 향해 날아갔다.

    빛 속의 한립은 고요히 냉소를 지었다.

    가짜 충마든 벽운문이 꾸민 일이든 뇌괴들이 벌인 일이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거처로 돌아가면 한 동안은 세상 나들이를 할 계획이 없었다.

    그동안 심연 요수들로 어수선한 외성해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자신을 쫓는 무리에게도 발각되지 않는다면 일거양득이 아닌가!

    수행에서 진전만 보인다면 충마가 된다 해도 누가 자신을 어찌 하겠는가?

    수도계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었다. 강한 자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리가 있었다. 판단을 마친 그는 최대한 신속히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기연도 흑석성 모처의 밀실 안에서 두 선사가 비밀리에 모여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 형의 방도를 쓴 지 벌써 3년째 입니다. 그 녀석이 걸려들기 만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오 선사, 조급해 마시지요. 매일 의식을 이용해 흑석성 구석구석을 탐색하지 않으십니까?  그 녀석이 성 내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오 형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처음 말을 꺼낸 이는 바로 극음 사조였다. 여전히 생기 없는 중년인의 모습을 한 그는 불만을 드러냈다.

    “흥! 제 형의 의견대로 제자들을 파견해 도적질을 시킨 지 오래지만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설마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이러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벽운문 전체가 겨우 결단 초기 선사를 못 찾아낸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거 참, 그렇게 말씀하시면 억울합니다. 저희가 한 두 해 교류한 것도 아니고 제 성정을 모르십니까?  게다가 본 문도 그 녀석과는 원한이 있는데 어찌 일부러 잡지 않는다 하십니까.”

    메마른 음성의 주인은 하얀 도포를 걸친 중년인이었는데 하얀 얼굴 위로 하얀 기운이 어린 것이 기세가 남달랐다.

    중년 도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 선사! 저도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 녀석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천성성에 숨어드는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곳으로 온 것입니까?  손자의 복수 때문이라는 말은 믿을 수가 없군요.”

    ‘여우같은 늙은이가!’

    극음은 상대의 말에 몰래 눈살을 찌푸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물으셔도 제 답은 똑같습니다. 그 놈이 허천전에서 제 손자를 암습해 죽였으니 잡아다 산채로 혼백을 뽑아 제련을 할 것이라고요.”

    도사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헤헤, 2년 전에 그리 말씀 하셨을 때야 믿었지요. 허나 극음도 조차 돌보지 않고 심지어 귀 맹의 안위도 고려치 않은 채 이곳에서 머무는 이유가 고작 손자의 복수라는 말을 저더라 믿으라는 것입니까?”

    “…….”

    극음이 말이 없자 도사가 최후의 패를 내보였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오 형 외에도 만법문의 장로 하나도 느닷없이 본 섬에 나타났다더군요. 그뿐입니까?  적어도 두, 세 명의 원영기 선사가 신분을 위장한 채 인근 해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기연도가 무슨 매력이 있어 이렇게 많은 원영기 고인들이 동시에 출현한다는 말입니까?

    결정적으로 이틀 전 얻은 소식에 따르면 그들이 놀랍게도 오 형이 찾는 한 가 녀석을 뒤쫓고 있다 합니다. 그들도 귀 댁의 손자를 위해 복수하러 왔다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까?”

    극음이 움찔하며 침묵했다. 그의 동요를 눈치 챈 도사가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숨길 것 없습니다. 어차피 한 가 놈에게 어떤 비밀이 있든 이미 많은 선사들이 그를 찾고 있으니 제가 안다고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이미 선사의 제자들 외에도 다른 이들도 충마의 신분을 흉내 내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합니다. 물을 흐리려는 속셈인 게지요.”

    결국에 극음이 불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그렇게까지 알아냈으면 스스로 알아보면 될 것을 저는 왜 찾아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오 형이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의 내막은 파악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미 정보를 지닌 이가 벽운문 만은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힘을 합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복잡한 심경의 극음이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결국에는 한숨을 내쉬며 상대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숨기고 싶지 않았으나 당초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로 다른 선사들과 심마(心魔)를 걸고 맹세를 했습니다. 이미 만법문의 추적이 시작되었다니 만천명이 얼마나 정보를 풀었는지는 모르나 맹세가 파기 된 것이나 다름없겠군요.”

    “그럼요. 오 형은 무슨 맹세 같은 것에 연연해하십니까?  맹세를 어긴다고 너도 나도 심마에 빠져들었으면 마도 수사 절반은 이미 죽어나갔을 겁니다.”

    “저 역시 심마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모두 숟가락을 얹으면 우리에게 돌아올 몫이 남을지 모르겠어요.”

    이후 진지한 얼굴로 극음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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