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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86화 (43/2,000)

# 286

286화. 염탐

이파리 세 개가 피어난 예상초를 내려다보며 한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에 든 작은 병을 풀잎에 천천히 기울였다.

똑.

녹색 액체 한 방울이 예상초에 닿아 사라졌다. 작은 병을 소중히 챙긴 그가 바로 옆에 앉아서 운기행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예상초의 네 번째 잎이 피어나며 요수를 유혹하는 짙은 향기를 발산했다.

한립 역시 이틀간 꼼짝없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마쳤다. 오급 요수를 손쉽게 처리하는 지금의 수준으로 육급 요수 정도도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홀로 먼 바다에 나와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했다. 예상초의 향기가 절대적으로 요수의 수준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300년 된 예상초가 육급 요수를 끌어들여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아까운 진법 법기를 모두 버리고 달아나 겨우 위기를 벗어났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유명을 달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다시 반나절 정도를 기다렸을 때 한립이 무슨 기척을 느꼈다.

그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먼 바다에서 돌연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불더니 그 아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지막한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립은 평이한 얼굴로 몸을 띄워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소용돌이 속에서 검은 기운에 휩싸인 요수가 튀어나왔다. 요수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예상초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들며 낮게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오히려 한시름을 놓았다.

검은 기운 때문에 모습을 정확히 식별하기 어려웠으나 발산되는 영기의 양으로 보아 육급 요수였던 것이다.

그리 위험하지 않은 알맞은 사냥감이었다.

검은 기운 속의 요수는 예상초와 가까워질수록 더욱 발광을 하며 날뛰었다. 결국에는 큰 울부짖음과 함께 산호섬으로 십여 장 높이의 거대한 파도를 몰고 왔다.

이미 거대 거북이가 만들어낸 경천동지할 현상을 본 한립의 눈에는 그다지 인상 깊은 장면은 아니었다.

검은 기운이 드디어 섬에서 열 장 거리까지 다가오자, 한립이 냉소를 흩날리며 청록색 진법 원반을 손에 들었다. 이어 손에서 푸른빛이 나와 원반을 발동했다. 눈을 찌르는 듯한 노란 빛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열 댓 개의 노란 빛 기둥이 바다 속에서 분사되어 노르스름한 보호막을 펼쳤고 순식간에 검은 기운을 그 안에 가두었다.

요수가 크게 놀랐음은 당연했다.

검은 기운 속에서 검푸른 집게 같은 것이 튀어나와 맹렬히 노란 보호막을 찔러 들어갔다.

쾅!

보호막이 흔들리는 것이 몇 번만 더 공격하면 견디지 못할 듯 했다. 하지만 잠시 요수를 가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미리 준비한 오행환 고보가 청아한 울림을 내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상공에서 다섯 가지 빛깔의 빛이 출현하더니 검은 기운 속으로 덮쳐 들어갔다.

그러자 요수의 고함소리가 들리며 농밀하던 기운이 지더니 요수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요수는 네 장 길이의 거대한 푸른 새우로 좌우로 여섯 개의 청록색 눈알을 굴리며 황망한 기색을 나타냈다. 다섯 개의 은색 고리에 칭칭 감겨 꼼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눈부신 푸른빛이 떨어져 내려 새우를 토막 내었고 녹색 액체가 분출되어 바다를 적셨다.

잘게 몸을 떤 다섯 개의 고리가 다시 한 번 사라졌다가 한립의 손으로 돌아왔다. 웃음을 띤 한립이 진법 원반을 치웠다.

노란 빛이 번뜩이며 원반이 사라졌고 동시에 노르스름한 보호막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오행환 마저 거둬들인 그의 손에 이번에는 새까만 사발이 들려있었다.

두 손으로 사발을 든 그가 표표히 떨어져 내린 곳은 바로 숨이 끊긴 거대 새우의 옆이었다.

눈에 한기가 스치며 새우의 머리를 가리킨 그가 낮게 주술을 읊어댔다. 손가락 끝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와 주술이 계속 될수록 더욱 빛을 키웠다.

돌연 주술이 끊기고 하얀 실처럼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새우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어 팽팽한 하얀 실에 속박되어 주먹만 한 녹색 빛 덩이가 거대 새우의 머리에서 뽑혀 나와 수중의 취혼발을 향해 다가왔다.

녹색 광채는 발버둥이라도 치는 듯 요동쳤지만 끌려오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겨우 한 자 거리까지 다가오자 취혼발에서 검은 기운이 나와 그것을 끌고 들어갔다. 한립은 실소했다. 그제야 걸음을 옮긴 그가 토막 난 새우를 뒤적거려 옅은 남색의 구슬을 찾아냈다.

오급 요수의 것과 비교해 육급 요수의 내단은 크기도 컸고 반투명해 신비한 빛을 냈다.

잠시 요단을 살피던 한립이 그것을 저물대에 넣고는 새우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돌연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빠져 나왔다.

그러자 새우의 거대한 집게 발 두 개가 떨어져 내렸고 한립은 주저 없이 그것들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한립은 다시 차분히 예상초 옆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육급 요수를 기다리며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7년 후, 수행이 각기 다른 열댓 명의 선사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이 축기기 선사였고 앞장 선 3명만이 결단에 이른 이들이었다.

결단 중기 한 명, 결단 초기가 두 명이었다. 얼굴에 옅은 금빛을 띤 중년 선사가 참을성 없이 물었다.

“추 형, 정말 육급 요수가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맞습니까?  벌써 몇 날을 수색하고 있는데 잘못된 정보가 아닐까요?”

질문의 대상은 사나운 얼굴의 노인이었다. 노인이 바로 무리 중 수행이 가장 높은 결단 중기 선사였던 것이다.

그가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민 선사, 그리 조급해 할 것이 무엇인가. 대략적인 위치만을 듣고 온 것이니 며칠 헤매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어쨌든 무작위로 아무 해역이나 뒤지는 것 보다는 찾을 확률이 높을 게야. 게다가 정보를 준 녀석이 감히 노부를 속일 리 있겠나?”

또 다른 흉악한 인상의 장한이 돌연 입을 열었다.

“이미 이곳을 떠났거나 이곳을 지나는 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리 없네. 주변 해저를 탐색해 보니 유리수(琉璃獸)가 가장 좋아하는 해초인 삼색조(三色藻)가 지천이었어. 분명 이곳일세.”

노인의 말에 다른 두 명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의식을 퍼트려 요수를 찾는데 집중했다. 축기기 선사들이야 그들의 조카나 제자들이었으니 더욱 참견할 입장은 아니었다.

무리가 반나절을 더 찾아 헤맸으나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이제 노인의 얼굴도 조금씩 구겨졌다.

얼굴에서 옅은 금빛을 내는 민 선사도 답답했는지 화를 내었다.

“허, 이것 참! 그래도 심연에 있을 때는 1년에 서너 마리의 고계 요수는 잡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지난 2년 간 겨우 두 마리를 잡았을 뿐입니다. 한 선사 당 요단 한 개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흉악한 얼굴의 장한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꺼려진다는 듯 말을 이었다.

“민 형께서 심연 상황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심연으로 갔다가는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당하고 말 겁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원래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지만 눈치 있게 행동하고 중심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이상 생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는 요수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더니 심연 전역이 이제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어요. 고계 선사들도 들어갔다 하면 살아 나오는 이가 없으니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1년 전 여러 원영기 노괴들이 연합해 원인을 알아내고자 중심부로 쳐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혼비백산해 달아난 일도 있었지요. 심지어 그 중 사법 상인은 겨우 원영만 살아 돌아왔으니 기연도도 이제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듣고만 있던 노인이 주름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 선사의 말이 일리가 있네. 지금은 미친 요수들이 심연 밖으로는 나오지 않고 있다지만 언제 광기가 폭발해 달려들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우리도 대비를 해야만 하네.”

노인 역시 근심이 많은 눈치였다. 민 선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그러나 성궁과 역성맹이 아직도 난리이니 돌아가고 싶다고 돌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송진도 봉쇄가 되었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음?  선 형은 무언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흉악한 인상의 장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헤헤, 듣기로 기연도에서 누군가 고가에 전송부를 판매한다 합니다. 수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확실히 그것을 이용해 내성해로 넘어갔다는 이도 있고요.”

“그렇단 말입니까?  그럼 우리도…….”

민 선사가 희색이 돌아 자세히 물어보려다 노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꿈도 크구만 그려! 정말 전송부를 구한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천성성으로 돌아갈 수나 있겠나?  지금의 내성해는 기연도보다 훨씬 위험한 곳일세. 돌아가면 양측에 붙들려 화살받이가 되기 일쑤일 텐데. 심연 상황이 이상하다지만 그 외 지역은 아직 문제가 없으니 이곳이 낫지.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무인도 같은 곳에 숨어들면 그만 아니겠나.”

다른 두 선사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노인의 방책이 마음에 차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계속 상의를 해나가려던 찰나 멀리서 굵은 괴성이 들려왔고 연이어 무언가 터져 나가는 굉음이 뒤따랐다.

민 선사와 선 선사가 두 눈을 마주보더니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유리수!”

노인이 얼굴을 굳히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유리수의 괴성이나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찾아낸 것 같으니 일단 기척을 숨기고 상황을 살피며 움직이세.”

다른 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긴 빛줄기로 변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축기 선사들도 긴장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노인의 무리가 산호섬 인근에 기척 없이 도착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 몸이 윤기가 나고 투명한 하얀 색 바다 생물이 붉은 결계에 갇혀 있었다.

푸쉬쉭.

쿠쿠쿵.

요수는 십여 장 크기로 무수히 많은 하얀 실을 뿜어내 죽기 살기로 붉은 결계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 선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산호섬 위에 옅은 남색 의복을 걸친 청년이 유유자적하게 뒷짐을 쥐고 떠있었던 것이다. 흉악한 얼굴의 선 선사가 조금 신이나 전음을 보냈다.

“추 형, 겨우 결단 초기의 수행을 지닌 자입니다. 지금 칠까요?”

노인이 역시 흉악한 눈빛이 스쳤으나 욕망을 억누르며 신중히 답했다.

“조급해 말고 다른 이들이 없나 살펴보게나. 함정일 수도 있네.”

“선 선사, 추 형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결단 초기 선사가 홀로 유리수를 상대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선 선사 역시 흠칫 했는지 서둘러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폈으나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공중에 떠있던 청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한 손만을 펼쳤을 뿐인데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선회하더니 열댓 장 길이의 거검으로 변해 추락했다.

해수면에 있던 유리수도 엄청난 공격이 다가옴을 직감했는지 입을 벌려 하얀 수정 구슬 같은 것을 토해냈다.

수정 구슬은 바람을 가르며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거침없이 떨어져 내리는 거검을 막아섰다. 그러나 거검의 속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우레와 같은 파공음을 내고 있었다.

꽈광!

드디어 거검과 수정 구슬이 맞부딪쳤다. 찰나의 순간 거대한 검의 형상이 모호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놀랍게도 푸른 검에서 동일한 형태의 거검이 하나 더 생겨나 소리 없이 유리수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요수도 고함을 지르며 몸에서 분출되던 하얀 실을 한데 모아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검은 마치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는 듯 하얀 실 뭉치를 넘어 유리수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청록색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저게 정말 유리수란 말인가!’

유리수는 육급 중에서도 잡기 어렵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런데 청년의 검 한 방에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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