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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85화 (42/2,000)

# 285

285화. 오색 구슬

다른 한 쪽에서는 독교가 내뿜은 붉은 빛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노인의 옥반지와 얽혀 싸우고 있었다.

금하 노인이 붉은 빛에 눈을 떼지 못하며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붉은 빛의 위력도 심상치가 않았다.

독교가 홀로 세 선사를 상대로 선공을 한 것은 겁을 겪고 있는 거북 요수를 위해 시간을 끌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노인과 붉은 장포인들 역시 혹시 독교가 달아나기라도 할까 그것을 기회 삼아 조금씩 법력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거대 거북이야 벼락을 다 맞고 겁을 이겨내도 원기가 크게 상할 테니 그리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공에서 세 선사가 요수와 싸우는 동안 거북의 겁 역시 중요한 고비에 이르렀다.

하늘에서 줄줄이 떨어지던 벼락이 아예 은색 뇌전 뭉치로 변해 사정없이 거북의 몸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은색의 뇌전 덩어리가 떨어질 때마다 고통스런 울부짖음이 동반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몰래 숨어 있던 한립에게는 호재였다.

어부지리를 노려보자는 바보 같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극렬한 싸움에서 한쪽이 이기고 상황이 종결되면 그는 바로 죽은 목숨이었다.

한립은 달아날 최적의 기회가 오자 전신의 법력을 피풍의에 주입해 붉은 빛으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엄청난 속력으로 달아나는 그 때문에 한참 전투 중이던 세 선사와 요수가 화들짝 놀랐으나 곧 신경을 껐다.

붉은 빛이 속력은 빨랐으나 그 안에 있는 선사의 수행이 겨우 결단 초기였기에 그다지 개의치 않은 것이다.

한립은 요수나 선사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거처와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핏빛 피풍의의 놀라운 속력으로 한 호흡에 수천 리는 달아난 것이다.

이후 뒤를 따르는 이가 없음을 확인하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보통의 속도로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꼬박 반나절을 날아가고 나서야 한립은 한 무인도에 잠시 내려섰다가 그 주변에서 수일을 보낸 후에야 다시 조심스레 왔던 길을 돌아왔다.

역시 파도가 요동치던 바다는 안정을 찾았고 요수나 선사,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벼락 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한립은 곳곳을 살핀 후 천천히 의식을 방출해 인근을 탐색했다. 돌연 표정이 달라진 그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참 후에 한립은 두 손에 무언가를 쥐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나는 수 장 길이의 은색 물체로 며칠 전 보았던 거북의 꼬리 일부였고 다른 것은 아직도 대량의 영기를 뿜어내는 해골 지팡이 조각이었다.

이것만 보아서는 대전의 승패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한립은 손에 든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거침없이 손을 털어 꼬리와 지팡이 반쪽을 다시 해수면으로 가라앉혀 버렸다.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괜히 욕심을 부리다 추격을 당하면 생명만 위태로울 뿐이었다.

그는 숨어 있는 요수나 선사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거처를 향해 날아갔다. 섬에 있는 금제는 그대로였다.

그는 원래 대격돌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뜰 생각이었지만 세 선사와 요수의 격전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거대 거북의 생사는 모르나 꼬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고 위치가 드러난 서식지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숨기 좋은 섬을 다시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거처로 삼은 섬 주변에 고계 요수가 없다고 어찌 확신하겠는가?

따져보면 이곳이 훨씬 안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한립은 생각난 김에 섬을 돌며 여러 환영진을 보강하였고 산맥에는 두 개의 가짜 거처를 만들어 똑같이 결계로 위장해 놓았다.

여러 굴을 파놓았으니 강력한 적이 쳐들어와도 달아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할 일을 마치자 겨우 마음이 안정되었다.

한립은 그가 목격한 대격돌이 이후 난성해에서 벌어질 요수와 선사 간의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격노한 난성해 교룡 일족이 인간 선사 학살에 가담하며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는 이후의 사냥을 위해 전력을 다해 진법 법기를 제련하는데 주력 했던 것이다. 이제 육, 칠급의 고계 요수를 상대해야 했으니 조금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는 동안 서로 잡아먹기를 마친 서금충들이 결국에는 산란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알을 확인하던 한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얀 것이 보통의 곤충 알 같아 보였으나 이번에는 검은 반점이 생겨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처음 든 생각은 드디어 서금충이 고대하던 성체가 되었나 하는 기대였지만 아니었다.

서금충들의 위력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불사의 육체를 지닌 완전체가 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벌써 진화가 끝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서금충들이 잡아먹은 수천수만의 철화의가 떠올랐다.

‘설마 대량의 철화의 떼를 복용해서 이변이 생긴 것인가? ’

궁금함이 밀려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알이 부화하려면 1년은 기다려야 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신 통제 진법을 펼쳐 모든 알들을 안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피를 떨어뜨려 주인으로 인식하게 한 것이다.

이후 벽을 사이에 둔 금사잠 배양실로도 시선을 주었다.

오색 구슬을 복용한 두 마리를 제외한 다른 누에들은 영약을 먹이고 있음에도 점차 죽어나갔다. 두 마리 역시 상태가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자 한립도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예상초를 준비해 두 마리 누에들이 서금충처럼 누에알을 생산하는지 살피기로 했다.

일단 다섯 색깔의 구슬이 보천단은 아니라 해도 몸에 해롭지 않다는 것은 확인한 것이다.

반 개월 후 그가 준비하던 진법 법기들이 모두 준비되었다.

이어 금사잠들에게 예상초를 먹인 한립은 자신 역시 폐관을 위한 밀실로 들어가 오색 구슬들을 복용하려 했다. 아직도 여섯 개가 남아 있었다.

가부좌를 하고 폐관실 중간에 앉은 그는 함 속의 구슬들을 응시했다.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는 민첩하게 한 알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이때 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원래 단단하던 구슬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부드럽게 변해 약간 쓴맛을 내며 삼켜진 것이다. 단전 부근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가 의식을 통해 체내를 점검하자 오색 구슬이 뱃속에서 원형을 유지하며 그저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두 손을 모아 법결을 외웠다.

그러자 가느다란 푸른 화염이 금단에서 분출되어 구슬을 감싸고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온화하던 기운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듯한 열기로 바뀌었다. 눈을 감은 한립은 서서히 아무 근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두 달 후 구슬은 그의 단화에 의해 녹아 없어졌지만 바로 다른 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주저하던 그가 두 번째 구슬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가 폐관실에서 나올 때에는 여섯 개의 구슬이 완전히 몸에 녹아든 후였다. 이제 천지 영기를 흡입하고 그것을 법력으로 소화함에 있어 이전에 비해 빨라졌음을 느꼈다. 구슬이 이제 막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변화는 아니었지만 한립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안 좋은 소식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초를 복용한 금사잠이 알을 낳기는 했으나 전부 죽은 알 뿐이었다. 게다가 부화를 마친 암수 누에 역시 명을 달리해 버렸다. 죽은 알들과 누에만이 가득한 밀실을 보며 한립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 수확도 없다는 것은 뒤통수라도 맞은 듯 실망스런 일이었다. 다만 예상초의 대략적인 효과는 검증한 셈이었다.

만개한 예상초 잎을 고계 요수에게 먹이면 생산 능력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추측만 했었는데 금사잠이 알을 낳았으니 확실히 증명된 셈이다.

희귀한 고계 요수 일수록 후계를 생산하기 어려웠다. 이런 효과가 있었으니 고계 요수들이 만개한 예상초의 향만 맡으면 벌떼처럼 달려 들었던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상 함께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한립이 금사잠의 일로 우울해하는 사이 서금충의 알은 부화를 시작했다. 부화가 끝나자 서금충들이 또 한 번 그에게 기쁨을 주었다.

새로 부화한 서금충들은 생김새는 그대로였으나 은색 반점 외에 검은 줄무늬가 더해져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내뿜는 영기 역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선대 서금충들이 너무 많은 철화의를 복용한 탓에 보통의 서금충들과는 달라진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영수대 한 가득 서금충을 담아 새로운 밀실로 들어갔다. 반나절 후 밀실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흥분이 어려 있었다.

새로운 서금충들의 위력이 그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바다로 출정해 요수를 사냥하는 데에도 더욱 자신감이 생겨났다.

아직 허천정과 허천전 꼭두각시 부품들의 연구는 하루아침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미루고 있었다. 일단은 바다로 나가 충분한 고계 요수의 요단을 수집하는 것이 먼저였다.

한립은 준비한 진법 법기들과 예상초를 챙겼다. 언제 쓸모가 있을지 모르나 혈옥지주와 제혼 역시 남겨두지 않았다.

거처에 남겨둔 영초와 영약 특히 구곡영삼이 그의 발걸음을 잡았으나 뽑아서 들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 나서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니 초목에 속하는 구곡영삼을 흙에서 오래 떼어 놓기는 적당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새로 부화한 딱정벌레들 중 절반을 거처에 남겨 두기로 했다. 선사든 요수든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멸하라는 명을 내려두었으니 원영기 선사나 팔급 이상의 요수가 침입하지 않는 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빠짐없이 녹색 액체를 준 덕분에 양혼목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 나무 역시 천뢰죽처럼 만년 산이 된 이후에는 성장을 멈추었는데 아무리 녹색 액체를 더 줘도 영기가 늘어나지 않았다.

한립은 한 자 길이로 자란 나무로 엄지손가락 크기의 검은 염주 10알을 조각해 금실로 엮어 목에 걸었다. 양혼목은 따로 제련할 필요 없이 몸에만 지니고 있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북돋는 신비한 효과가 있었다.

동굴 내의 모든 것을 잘 안배한 후 한립은 홀로 섬의 해무를 빠져 나왔다.

예상초가 있는 그는 심연이란 곳에 가서 다른 이들과 뒤섞일 마음이 없었다. 그곳은 팔급 이상의 요수가 출몰할 확률이 더 높았고 선사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을 테니 예상초를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예상초로 요수를 유혹할 수 있는 그에게는 어느 바다나 훌륭한 사냥터였다.

그저 적당한 산호섬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이 서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1개월 후, 한립은 어느 울긋불긋한 산호섬에 내려섰다.

오는 도중에도 여러 산호섬들이 있었지만 거처와 너무 가까운 곳에서 사냥을 하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까 봐 일부러 멀리 오게 된 것이다. 섬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규모였으나 예상초를 심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이곳에서 요수 사냥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산호섬 주변에 네 개의 진법을 설치해 물샐 틈 없이 보호를 한 후 조심스레 예상초를 그 중심에 심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육급 이상의 요수였으니 기본적으로 400년 이상 키워야 가능했다. 한 달은 있어야 요수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상초는 앞 세 단계에서 잎을 피워내며 저계 요수들을 끌어들여 주었다.

오급 요수의 내단으로 제련한 단약도 이제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지만 고액의 영석으로 교환하는 용도로는 아직도 값어치가 있었다.

역시 네 번째 잎이 피어나기 전에 네 마리의 오급 요수가 달려들었고 한립은 청죽봉운검을 이용해 손쉽게 그것들을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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