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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80화 (37/2,000)

# 280

280화. 노정

금의 장한이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팔급 이상의 요수라면 원영기 선사와 맞먹는 존재가 아닙니까?  이곳에 그런 요수까지 출몰한다는 말입니까?”

“저도 직접 보지 못하였으니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히 칠급 요수가 잡힌 적은 있습니다. 칠급 요단은 이곳 경매소에서 엄청난 가격으로 어느 원영기 선배의 손에 들어갔지요.”

이번엔 줄곧 듣기만 하던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허 선사의 말씀은 해연에서는 다른 해역보다 요수가 더 자주 출몰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계 요수의 출현도 잦은 만큼 해를 입는 이들도 많지요.”

이곳은 확실히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이런 특수한 행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말이 없어지자 그들을 인도하던 범인 여인이 공손히 물었다.

“선사님들 감보청(鑒寶廳)으로 먼저 가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경보청(競寶廳)으로 모실까요?”

“감보청은 그저 감정사가 물건을 보고 영석으로 교환해주거나 경매에 내놓을 자격을 줄 뿐이니 별 달리 구경할 것이 없습니다. 바로 경보청으로 가시지요. 그곳이야 말로 모두의 견문을 넓혀줄 것입니다.”

허운은 이곳이 아주 익숙한지 범인 여인이 길을 안내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오른쪽 대청으로 향했다. 금의 장한 등도 자연히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한립이 예의를 지키며 문 밖에 서 있는 여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들어가지 않느냐?”

“저희 같은 범인들은 경보당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소첩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바로 남색 빛의 장막 속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허름하기 그지없어서 나무로 된 의자들과 수 장 너비의 무대가 준비된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무대에서는 노인이 남색의 반짝이는 돌을 들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수십 명의 연기기, 축기기 등의 선사들이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결단기 선사 이상의 고계 선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노인의 목소리가 또다시 대청을 울려 퍼졌다.

“이 남광석(藍光石)은 물 속성 법기를 제련하는데 가장 적합한 재료로 원주인이 영석 500개를 최저가로 경매에 올려 오랜 규정대로 한 번에 최소 30개 이상씩 올려 부를 수 있습니다. 경매를 시작합니다.”

“530!”

“570!”

“600!”

노인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대 아래에서 수많은 선사들이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격 경쟁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영석 700개까지 올랐고 축기기 젊은이가 낙찰을 받았다.

그는 현장에서 바로 가격을 치르고 물건을 받아 갔다. 쉼 없이 다음 물건의 소개가 시작됐다.

“이 물건은 흙 속성 법기로…….”

한립은 법기에 관심이 없었기에 한쪽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허운에게 다가갔다.

금의 장한 일행 중 류 부인이 의문을 품었다.

“다른 경매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 한데요. 허 선사께서는 어떤 물건을 소개시켜 주시려 이곳으로 안내해 주셨는지요?”

“경매에는 매번 특수한 물품이 몇 가지 등장하곤 합니다. 비록 엄청나게 비싼 물품은 아니더라도 내성해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지요.”

허운이 묘한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다가 다가오는 한립을 보며 선의를 담아 미소를 지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한립이 질문을 던졌다.

“허 선사, 흑석성에 머무는 선사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곡 형은 눈도 밝습니다. 흑석성 내에는 잠시 머물다 가는 이들 뿐이고 장기 거주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고계 선사들은 모두 다른 섬에 거처를 마련해 두고 저계 선사들은 작은 마을을 형성해 범인들과 함께 살고 있지요. 흑석성에 있는 선사들은 모두 물건을 매매하러 오는 이들이고 저계 선사들일수록 더욱 자주 들립니다.”

잠시 침묵하던 금의 장한이 모두가 궁금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축기기 이상의 선사여야지만 외성해에서 생존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이리 많은 범인과 연기기 선사들이 이곳에 있는지요?”

“역 형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 점이 기연도를 다른 요수도와 구분 짓는 점이지요.

다른 요수도는 고계 선사들이 요수를 사냥하러 와서 충분한 수확을 얻으면 다시 내성해로 돌아가지요. 그러나 이곳에서는 해연을 발견한 후 인근의 섬에서 영석 광산과 여러 원료의 산지를 발굴해 내었습니다.

기본적인 자급자족의 여건이 갖춰지자 가솔을 전부 이끌고 이곳으로 이주해오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듣기로는 흑석성을 관리하는 여러 세력들이 저계 선사와 범인들을 포함한 핵심 인력들을 데려오고 있으니 아마 수만 년이 지나면 이곳이 제2의 내성해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흑석성을 제외하면 다른 섬의 촌락은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런 요수의 출현이나 재난으로 소형진을 펼쳐 두었던 몇몇 섬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일행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금의 장한이 작게 탄식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궁이나 다른 세력들은 정말 이곳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직 이곳이 내성해처럼 되려면 먼데다 내성해의 엄청난 해역만 해도 관리하기 힘든데 이곳까지 신경 쓸 틈이 있나요. 그들은 제발 더 많은 주요 세력들이 이곳으로 옮겨 가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성해는 지금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졌겠지요.”

아무래도 성궁에서 돌연 전송진을 막은 사실에 울화가 치미는 듯 했다. 다른 이들이 듣기에도 허운의 대답이 일리가 있었다.

무대에서는 다시 몇 개의 법기 그리고 원료 등이 낙찰되고 남색 의복을 걸친 중년인이 붉은 함을 들고 무대 뒤에 나타났다. 그 안에는 보라색 기운이 들어있는 하얀 구슬이 놓여 있었다.

허운이 그것을 보고는 드디어 말했다.

“모두 저것을 좀 보시지요. 기연도에서 경매에 오르는 주요 물품 중 하나인 요수의 알입니다. 이런 물건은 내성해에서는 부르는 것이 값이지만 이곳에서는 싸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몇몇 특수한 영수의 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송진을 통과해 내성해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일단 진귀한 요수의 알이 나타났다 소문이 퍼지면 이곳 상황에 밝은 고계 선사들이 몰려와 경매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일단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려 조금 더 기르고 전송진을 이용해 내성해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요수의 알이라!”

금의 장한의 눈이 밝아졌다. 고계 요수를 기르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노인은 이 요수의 알에 자신감이 가득한 듯 서둘러 소개를 늘어놓았다.

“요수 자운응(紫云鷹)의 알로 성년이 되면 사급 흙 속성의 요수가 되어 온 몸에 강철과 같은 깃털이 자라납니다. 비록 간단한 보호 법술 밖에는 펼치지 못하나 비행속도가 빨라 상급 비행 법기보다 낫지요.

날카로운 발톱은 축기기 선사의 보호막도 가볍게 찢어버리니 일반적으로 거래가 되지 않는 희귀한 품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축기기 선사분들께 최적의 영수인 자운응, 최저가 영석 2,000개로 시작해 매 100개 이상씩 가격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경매를 시작합니다.”

이 물건에 혹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던지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단기 선사에게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급 요수였지만 축기기 선사들에게는 기르기 좋은 영수였다. 높은 등급의 영수는 일단 가격이 높았고 성년까지 기르는데 오래 걸려 그들의 수명으로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2,500!”

“2,700!”

“3,000!”

자운응의 알은 결국엔 3,300에 낙찰이 되어 신이 난 여 선사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까만 얼굴의 중년인이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내성해에 비해 훨씬 저렴하군요. 천성성에서 저런 비행 요수의 알을 거래하려면 최소 5,000개 이상의 영석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한립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허운도 만족스러운 지 미소를 지었다.

이후 또 다시 삼급과 사급 요수의 알이 연달아 거래되었다. 그 다음 무대로 올라온 경매품에 류 부인과 다른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저건…….”

무대 위에 등장한건 아름다운 젊은 여인들이었다. 비록 연기기 이, 삼성에 불과했지만 분명 수도자임이 분명했는데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이번 경매품은 저 여 선사인 것이 확실했다.

허운만이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일행에게 노인의 소개를 들어보라는 눈짓을 했다.

“이번에는 연기기 노정(爐鼎)을 소개합니다. 비록 기본 오행공법 밖에 익히지 못했으나 모두 아름다운 용모에 완전무결한 몸을 갖고 있지요. 그들의 요구에 따라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선사분들은 축기 중기 이상으로 제한하겠습니다. 최저가 영석 2,000로 경매를 시작…….”

무대 위로 여인들이 나오자마자 사내들의 시선이 뜨거워졌지만 경매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도 가격을 부르는 이들은 없었다.

마침 일행과 가까이에 서있던 두 선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했다.

“영석 2,000개로 겨우 이, 삼성 밖에 안 된 노정을 구해 어디다 쓴단 말입니까?  시침을 들 여종을 찾는다면 다른 곳에서 범인 여인을 구하는 것이 낫지요. 나이가 들면 돈을 주고 내보내면 그만이에요. 만일 축기기 노정이라면 낙찰을 시도해 보겠지만 말입니다.”

“결단기 선사도 아니면서 꿈 깨시게! 이곳 규정대로라면 축기기 노정은 경매에 참여하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저 괜찮은 영수의 알이라도 건지면 운이 좋은 게지.”

그들의 대화에 한립은 잠시 놀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세력들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전문적으로 수련반려로 키워내기도 하고 심지어 고계 수사들끼리는 이들을 선물처럼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거래되는 수련반려를 노정이라 칭하는 듯 한데 그런 거래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금의 장한 일행도 곧 놀란 얼굴을 거두었다.

어쨌든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는 아니더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알았던 것이다. 다만 류 부인과 다른 젊은 여 선사는 같은 여성의 일이라 불편한 기색을 떨치지 못했다.

이를 본 허운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런 여인들은 모두 스스로 원해서 경매에 나선 것이니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그녀들은 보통 영근의 자질이 나빠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없는 이들로 가문의 지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성해 같은 곳에서 범인들의 일에도 능숙하지 못하고 해역으로 나가 요수를 죽일 수도 없다면 차라리 노정이 되어 고계 선사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고액의 낙찰금액으로 가문에 기여도 하고 자신은 기댈 곳이 생기니 일석이조입니다. 만일 사내의 환심을 사 시침을 드는 관계로 발전하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요.

물론 자질이 나쁘지 않은 여인도 노정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매에는 나오지 않고 오직 고계 선사를 대상으로 한 경매에만 나옵니다.”

허운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침묵했다. 일행 중에 여인이 둘이나 있는데 섣불리 그의 의견에 찬동하기도 반박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한립 역시 모른 척 했다. 그에게는 여인은 그저 짐일 뿐이다.

비록 살아 보고자 스스로를 노정으로 내놓은 여인들이 가엽기는 했으나 자신도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판에 다른 이에게 눈을 돌릴 틈은 더더욱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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