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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77화 (3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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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7화. 계책을 세우다

    장한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러니 영석을 지불해서라도 일단 목숨을 보전합시다. 전쟁에 참여해 모두가 전사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하고 소수가 살아남아 외성해로 간다 해도 그곳에서 버티기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허나 그렇게 많은 영석을…….”

    “죽은 뒤에 영석을 안고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외성해에 나가 요수들을 잡다 보면 손실을 복구할 수 있을 테니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히 외성해로 떠나는 것이에요.”

    까만 얼굴의 중년인이 아무래도 금액이 너무 높은지 나섰다가 비단옷 장한에게 말을 끊겼다. 중년인은 마치 그를 두려워하는 듯 입을 다물고 반박하지 못했다.

    “영석 문제는 일단 최대한 모아보고 상대와 조건을 조절해 봅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일단 영석이 풍족한 이가 빌려주고 외성해에서 얻는 수확으로 돌려주는 형식으로 진행 하지요.”

    무리에서 비단옷 장한의 위세가 상당한지 그가 모든 결정을 내렸다.

    다른 여섯 선사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몇몇은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역 형이라 불린 금의 장한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가 수척한 사내에게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내일 장 선사가 한 번 더 나서주어야 하겠습니다. 일단 영석의 수량을 조정해 보고 정 안 되겠으면 원래의 조건을 수락하시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모레에는 반드시 출발해야 합니다.”

    수척한 장 선사가 그의 말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이제 선사들은 구체적으로 어찌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건물 밖의 한립이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귀담아 듣고 있었다. 한립의 입 꼬리가 묘하게 꺾이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종적을 감추었다.

    이튿날, 수척한 사내가 다시 성공전으로 날아가자 그 뒤를 쫓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그를 따라 전각 인근에 도착해서는 조심스레 쪽문으로 숨어 들었다. 이제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반 시진이 지난 후에야 수척한 사내가 흥분한 얼굴로 전각으로 들어갔다가 신이 나서 돌아 나왔다. 이후 그는 성산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희희낙락하던 그가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는 울상을 지으며 표정이 돌변한 것이다. 수척한 사내를 보는 한립의 얼굴도 달라졌다.

    ‘무언가 내막이 있을 듯 한데. 아마도…….’

    * * *

    그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금의 장한과 수척한 사내 등이 아주 조심스레 성공전을 향해 출발했다.

    경계령이 풀리고 자유 활동 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성 내에는 돌아다니는 선사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눈에 띌까 두려워하며 신중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비단옷의 장한이 날아가면서도 곳곳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여정은 아주 순조로워서 성산의 49층에 이를 때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자 모두가 한시름을 놓은 모습이었다.

    그때 금의 장한이 안색이 달라져 비행을 멈추었다. 이어 신중한 얼굴로 기이한 손짓을 했다. 그 뒤를 따르던 이들도 경계심을 높였다.

    그가 전방의 허공에 소리쳤다.

    “선사는 어찌하여 몰래 숨어 우리 앞을 가로막은 것이오.”

    동시에 그의 손이 소리 없이 저물대로 향했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빛이 반짝이며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그리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모두를 기다린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도움을 구할 일이 있어서니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청색 의복을 입은 중년인으로 안색이 창백한 것이 중병이라도 걸린 듯 했다. 그러나 모두가 상대의 수행을 확인하고는 더욱 경계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청삼을 걸친 중년인은 금의 장한과 마찬가지로 축기 후기의 수행으로 축기기 선사 중에서는 최고봉에 이르러 있었다.

    금의 장한이 서늘하게 눈을 빛내며 차분히 물었다.

    “귀하의 정체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밝혀주시지요.”

    “곡 씨 성을 지닌 산수에 불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공전으로 가는 길이지요?  저 역시 외성해로 나가고자 하니 무리에 끼워 함께 데려가 주시지요.”

    그 말에 금의 장한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부인했다.

    “성공전과 외성해라니 곡 선사께서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저희는 사적인 일로 지나가던 길이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지요.”

    상대의 내력과 의도도 모르는데 바로 수긍할 리 만무했다. 일단 오리발을 내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예 입을 다문 것이 모든 것을 장한에게 일임한 모양이었다.

    청삼 중년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역 선사, 그리 의심할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이곳까지 찾아 왔는데 그 말을 믿고 돌아가리라 보십니까?”

    “흥! 오해라지 않소! 나는 모르는 일이오.”

    말을 끝냄과 동시에 그가 저물대에서 무언가를 꺼내 무력을 행사하려는 낌새를 보였다. 다른 이들도 이를 보고 청삼의 중년인을 둘러쌌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유유자적하기만 했다.

    “설마 저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심산은 아니겠지요. 스스로 자랑하기는 멋쩍으나 제 수행으로 모두를 죽일 수는 없어도 소동을 부려 성궁의 주의를 끄는 것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요?”

    모두가 그의 말에 눈을 부릅뜨더니 결국에는 금의 장한을 쳐다보았다.

    장한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비록 아직 결단을 성공하지 못했지만 줄곧 치밀한 심계를 지녔다 자신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도 상대의 위협은 말이 되었고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속으로 이해타산을 내려 본 그가 결국엔 화를 억누르고 냉랭히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시오. 이미 전송진은 한 번에 최대 일곱 명 밖에 전송할 수 없고 상대도 일곱 명만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소. 선사가 추가 된다면 분명 허락하지 않을 것이오.”

    청삼 중년인이 웃었다.

    “피해를 입히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오. 전각 내부로 들어가게만 해주면 이후에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정 안되겠으면 괜히 억지를 부려 모두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물러나겠소.”

    금의 장한이 미간을 좁히며 의혹을 드러냈다.

    “정말 그렇게만 해주면 된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고민하던 금의 장한이 결국에는 이를 악물고 답했다.

    “좋습니다. 그 정도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니 도움을 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청삼의 중년인은 이미 예상하기라도 한 듯 평온한 얼굴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수척한 사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조금 재촉을 해왔다.

    “그럼 어서 움직이시지요. 이미 시간을 지체했으니 상대가 더는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금의 장한이 두말없이 모두를 이끌고 다시 한 번 속도를 높였고 청삼 중년인도 수척한 사내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리는 자연스럽게 청삼 중년인을 중간에 두고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 그를 경계하는 것이다.

    중간의 중년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들과 속도를 맞추어 날아갈 뿐이었다.

    이제 정말 도착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수척한 사내가 돌연 속도를 높여 먼저 하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 평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이곳까지 왔으니 상대의 수중에 목줄을 쥐어준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에서 미리 손을 써두었는지 분명 그들을 막아야 할 금제조차 보이지 않았다.

    “…….”

    청삼 중년인의 눈빛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다른 이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져서 전송진이 설치되어 있는 대청 안으로 진입했다. 그곳 에서 백의를 걸친 두 명의 성궁 선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수척한 사내가 먼저 나서 공손히 예를 올렸다.

    “고 선배님, 건 선배님, 모두 도착하였습니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겠지요?”

    얼굴에 웃음을 띤 사내와 달리 두 성궁 선사는 냉랭하기만 했다. 거만한 표정의 대머리 노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준비할 것이 무엇이냐. 영석을 받고 각자 전송부만 한 장씩 쥐어주면 되는 것을. 약속한 영석의 수량은 맞춰왔겠지?”

    금의 장한이 한발 나서며 공손히 답했다.

    “선배님 안심하십시오. 정해진 영석을 모두 준비해 왔습니다.”

    대머리 노인이 장한을 훑어보았다.

    “네가 역 선사로구나. 역시 수행이 나쁘지 않아.”

    그가 모두를 훑어보더니 청삼 중년인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대머리 노인의 얼굴이 서늘해지며 불만스레 따져 물었다.

    “어찌 한 명이 늘었지?  일곱 명이라 하지 않았더냐. 저 선사도 축기 후기의 경지인 듯 한데 누구지?”

    “아, 이 자는…….”

    금의 장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하려 했지만 청삼 중년인이 미소를 띠며 스스로 답했다.

    “저는 산수로 전송진을 이용해 외성도로 이동하고자 역 선사에게 부탁해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사정을 좀 봐주신다면 전송비용의 두 배를 지불하겠습니다.”

    “두 배를?”

    대머리 선사가 눈을 빛내며 슬쩍 뒤에선 기품 있는 선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 중년 선사가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두 배를 지불한다 해도 한 번 전송진을 이용하는데 최대 인원은 일곱이다. 우리도 상부에 눈을 속이려면 단 한 번만 전송진을 발동할 수 있네.”

    “그것은 선배님들이 난처하지 않게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이어 청삼 중년인이 누군가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

    “아무래도 선사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겠습니다.”

    뜻밖에도 그 대상은 수척한 사내였다. 상대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에서 분노가 차오르는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다른 이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중년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자리를 내달라는 것이 아니니 걱정 마시지요. 오급 요수의 요단 두 개로 보상하겠으니 부디 거절하지 마세요.”

    그는 차분히 품을 뒤져 남색 구슬 두 개를 꺼냈다. 발산하는 영기로 보아 정말 오급 요수의 요단이었다. 수척한 사내가 요단을 보고 탐욕스런 눈빛을 드러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거절했다.

    “흥! 겨우 요단 두 개로 제 자리를 내줄 수는 없습니다.”

    청삼 중년인은 실망하기 보다는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이후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거리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수척한 사내에게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수척한 사내의 얼굴이 삽시간에 더욱 창백해졌다.

    청삼 중년인이 이번에는 소리를 내서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씀 드렸는데 설마 제 제안을 거절하시지는 않겠지요?”

    수척한 사내가 긴장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표독스럽게 중년인을 노려보더니 결국에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그럽시다. 이왕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자리를 내어드리지요.”

    그 말에 모두의 안색이 달라졌다. 금의 장한이 어두워진 얼굴로 냉랭히 물었다.

    “장 수사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두 함께 움직이기로 약조하지 않았소. 지금 이게…….”

    수척한 사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먼저 가게시면 모두를 따라 이후 합류하겠습니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분명히 청삼 중년인에게 무언가 약점을 잡혀 자리를 양보한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왕 스스로 포기한다는데 다른 이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또한 무리에서 한 명이 빠진다고 치명적인 위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대머리 노인이 돌연 인상을 구기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흥! 누가 마음대로 인원을 바꾸라더냐?”

    “고 선배님이 그것이…….”

    수척한 사내는 화들짝 놀랐으나 무어라 해명해야 할지 일순 떠오르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때 청삼 중년인이 손바닥을 뒤집어 두 개의 옥함을 꺼내 들었다.

    대머리 선사와 고상한 선사에게 하나씩을 건넨 것이다. 무의식중에 그것을 받아 든 성궁 선사들이 아무 말 없이 청삼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제가 바치는 보물들이니 선배님들께서 받아주시기를 청합니다.”

    두 선사가 호기심을 드러내더니 의식을 풀어 옥함을 탐색해 이상한 수작을 부려 놓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신중을 기해 옥함을 아주 약간만 열어보았는데 동시에 붉은 빛이 분출되어 나왔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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