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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71화 (28/2,000)

# 271

271화. 늑대 형태의 기령

원영기 선사 한 무더기가 내전에서 엄청난 혈투를 벌이다가 결단기 선사가 보물을 들고 달아났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어찌 허천정 같은 보물이 다른 이의 손에 떨어지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만호자 역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현골과 미리 약속한 것과 상황이 너무 틀어진 것이다. 설마 정말 보물을 들고 그대로 달아났단 것인가?

만일 보통 결단 초기 선사라면 3층 밀실을 통해 허천전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 하겠지만 귀신을 부리는 특이한 술법에 원래 원영기 선사였던 현골의 정체를 생각해 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만호자가 의도적으로 말을 흘렸다.

“성궁의 두 녀석들이 인근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틈타 셋 모두를 죽이고 허천정을 꺼내 갔을 수도 있다.”

그 말에 모두가 깊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 * *

원요와 멀리 떨어진 후 한립은 간질거리는 손을 참지 못하고 허천정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에 들어있을 보물들이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떤 법술을 써도 솥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뚜껑과 솥이 하나라도 되는 듯 단단히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미친 듯 영력을 주입해 보거나 열이 받아 온갖 법보로 공격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남색 빛이 번뜩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두근거리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었다.

허천정의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한립은 짜증이 치솟아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허천정의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보물을 이 따위로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허천정에는 원영기 선사 이상만 구동을 할 수 있거나 아니면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야만 열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단순히 힘으로 열거나 영력을 주입해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었다.

‘혹시 솥을 감싸고 있던 건람빙염과 관련이? ’

이런 추측을 하자 흥분이 가라앉았다.

한립은 일단 솥을 저물대 속으로 집어넣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늑대 머리가 새겨진 옥패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는 단시간에 두 가지 기능을 파악했다. 하나는 영력을 주입하면 노란색과 붉은색이 섞여 보호막이 생성된 다는 점이었다.

이 보호막의 방어능력은 허천전 안에서 직접 확인했으니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한립이 고대 주술을 외우면 양쪽에 새겨진 아기 늑대 두 마리 혹은 다 자란 은색 늑대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붉은 아기 늑대는 정순한 불의 속성을 타고나 쓸만한 불 속성 법술을 펼쳤고 노란 아기 늑대는 흙의 속성을 타고나 흙의 속성 법술에 능했다.

그 중에는 한립이 줄곧 익히고 싶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토둔술(土遁術)도 포함되어 있었다.

매우 기뻤지만 그 둘 대신 부를 수 있는 거대한 은색 늑대는 통제할 방법이 없어 골치가 아팠다.

한립이 명을 내리면 반응을 보이기는 하나 대충대충 하는 것이 너무 티가 났다. 그러다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을 시켜보려 할 때는 명을 못 들은 척 하기도 했다.

늑대의 눈에서 귀찮음을 알아챈 그는 할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그가 보기에 노란 늑대가 붉은 늑대나 은색 늑대의 화신(化身)일 뿐이고 옥패의 진정한 기령은 은색 늑대가 틀림없었다.

다만 은색 늑대가 거만하고 명에 따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철저히 제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골이 은색 늑대를 보고는 심지어 금뢰죽까지 꺼내어 차지하려 했던 것을 봐서는 늑대 기령이 대단한 것이란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립은 옥패를 거두고는 이번엔 허천전에서 얻은 다른 보물들을 살폈다.

늙은 마두가 준 반지며 백서패, 한빙주 등의 보물을 차례로 살펴도 이상한 점은 발견 되지 않았지만 몸에 지니지 못하고 저물대에 넣어두었다.

유일하게 만호자의 황린갑 만은 초월적인 방어력이 아쉬워 계속 옷 안에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내전 호위인 꼭두각시들의 잔해나 만년영유 반 병 그리고 양혼목의 밑동 역시 품에 잘 넣어두었다.

“……!”

물건들을 확인하다가 각각 다섯 가지 색을 내는 구슬을 발견하고는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천남 지역 고대 전송진 옆에 있던 기이한 해골이 변한 물건이었다.

그 옆에 혈옥지주가 있었으니 현골 말대로 그 해골이 역도 현극일 확률이 높았다. 다만 해골이 어째서 다섯 가지 색으로 빛났으며 월국 황제와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늘 다시 구슬을 보니 어쩔 수 없이 허천정에서 튀어나왔던 보천단이 떠올랐다. 같은 색깔이었지만 보천단에 비해 크기가 크고 더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구슬을 들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한립은 신중한 얼굴로 그것을 다시 잘 챙겨놓았다. 이후 방향을 정한 그는 핏빛 피풍의를 꺼냈다.

그가 핏빛에 휩싸이더니 마치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처럼 천성성 방향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대량의 영력을 소모해야 했지만 보통의 결단기 선사에 비해 몇 배는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노괴들이 허천전을 빠져 나오기 전에 한 시라도 빨리 천성성 동굴 거처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물건은 포기한다 해도 오랜 세월 정성을 쏟아 기른 서금충만은 한 마리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해 거처에 들른 노괴들에게 서금충을 넘겨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 곤충 요수의 성장을 촉진하는 비술이 있을 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는 천성성에 도착해 챙길 것을 챙기면 바로 동굴을 버리고 외성해로 달아날 작정이었다.

외성해의 요수들을 죽이며 요단을 보충하고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련에 매진해 결단 초기에서 벗어날 요량이었다.

법력이 거의 소모될 때까지 쾌속으로 질주하다가 다시 일반적인 비행을 하며 중계 영석을 이용해 법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법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또 다시 핏빛의 피풍의를 발동해 길을 재촉했다.

그의 속도는 놀랄 만큼 빨라서 겨우 열흘 만에 반 개월은 걸릴 거리를 이동했다.

오는 동안 몇몇 선사들과 마주치기는 했으나 기껏해야 축기기 혹은 연기기의 저계 선사들이라 개의치 않고 지나쳐왔다.

다만 천성성에 가까워질수록 선사들과의 접촉이 잦아졌다. 그 중에는 여러 명 혹은 열댓 명 정도가 무리를 이뤄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 한달 만에 한립은 처음으로 결단기 선사를 보았다. 그러나 그 선사는 한립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멀리 달아났다.

한 명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며칠 사이 두 명의 결단기 선사들이 같은 행동을 보이니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천전에 있는 동안 난성해에 무슨 변고가 생긴 건가? ’

의심이 생겼으니 이제 갈 길만 재촉할 수는 없었다. 한립은 영석을 손에 쥔 채 수면 위를 천천히 비행하면서 마침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는 한 무리의 선사들을 발견했다.

예닐곱 명 모두 축기기 선사들인 것이 딱 봐도 어떤 세력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지체 없이 속력을 높인 그가 그들에게 날아갔다.

한립을 발견한 무리에 잠시 소동이 일었지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선사의 질책으로 소동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무리를 이끄는 노인은 머리는 하얗게 세었으나 눈빛만은 또렷했다.

그는 한립을 향해 먼저 예를 취했다. 그의 공손한 자세는 꼬투리를 잡을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선배님께서는 무슨 일로 저희를 찾아주셨는지요.”

푸른빛이 사라지며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무리를 훑고는 차분히 물었다.

“너희는 어디 소속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저희는 삼선종의 선사들로 종주의 명에 따라 천성성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간을 좁힌 한립이 다시 물었다.

“천성성으로?  내 이동하는 동안 천성성으로 향하는 이들이 돌연 증가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겼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것이더냐?”

노인이 몰래 한시름 놓으며 웃음 띤 얼굴로 서둘러 답했다.

“허허! 잠시 동안 다른 이들과 교류가 없으셨나 봅니다. 며칠 전 천성성에 큰 일이 벌어져 거의 모든 종파와 문파가 천성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립이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요 며칠 폐관 수련을 하느라 듣지 못했구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이지?”

노인이 손을 모으고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께서 아시고자 하신다면 완배된 도리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지당하지요. 다만 존성대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조금 의외였으나 한립은 묘한 얼굴로 답해주었다.

“조심성이 많은 자로군. 난 묘음문의 외부 장로인 한 장로이다. 들어 보았더냐?”

노인이 한립의 신분을 듣고는 완전히 마음을 놓더니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묘음문 한 장로님이시라면 아예 관련이 없는 분이라 할 수 없지요. 본 종의 설적 선자와 귀문의 문주이신 자령 선자의 친분이 깊지 않습니까!”

상대가 갑자기 친밀한 사이라도 된 듯 말하자 한립이 실소했다. 노인의 얼굴이 살짝 굳으며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제가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요?”

“문파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아 네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구나. 다만 내가 묻는 말에만 착실히 대답한다면 이유 없이 너희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더냐.”

“절대 선배님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사실대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노인이 서둘러 해명을 하다가 싸늘해진 한립의 얼굴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최근 난성해에 엄청난 소문이 돌았습니다. 성궁의 천성쌍성이 원자신광을 대성해 폐관수련을 마쳤는데 이 기회를 틈타 그간 통제에 따르지 않던 세력을 정리하려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원래 대부분이 그저 뜬소문일 거라 여겼는데 며칠 후 성궁이 정말 크고 작은 세력들에게 명을 내린 것입니다. 모든 종파의 종주의 모든 섬의 도주들은 천성령(天星令)을 받는 대로 반드시 천성성으로 와 천성쌍성을 알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궁에 불경하다는 이유로 토벌 당할 것이라고요.”

한립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각 세력의 우두머리에게 직접 천성쌍성에게 머리를 조아리러 오라 했다고?  반발이 심할텐데 그런 명령을 내리다니.”

“그러니 말입니다. 각 세력들도 이런 명을 전달받고 영문을 몰랐다 합니다. 성궁의 세력이 최고봉일 때라면 몰라도 이미 정도와 마도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졌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립이 다시 한 번 노인의 무리를 살폈다.

“그럼 오면서 본 선사들은 모두 천성쌍성을 보러 가는 길이란 말이냐?”

노인이 주저하며 모호하게 답했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요.”

“무슨 뜻이지?”

“선배님께 아직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궁이 이번 명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도와 마도에서 돌연 연맹을 선포하고 역성맹(逆星盟)이라는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성궁을 무너트리고 난성해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 만법문 총호법인 만삼고와 현재 마도의 일인자인 육도 극성이 역성맹 공동 맹주를 자처한 것이지요.

역성맹이 창립하자마자 마도나 정도에 종속되어 있던 조직과 문파가 분분히 밑으로 들어왔고 그밖에 세력들도 호응해 열댓 명의 원영기 산수와 도주들이 세력이 가담해 장로직을 수여 받았다 들었습니다.

역성맹 역시 성궁처럼 다른 세력들에 역성령(逆星令)이라는 귀신이 새겨진 영패를 돌려 천성쌍괴를 알현하는 세력은 모두 적으로 돌려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지요. 게다가 근 시일 내에 천성성을 공격할 것이라며 모든 세력들은 그 일전을 보고 선택을 내리라 선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허천전에 가 있는 동안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일순 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무언가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역성령이라는 귀신패를 지금 지니고 있느냐?”

“본 종 역시 하나를 받았습니다만 종주님이 지니시고 있습니다. 다만 서책에 모양을 복제해 놓았는데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자꾸나!”

노인이 자신의 저물대를 뒤지더니 옥으로 만든 노란 서책을 꺼내 한립에게 바쳤다. 재빨리 서책을 받아 의식을 주입한 한립의 안색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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