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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70화 (27/2,000)

# 270

270화. 영유와 양혼목

한립은 탄식했다. 그는 금제를 부술 역량도 없었으니 바로 몸을 돌려 이번엔 북쪽 석문으로 걸어갔다.

원요가 그의 행동에 돌연 소리쳤다.

“뭐 하려고 그래요! 거기에는 강력한 진법이 걸려 있어서 일반적인 선사는 깰 수가 없다고요. 설마 그렇게 보물을 찾고 싶은 거예요?”

이미 그 앞에 다다른 한립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허천전을 나가고 싶은 거요. 어찌 더 좋은 의견이라도 있소?”

“그건 아니지만 그곳의 보물은 소녀가 먼저 점찍었다고요. 설마 보물을 강탈할 건가요?”

석문에 서서 그 안의 푸른 기운을 보던 한립이 거침없이 반박했다.

“강탈이라니, 만일 금제를 부술 능력이 되었다면 보물은 벌써 소저의 것이 되어있어야 할 것이오.”

원요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몇날 며칠을 연구한 끝에 알았냈어요. 이제 사나흘만 지나면 열 수 있어요!”

“…….”

그녀의 말에 한립은 무표정하게 몸을 돌리더니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마음이 불안해진 원요가 결국 먼저 물러났다.

“아, 그래요! 솔직히 나 혼자라면 허천전이 다시 사라지기 전에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한 선사가 결계를 깨고자 해도 내 도움이 있으면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죠.”

한립은 그저 듣고만 있을 뿐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무언가 제안이 있으니 이야기를 꺼냈을 터였다.

“하지만 함께 결계를 깨기 전에 약속받을 것이 있어요.”

“어떤 약속 말이오?”

“한 형이 결계 뒤에 있는 보물만 포기해 준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할게요.”

“보상이라면?”

한립의 감흥 없는 얼굴에 원요는 조금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년영유(万年靈乳)로 보상하면 어떻겠어요.”

순간 그의 얼굴이 달라졌다.

“한 모금이면 전 법력이 즉시 회복되어 어떤 영석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그 만년영유 말이오?”

원요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의 두 눈을 응시했다.

“바로 그거예요. 한 형이 보물을 위해 소녀를 죽이지 않을 거라 믿었기에 말하는 것이고요.”

귀무와 용암로에서 그와 함께하며 한립이 무슨 성인군자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악랄한 이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만년영유를 제외하고도 그녀에게 한립이 흡족해 할 만한 보물이 남아있었다면 절대 공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긴장이 되는지 원요의 한 손이 자연스레 허리춤 저물대 위에 올려져있었다.

비록 그의 적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를 곤란하게 할 강력할 위력의 보물 한두 개는 지니고 있었다. 이런 보물 덕에 모험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코를 긁적이며 한립이 말을 잃었고 돌연 용 머리 조각 밑의 빈 공간을 보더니 냉소했다. 원요가 한층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한 형의 생각대로예요. 제가 지닌 만년영유는 바로 이곳에서 만 년 간 쌓인 것으로 겨우 작은 병 반절을 채울 정도의 양이에요.”

“소저의 말대로 이렇게 큰 영안의 샘에서 정교한 설계가 동반된다면 영유를 모을 만하겠소.”

“그럼 이제 약속할 수 있나요?”

원요의 맑은 웃음에도 한립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다.

“이곳에 숨겨진 보물이 어떤 것인지 부터 들어야겠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가지려는 것이면 대단한 보물이겠지.”

그 말에 등줄기가 싸늘해진 원요가 순간적으로 당황해 말을 늘어놨다.

“똑같이 허천전에는 처음 왔는데 저라고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알 리가 잊나요?  너무 의심이 많으신 거 아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던 원요가 한립의 얼굴이 가면 갈수록 서늘해지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말을 바꾸었다.

“아, 알겠어요! 솔직히 말하죠. 확실히 어떤 보물이 있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만년영유보다는 못한 보물이라고요. 그래도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거래를 제안한 것이에요. 결계 안에는 제련되지 않은 양혼목(養魂木) 한 토막이 들어있어요.”

둘만 남은 상황에 한립이 돌변해 무슨 짓이라도 하지는 않을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립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삼대 신목(神木) 중 하나라는, 몸에 지니고 다니면 서서히 혼백과 원신을 강화시켜 준다는 그 양혼목 말이오?”

원요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원신 강화가 아니라 혼백을 담아 이지를 상실하지 않도록 해주는 효과지만요.”

한립은 석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양혼목에다 만년영유라니…….”

한립이 원요를 바라보며 유유히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런 곳에 영안의 샘물이 있다 했더니 양혼목을 배양하기 위해서였군. 만년영유도 갖고 싶지만 양혼목이란 것에도 관심이 생겼소.”

순식간에 원요의 얼굴이 굳으며 한기를 품었다. 한립이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리 오랜 세월 배양을 한 양혼목이 그리 작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오. 내가 원하는 것은 뿌리가 있는 밑동이니 원 소저는 나머지를 지니면 될 것이오.”

원요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으나 아직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겨우 밑동을 원한다고요?”

“당연히 방금 원 소저가 말한 만년영유와 함께 말이오.”

그제야 원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헤헤, 역시 셈이 빠르시네요. 양혼목의 밑동이라면 분명 수많은 문파에서 엄청난 금액을 들여 매입하려 하겠죠.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녀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오히려 한립이 거래 조건을 추가하자 한결 믿음이 갔던 것이다. 한립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자신의 의도를 설명해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럼 어서 결계를 깨요. 일단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말할게요.”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었으나 분명한 재촉이었다. 그녀는 한립보다 더 다급해 보였다. 한립이 우유 빛 연못을 가리키며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영안의 샘은 어찌하지 않을 작정이오?”

“농담이죠?  허천전 주인이 이미 오래 전 강력한 금제를 걸어 내전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깰 능력이 되었으면 벌써 허천정도 얻고 이곳 결계도 해결했을 거예요.”

그 말에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짓던 그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아무 보물이나 보면 다 들고 내빼려 하다니. 너무 욕심을 부리면 화를 당한다는 말을 생각하며 한립은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더는 지체 없이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영유를 받고 진법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 듣지요.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못해도 2, 3일이면 반드시 결계를 깰 수 있을 거요.”

원요가 그의 말에 웃음을 짓는데 얼굴에서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 * *

이틀 후, 허천전 수십 리 밖의 해수면 위에서 하얀 빛이 번뜩였다.

이어 남녀 한 쌍이 허공에 몸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빛이 사라지고 도처를 경계하더니 주변에 다른 수도자가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한시름을 놓았다.

당연히 이 두 사람은 방금 밀실의 결계를 깨고 허천전 밖으로 나온 한립과 원요였다. 원요가 허천전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은 아직 허천전 내부에 있는 것 같아요. 정해진 시간 전에는 빠져 나오지 못하겠죠.”

“원영기 노괴들 역시 우리처럼 보물 결계를 깨고 밖으로 나올 수도 있소.”

한립의 말에도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푸른 실을 꺼내 들었다.

“걱정 말래도요. 보물 결계를 깨고 전송되는 지역은 무작위라고요. 허천전 바로 근처일 수도 있지만 수백 리 밖에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해요. 아무리 그들이라도 그렇게 넓은 범위를 탐색할 수는 없다고요.”

“그럼 다행이오.”

원요가 요염한 눈길로 그를 떠보았다.

“한 형은 그 노괴들에게 밉보인 일이라도 있나 봅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건 원 소저가 걱정할 일은 아닌 듯 하오. 그럼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소.”

그녀를 향해 포권을 한 한립이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빛줄기가 되어 사라졌다. 전혀 미련이 없는 태도였다.

원요는 그런 한립의 뒷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한참 후 그녀의 손에 검은 빛의 나무토막이 나타났다. 나무토막은 까맣고 울퉁불퉁한 것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나무를 내려다보던 원요가 감상에 젖어 중얼거렸다.

“연 언니 조금만 참아. 이 양혼목으로 장혼갑(藏魂匣)을 제련해 혼백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게.”

그녀의 몸이 검은 기운으로 변해 가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해수면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같은 시각, 허천전 내전 5층의 제단에서는 몇 사람이 어두운 얼굴로 모여 있었다.

구겨진 얼굴의 인물들은 극음을 포함한 정도와 마도 원영기 수사들이었고 만호자 역시 서늘한 얼굴로 함께하고 있었다.

보천단에 대해 어떤 협약을 맺은 것인지 그들은 더 이상 다투지 않았다. 만천명이 퍼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 내전의 3층부터 5층까지를 샅샅이 뒤지며 깨부순 꼭두각시와 결계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그들을 못 찾아내다니! 극음! 실종 된 세 명 중 두 명이 관련되어 있는데 정말 네가 시켜 보물을 들고 달아나게 한 것이 아니란 말이더냐?”

극음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흥! 만 문주, 내 몇 번을 설명합니까! 내 손자는 이미 화를 입어 세상을 떴다고 말입니다. 내가 친히 심어놓은 비술로 알아낸 것이니 확실합니다. 천강조 결계가 막지만 않았어도 손자가 죽는 순간 바로 알아챘을 것을! 그랬다면 다른 두 놈이 그 기회를 틈타 보물을 들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극음이 돌연 만호자를 보며 음산히 말을 이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만 형입니다. 어찌 만 형이 모두를 끌어낸 틈에 이런 일이 생겼단 말입니까! 그 후배란 놈의 내력도 실토하지 않는 것이 둘이 미리 작당을 했을 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만호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거침없이 반박했다

“웃기는 소리. 정말 허천정을 그 놈이 들고 튀었다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모두가 나를 쫓아 몸을 피했을 뿐인데 그 틈에 보물이 사라질 지 어떻게 알아. 너야 말로 오축 녀석이 죽었다 말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누가 알겠느냐?  속으로는 희희낙락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당신…….”

그의 말에 극음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끼던 손자가 죽어 시체도 찾을 수 없는데 도리어 자신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극음으로서는 억울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동시에 노기로 가득 찬 그가 다시 언쟁을 시작하려 하자 옆에 서있던 청 노인이 나서서 그들을 말렸다.

“만 형과 오 형은 지금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그 세 명이 정말 보물을 가져갔는지 또 우리 중 누구와 연관되어 있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놈이 죽었든 살아있든 잡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만 형을 쫓아 3층 입구까지 단숨에 날아갔으니 그들이 아무리 기민하게 움직였다 해도 우리를 지나 그 아래로는 내려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미 우리가 합심해 3층 입구에 여러 금제를 걸어놓았으니 이 기회를 틈타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밀실을 통해 밖으로 전송되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겨우 결단 초기 선사들 셋이 연합한다 해도 3층 이상의 어떤 밀실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니까요.”

노인이 논리 정연하게 현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만천명이 냉랭한 얼굴로 따졌다.

“허나 3층부터 5층까지 전부 뒤졌건만 그 녀석들의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지 않나!”

사실 정도 쪽 3인은 지금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들이 전음을 통해 상의해 본 결과 마도 쪽 세 노괴가 미리 짜놓은 극본대로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만호자가 모두를 유인한 사이 마도 후배들을 시켜 보물을 강탈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도 선사들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마도인들이 몰래 달아나지 못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극음이나 청 노인도 이런 상황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자신들도 어찌할 바가 없었다. 그저 어서 한립과 현골 등을 찾아내 허천정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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