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67화 (24/2,000)
  • # 267

    267화. 벽사신뢰와 수라성화

    이어서 빙룡이 다시 한 번 푸른 거검을 덮쳐왔다.

    그때 한립은 무언가를 감지했다.

    상대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는 말에서 오히려 벽사신뢰를 경계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한립이 이 점을 깊이 헤아려 보기도 전에 먼저 준비해둔 법술을 뿜어냈다.

    거검에 푸른 기운이 닿더니 모습이 모호해 지며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거검으로 분리된 것이다. 바로 청원검결의 검영분광술이었다.

    두 개의 거검에 동시에 굵직한 전뢰를 발산해 남색 빙룡과 현골을 향해 날렸다.

    “……!”

    현골은 놀란 듯했다.

    한립이 아직도 이렇게 강한 벽사신뢰를 발산할 수 있다는 것도 의외였고 거검을 두 개로 변하게 만드는 검영분광술 역시 꺼림칙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란 눈빛도 잠시 다시 차분한 얼굴로 돌아온 현골은 또다시 빛 덩이를 쳐서 남색 화염을 분사했다.

    화염이 반짝거리더니 삼각형의 얼음 방패로 변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꽈과광!

    은은한 금빛 전뢰와 얼음 방패 표면의 남색 한기가 충돌해 어느 한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에 한립은 당황하기는커녕 안심했다.

    벽사신뢰가 건람빙염의 한기를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으나 건람빙염 역시 벽사신뢰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더 많이 강한 위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한립의 손이 저물대를 스치자 피처럼 붉은 피풍의가 그의 몸에 걸쳐졌다.

    아직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으나 최후의 수단을 준비한 것이다. 이어 지체할 시간 없이 두 손을 합장한 그가 신중한 얼굴로 두 팔을 벌렸다.

    파치치칙!

    전류가 흐르는 기이한 소리가 그의 두 손 사이에서 들려오며 은은한 금빛을 내는 구체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전뢰가 번뜩이고 있었다.

    이 전뢰 덩어리는 비록 수 촌 크기에 불과했으나 한립이 체내의 청죽봉운검을 발동하자 점차 크기를 키워 순식간에 한 자 크기까지 자라났다.

    건람빙염을 조종해 두 개의 거검을 막고 있던 현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자신이 두 눈으로 보아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큰 전뢰 덩어리를 생성하려면 도대체 금뢰죽 비검이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현골은 조급해졌다.

    그가 돌변해 한립을 죽이려 한 것은 방금 얻은 건람빙염의 위력이면 상대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믿어서였다.

    비록 방금 손에 넣어 수라성화로 융합하지는 못했지만 본연의 현혼음화와 벽사신뢰를 이용해 간신히 조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벽사신뢰가 건람빙염의 한기에 대항할 수 있고 한립이 금뢰죽을 이용해 벽사신뢰를 뿜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한립을 이곳에서 처리하고자 마음을 굳혔다.

    그는 어림잡아 한립이 허천전의 난관을 통과하며 벽사신뢰의 대부분을 이미 소진했고 운이 좋아 약간 남았다 하더라도 자신을 막을 만큼은 안 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금뢰죽은 절대 흔히 구해서 제련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한립이 지니고 있다고 예상한 금뢰죽의 수량만은 이미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벽사신뢰는 사용하면 할수록 줄어들었고 법보가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다시 쌓을 수가 없었다. 그 기회를 주지 않고 상대를 멸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극음에 대한 원한을 당장 갚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일단 건람빙염을 손에 넣으니 야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수라성화을 대성하면 난성해 전체를 주름잡을 수 있는데 원수 갚는 일을 조금 미룬다고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금뢰죽을 갖고 있는 한립이 우선으로 제거해야 할 화근으로 떠오른 것이다. 어쨌든 악령을 부리는 사악한 법술을 익히는 귀도선사들에게 벽사신뢰만 한 천적은 없었다.

    또한 이미 만호자와 이야기를 끝냈으니 그가 없어도 극음을 처리하는 일은 간단했다. 한립이 방금 두 개의 거검에서 강한 위력의 전뢰를 뿜었을 때만해도 이미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런데 저렇게 커다란 금색 구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니 머리가 멍해진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 결단 초기 선사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금뢰죽 법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현골은 후회가 되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도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이냐!’

    이 의문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현골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금색 뇌전 덩어리는 착실하게 크기를 키워 이미 수 자 크기로 변해 있었다. 더불어 들려오는 소리와 빛이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다.

    귀청을 울리는 천둥번개 소리에 노마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정신을 차렸다. 저 뇌전 덩어리에 비하면 방금 벽사신뢰는 새 발의 피였다.

    현골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래 좋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금뢰죽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귀도를 걷는 선사들에겐 큰 장애물이 될 터! 오늘 귀도의 성화라 불리는 수라성화의 위력을 보여주마.”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라도 세 힘을 합쳐 전설 속의 수라성화를 흉내 내야 했다.

    이번 일전으로 한립의 벽사신뢰를 격파한다면 엄청난 후환을 제거하게 된다. 단시간이나마 억지로 수라성화를 구현하는 비술은 당연히 위험했고 자신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중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다른 수단을 이용해 천천히 한립의 신뢰를 소모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두 손을 풍차처럼 회전하며 빛 덩이를 향해 여러 법술을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빛 덩이가 살아 꿈틀거렸다. 갇혀 있던 남색 화염이 회전을 하니 현혼음화와 검은 전뢰는 그 반대 반향으로 회전했다.

    잠시 후 빛 덩이가 눈부신 빛을 쏟아냈고 이어서 무수히 많은 회백색 꽃들이 피어나 한기를 품고 한립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하늘을 다 가릴 듯한 엄청난 물량 공세에 한립이 멈칫했다. 수라성화라는 것은 처음 들어보지만 건람빙염보다 더 강한 위력을 낼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한립은 전뢰 덩어리에 벽사신뢰를 주입하는 것을 멈추고 재빨리 각종 법술을 펼쳤다. 은은한 금빛이 형태가 변해 금색 그물이 되어 그를 덮었고 이어 무수히 많은 회백색 꽃들이 그물에 부딪혀 왔다.

    꽈과광! 펑펑펑펑.

    맹렬히 엉킨 두 기운이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한립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전류가 흐르는 그물이 회백색 꽃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꽃 모양을 한 불꽃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흉흉한 기세로 타올랐던 것이다.

    회백색 불길 속에 갇힌 꼴이었다. 지금 달아나려 마음먹어도 방법이 없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회백색 불꽃이 차츰차츰 금빛 전뢰를 먹어 치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아주 느린 속도였지만 한립을 보호하는 그물이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반대로 회백색 불길도 기세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현골은 그 모습에 한결 마음이 편해져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만일 원영기 선사가 갇힌다 해도 원기를 크게 상하고서야 간신히 벗어날 정도였으니 수라성화에 갇힌 상대가 빠져나올 수 없다 믿은 것이다.

    그가 이후 수라성화 제련에 성공하고 전성기 때의 수행을 회복하면 난성해 선사 절반을 쓸어버리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현골은 이미 한립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장미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벽사신뢰로 이뤄진 금색 그물이 줄어들며 금방이라도 그를 보호하지 못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두운 얼굴의 한립은 무표정하게 두 손을 펼치고 있었다.

    두 손에서 금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그물에 융합되었다.

    금색 뇌전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기세가 꺾이고 있던 그물의 빛을 왕성하게 만들며 원래 형태로 회복시킬 뿐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손가락 굵기의 뇌전을 튀겼다.

    이제 겉을 감싼 불길을 충분히 이겨내는 것은 물론이고 반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현골이 화들짝 놀라 거의 펄쩍 뛰어오를 뻔 했다.

    이제야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아무리 많아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수라성화가 벽사신뢰보다 높은 등급의 기운이라 해도 수량으로 압도하면 승산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현골은 마치 귀신을 보는 눈빛으로 한립을 쳐다보았다.

    저 작은 체구에 얼마나 많은 금뢰죽 법보를 숨겨 놓고 있는 것인지 투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궁무진하다 이건가? ’

    당황스런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자 현골은 혀를 깨물었다. 입속에서 피비린내가 나며 정신이 맑아 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황당한 상상을 지워냈다.

    벽사신뢰가 무궁무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그저 상대의 금뢰죽 수량을 너무 낮게 잡은 것뿐이다.

    아무리 많아도 이렇게 연달아 벽사신뢰를 내뿜었으니 남은 수량이 얼마 없을 것이다. 이 위기만 이겨내면 저 많은 금뢰죽 법보는 전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눈에 탐욕이 어리며 기운이 샘솟았다. 현골은 흉흉한 시선으로 한립을 노려본 뒤 고개를 들어 허공에 뜬 빛 덩이를 올려 보았다.

    상대가 벽사신뢰를 남겨 놓았듯 자신도 위험한 비술의 후환이 두려워 반절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이제 원래의 수라성화로는 한립을 멸할 수 없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남은 여력을 모두 쏟아 단숨에 죽일 일만 남았다. 깊게 숨을 내쉰 현골이 다시 법술을 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립의 뒷골이 서늘했다.

    현골의 예상대로였다. 계속 벽사신뢰를 남발해 건람빙염과 수라성화를 막아 보유한 것의 팔, 구 성은 소진해 버렸다. 상대가 또 수라성화로 공격해 내면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당장 불길을 뚫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불길이라도 몸에 닿지 못한다면 아무 해도 입히지 못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이 남은 벽사신뢰를 전부 끌어 모아 방출했다. 동시에 팔뚝만큼 굵은 뇌전이 두 줄기가 손을 빠져 나와 그물로 향했다.

    금빛이 요동을 치며 규모를 키우다가 폭발해 금색 기운을 내뿜었다. 무수히 많은 금빛 뇌전이 순식간에 회백색 불길을 멀리 밀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립의 몸이 번뜩이며 사라져 수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의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그 순간 황천길을 건너는 것이다. 수라성화를 벗어난 한립의 붉은 피풍의가 바람 없이 흩날렸다.

    고보가 발동하기 전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결심을 굳힌 그는 한 호흡 만에 돌계단으로 돌진해 청죽봉운검으로 입구의 결계를 뚫고 줄행랑을 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골이 한립의 그런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법력을 쥐어짜 빛 덩이의 제련 속도를 높였다.

    빛 덩이가 완전히 불타오르며 회백색의 화염으로 변했다. 마치 이미 수라성화가 완성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구 중심에 아직도 작은 남색 불꽃이 남아 난동을 부리고 있어 불안정했다. 현골은 미미하게 얼굴을 구겼으나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립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상황이었고 누가 뭐래도 그렇게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부르르 몸을 떤 회백색 불길이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러 튀어나갈 기세였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회백색 불길 안에 남아있던 남색 빛이 돌연 깜빡 거리더니 놀랍게도 폭발해 버린 것이다.

    펑퍼퍼퍼펑.

    동시에 불길 자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울룩불룩 요동을 쳤다. 현골이 놀라 다급히 회백색 불길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잊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의 회백색 불길은 그가 직접 제련한 것이 아니라 간신히 조종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길이 안정을 잃었으니 그의 남은 법력으로는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