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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65화 (2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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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5화. 오축의 죽음

    만호자가 흥분한 기색으로 오색의 단약을 잡아채더니 거침없이 만천명의 육체를 힘껏 던졌다.

    육체가 결계 벽 쪽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 받아주는 이가 없다면 생사가 불분명해질 것이 확실했다. 이를 본 만천명의 원영은 혼비백산해 육체를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만호자 역시 금빛이 되어 돌계단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실 만천명의 육체를 그냥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만법문의 주인이었으니 정말 죽여 버리면 그날부터 정도와 마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또한 만법문 풍파자는 그조차 어쩌지 못할 강자였는데 그에게 평생 쫓길 일을 저지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재 마도와 정도 양측은 성궁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힘을 합할 때였으니 그저 보천단을 건진 것만으로 충분했다.

    뜻밖에도 만호자가 보천단을 획득해 허천전을 벗어나려하자 천오자와 농부 선사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들은 당장 만호자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극음과 청역 거사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는 마지못해 추격에 합류했다.

    다만 검은 구름으로 변해 한립과 오축 등의 머리 위를 지나며 서늘하게 분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축! 한립과 이곳에 꼼짝 말고 있거라. 본 사조가 돌아오기 전까지 요시들을 남기고 가마.”

    두 마리의 천도요시가 오축의 양측에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극음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만호자의 금빛을 쫓아 노괴들이 돌계단 입구의 결계를 뚫고 나갔고 몸을 되찾은 만천명 역시 이를 갈며 사라졌다.

    오축은 보천단이 만천명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이미 현골과의 다툼을 멈추었다.

    그도 바보 천치는 아니라서 현골이 자신보다 강하며 현음대법에 대한 이해도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 상대는 자신이 공격을 가할 때마다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그것을 무력화시켰다.

    오축은 시간이 갈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천도요시 두 마리를 통제하게 되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요시 한 마리만 해도 결단 중기 선사와 비슷하니 현골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쩔 수 없으리란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이번 기회를 틈타 현골에게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노괴들이 한려대를 떠나자 오축의 음산한 웃음이 짙어졌다.

    현골은 돌계단 입구를 바라보다가 악심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오축을 발견하고는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 뜻밖에도 한립에게 말을 걸었다.

    “한립, 이놈이 극음의 유일한 후계라니 만일 내가 죽인다면 분명 괴로워하겠지?”

    한립은 흠칫 놀랐다가 바로 침착한 얼굴로 그의 물음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오축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한립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그 곁에 있던 요시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한립 네 놈이 저 자와 내통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아까 옥패가 네 쪽으로 날아간 것이 수상하다 여겼다. 지금 옥패를 내놓겠느냐 아니면 사조께서 돌아오시면 처분을 받을 테냐!”

    자신을 위협해 보물을 빼앗으려는 오축의 말에 한립은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이용가치가 없어졌기에 아무 구실이나 붙여서 보물을 빼앗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자연히 한립의 한쪽 입 꼬리가 들어 올려졌다. 그의 몸 속 비검들이 그의 의식을 느끼고 당장이라도 빠져 나오고 싶어 난동을 부렸다.

    그가 나서기도 전에 현골이 먼저 움직였다. 현골의 소매에서 푸른 뱀이 날아올라 아무도 없는 허공을 덮쳤다.

    펑.

    이어 녹색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는데 자세히 보니 천도요시 중 한 마리였다. 현골이 입을 비틀며 비아냥거렸다.

    “천도요시라, 극음 놈이 제련하며 용을 썼겠구나!”

    그가 쉼 없이 손을 움직여 수결을 맺으니 녹색 뱀이 신속히 천도요시 위를 맴돌았다. 현골의 손짓에 따라 천도요시의 몸에 녹색 연꽃이 피어났고 거대한 꽃잎이 단번에 그것을 감싸버렸다.

    오축이 서둘러 법결을 맺어 천도요시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연꽃에 휩싸인 요수 강시는 완전히 그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온 몸에 식은땀이 솟아난 오축이 다른 천도요시를 불러들이려 할 때 현골의 몸이 번뜩이며 그 앞에 나타났다.

    “……!”

    당황한 오축이 온몸의 법력을 끌어올려 현음마기를 분출하는 동시에 입에서 검은 단검을 쏘아 현골에게 날려 보냈다.

    “흥!”

    현골이 비웃는 사이 그의 열 손가락이 무섭게 날카로워졌고 청록색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이어 거침없이 손을 휘두르니 검은 단검이 스스로 현골의 손에 잡혀 들어왔다.

    믿지 못할 광경에 창백해진 오축이 단검을 소환하려 애썼으나 현골의 귀신같은 손톱 사이에서 이미 검은 기운을 잃고 말았다.

    “컥!”

    이와 동시에 본명 법보를 잃은 오축이 핏기 없는 얼굴로 피를 토해냈다.

    “이건 말이 안 돼! 네 이놈…….”

    오축이 말을 맺기도 전에 이미 현골의 날카로운 손톱이 다가왔다.

    대경실색한 오축이 할 말도 잊고는 현음마기를 극성으로 끌어오려 조급히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쓸 만한 보물을 찾아 꺼내려는 듯했다.

    그러나 흉악하기만 하던 손톱이 어두운 녹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 색으로 변하더니 아무 것도 없다는 듯 두꺼운 현음마기를 뚫고 오축의 배를 헤집었다.

    “히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배에 박힌 검은 손톱을 내려다보던 오축은 입을 달싹거리기도 전에 녹색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바닥엔 검은 비단 손수건과 반지 그리고 저물대만이 처량하게 남아 있었다.

    통제하는 주인의 의식이 사라지자 현골의 뒤에서 돌연 천도요시가 나타났다. 강시의 두 눈에는 아무런 빛이 없었다. 마치 이미 생명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한립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늙은 마두가 현음대법의 약점을 알고 있다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오축이 현음마기로 상대를 하니 손쉽게 죽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의도로 지금 오축을 죽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경솔한 움직임이 극음의 경계심을 자극할 수도 있었고 당장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그도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계심이 높아진 한립은 손에 오색의 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상대가 무슨 짓을 하려 하면 그도 가만히 당해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이때 현골이 오축이 떨어뜨린 물건을 눈으로만 훑고는 웃는 낱으로 한립을 돌아보았다.

    “어서 다른 혈옥지주를 꺼내지 않고 멍하니 뭐하느냐?  녀석들이 만호자를 쫓아갔으나 금세 돌아올 지도 모를 일 아니냐. 설마 허천정의 보물이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한립이 속으로는 흠칫 놀랐으나 겉으로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혈옥지주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해 왔는데 어찌 알아낸 거야!’

    “다른 혈옥지주라니요?  혈옥지주는 이미 성궁 장로에 의해 당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상대가 떠본다고 바로 사실을 실토할 그가 아니었다.

    “흥! 너와 쓸데없이 입씨름할 시간이 없으니 말해주마. 일전에 허천정을 취할 생각으로 한 쌍의 혈옥지주를 찾아 극현이란 놈에게 기르게 한 적이 있다. 그러다 놈들의 암습을 당해 이런 처지가 되었지. 네가 그 서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혈옥지주 역시 극현 놈에게 얻은 거겠지!

    알지 모르겠으나 혈옥지주는 매우 특수한 체질이라 많은 알을 낳아도 단 두 개만 부화에 성공한다. 그리고 반드시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루고 두 마리가 함께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지. 노부 역시 직접 그것들을 기르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것은 당시 혈옥지주를 맡아 기르던 극현도 못 알아챘으니 흔히 알려진 정보라 할 수는 없다. 네 거미의 성장으로 보아 분명 다른 한 마리가 더 있을 터. 어서 꺼내 보거라.”

    현골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놓고는 한립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한립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현골의 말을 들어보니 다채로운 빛에 휩싸여 있던 해골은 극현이 분명한 듯했다. 그렇다면 월국 황제는 극현이랑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한립이 의문을 뒤로 하고 입을 열었다.

    “혈옥지주가 한 마리 더 있다고 치죠. 그렇다 해도 내가 허천정을 얻는 것을 꼭 도울 이유는 없을 텐데요. 게다가 허천정을 끌어올리는 엄청난 소음과 진동에 원영기 선사들이 돌아오면 같이 죽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까?  또한 방금 전에는 구렁이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냈다지만 지금은 그저 혈옥지주 뿐인데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평정을 유지했다. 허천정이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흥분을 가라앉힌 것이다. 탐욕에 휩싸여 목숨을 잃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탈출이었다.

    생각을 마친 그는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현골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날아오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현골이 벌써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돌연 한 마디를 내뱉어 그를 붙들었다.

    “원영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진 않겠지?  보천단은 결단기 선사의 선천적 영근을 가다듬어 원영을 이루기 쉽게 만들어 주는 효능이 있다.”

    잠시 침묵하던 한립이 몸을 돌렸다.

    “영근을 가다듬는다니 내가 세 살 먹은 어린애인 줄 아십니까. 어찌 그런 영약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얼굴엔 불신이 가득했다.

    현골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얼굴로 차분히 입을 열었다.

    “헤헤,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거라. 이전에 성궁의 장로급 선사를 납치해 그 자의 혼백을 고문해 알아낸 정보다. 다만 외부에 알려진 대로 보천단이 원영기 선사의 수명과 법력을 늘게 해준다는 것은 전부 거짓이다. 성궁의 전대 성주 중 하나가 보천단 한 알을 복용해 보았다더군.

    넌 이미 구곡영삼이 있는데 거기에 보천단의 효과까지 받는다면 원영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겠지. 만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번 허천전은 삼백 년 후에나 나타나는데 그때 보천단을 구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보천단이 완전히 작용을 하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은 걸리기 때문이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야.”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립의 마음을 읽은 듯 현골이 미소를 지었다.

    “허천정을 끌어올리는 기척은 걱정할 것 없다. 이 한려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선사의 의식으로는 감지할 수가 없다. 상고시대부터 명성이 자자한 천강조(天罡罩) 결계 덕분이지. 또한 혈옥지주 한 마리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버리거라. 노부가 극음의 사부였는데 그가 하는 것을 못할 이유가 무어냐?”

    그가 바로 입을 벌려 주먹만 한 불빛을 제단 위의 거미 시체에 분사했다. 삽시간에 불빛이 연녹색 안개가 되어 거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동강이 난 시체가 저절로 붙더니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한립은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정말 수도계에 기인기사가 많았더니 어찌 이리 순식간에 시체를 강시로 제련하는 법술이 있단 말인가!

    “내 강시를 제련하는 술법이 어떠냐?  이 거미 강시는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짧고 능력이 떨어지지만 네 혈옥지주와 힘을 합치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보물을 찾으면 보천단은 단 한 알도 필요 없으니 모두 네게 넘길 것이고 허천정 속의 고보도 반절을 나누어 주겠다. 허나 허천정 자체만은 반드시 내가 가질 것이다. 거래를 하겠느냐?”

    현골이 거미 강시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고 있던 한립이 거침없이 답했다.

    “흥!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일단 허천정을 찾고 나면 안면몰수하고 나를 죽이지 않을 거라 어찌 확신하죠?”

    그의 의문이 현골을 오히려 기쁘게 만들었다.

    말투는 저래도 한립도 합작을 할 마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만 거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시도일 뿐!

    현골이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답했다.

    “너무 겸손한 것도 문제로구나. 정말 너와 겨룬다면 승산은 반반인데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인데 언제 다른 놈들이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랑 엉켜 있을 성 싶으냐?  네가 보물을 찾는 것에 협조만 해준다면 당장 구곡영삼 제련법을 넘겨 성의를 보이마.”

    현골은 말을 끝내자마자 지체 없이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리고 오래된 빛깔의 서책을 한립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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