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262화. 변신하는 보물들
시간을 지체 하는 동안 뒤쪽에 있던 만호자와 천오자 등도 드디어 도착했다. 그리고 모두가 화염 늑대를 둘러싸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주변 선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염 늑대는 이 틈을 타 원영기 노괴들을 피해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그곳은 마침 현골, 한립 등이 우두커니 서 있는 곳이었다.
눈을 부릅뜬 한립은 이미 늑대의 정체를 예상하고 있었다. 머리 둘 달린 화염 늑대는 분명 허천정에 들어있다는 보물 중 하나가 변신한 모습으로 허천정이 끌려 올라오기 전에 그 안에서 도망친 것이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변신을 하며 푸른 손의 공격에 방어막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아 엄청나게 진귀한 보물인 듯 했다.
그런 보물이 뜻밖에도 결단기 선사들을 향해 날아들자 한립은 생각할 것도 없이 저물대에서 하얀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자 하얀 물건은 빛이 돌더니 예스러운 바구니로 변했다.
그러나 한립이 바구니 고보를 발동하기도 전에 멀리서 검은 기운의 구렁이가 날아와 먼저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늑대를 휘감아 순식간에 끌어당겼다.
“……!”
한립이 속으로 욕을 하며 한쪽을 보니 오축이 득의양양하게 법술을 펼쳐 구렁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순간 한립이 주저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아직 오축 손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빼앗아? ’
하지만 이런 행동이 극음 사조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일은 크게 틀어질 것이다. 한립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현골이 먼저 움직였다.
현골의 눈에 한기가 스치더니 입에서 녹색 빛을 토해냈다. 녹색 빛은 엄청나게 커져 짙은 색의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내 화염 늑대와 그것을 휘감은 오축의 구렁이 모두 가둬버렸다.
오축은 예상치도 못한 현골의 행동에 열이 받아 소리쳤다.
“감히 본 소주의 보물을 강탈해!”
“헛소리 말거라. 이 보물을 네가 제련했더냐? 네 것이 아닌데 어찌 빼앗겼다 말하더냐.”
그 말에 오축의 얼굴이 터져 나갈 듯 붉어졌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다물고 검은 구렁이에 집중했다.
오축도 상대가 만호자를 등에 업고 있기에 자신의 협박이 먹히지 않음을 자각한 것이다. 현골이 히죽 웃으며 그물을 가리켰다.
동시에 그물에서 빛이 치솟으며 굵어지더니 늑대를 조이기 시작했다.
오축의 구렁이와 현골의 그물 속에서 이중으로 속박 당한 늑대는 여전히 눈부신 빛을 발하며 멀쩡한 얼굴로 버텨냈다.
허공에서 서로 일전(一戰)을 벌이던 노괴들은 보물이 뜻밖에 결단기 선사 쪽으로 달아난 것을 보고는 얼굴색이 달라졌다.
만천명 등 정도인들은 서둘러 몸을 빼 보물을 쫓으려 했으나 마도인들은 조급한 기색 없이 그들을 막아섰다.
어쨌든 아래쪽에 있는 결단기 선사들은 모두 마도인들 이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호자와 극음은 특히 자신과 연관된 인물이 보물을 획득할 거라 믿고 있었다.
극음은 오축에게 준 수많은 보물들과 명성이 자자한 마공인 현음대법을 떠올렸다. 또한 현골의 진짜 신분을 아는 만호자 역시 그에게 믿음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청역 거사는 지금 상황이 조금 아쉬운 눈치였으나 그래도 천오자를 막아선 채 끼어들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가장 할 일이 없는 이는 한립이었다. 하지만 그는 온몸이 얼어붙어 긴장하고 있었다.
방금 깊이 생각지도 않고 꺼낸 고보가 어찌 얻은 것인지 떠오른 것이다. 이 바구니 고보는 현골을 봉인한 곳을 지키던 자에게 빼앗은 것이었다.
그런데 극음 앞에서 이것을 꺼내다니 자신이 현골을 달아나게 한 주범이라 자백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보물을 갖고 다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어찌 극음에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곧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극음의 시선이 분명 바구니를 스쳤는데 놀랍게도 전혀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립은 몰래 환호했다. 바구니 고보는 극음이 그 자에게 내린 물건이 아니며 아예 이런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이 확실해졌다.
다시 냉정을 찾은 한립이 오축과 실랑이를 벌이는 현골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만약 극음에게 이 사실을 들켰다면 너 혼자만 빠져나가게 두진 않았을 것이니!’
콰콰콱!
한립이 운수대통을 한 것인지 현골이 운이 없었던 것인지 때마침 구덩이에서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 전해졌다.
허천전에 경험이 있는 원영기 선사들이 동작을 멈추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섯 개의 빛줄기가 구덩이로 날아갔다.
허천정이 구덩이 입구에 거의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원영기 선사들도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한기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법술을 펼치고 보물을 꺼내 체온을 유지했다.
극음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정도인들을 물리치고 허천정을 꺼내 몫을 나눌 예정이었다.
허천정이 입구에 가까워지자 그 안의 보물들이 스스로 빠져 나와 날아다닐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누가 보물을 차지하는 가는 모두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누가 보물을 획득하든 다시 토해내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이렇게 그의 치밀한 계획은 풍비박산이 났다.
극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몫을 늘릴까 미친 듯이 고민을 시작했다.
쉭! 쉭!
그때 귀를 자극하는 파공성이 들리며 노란 불빛과 하얀 불빛이 구덩이의 남색 화염 속에서 튕겨 나왔다.
가까이에 등장한 보물들에 여섯 노괴가 거의 동시에 출격했다.
그 중 만천명과 극음 그리고 청역이 노란 불빛을 노렸는데 결과적으로 만천명이 만들어낸 보라색 화룡이 노란 불빛을 삼켰고 동시에 그의 입에서 보라색 구슬 두 개가 뿜어져 나왔다.
극음이 작은 구슬을 보더니 기겁했다.
”천라진뢰(天羅眞雷)!”
극음과 청역이 감히 법보를 이용해 구슬을 막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들이 움찔한 사이 보라색 화룡은 입에 문 노란 빛을 품고는 고개를 돌려 만천명에게 돌아가 버렸다.
만천명이 신이 나 그것을 받아 드니 곧 노란 빛이 원형을 드러냈다. 그것은 사각형 옥패로 윗면에 기이한 무늬와 빛이 자르르한 것이 육안으로 보아도 좋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극음과 청역을 놀라게 한 보라색 구슬들은 그대로 뻗어나가 아주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보라색 구슬의 초라한 위력과 만천명이 든 옥패를 번갈아 본 극음와 청역의 얼굴이 퍼레졌다.
극음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정도의 이름 난 만 문주가 가짜 천라진뢰로 상대를 속이다니! 이런 치졸한!”
청역 거사 역시 화가 나는지 만천명을 노려봤다. 하지만 만천명은 그들의 분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했다.
“난성해에서 오랜 세월 이름을 날린 두 선사가 가짜도 분간하지 못한 것이 어찌 제 탓이겠습니까? 천라진뢰는 목숨이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물건입니다. 법력을 깎아 만들어낸 것을 어찌 함부로 낭비하겠습니까. 두 분이 진짜 위력을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그가 손을 털자 보라색 빛이 번뜩이며 네모난 옥패가 사라지고 아까 본 보라색 구슬과 똑같이 생긴 것이 나타났다.
그러자 극음과 청역의 안색이 변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천라진뢰는 수도자의 원영에 직접 해를 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었으니 자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만호자 역시 탁천마공의 엄청난 방어력을 이용해 검고 마른 노인과 천오자를 밀어내고 하얀 빛을 수중에 넣었다.
동전처럼 생긴 고대의 화폐가 된 하얀 빛은 특이하기 그지없었다.
극음이 그것을 확인하고 더욱 안색이 안 좋아졌다. 그 순간 청역 거사가 놀라며 소리쳤다.
“엇!”
그들이 신경 쓰지 않는 동안 어느새 한립이 노란색과 붉은 색이 섞인 옥을 쥐고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옥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늑대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분명 방금 날아다니던 화염 늑대가 변한 보물이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는 오축과 현골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극음 사조 역시 의문스런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보물이 오축과 현골이 아니라 한립의 손에 들린 것에 꽤나 놀란 눈치였다.
보물을 손에 넣은 한립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원영기 노괴들이 허공에서 난전을 벌일 때 현골과 오축이 제어하던 화염 늑대가 의외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늑대는 낮게 포효하더니 두 머리가 합쳐지며 뿔이 달린 거대한 은색 늑대로 변신했다. 그러더니 늑대의 뿔에서 눈부신 은광이 분출되었다.
빛은 겨우 반 자 크기였으나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금은 구렁이의 몸통을 뚫고 그물에 닿아 터져나갔다.
은색 빛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녹색 그물이 폭발에 휩싸이자 회백색 기체로 변해 허공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오축과 현골이 동시에 얼이 나갔다.
오축은 서둘러 법술을 펼쳐 검은 구렁이의 몸에 검은 빛을 뿜어 구멍을 줄였고 현골은 놀란 눈으로 거대한 은색 늑대를 주시하다가 입에서 청록색 소검을 꺼냈다.
칼날은 겨우 수촌 길이였고 칼자루도 없었지만 서늘한 빛을 발하는 것이 비범해 보였다. 한립도 놀라 자기도 모르게 칼날을 자세히 살폈다.
만일 자신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소도는 금뢰죽으로 만든 화살의 변형이었다. 단지 법술로 모습을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친 거 아냐? ’
극음이 허공에 떠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낸 현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극음이 예전에 그를 암습할 때 사용했던 화살이었던 것이다.
비록 실제 모습을 감추는 법술이 강력해도 금뢰죽을 여러 번 제련해본 한립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은색 늑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
한립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심스러웠다. 그러던 찰나 은색 늑대가 맹렬히 몸을 축소해 작은 아기 늑대로 변해 은빛을 반짝이더니 구렁이의 상처를 통과해 빠져 나왔다.
현골은 즉시 녹색 소도을 던져 공격을 가했다.
펑.
소도와 아기 늑대가 충돌하고는 동시에 튕겨나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늑대가 날아가는 방향에 바로 한립이 서있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는 모습에 그는 당장 바구니 고보를 발동했다. 동시에 바구니 고보로는 충분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저물대에 넣어둔 오색 고리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오색의 빛을 뿜어낸 고리들이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크학!
오색 빛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허공에 떠 있던 늑대가 네 발과 목이 고리에 휘감겨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은색 늑대는 속절없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얀 빛으로 변한 바구니 고보가 날아가 단숨에 늑대를 품고는 한립에게 돌아왔다.
이미 녹색 소도를 회수한 현골과 검은 비단 수건을 꺼낸 오축이 동시에 굳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오축이 살벌한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돌아간 것이다. 오축은 보물이 변한 짐승쯤이야 현음대법을 이용해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현골이 나서서 빼앗으려 들더니 결국에는 한립의 수중에 떨어져 버려 그를 화나게 했다.
현골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비록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돌아왔으나 은색 늑대를 제압한 고리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립은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들뜬 마음으로 바구니를 살폈다.
다섯 개의 고리는 단단히 조이며 늑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바구니에서 하얀 기운이 맴돌며 늑대가 머리를 내밀었다.
한립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뻗어 아기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손에서 푸른빛을 뿜어 늑대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