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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59화 (16/2,000)
  • # 259

    259화. 금사잠과 천청화

    제단 옆에 세 선사가 서있었는데 만천명 등 정도인들이었다.

    그들도 분명 마도인들이 도착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오직 금사잠 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만호자가 눈에서 한기를 뿜으며 바로 금빛 두 줄기를 뿜어냈다.

    만천명과 천오자가 이와 동시에 냉랭히 입을 열었다.

    “한교(寒蛟)!”

    “리구(離龜)!”

    동시에 푸른빛과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와 만호자의 공격과 얽혔다.

    “이런!”

    만호자가 안색이 달라져서 손을 휘두르니 금빛 두 줄기가 소도로 변해 그의 손에 떨어졌다. 청색과 남색이 그 뒤를 쫓지 않고 제자리를 선회하며 원형으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빛의 정체는 수십 장 길이의 하얀 교룡과 반투명한 등딱지를 가진 기이한 거북이었다.

    만호자의 얼굴이 굳었다. 뒤에서 그를 쫓아 올라온 청역 거사가 놀라 소리쳤다.

    “풍파자의 한교와 천연자의 리구라니!”

    극음 역시 두 영수의 모습을 보고는 분노를 표출했다.

    “어쩐지 그리 거만하게 굴더라니. 두 노괴에게 영수를 빌려왔었군! 듣자니 두 노괴가 애지중지하는 영수들이라 했는데 어찌 된 일이지…….”

    만호자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흥! 만천명은 파풍자의 조카이고 천오자는 천연자의 동문 사제인데 그깟 영수를 빌려온 게 대수겠느냐.”

    청역 거사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렵게 되었습니다. 저 두 짐승이 필사적으로 덤빈다면 우리 셋이라도 잠시 동안은 어찌할 수가 없을 텐데요.”

    “청역, 극음! 너희의 청극조(靑棘鳥)와 천도시(天都尸)는 두었다 뭐에 쓰려 그러느냐! 비록 저 두 마리 짐승들의 상대는 안 되겠지만 잠시 동안은 버틸 수 있을 터. 어차피 만천명 등을 쓰러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니 저 금사잠을 죽일 시간만 벌면 된다.”

    만호자의 고함에도 청 노인과 극음은 주저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본 만호자가 짜증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 영수도 내보낼 테니 걱정들 말거라! 너희 두 놈과 함께 움직이면 성가시기 짝이 없구나.”

    그제야 청역과 극음의 표정이 한결 나아져 동의했다.

    하지만 청역 거사와 극음이 영수와 요수를 풀기도 전에 제단에 문제가 생겼다. 금색 빛 속에 있던 청록색 누에 중 한 마리가 몸을 떨더니 빛을 잃은 것이다.

    펑.

    동시에 누에가 뿜어낸 금실도 끊어져 버렸다.

    “안 돼!”

    옆에서 온 신경을 집중하던 정도인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 하기도 전에 다른 두 마리의 금사잠들도 동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금광이 사라지고 그들이 뿜어내던 금실도 끊어져 나간 것이다. 그 광경에 크게 낙심했는지 만천명이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휙.

    마지막 세 마리는 여전히 버티려 했으나 구덩이의 엄청난 흡입력에 도리어 빨려 들어가 버렸다.

    쿠쿠쿵.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구덩이의 남색 빛도 훨씬 어두워졌고 한기도 급감했다.

    정도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막 영수와 요수를 내보내 격돌하려던 청역이나 극음도 두 눈을 부릅뜨고 복잡한 심경을 표출했다.

    “하하! 하하핫!…….”

    그때 만호자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통쾌해 죽겠다는 모습이었다.

    이에 극음과 청음도 정신이 들었는지 남의 집 불구경하는 얼굴로 정도인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모욕감에 만천명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허천정을 얻기 위해 이렇게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시간을 허비했건만 결국 마도인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만천명은 화가 치솟아 참지 못하고 서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큼…….”

    “…….”

    그 즉시 극음과 청 노인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상대는 원영 중기의 선사였기에 아무리 정도와 마도로 다른 길을 가더라도 쉽게 원한을 살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만호자는 아랑곳없이 마주 노려보며 호전적으로 외쳤다.

    “만 문주께서 저와 겨뤄보실 생각이신지요?  안 그래도 유학자 가문의 삼대 신공이라는 천라진공의 위력이 궁금하던 차인데 잘 됐습니다.”

    만천명이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다가 결국에는 이성을 되찾았다.

    “갑시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며 제단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제단에 남은 영기를 잃은 금사잠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하얀 교룡만을 불러들였다.

    천오자도 좋지 못한 표정으로 거북이를 회수해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나마 농부 차림 선사가 눈빛은 서늘했지만 나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쌍방이 경계심을 높이며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만호자는 잠시 정도인들을 도발하는 언사를 삼가고, 그저 냉소를 하며 만천명 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청역 거사가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입을 열었다.

    “저들이 다시 돌아오면 성가시게 될 테니 청극조를 입구로 보내 놓겠습니다.”

    극음 역시 음산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 저는 천도시 두 마리를 보내 함께 매복하도록 하지요. 저들이 암습을 하려 한다면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청역의 소매 속에서 주먹만 한 푸른빛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극음 역시 무언가를 내던지는 시늉을 했다.

    검은 연기가 치솟으며 비린내가 번지더니 거대한 요수형 강시 두 마리가 모두의 앞에 드러났다.

    극음이 입구를 가리켰다.

    “가거라.”

    동시에 요수의 몸이 모호해 지며 제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전에 요수에 맞서 싸웠던 한립은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제단 위에서 몸을 떨고 있는 누에를 본 그는 호기심에 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그가 막 제단으로 다가가려는데 다른 선사가 같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곁눈질로 보니 뜻밖에도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현골이었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만호자 역시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금사잠은 어찌 보아도 희귀한 곤충 요수인데 어찌 버려두고 간 게지?”

    현골이 제단에 먼저 올라 금사잠을 살피더니 답했다.

    “이미 천청화를 복용시켜 강제로 힘을 강화한 영수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허천정을 조금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이 꼴이 되는 게지요.”

    만호자가 현골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금사잠 따위로 허천정을 끌어올렸나 했더니 천청화의 힘을 빌려서였군! 만천명이 갖은 노력 끝에 허탕을 친 거야, 큭큭”

    극음이 뒷짐을 진 채 다가왔다.

    “만천명이 천청화까지 발견 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나 아쉽게도 오랜 세월 단 한 송이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완배가 이 꽃을 아는 것이 더욱 신기합니다.”

    그의 시선이 현골을 향해 있었다. 현골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저 여러 경전을 두루 읽으며 익힌 것입니다. 선배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학식일 뿐이지요.”

    “그런가?”

    극음은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의혹을 품고 만호자의 기색을 살폈다. 하지만 따져 묻지는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러 가버렸다.

    구덩이의 남색 빛이 그의 얼굴에 비추어 기이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옆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한립은 그저 현골의 참을성과 연기에 감탄할 뿐이었다.

    ‘선배님이라…….’

    놀랍게도 극음을 앞에 두고 그리 차분히 자신을 낮추다니 무서운 노마가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곳에는 오축을 제외하면 호락호락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수백 년 이상을 살아온 늙은 여우들로 간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한립이 울적해 하고 있던 찰나 청역 거사가 입을 열었다.

    “기왕 폐물이 되었다니 거슬리지 않게 없애 버리지요.”

    노인이 바로 손바닥을 뒤집으니 눈부신 남색 구체가 떠올랐고 당장이라도 죽어가는 거대 누에들을 없앨 듯했다.

    한립이 세 마리 거대 누에를 훑어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완배가 금사잠에 관심이 가니 제가 처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노인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것들을 원한다고?  어차피 힘도 쓰지 못하는데다 곧 죽을 것인데?”

    “줄곧 기이한 곤충 요수에 흥미가 많아서 이미 죽은 영수라 해도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선배님께서 제 바람을 이루어 주시길 청합니다.”

    한립의 말에 노인이 바로 답하지 않고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립은 상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그저 어리둥절해졌다.

    “허! 노부도 산수 출신이라 그 마음을 알지. 문파에 소속된 결단기 선사에 비해 항상 궁핍할 수밖에 없을 게야.”

    노인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그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한립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겉으론 속마음을 들켜 어색해 하는 얼굴로 연달아 감사를 표했다.

    이후 그는 빈 영수대를 찾아 세 마리 금사잠들을 챙겼다. 보아하니 버려질 당시 만천명이 주인을 각인 시키는 금제를 거두었는지 반항하지 않고 영수대로 들어왔다.

    극음이 한립을 부르며 흥분을 드러냈다.

    “한립 쓸 데 없는 일은 그만하고 어서 혈옥지주를 꺼내 보거라. 일단 몇 급 영수인지 보아야겠다.”

    그 말에 한립이 할 수 없이 다가갔다. 극음은 자비로운 얼굴로 그를 달랬다.

    “걱정 말거라. 허천정만 얻는다면 네게도 서운하지 않게 보상을 내릴 것이다.”

    마치 그가 전력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립은 오히려 오한이 들 뿐이었다.

    한립은 불편한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극음 옆에 있는 구덩이 안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눈에 들어온 모습은 꽤나 이상했다.

    구덩이는 그가 상상하던 것만큼 깊지 않았고 겨우 삼십 장 정도 깊이에 불과했다. 결단기 선사인 그의 눈에도 그 아래에 남색 불길이 타오르고 있고 화염이 반짝이는 검은 물체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파악되었다.

    저 검은 물체가 모두가 입을 모아 찬양하는 허천정인 듯 했다.

    그러나 구덩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백서패가 아니었다면 이미 그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을 것이다. 남색 화염은 분명 타오르고 있었는데 오히려 엄청난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이 화염을 오래 쳐다볼수록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 한립은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바르게 섰다.

    극음 사조가 그의 옆에 서서 역시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떻더냐?  건람빙염(乾藍氷焰)은 극도로 차가운 불길로 결단기 선사는 물론이고 원영기 늙은이들조차 전혀 건드릴 수가 없다. 저 불길에 휩싸이면 원영기 선사도 목숨을 잃게 되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세계의 물질이 아니라고 하던데 상고 시대 선사들은 어찌 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원영기 선사도? ’

    한립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놀라다가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천정은 일찍이 누가 들고 사라졌을 것이다.

    “건람빙염이 선사들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절대 태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금사잠이 토해낸 금빛 실이라던가 혈옥지주의 거미줄 그리고 내 화망 등과 같은 특수한 것들이지. 그럼 이제 네 혈옥지주를 불러 내거라.”

    극음 뿐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한립은 주저하지 않고 영수대를 꺼내 하얀 빛을 풀어놓았다.

    빛이 사라지자 혈옥지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미는 눈앞에 수많은 낯선 선사들을 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만호자, 극음 등은 이를 드러내는 영수의 행동에도 마치 보물을 보는 시선으로 그것을 살피고 있었다.

    만호자가 거미를 보고는 의아함을 표했다.

    “이렇게 크다니, 사급 최정상에 이른 요수구나. 당장이라도 오급이 될 수 있으니 가능성이 있겠어!”

    “헤헤! 제 제자의 혈옥지주가 만황이종(蠻荒異種)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허천정을 끌어내는 것은 최고라 할 수 있지요.”

    극음의 말에 청 노인이 맞장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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