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54화 (11/2,000)

# 254

254화. 괴이한 검은 갑옷

한립의 낮은 휘파람 소리에 날벌레 떼가 튀어나가더니 순식간에 원형 보호막 하단을 점거했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엔 벌레가 갉아 먹은 직경 네 자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짙푸른 빛이 크게 증가하며 구멍을 신속히 메꾸기 시작했다.

한립은 지체 없이 빛줄기처럼 쏘아져 나가 남은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입구가 닫혔지만 한립은 수십 종의 고보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던 그는 서둘러 의식을 개방해 고보의 영력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지며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알아챘다.

결계에 의해 의식이 통제 당해서 고보의 영력 크기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직 직감과 경험에 근거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눈에 의지해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괴도?  안 돼. 딱 봐도 공격성 무기야.’

‘영패?  별로. 괴수 형상이 조각된 거로 보아 이전에 보았던 그림 족자처럼 영수의 혼백을 쓸 수 있는 물건일 거야.’

‘북?  도무지 뭐에 쓰이는지 알 수가 없잖아.’

각각의 고보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선택에서 제외할 것들을 정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단 세 개의 고보가 남았다.

첫 번째는 황금색 타원형 거울이었고 두 번째는 다섯 가지 색의 고리가 연결된 물건이었으며 세 번째는 암홍색 피풍의였다.

세 가지 물건을 추린 데에는 그만의 조건이 있었다.

수도계에서 거울 종류 법보는 거의 모두 특수한 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에 골랐고, 다섯 개의 고리는 아마 오행의 속성을 모두 지녔을 것 같았다. 어떤 기능이 있을지는 몰라도 위력이 클 것 같았다.

마지막 피풍의는…….

그의 시선이 피풍의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일단 피풍의의 구성은 독특해서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쪽은 은사를 섬세하게 짜서 만들었는데 반해 외피는 알 수 없는 깃털로 덮여 있었다. 깃털은 보호막 안에서 암홍색 핏빛을 뿜어내 기이한 인상을 주었다.

피풍의 법보는 처음 보는 터라 호기심도 생겼다.

게다가 그의 예상에 따르면 방어 및 기척을 숨기는 효능을 가질 확률이 높은 법기였다. 강력한 적이 무수히 많은 내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능이었다.

세 고보를 눈앞에 둔 한립의 얼굴에 드물게 주저하는 기색이 스쳤다. 이 중 어느 것을 건드리더라도 즉시 결계에 의해 다른 곳으로 전송될 테니 하나만 골라야 했던 것이다.

그의 시선이 세 고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한립은 원래 우유부단하진 않았으나 언제든 손을 대면 얻을 수 있는 고보가 이렇게 많다 보니 오히려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한참 후 숨을 고른 그가 평정을 되찾았다.

생각 끝에 그는 무언가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이 방법을 떠올리고는 그의 심장이 다 두근거렸을 정도였다.

진법과 금제에 대한 그의 상식에 따르면 지금 그가 들어와 있는 것은 무언가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고계 금제였다.

금제를 통제할 방법을 찾거나 법력으로 금제를 부수지 않으면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조건을 충족하면 전송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두 가지 방법은 그에겐 불가능했다.

일단 금제를 통제하는 것은 전문적은 진법사를 데려와 오래 연구하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었다. 법력을 통해 금제에 대항하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당연히 시도할 가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원영기 노괴가 다녀가고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겨우 결단 초기의 그가 성공할 리 없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담긴 진법 심득 속에 신여음이 남겨놓은 이론이 떠올랐다. 잠시 동안이지만 공간을 통제하는 금제를 무력화 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론대로라면 고보 하나쯤을 더 획득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방법을 시행하려는 선사는 자신의 영력을 철저히 감추고 공중의 영력과의 완전한 단절을 이루어야 했다.

이런 가정을 제시한 신여음 조차 원영기 선사라도 이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그저 허황된 이론이란 점을 기재해 두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그냥 법력에 의지해 금제를 깨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스스로의 영력을 감추어 다른 이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은 가능했지만 천지영기와의 연계를 아예 끊는다는 것은 자력으로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글귀를 발견한 한립은 당시 동굴 거처에서 작은 실험을 했었다. 천지영기를 갉아먹는 서금충을 이용해 잠시 동안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을 먹어 치우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험은 성공했고 별다른 필요가 없었기에 잊고 지냈었다.

하지만 이렇게 써먹을 날이 오니 그의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성공할 확률이 높았고 실패해도 기껏해야 고보 한 개를 얻고 이동되는 것이다. 마음을 정한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웽웽웽웽.

한 손을 들어 영수대 전부를 개방하니 수만 마리 딱정벌레들이 구름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서금충들을 신경 쓰지 않고 세 가지 고보의 거리와 방향을 가늠해 목표를 정했다.

일단 암홍색 피풍의 쪽으로 향했다. 피풍의와 일장 거리를 남겨두고 미미한 영력 파동을 감지한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돌연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를 바짝 쫓던 서금충들이 일사분란 하게 움직여 그를 덮어 버렸고 한립이 내는 기이한 소리에 맞춰 낮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소리가 높아질수록 서금충들의 입도 빨리 움직여댔다.

그 안에서 한립은 침묵하기 시작했다. 이어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한립의 몸에 검은 반점들이 번진 것이다. 검은 빛은 반짝거리며 점차 커져나갔다.

그 결과 여러 작은 반점들이 합쳐져 거대한 검은 점을 만들어갔고 그것들이 합쳐져 더 거대한 검은 기운을 만들어냈다.

마치 검은 국화가 꽃봉오리를 터트리듯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검은 빛이 갑옷처럼 한립과 서금충을 모두 감쌌다.

그 순간, 검은 빛으로 완전히 변한 손이 피풍의를 잡더니 바로 몸을 돌려 오색 고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피풍의를 잡자마자 한립 주위에서 남색 빛이 크게 증가해 한립을 감싸려 들었지만 검은 갑옷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하지만 남색 빛도 물러서지 않고 점점 기운을 키워 달려들었다. 검은 갑옷도 끊임없는 공격에 점차 부들부들 떨렸다. 마음은 급했지만 한립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겨우 오륙 장 거리가 한 시진은 걸은 듯 멀게 느껴졌으나 결국에는 오색 고리 앞에 당도했다.

“……!”

흥분을 가라앉힌 그가 검은 빛이 감도는 손가락을 뻗어 고리들을 착실히 챙겼다.

쫘자작.

오색 고리를 손에 넣자 한립의 검은 갑옷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격렬한 소리를 내며 찢겨나갔다.

한립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남색 빛이 그를 덮여왔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기이한 느낌이 돌면서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눈부신 빛이 사라지자 그는 크지 않은 석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흔들며 겨우 정신을 차린 한립은 몸을 바로 하고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사방을 살펴보았다.

일순간 그의 마음이 편해졌다. 도처에 다른 선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금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한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서금충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 허공에 떠오르니 금은색의 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한립은 그것들을 살필 겨를도 없이 손에 쥔 두 가지 고보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여러 번 살피긴 했으나 이제 자신의 물건이 되었으니 더욱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고보를 만지작거리자 피풍의의 하늘하늘한 재질에서 옅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오색 고리는 무척 서늘한 것이 얼음장 같았다.

고보를 보던 그는 석실로 시선을 옮겼다. 이곳은 가운데 있는 전송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면에 네모난 통로가 어딘가로 뚫려 있을 뿐이었다.

네모난 통로는 세 번째 관문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대연결이 있는데다 극음이 잠시 빌려준 파라주를 차고 있으니 통과하기 어려울 거라 여겨지진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은 다시 고보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면 적기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일단 피풍의는 넣어두고 다섯 개가 하나를 이루는 고리만 손에 남겨두었다.

오색 고리에는 알 수 없는 문양과 부호가 새겨져 있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립이 하나를 들어 올려 흔들어보니 빛이 발산되며 은은한 울림이 느껴졌다.

눈을 빛낸 그가 오색 고리에 천천히 기운을 불어넣어 보았다. 잠시 후, 눈을 깜빡인 그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빛을 번뜩이더니 수중의 고리가 돌연 사라졌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그가 고개를 들자 다섯 개의 고리가 머리 꼭대기에서 떠 있었는데 번뜩이며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이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썹을 꿈틀한 그가 손을 들더니 푸른 법결을 내뿜었다. 고리들이 빠르게 돌더니 돌연 다른 쪽 벽을 들이 박으며 나타났다.

펑! 펑! 펑펑!

고리가 반짝일 때마다 의외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고보는 아닌 듯 했다.

한립이 고리를 불러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거대한 구리 환이 되어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를 하는 고보인 것이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한립이 소리쳤다.

“와라!”

훼액.

동시에 거대 고리가 하강해 다섯 층의 올가미처럼 그를 가두었다. 고리들의 회전이 점차 가속화되었고 다섯 빛깔의 보호막이 서로 모호해지며 완전히 그를 감쌌다.

한립이 옅은 미소를 드러냈다.

이 고보가 방어용이란 것은 분명해졌으니 위력에 대해서는 실전에서 알아가 보아야 할 듯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으로 보호막을 가리켰다. 순간 보호막이 다섯 개로 갈라지며 원래의 고리 형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 번쩍이던 고보는 다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립이 차분히 손바닥을 펴자 오색의 찬란한 빛이 사라지고 손바닥만 한 고리들이 나타났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술이 쏟아져 나왔고 다섯 고리가 돌연 사라져 그의 사지와 목에 채워졌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바로 주술을 외워 풀려나지 않았다면 쓰러졌을 것이다.

한립은 방금 고리의 옥죔에 불편함이 느껴진 듯 목을 문지르며 희색을 드러냈다. 이것으로 암습을 하면 기척 없이 상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이 의식이 강대한 이도 고리가 가두는 순간을 겨우 감지를 했으니 다른 이들은 아예 반응할 시간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결단 후기 선사는 물론이고 원영기 선사라 해도 방비를 하지 않는다면 당할 수였다.

물론 고리가 얼마나 상대를 잡고 있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만족스런 얼굴로 고리를 저물대에 넣은 그가 다시 암홍색 피풍의를 꺼냈다.

한립은 그저 피풍의를 입고 영력을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핏빛이 치솟더니 열기가 느껴지며 순식간에 영력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그가 재빨리 영력을 차단하자 피풍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

어리둥절한 얼굴로 피풍의를 벗은 한립이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잠시 후 다시 옷을 걸친 그가 천천히 영력을 주입해 보았다.

역시나 급속도로 영력을 빼앗기긴 했으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피풍의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영력을 주입한 피풍의는 외피의 털들이 하나하나 붉고 길게 자라나며 피풍의 전부를 핏빛 보호막 안으로 감싸 안았다. 두 손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