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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50화 (7/2,000)

# 250

250화. 우연한 만남

한립은 지체 없이 철화의 떼가 있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검은 사막은 너무 뜨거워서 발밑은 물론이고 공기도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백서패와 벽화의보를 동시에 운용하는 데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아무래도 어제 지나온 길보다 더욱 열기가 거세진 것이 분명했다.

삼십여 장을 더 걸어간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저물대에서 보드라운 구슬을 꺼냈다. 영력을 주입하자 구슬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동시에 백서패와 한빙주를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법력이 소모되므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상책이었다.

한립은 철화의 떼와 오십 장 거리를 남겨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저었다.

매복해 있는 철화의 떼는 주변의 검은 모래와 쉽게 분간이 안 되었던 것이다. 강력한 의식을 지닌 선사도 감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영기의 파동이 미미했다.

보아하니 의식을 최대로 펼쳐 철화의 떼를 피해 돌아가는 방식은 틀린 것 같았다. 이제는 서금충을 실험해 볼 때였다.

한립의 신중한 눈빛아래 영수대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가 두 손을 이용해 수결을 맺으며 영수대를 개방했다.

웽웽웽웽…….

무수히 많은 서금충 떼가 미친 듯 날아올라 금색과 은색의 빛 무리를 이루니 기이한 광경이었다.

“가라.”

눈앞의 장관을 보니 더욱 자신감이 붙은 그가 먼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량으로 따져 보아도 방금 본 개미 떼를 압도했다.

웽.

빛 무리가 신속히 한쪽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부웅.

하지만 그들이 땅을 덮치기도 전에 검은 개미 떼가 치솟아 그들을 맞이했다.

두 날벌레 떼가 몇 차례 충돌하더니 대량의 검은 화염이 쏟아졌다. 그러나 도리어 개미 떼의 검은 빛만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금은 빛이 그들을 뒤덮었다.

철화의 떼가 서금충의 위세를 알아보고 초반부터 검은 화염으로 맞선 것이다. 아마 다른 곤충 요수들이었다면 진작 타버려 엄청난 전력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금충은 검은 화염 속에서도 멀쩡했고 도리어 영력을 품은 검은 화염을 먹어 치워 철화의 무리를 덮친 것이다.

두 빛깔의 날벌레들이 다시 충돌하더니 한데 얽혀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대량의 날벌레 시체가 공중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대부분이 검은 색이었고 금은색은 극히 드물었다.

서금충들이 순식간에 우위를 점한 것이다. 이제 상대를 몰살할 일만 남아 보였다.

개미 떼도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남은 철화의들이 한데 모여 돌연 검은 화살로 만들었다. 이어서 서금충들의 포위를 뚫고 쾌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촤아.

그때 눈부신 푸른 검이 솟아오르더니 화살대를 베어나갔다. 검은 화살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속도가 크게 감소한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서금충들은 벌써 검은 화살을 감싸 안고 있었다.

딱정벌레들의 식탐에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살이 사라져 갔다. 그제야 한립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땅에 떨어진 날벌레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서금충 시체는 그리 많지 않아서 겨우 수 백 마리 정도였다. 보아하니 서금충으로 철화의들을 꺾는 데는 압도적인 수량이 한 몫을 한 것 같았다. 어쨌든 수량에서 열 배 차이가 나버리니 우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립은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땅에 깔린 날벌레들을 훑어본 그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훼액.

동시에 서금충들이 아래로 급 하강해 날벌레 시체를 전부 삼키고는 영수대로 돌아왔다. 한립은 영수대를 잘 챙겨 검은 사막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미 검은 사막 깊은 곳까지 이른 한립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허공에선 그가 이곳에 온 뒤로 가장 큰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만 마리의 서금충과 철화의 떼가 서로를 물어뜯어 죽여 나갔다. 영력을 잃은 날벌레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리니 검은 사막 위에 한 층의 얇은 막을 형성할 정도였다.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한립의 눈에는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겨우 하루 만에 거의 만 마리에 이르는 서금충을 잃은 것이다.

철화의 떼를 처리하고 일정 거리를 지나다 보면 반드시 다시 한 무리의 철화의 떼가 나타났고 그 수량은 삼천 마리에서 만 마리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지금 마주친 철화의 무리는 무려 오륙 만 마리나 되었다. 아마 이번 전투로 서금충들은 칠천 마리 이상은 죽어나갈 것이 분명했다.

이러니 한립은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서금충들을 한 번에 잃었으니 이번에 입은 손실을 언제 보충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검은 무리가 결국엔 퇴각했다. 수천 마리가 멀리 달아나기 시작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딱정벌레 뱃속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이제 그들을 쫓을 마음도 없었다. 머리 위에 떠있는 한빙주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걸음을 재촉했다.

아마 이곳이 검은 사막의 중심이었기에 이런 대규모 철화의 떼와 만난 것일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열기를 막느라 발동한 보물들 때문에 법력을 다 써버릴 것이다.

한립이 한참을 전진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우측의 어느 지점을 응시했다. 이후 그는 의아한 얼굴로 근처의 작은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에 오른 그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시선 끝에 한 무리의 철화의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수량만 해도 거의 만 마리에 달했다. 그들은 미친 듯이 남색 보호막을 공격했는데 푸른빛이 요동을 치는 것이 불안정한 상태처럼 보였다.

아마 보호막 안의 선사는 간신히 버티는 중인 듯했다. 한립의 얼굴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철화의가 날카로운 장검으로 변해 남색 보호막을 찔러 들어갔다.

‘죽겠군.’

한립이 이런 예상을 하고 있을 때, 보호막 안에서 청록색 구체가 뿜어져 나왔다.

푸학.

구체는 검은 검과 격돌하더니 주먹만 한 청록색 불꽃으로 변해 유유히 타올랐다. 이 불길이 신속하게 검을 불사르자 거의 백 마리의 철화의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립은 깜짝 놀라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청록색 구체는 어떤 물건이기에 저리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불 속성을 타고난 곤충 요수를 불로 공격해 죽이다니 의아했다.

정말 수도계에는 진귀하고 기이한 물건이 많아 자신의 식견은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녹색 불꽃의 출현이 개미떼들을 더욱 자극했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흩어져 불꽃을 피했다가 다시 남색 보호막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다시 무기화된 철화의들을 향해 두 번째 청록색 구체가 날아갔다.

그때 그가 한립의 존재를 발견했는지 뜻밖에도 철화의의 공세를 받으며 점차 그가 서있는 언덕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챈 한립은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자신은 남의 보물을 빼앗을 계획도 없고 낯선 사람을 위해 서금충을 낭비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기이한 검은 사막에서 서금충의 가치는 어떤 보물보다 높았다. 그가 두 걸음 정도를 나아갔는데 왠지 익숙한 여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저 원요에요! 반드시 보상할 터이니 저 좀 도와주세요!”

초조한 기색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원요? ’

그 말에 한립의 걸음이 멈추었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렇게 거대한 용암로에서 하필 아는 여 선사를 마주치다니.’

한립은 할 말을 잃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안면이 있는 이를 죽도록 방치할 만큼 냉혈한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었으니 이리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거의 빛을 잃어가는 남색 보호막을 본 그는 결국 영수대에 손을 가져갔다.

무수히 많은 딱정벌레들이 날아올라 원요 곁의 개미 떼들과 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여인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천 여 마리의 서금충을 잃고 만 마리의 철화의 무리를 완전히 해치웠다. 원요는 너무 놀라 한참 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립이 서금충들을 거둬들일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남색 보호막을 없앴다. 그녀는 극심한 법력 소모로 얼굴이 창백했고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검은 복면이나 남장은 어디 갔는지 얇은 의복이 부드러운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긴장과 열기로 땀을 흘리니 그 자태가 얼마나 유혹적이겠는가!

한립은 일순 멍해졌다가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원요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음을 띤 얼굴로 예를 취했다.

한립은 그녀를 보며 담담히 답했다.

“별 것 아니오. 선사께서 위험을 벗어났으니 그럼 이만.”

말을 마친 그는 정말 추호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려 가버리려 했다. 이런 그의 행동에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던 원요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한 선사, 어찌 이러셔요. 아직 생명을 구해주신 보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울상을 짓자 보는 사람이 다 마음이 아픈 듯 했다. 하지만 한립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서늘히 말했다.

“보답은 되었소. 허나 한번 위기에서 구해줄 수는 있어도 원 소저를 아예 책임지고 지켜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그럼 무사하시오.”

한립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써 십여 장을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철화의는 둘째 치고 검은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기에도 법력이 모자란 그녀였다. 그러니 겨우 붙잡은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립을 애타게 불렀지만 한립은 마치 못 들은 사람마냥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인의 부탁에도 강철 같은 심장으로 외면하는 그를 본 원요는 다급하게 한립이 예상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만요! 이번 관문을 통과하도록 도와주신다면 기필코 그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절대 헛되이 법력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말에 다시 걸음을 멈춘 한립은 마치 주저하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보상이라면?”

그가 흥미를 보이자 원요가 지체 없이 조건을 제시했다.

“제게 남은 청화뢰(靑火雷)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방금 본 그 녹색 구체 말이오?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 했소만.”

기왕 여인을 구해냈으니 다시 버리고 갈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도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 방금 보인 태도는 일을 쉽게 풀려는 방식에 불과했다.

이제 그녀가 먼저 도와 달라 청을 했으니 그의 목적대로 된 셈이었다. 원요 역시 이런 점을 분명이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가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앞으로 갈 길도 머니 그저 상대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청화뢰는 마도 청양문(靑陽門)의 비전으로 만든 불꽃 지뢰입니다. 한 알을 만드는데도 엄청난 수량의 희귀한 재료가 필요하고 시일도 오래 걸리지요. 그 위력은 원영기 선사의 원양지화에 맞먹을 정도인데 한 선사께 남은 세 알을 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하얀 손이 뒤집어 지니 녹색 구체가 든 옥함이 들려있었다.

차분히 왔던 길을 돌아온 한립이 세 알의 구체를 보았다.

그는 약간 조소가 어린 말투로 말했다.

“청화뢰가 대단한 보물인 것은 맞으나 겨우 이것으로 위험을 감수할 수야 없소. 선사를 데려가면 소모하는 법력 또한 배가 될 텐데 원 선사라면 이런 거래를 하겠소?”

원요의 옥 같은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고운 미소를 보였다.

“한 형 어떤 조건을 원하시는지 그냥 말씀을 해주시지요. 소녀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저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허리를 비틀며 풍만한 가슴을 모았다. 두 눈에 어린 몽롱한 시선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한립은 그녀의 유혹에 정말 뜻밖이라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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