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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246화 (3/2,000)

# 246

246화. 탁천마공

극음은 아주 직설적으로 단숨에 수많은 조건을 늘어놓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이번엔 현골의 전음이 끼어들었다.

“녀석아 역도 놈의 문하를 택하거라. 그래야 기회를 보아 그 놈을 처리할 수 있다. 네가 지닌 구곡영삼의 단약 제련법은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게야. 그렇지 않으면…….”

그의 말은 협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립은 몰래 눈에 쌍심지를 켰다.

세 사람이 모두 각자의 계략이 있을 테니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엄청난 화를 불러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문하에 들 것이라면 학사 노인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비록 물려받을 물건은 별로 없다지만 이상한 원한관계에 얽혀있지 않으니 괜히 남의 일에 끼어서 인생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립은 극음이 약속한 단약, 미녀 등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자령 선자를 납치한다니?  정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골의 전음을 듣고 나니 어쩔 수 없이 고민이 됐다. 원영을 해 수도의 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이니 현골이 지닌 약방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한립은 아예 고개를 숙이고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

잠시 후 결국 고개를 든 그는 청 노인은 실망하고 극음은 크게 기뻐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극음도의 위명을 오랫동안 선망해 왔습니다. 앞으로 극음 선배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지! 본 사조가 널 일단 기명제자로 받아주고 극음도로 돌아가 정식으로 제자가 되는 의식을 치르자꾸나. 이 현음환(玄陰環)은 노부가 얻은 한 벌로 된 고보 중 하나인데 직전 제자들은 모두 하나씩 지니는 것이다. 증표 겸 방어구로 미리 내릴 테니 잘 보관하거라!”

극음 사조는 그대로 손가락에서 회백색 반지를 빼서 한립에게 내리며 단숨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한립은 조금 놀란 듯 그것을 받아들였다. 반지는 예스러운 문양과 부호가 새겨져 푸른빛의 은은한 광택이 나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희색을 띠려던 한립의 귓가에 현골의 조소가 들려왔다.

“현음환?  저 역도 놈이 아주 노부의 존재를 깨끗이 지우려 별 짓을 다하는 구나. 분명 노부가 내린 음양환(陰陽環) 고보인데 이름조차 바꿔버리다니! 흥! 너도 좋아할 것 하나 없다. 그 음기가 도는 반지로 방어도 하고 적을 공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극음 놈이 지닌 양기가 도는 반지와 상극이라 나중에 그 반지를 이용해 역도 놈을 공격한다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한립은 겉으로는 공손히 극음 사조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속으로는 길게 탄식했다.

이렇게 심계가 깊은 극음 곁에 머무르려면 항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주 사소한 부주의에도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현골이 정말 극음을 처리할 방도가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극음도로 가 노괴의 제자가 될 판이 아닌가!

게다가 자신이 말 잘 듣는 제자 노릇을 자청한다 해도 극음이 그리 놔둘 지는 아무도 몰랐다. 바로 안면을 몰수하고 사단을 낼 수도 있었다.

스스로 화근을 짊어진 꼴이었다.

이제 정말 눈치를 봐서 행동해야 할 때였다. 모두 그의 수행이 노괴들에 못 미치는 탓이었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악을 부리는 것이야 수도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런 무력감은 결단기 선사가 된 후 거의 잊었던 감정이었다.

정말 무슨 마가 낀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그저 호기심으로 비밀 지도를 따라왔을 뿐인데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원영기 노괴들의 눈에 들어 복잡한 일에 휘말린 것이다.

한립은 이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는 답답했지만 겉으로는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연기를 했다.

그가 현음환을 받아들고 자신에게 공손하게 나오자 극음도 꽤 흡족해 했다. 그는 노인과 몇 마디 나누고 한립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

시간이 다 되었던 것이다. 만일 지금 대협곡에 가지 않으면 영원히 빙화도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한립은 혈옥지주를 챙겨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가는 동안 극음은 좋은 낯으로 한립과 대화를 나누며 수련상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다. 그로 인해 한립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립은 홀로 탄식하며 스승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하지만 옆에서 이런 꼴을 지켜보던 오축은 열이 받아 씩씩댔다.

숨긴다고 한립이 그의 적의를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다만 따로 생각이 있었기에 그의 강한 적의를 모른 척 할 뿐이었다.

네 선사가 쾌속으로 몇 시간을 날아가자 수천 장 높이의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산은 무척 높고 험준하여 푸른색과 검은색의 거대한 암석으로 이뤄져 있었다. 또한 봉우리 중간은 귀신이 파놓은 듯 정교하게 양분되어 처연의 대협곡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 갈라진 틈의 정 가운데를 경계로 붉은빛과 푸른빛이 나뉘어 분출되니 멀리서 보기에도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산봉우리 아래 대협곡 입구에는 이미 서른 명 정도의 선사들이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음 등은 천천히 선사들 쪽으로 하강했다. 슬쩍 훑어보니 흑의 여인 원요 역시 그 중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한립이 원영기 마도인들과 함께인 것을 보고 꽤나 놀란 눈치였고 조금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다.

한립은 왜 그러나 싶었지만 금방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는 바로 시선을 거두어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자령 선자와 옆에 붙어 다니던 청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 말대로 빙화도에 진입하지 않고 돌아간 듯 했다.

이제 남아 있는 선사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이긴 했으나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그들의 수행은 대부분 한립을 상회해서 결단기 중기이거나 후기였기 때문이었다.

한립과 원요처럼 결단 초기인 선사들은 예닐곱 밖에 안 되었지만 그들도 담담한 표정인 것이 다음 관문에 자신 있는 자들 같았다.

상황을 파악한 그가 슬쩍 한쪽 눈썹을 끌어올렸다. 원영기 선사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극음 등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극음이 지형이 적합한 곳을 찾아 먼저 가부좌를 하고 않았고 오축이 자연히 그 옆에 따라 앉았다.

극음 사조가 인자한 얼굴로 한립을 향해 말했다.

“한립, 너도 노부 옆에서 휴식을 취하거라!”

노괴에게 접근할 마음이 없던 한립이라도 저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극음 옆에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립이 자리를 잡자마자 허공에서 파공성이 들리며 만천명 등 3인의 원영기 수사가 내려왔다.

그들은 극음과 청역 거사를 보며 냉소하고는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아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상의했다.

“흥!”

극음이 그런 모습에 콧방귀를 뀌고는 두 눈을 감고 법력을 가다듬었다.

반면 한립은 무엇을 관찰하듯 다른 곳에 시선을 주었다.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그가 실제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각이 지나자 대여섯 명의 선사들이 끊임없이 도착했다.

그 중엔 백의의 성궁 선사들도 있었고 유일하게 나타나지 않은 원영기 선사는 만호자 뿐이었다.

다시 반 시진이 지났으나 만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만천명 일행은 이상하단 눈빛으로 이쪽을 살폈으나 극음과 청 노인은 도리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붙어 앉은 한립은 극음과 청 노인이 옅은 초조함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만호자가 없으면 정도인들과의 세력에 균형을 잃게 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극음 사조와 청역 거사가 참지 못하고 허공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이 공간엔 낮밤이 따로 없이 햇빛이 찬란했지만 한립이 생각할 때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허천전에 있는 마도 고수 중 제일이라는 만호자에게 무슨 일이 난 것인가? ’

쐐액.

마도인들과 정도인들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멀리서 거센 소리가 들려왔다. 극음 사조와 청역 거사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이 편해져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청 노인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만호자의 기분이 좋은 것을 보니 뜻밖의 수확이라도 있나 봅니다.”

“흥! 여기서 뜻밖의 수확이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수원과겠지요.”

고개를 젓는 극음에게 청 노인이 다시 무어라 하려는데 황금색 구체가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노인은 바로 입을 다물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한립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처음 탁천마공의 위력을 보는 선사들은 모두 놀란 눈빛으로 만호자를 올려다 보았다. 만호자를 둘러싼 황금색 광채의 형태가 무척 특이해서 요신(妖神)이라도 강림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이다.

그의 전신에서 눈을 찌를 듯한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을 뿐 아니라 의복 밖에 드러난 피부에는 조밀하게 금색 비늘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그 비늘은 아름다운 빛을 냈고 서늘한 광채가 느껴지는 것이 보기만 해도 무척 단단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극음 사조 곁에 있던 오축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게 탁천마공입니까?  대단합니다.”

그런 오축을 서늘하게 바라본 극음 사조가 그리 밝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흥, 겨우 거북이 등딱지에 불과한 것을. 현음대법도 대성하면 탁천마공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제야 자신의 사조와 만호자 사이가 그리 좋지않다는 것이 생각난 오축은 방금 자신의 찬사가 사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음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난감한 얼굴로 사조의 말에 동의한 그가 다시 말을 삼갔다. 이때 허공의 만호자가 선사들을 훑어보더니 거침없이 극음 등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쿵.

그가 내려서자 인근의 땅이 다 흔들렸다. 만호자의 황금 비늘이 사라지자 빛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청 노인이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만 형, 좋은 수확이라도 있으셨나 봅니다!”

만호자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거침없이 대답했다.

“하하! 뜻밖의 수확이 있었지! 수원과 나무 근처에서 빙설섬(氷雪蟾)을 발견해 죽였는데 이 두꺼비 요수의 내단이 탁천마공의 증진에 탁월하거든!”

너무 솔직한 답이 의외였던지 극음 사조와 청역 거사는 일순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했다. 잠시 후 안색을 바로 한 청역 거사가 웃으며 감탄했다.

“정말 감축 드립니다. 탁천마공에 더욱 정진할 수만 있다면 쌍성이나 육도와도 일전을 벌일 만 하겠습니다.”

극음도 간단히 축하를 표했다. 만호자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웃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 한립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에서 놀랄만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 눈빛을 받은 한립은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특히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사지가 꽁꽁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한립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연결을 운용했다. 일단 심기를 굳건히 하자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음?”

만호자가 자기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얼굴에 희색을 드러내며 무언가를 하려는데 극음의 신형이 번뜩이며 한립 앞을 막아섰다. 극음이 만호자의 기세에 맞서며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형, 왜 이러 십니까?  어찌 제 제자에게 손을 쓰려하시는지요.”

“제자?  날 가지고 놀려는 게냐?  오축 녀석을 제외하고 허천전에 무슨 네 제자가 있더냐.”

만호자는 오축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훑더니 대답을 잘못하면 당장이라도 출수할 기세였다.

청역 거사가 서둘러 해명했다.

“허허, 만 형이 오해하실 만 합니다. 오 선사가 오늘 새로 제자를 들였으니 모르실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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