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244화 (1/2,000)

# 244

244화. 극음

이후 청록색 실선 하나가 슬며시 날아올라 음혼사 잔해에 갇힌 한립에게 다가오며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 몸은 이 어르신이 접수하겠다!”

실선이 빛을 뿜더니 흉악한 얼굴의 귀신 머리로 변해 덮쳐왔다. 하늘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현골이 실소하며 바로 결계를 향한 공격을 멈추었다.

어차피 결계는 몇 번만 더 공격하면 깨져나갈 것이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혼백을 보는 한립의 심정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귀신이 겨우 일장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그의 몸에서 맹렬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맹렬한 기세는 마치 형태가 있는 것 마냥 위협적이라 날아오던 혼백도 멈칫할 정도였다.

한립의 입이 벌어지며 굵은 금색 뇌전이 분출되었고 아주 근거리에 있어 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귀신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

“키엑!”

혼백이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바로 뒤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것을 놓아주겠는가?

전신에 금빛이 번뜩이자 몸을 결박하던 검은 실마저 순식간에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주저 없이 몸을 날린 그는 녹색 기운으로 변한 귀신 머리를 따라잡았다.

이어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옅은 금빛이 다섯 손가락에서 번뜩이며 녹색 기운을 연기로 흩어 버렸고 그의 손에는 청록색 수작 구슬이 기이한 빛을 뿜으며 나타났다.

한립은 냉담한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는 거침없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파삭.

그러자 수정은 뇌전이 튀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벽사신뢰만 쓸 수 있다면 귀왕이나 녹색 그림자 같은 형태가 없는 요귀는 순식간에 사살할 수 있었다.

너무 쉬워서 놀랄 정도였다. 한립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있는 현골을 보았다.

“구곡영삼을 넘겨준다면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은 것으로 치고 당신을 돕지요. 허나 이 조건에 응하지 않으면 이제 둘 중 하나만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주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눈빛만은 서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저 한립을 내려다보던 현골 상인은 결국에는 손을 들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현골이 검은 구름을 치우고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빼앗지 못한 것은 그 친구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나야 승리한 쪽과 연합을 하면 그만인 게야. 구곡영삼이나 챙기거라!”

이어 금색의 함을 한립 쪽으로 날렸다.

한립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만 있었고 금색 함은 결계에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신중히 금색 함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현골이 뒷짐을 지더니 한립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또 음혼사 처럼 변하기라도 할까 걱정인 게냐?  이제 너 아니면 연합해 극음을 처리할 선사도 없으니 걱정 말거라.

게다가 그렇게 많은 금뢰죽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말 뜻밖이로구나. 아마 극음의 현음대법을 물리칠 때 큰 도움이 되겠어. 이런 상황에 본 상인도 네게 손을 쓸 리가 없다.”

그가 말을 하든 말든 한립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한번 속였으니 두 번 속이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그의 말은 어떤 말이라도 한립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립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곧 가느다란 금빛 뇌전이 금색 함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파칫’

분명 불똥이 튀고 금색 함이 요동쳤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상한 사술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면 벽사신뢰의 공격에 남아날 리 없었을 것이다. 안심하고 손을 뻗은 한립에게 금색 함이 날아왔다.

동시에 결계가 반짝이며 금색 함을 통과시키고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현골 상인은 한립의 이런 신중함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함을 내려다보며 바로 뚜껑을 열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현골은 한립의 모습에 냉소했으나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한립은 바닥에 떨어진 구곡영삼의 화신인 토끼를 바라보았다. 토끼는 아직도 기절한 채였다. 한립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금함을 건드렸다.

그러자 함과 손가락 사이에 푸른빛이 일며 함 속에 있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크지 않은 물건이었다.

반 자 길이에 노란 색을 띈 물체는 오래된 나무의 뿌리 같아 보였다. 특이한 점은 그 뿌리의 끝에 아름다운 은색 꽃이 피어있었고 그것이 은은한 빛을 흩날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은은하게 퍼지는 맑은 꽃 내음은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한립이 이것이 정말 구곡영삼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을 때 돌연 쓰러져 있던 토끼가 껑충 뛰어올라 옥함의 뿌리로 돌진했다.

하얀빛으로 변한 토끼의 움직임에 한립은 희색을 드러냈다. 구곡영삼의 화신이 이리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진짜가 맞다 여긴 것이다.

토끼가 구곡영삼을 물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한립이 손가락을 튕기니 푸른빛이 뿜어져 나가 토끼의 머리를 맞추었다. 그러나 토끼는 자신의 본체를 향해 다시 껑충 뛰어올랐다. 쉽게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결국 뇌전이 번쩍이고 나타나자 토끼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립은 토끼를 잡아 자세히 보고는 금함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하얀 토끼는 빛으로 변해 구곡영삼의 본체에 흡수되어 버렸다.

한립은 바로 뚜껑을 닫고 금제를 걸어 달아나지 못하게 한 다음 저물대에 넣어버렸다. 그제야 모든 것을 마친 한립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립은 현골이 아무런 말이 없자 경계심을 높이며 냉랭하게 물었다.

“구곡영삼을 받고나서 제가 달아날까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달아나?  제련하는 법도 모르면서 삼 뿌리만 챙겼다고 효과를 볼 성 싶더냐?”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현골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극음이 이미 네 몸에 수작을 부려놔서 세상 끝까지 도망을 한다 해도 그 놈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게다. 고분고분히 내게 협력을 하는 게 좋을 게야. 그렇지 않고 허천전을 빠져 나간다면…… 큭큭!”

‘수작? ’

한립의 얼굴색이 변했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강력한 자신의 의식을 속이고 자기도 모르게 무슨 짓을 해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현골 역시 한립이 전혀 믿지 않고 있음을 알아챘다.

입을 삐죽거린 그가 증거를 보이려 하는데 돌연 표정이 달라지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립 역시 기분이 싸해져서 저 마두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나 경계했다.

“곧 극음이 올 게다! 널 찾은 것일 테니 알아서 하거라. 난 일단 숨어있을 것이니!”

말을 마친 현골이 검은 구름으로 변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순 한립은 멍해졌다.

쿠콰쾅.

상대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괴이한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엄청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몰려왔다.

현골이 쳐다보던 방향이었다. 한립의 마음이 어두워졌다.

검은 먹구름은 현음대법의 특징이었기에 십중팔구 극음 사조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자신의 몸에 어떤 수작을 부려놓은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었다.

동시에 한립은 속으로 현골을 욕했다.

시종일관 연합을 하자며 그렇게 설득을 하더니 극음이 오자 혼자 달아나 버리지 않았는가!

한립은 매우 우울해졌다.

이제 피하려 해도 늦었으니 상황을 보아 행동해야 했다. 한립은 진법도 거두지 못했는데 검은 먹구름이 상공에서 멈추었다.

이제 한립은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한껏 긴장한 채 먹구름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상대가 보자마자 자신을 죽일 리 없다고 판단해 자신을 쫓는 이유를 알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흥!”

쿠콰쾅.

하지만 그의 예상을 깨고 먹구름 속에서 칠흑 같은 검은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결계를 공격했다.

노란빛이 번쩍였지만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철저히 부서져 버렸다. 보호막이 제 구실을 못하자 검은 빛기둥은 한립을 향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한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휙.

몸을 피한 그는 조금 화가 난 기색으로 나타났다. 바로 두 팔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나타나 그의 전면을 막아섰다.

또한 영수대 몇 개가 풀어지면서 아름다운 빛들이 떠올랐다. 한립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비록 승산이 극히 낮더라도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

체내의 진원이 용솟음치며 아홉 개의 청죽봉운검에 기세를 불어넣었다.

한립의 적의와 경계심을 보았는지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급속도로 수축해지며 검은 기운이 짙어지고 마기가 증폭되었다.

흠칫 놀란 한립이 꼭두각시들을 이용해 선공을 하려 할 때 현골의 서늘한 전음이 들려왔다.

“함부로 공격하지 말거라! 저 놈은 지금 위세를 부리는 것이지 정말 널 죽일 마음이 없다. 보아하니 저 역도 놈이 네게 온 목적이 따로 있는 것 같구나.”

현골의 말에 한립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당장 공격을 하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힌 그는 예의 바르지만 비굴하지 않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극음 선배님께서 이곳에 오시다니, 완배에게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그의 음성은 아주 차분했다. 먹구름 속에서 그를 무시하는지 칭찬하는지 모를 말이 전해졌다.

“노부의 일격을 받고도 이리 태평하다니 담도 크구나.”

“선배님께선 이미 원영기 선사이신데 정말 완배를 멸하고 싶으셨다면 제 담이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현골이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본다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만일 현음대법의 약점을 아는 늙은 마두와 연합한다면 극음과의 승부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말 현골이 나설지는 알 수 없으니 일단 극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잠시 후 드디어 먹구름이 가셨다.

푸학.

구름이 흩어지며 그 안에서 중년인과 왜소하고 못생긴 청년이 나타났는데 바로 극음 사조와 오축이었다. 중년인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네가 천성성 산수인 한립이 맞겠지?”

“예, 선배님 말씀대로 제가 한립입니다.”

“내 너를 해하려고 찾은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또 이전 묘음문 일 때문에 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방금 공격은 결계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슬려 부순 것뿐이다.”

극음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한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해는 무슨! 그저 실력이나 과시하려 그런 거겠지!’

그의 입은 아주 공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선배님께서 이리 찾아주신 것은…….”

상대가 이 물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뜻대로 해준 것이다. 하지만 극음이 웃음을 지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자 소름이 돋았다.

극음이 손바닥에서 하얀 무언가를 보이며 물었다.

“이것을 알아보겠더냐?”

한립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소맷자락을 휘저어 그것을 눈앞으로 불러들였다. 아주 작고 파편에 불과했으나 한눈에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혈옥지주가 내뿜은 거미줄의 일부였다. 그는 극음이 이것을 갖고 있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자 극음과 만났을 때 강시를 막기 위해 거미줄을 쏘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것은 왜 묻는 거지? ’

머릿속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오래 줄 것 같지 않아 솔직히 답하였다.

“당연히 알아보겠습니다. 제 영수가 내뿜은 것이 온데 어찌 그러시는 지요?”

한립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고 이것 때문에 자신을 찾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있던 중년인은 한립의 답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들뜬 표정으로 심지어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잘됐구나! 너를 찾은 것이 바로 그 영수를 보고자 해서이다. 본 사조가 볼 수 있게 한번 꺼내 보거라.”

한립의 경계심이 커졌다. 상대의 즐거운 웃음 속에서 탐욕스런 눈빛이 스쳐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