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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를 주유하다(1)
열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패거리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두들겨 패고 있었다.
퍽! 퍽!
패는 이유는 매번 바뀌었는데, 오늘의 이유는 이것이었다.
“이 덜떨어진 자라 새끼야! 넌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주먹질을 날리는 녀석은 곰처럼 덩치가 큰 놈이었는데, 일단 본인의 얼굴이 남을 평가할 외모는 결코 아니었다.
퍽! 퍽! 퍽!
주먹질에 이어 발길질까지 날아들었다. 맞는 데 이골이 났는지, 두들겨 맞던 아이는 손으로 머리를 보호한 채 몸을 웅크렸다.
지켜보는 아이들은 말리는 것은 고사하고 킬킬대며 침을 뱉었다.
침이 때리던 아이의 옷에 튀었다.
“이 새끼야! 옷에 침 튀었잖아?”
“미안. 미안해!”
“이 새끼가. 이 무복이 얼마짜린 줄 알고.”
“미안하다고! 새꺄!”
“이 새끼가 이제 개기네.”
퍽!
하지만 주먹질은 침을 뱉은 놈이 아니라 애초에 두들겨 맞던 아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 모습에 모두들 좋다고 킬킬거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번 달에는 가져올 돈이 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무관에 다니는 것도 아버지랑 엄마가 늦게까지 일하셔서…….”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럼 내가 돈 몇 푼 때문에 이런다는 거야? 이 개 같은 새끼가 날 뭐로 보고.”
퍽! 퍽!
흥분한 덩치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 새끼 옷 벗겨!”
옆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옷을 벗겼다.
“내가 벗을게. 찢어지면 안 돼! 무복이 한 벌뿐이야.”
그 와중에 옷이 찢어졌다.
“안 돼!”
덩치 놈이 그 흉내를 냈다.
“안 돼! 안 돼! 돼! 돼! 병신 새끼!”
퍽!
아이를 걷어찼다. 두들겨 맞던 아이가 옷을 부여 쥐고 뒤로 넘어갔다.
아이는 맞는 것보다 무복이 찢어진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서든 무공을 배워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은 것이 아이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모진 꼴을 당하는 것으로 볼 때, 아이는 전생에 강호를 구하진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 강호를 구할 때, 작은 도움이라도 준 모양이다.
킬킬대던 녀석들 중 하나가 힐끗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뭐야? 저것들은?”
젊은 사내 둘이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벽리단과 천마였다.
패거리들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덩치 놈이 두 사람을 보며 겁도 없이 이죽거렸다.
“어이, 거기 지나가던 아저씨들. 괜히 의협심 발휘하다 대갈통 깨져서 눈물콧물 질질 짜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그러자 벽리단이 덩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지.”
그냥 가려던 벽리단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한데 누구냐? 아버지 죽인 원수냐? 무림맹에서 마인을 잡아와도 그렇게 패진 않는데.”
그러자 덩치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병신 새끼가 지금 뭐래냐?”
보통 때라면 낄낄거리며 자신의 말에 반응해줄 녀석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덩치가 흠칫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벽리단이 자신의 옆에 와 있었다.
순식간에 저 먼 골목길 끝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것도 아무 기척도 없이. 그 광경을 직접 본 녀석들은 얼어붙었다. 번쩍하는 순간, 벽리단이 덩치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 새끼!”
덩치가 반사적으로 벽리단에게 주먹을 날렸다.
휘익!
당연히 주먹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벽리단은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 옆으로 가 있었다. 아이는 얼굴이 퉁퉁 부어서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평소에도 매질을 많이 당했는지, 벗은 몸은 온통 멍이 가득했다.
“힘들지?”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록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는 있었지만, 아이는 자존심도 있었고 의지도 있는 아이였다.
“저놈 집 잘살 테고. 무관에서 저놈 편만 들지? 그래서 말도 못하지? 알고 있다. 다 그렇더라. 이럴 때엔 무림맹에 신고하면 된다. 각 지부마다 학관과 무관의 폭력을 전담하는 조사반이 있다. 한 달 전부터 생겼지. 들어본 적 있어?”
여행을 하다 비슷한 경우를 본 벽리단이 그날 당장 만든 조직이었다.
“……네.”
“상대방 부모가 누구라도 공정하게 철저히 조사한다는 것 알고 있니?”
“……들었어요.”
“한데 왜 신고를 안 했지?”
아이가 덩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유를 밝힌 것은 덩치였다 놈이 희희낙락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곳 무림맹 지부장이거든.”
벽리단이 크게 탄식했다.
“아, 그래서구나. 이번은 특별한 경우구나.”
이렇게 똑똑해 보이고, 의지도 있어 보이는 아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덩치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목청을 높였다.
“병신아, 넌 좆 된 거야. 야, 저 새끼 잡아!”
아이들이 망설였다. 조금 전 순식간에 이곳까지 이동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들아! 죽을래?”
덩치의 호통에 아이들이 우르르 벽리단에게 달려들었다. 차라리 덩치 놈에게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퍽! 퍽! 퍽!
벽리단의 주먹에 아이들이 나가떨어졌다. 벽리단은 아이들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두들겨 팼다. 녀석들이 병아리 손짓 발짓을 해봤지만, 벽리단을 더욱 화나게 했을 뿐이었다.
특히 덩치는 집중적으로 팼다.
퍽! 퍽!
“아! 그만! 시발! 그만하라고! 이러면 우리 아버지한테 죽어!”
퍽! 퍽! 퍽!
더욱 모질게 두들겨 팼다. 이가 부러지고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멍든 곳을 또 때렸다.
“으아아아악! 아파! 제발! 살려주세요!”
욕설이 사정으로 바뀌었지만 벽리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두들겨 팼다.
죽이려고 패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기 위해 팬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정말 죽을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놈, 저놈 돌아가며 빠지지 않고 얼마나 두들겨 팼을까?
그곳으로 서너 명의 무인들이 달려왔다.
“그만! 멈추시오!”
그들은 무림맹 복장을 한 무인들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죽는 소릴 내던 덩치가 다시 기세가 등등해졌다.
“……저 새끼 체포해요! 어서요!”
맞은 아이를 확인한 무인들이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모시는 지부장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평소의 행실을 생각하면 내심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게 무슨 짓이오?”
“아이들? 여기 아이가 어디에 있나? 친구를 저 지경으로 만드는 아이 봤나? 여긴 개새끼보다 못한 짐승들밖에 없다네.”
그 말에 무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지부장 아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자신들에게 체포되었을 놈이었다. 아버지만 믿고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던 놈이었다.
“일단은 함께 가셔야겠소.”
“그러지. 애비도 봐야 하니까.”
그때 뒤에서 누군가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야! 그럴 필요 없다.”
달려온 사람은 바로 지부장이었다. 아들을 살피더니 눈이 뒤집어졌다.
“저 새끼 체포해! 이 미친 새끼가 내 아들을 건드려?”
“네.”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언제 마혈이 제압당했는지 인식도 못 했고,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지부장까지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빡!
벽리단이 사정없이 지부장의 얼굴을 때렸다. 지부장이 검을 뽑아서 휘둘렀다.
이런 일에 검을 뽑는 것은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부장이 그 행동이 벽리단을 더욱 화나게 했다.
퍽! 퍽! 퍽! 퍼억! 퍼어어억!
정말 모질게 두들겨 팼다.
무인들은 멍하게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벽리단이 무인 하나의 혈도를 풀어주며 소리쳤다.
“당장 지단주 불러 와.”
“네?”
“어서!”
무인이 달려갔다. 어차피 지부에 난리가 났기 때문에 지단에 보고를 해야 했다.
그때 담장 위에 걸터앉아서 구경을 하던 천마와 덩치 놈의 눈이 마주쳤다.
천마가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너도 너지만, 네 아버지는 이제 좆 됐다.”
지단주가 도착했다.
내가 맹주란 것이 밝혀지자 지부장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두들겨 팼던 놈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특별감찰관이 들이닥쳐서 지부장의 지난 일에 대해 샅샅이 조사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잘못과 부정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당연히 지부장은 파면되었고, 뇌옥에 갇혔다. 본보기로 삼았기에 가장 높은 중형을 받았고, 평생 햇빛을 다시 보기 어려운 형량이 내려졌다.
지단주 역시 수하를 단속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두들겨 맞았던 아이에게는 내가 직접 새 무복을 사주었다. 돈을 주는 대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이에게 삶의 용기를 주었고 동시에 나 역시 힘을 얻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 일이었기에 보복은 꿈도 꾸지 못했다.
새로 법을 제정했다.
아이들이라고 절대 봐주는 법이 없도록 했다. 덩치 녀석도 뇌옥에 갇혔고, 적어도 몇 년은 갇혀 지내야 했다.
함께 두들겨 팼던 녀석들도 다 뇌옥에 쳐 넣었다. 형량은 덩치보다 적었지만, 녀석들 역시 본보기로 삼았다.
이 사실을 중원 전역의 학관과 무관에 모두 알렸다. 이제 친구를 괴롭히고 두들겨 패는 놈들은 아이들이라고 절대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부모가 누구라도 맹주령에 따라 처리한다고 알렸다.
전생에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천마와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니까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무관과 학관의 폭력 문제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란 것을. 이게 다 법이 물러서라 여기고 이번에 바로 잡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무너지면 미래도 없을 테니까.
다시 그로부터 한 달 후.
중년 사내 하나가 들판을 경공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옆구리에 여자아이 하나를 끼고 있었다.
“크흐흐흐!”
연신 흘리는 웃음에는 색기가 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서방님께서 이제 곧 여자로 만들어주마.”
그렇게 내달리던 그가 멈춰 섰다.
누군가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 너 누구냐?”
이 색마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막아선 사람은 벽리단이었다.
벽리단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어르신께서 이제 곧 시체로 만들어주마.”
휘리릭.
어느새 아이는 벽리단의 품에 안겨 있었다. 다시 수혈을 눌러 아이를 재웠다.
“내놔! 내 것이다!”
쉬익!
사내놈이 암기를 내던지며 달려들었다.
퍼어억.
가볍게 암기를 피하며 사내의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으아아아아악!”
한 방에 사타구니가 터져버린 놈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퍽! 퍼억! 퍽!
발로 짓밟아서 온몸의 뼈를 부러뜨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놈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 어린애를 보고 그 짓거리 할 생각이 들더냐?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퍽! 퍽! 퍽! 퍽!
부러진 뼈를 으스러뜨렸다. 극심한 고통에 놈의 눈이 뒤집어졌다.
“이렇게 쉽게 죽여선 안 되는데, 내가 너무 바쁘다. 여행하랴, 너희 같은 놈들 없애랴.”
꽝.
그대로 머리통을 밟아서 터뜨려버렸다.
잠든 아이를 안고 사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조금 걸어가니 천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래서 뭔 여행이냐?”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는 없잖냐?”
“그러니까.”
문제는 악인이나 악행들이 내 눈에 너무 잘 띈다는 점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그냥 눈만 마주쳐도 알았다. 일단 나쁜 짓을 저지르려는 놈은 기운부터 달랐다.
“그래도 이 아이 봐. 좋은 일 하니까 기분 좋잖아?”
“잠자는 모습이 정말 예쁘네.”
어떤 경우에는 천마가 먼저 달려 나가 악당을 붙잡거나 쳐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참아서 쌓인 마성을 푸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말 악인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런 대화까지 나눴겠는가?
“새끼들, 정말 해도 너무하네.”
“누가 우리 천마를 이렇게 화나게 했을까?”
“강호에 쳐 죽일 놈들이 너무 많다.”
“하하하.”
물론 우리의 여행이 매번 ‘악인은 지옥행’이지만은 않았다.
즐거운 경험들도 있었다.
달빛 아래 조각배를 띄워놓고 술을 마시기도 했고, 중원에서 아름답다고 알려진 명승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수천 마리의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보기도 했고, 끝도 없는 황야를 내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우리가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왔다.
객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미녀가 와서 말했다.
“우리와 함께 한잔하실래요?”
돌아보니 저쪽에 또 다른 미녀가 앉아 있었다. 이쪽도 둘, 저쪽도 둘. 짝이 딱 맞았다.
드디어 천마가 그토록 말하던 강호의 미녀들과 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