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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96화 (29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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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혈로(3)

눈을 감는다고 어찌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

지금껏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존재를 어찌 눈을 감는다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천소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눈을 감고 혹시나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나 정신을 집중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감정만 더욱 크게 느껴졌을 뿐이다.

분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비린내 나는 피를 흡수해가면서, 모든 것을 참아가며 지금까지 왔다.

자신이라고 어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겠는가?

하지만 운명이겠거니 꾹 참았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살육의 죄책감은 옅어졌다.

그렇게 수백, 수천의 생명을 빼앗고 온 자리인데.

‘억울해.’

분함이 솟구쳐 올랐다. 정말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때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하나의 광경.

어둠 속에 뭔가가 있었다.

‘혹시 이것인가?’

뭔가 사람 형체처럼 보이는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너냐? 네 몸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 너냐고?’

서서히 어둠 속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 있던 그것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천소선은 깜짝 놀랐다.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여자아이는 바로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아이 옆에 깨어진 동경이 보였다.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여자로 변해버린 그날이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은 혈신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다음 순간, 천소선이 눈을 번쩍 떴다.

잠시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힘없이 덧붙였다.

“내 속에는…… 나밖에 없다.”

* * *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는데도 아무것도 없다면? 그래, 그녀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리라.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네 속에 없다면 밖에 있겠지.”

“뭐?”

내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몸을 흐르는 붉은 핏방울을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손안을 가득 채우는 감촉이 있었다.

“끄응!”

힘을 주어서 그녀에게서 그것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피 갑옷은 뜯겨 나오지 않으려고 버텼다. 마치 피부처럼 천소선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으으으으.”

천소선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네 속에 없으면, 네게 붙어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잖아?”

찌이이익.

온갖 힘을 다해서 그것을 뜯어내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원래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했다.

찌이이이이이이이이익.

천소선의 몸에서 피의 갑옷이 떨어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생살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느끼는지 천소선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떨어져 나온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내 몸을 휘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침입할 수는 없었다. 내 몸은 강력한 호신강기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또 다른 부위의 피갑옷을 잡아 뜯었다.

찌이이이익.

“으아아아악!”

천소선의 비명은 계속되었고, 뜯겨 나온 것들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몸에 붙은 피갑옷을 반 이상 뜯어내자 나머지 것들은 스스로 떨어져 나와 처음 나온 것에 달라가 붙었다.

그것들이 모두 모이자 어떤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뜯어낼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생기를 잃어가는데, 그녀의 몸 주위를 흐르는 피 갑옷은 너무나 생생해서 순간적으로 의심을 했을 뿐이다.

한데 정말 내가 찾던 나머지 절반의 신은 바로 이 피갑옷이었다. 아니, 그 존재가 갑옷의 형체로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

계속된 광속비검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혈신이 되기 직전의 존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갑옷이 다 분리되면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천소선은 더욱 큰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짐작하건대 지금까지 나와 싸우면서 입었던 공격을 저 갑옷이 다 막아줬었는데, 그것이 분리되어 나오면서 쌓였던 고통이 모두 그녀에게 밀려든 모양이다.

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글거리며 합쳐지고 있는 저것은 정말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천소선은 단지 자신이 강림할 육체에 불과했다.

앞서 그녀의 물음에 내가 말했다.

운명이 마주서게 한 것은 어쩌면 그녀와 내가 아닐 것이라고.

그 대답은 맞았다.

“으아아아악!”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고통과 절망에 가득 찬 그녀와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보내줘선 안 될 일이지만, 그녀 역시 운명에 떠밀려 원하지 않은 곳에 엎어진 것이리라.

부디 다음 생에는 다른 삶을 살아라.

쇄애애애애애애애액!

푸우우우우욱!

광속비검이 그녀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편안해지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이 땅으로 추락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제 모두 다 뭉쳐진 붉은 기운이었다.

수우우우우욱.

붉은 기운이 거대하게 커지며 그림과 석상에 나오는 혈신이 되었다. 크기는 거대했고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정말이지 온 세상을 피로 물들일 것만 같은 거대한 살기였다.

나는 담담히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만든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모습이지. 아마 네가 진짜 혈신이 되었다면, 적어도 그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놈이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이 존재는 지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오직 본능만이 존재하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너는 이 세상에 필요 없다.”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진 놈의 감정들.

혼란과 원망, 분노,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싶은 그 본능적인 살의,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공포까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베었다.

서걱.

촤아아아악.

달려들던 놈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라지며 지나쳐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베었다는 것을.

스스스스스스스.

반으로 갈라진 그것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핏방울이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톡, 톡, 톡, 톡, 톡, 톡, 톡.

그것들이 물방울처럼 터졌다.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던 붉은 기운이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혈신이 되고자 했던 존재 역시 운명의 저 너머로 사라진 것이다.

나는 하늘에 서서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거기 계십니까?”

노인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네 인생을 살라는 것 같았다.

나는 신들과 싸웠지만, 이 싸움이 신들과의 싸움이 아니란 것을, 싸움을 마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싸움은 그냥 평범한 사람의 싸움이었다.

변화와 선택의 싸움.

변화하려는 노력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고, 그 싸움의 과정에서 나는 여러 선택을 했다.

선택은 언제나 혼란스러웠지만, 실수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가 정한 삶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지켜주고 아껴주는, 언제나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아랫사람을 존중하라는 삶의 기준에 맞게 선택을 했던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늘의 선택과 변화가 내일 또 어떤 모습으로 내 인생과 마주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후회한다 하더라도, 그 역시 내 인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칠십 평생을 살았고, 다시 스무 살 청년의 몸에 들어와 변화를 꿈꾸었던, 내가 내리는 지금 이 순간의 결론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도 이 한 번의 인생,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쉬이이이익.

말을 마친 나는 한 바퀴 하늘을 비상해서 인사를 한 후, 땅으로 내려왔다.

땅에 내려섰을 때, 비로소 나는 모든 싸움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잠시 연무장의 가운데 서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연무장을 가로지르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한 걸음씩,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걸어오는 그녀는 바로 송화린이었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달려가서 안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내 앞까지 걸어온 그녀가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넙죽 허리를 굽혔다.

“이 강호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우릴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냐.”

“오냐?”

반응이 고작 그것이냐는 그녀의 표정에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달리 할 말이 없잖아?”

갑자기 고마움을 표해 당황하기도 했고.

“이런 말 한마디쯤 멋지게 하셨어야지.”

그녀가 내 목소리를 어설프게 흉내 냈다.

“선을 이기는 악을 본 적이 있나?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지.”

“맙소사! 내가 이렇게 낯간지럽게 말하나?”

“응.”

“이 자식이! 엉터리 흉내를 내놓고 뒤집어씌우다니!”

“하하하.”

그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녀의 행복한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행복했다.

“배고프지?”

“응.”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어.”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참, 천마가 떠났어.”

“그랬군.”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대답에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안 섭섭해?”

섭섭하지 않을 리가? 지금도 가끔 내 몸속에 그가 함께 있으면 싶을 때가 있는데.

언젠가 떠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떠날 때 떠나더라도 술이라도 한잔하고 갈 것이지.

“섭섭하긴. 떠날 사람은 떠나는 거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

“가봤자지.”

“하하하.”

저 멀리서 지금까지 내가 싸워온 이유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을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 * *

강호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모두들 이번 일로 희생된 이들을 애도했다.

갈사량은 암흑신과 혈신이 부활하려 한 일에 대해 강호에 알렸다. 물론 그들을 없앤 나의 무용담도 함께 널리 알렸다.

나는 반대했지만 갈사량은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맹주의 권위는 강호인들에게 잘해주기만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맹주님께서 권위를 가지시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권위가 강호의 질서가 되고 악인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어 모두를 지켜줄 것입니다.”

결국 내막을 알리는 것을 허락했다.

“우리 맹주님께서 강호를 구하셨다!”

“암흑신과 혈신의 부활을 막고 우리를 구하셨다!”

“맹주님 만세!”

“나는 맹주님의 명령이라면 열 개의 목숨이 있다면 열 개 모두를 다 내어놓을 수 있네.”

“나는 백 개!”

“실없는 사람들아! 자네들은 짐만 돼!”

“하하하.”

모두들 기뻐했고 좋아했다. 강호는 축제에 빠졌다. 지금까지의 긴장과 비극이 사라지자, 오랜만에 기쁨을 만끽하려는 것이다.

강호인들은 나에게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지지를 보냈다.

“저래놓고 죽고 나니까 마구 까더라고.”

내 농담에 백표는 배까지 부여잡고 웃었다.

* * *

그날로부터 육 개월이 지났다.

무림맹은 완전히 안정되었다. 과거 천하진 시대의 무림맹처럼 기강이 바로 섰고, 충성심이 드높았다.

이윽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세 사람을 불렀다.

맹주전에 모인 사람은 갈사량과 광두, 그리고 백표였다.

“잠시 맹을 비워야겠네.”

세 사람 모두 이 순간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광두가 나섰지만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다녀오마.”

역시 예상했다는 듯 광두는 순순히 물러났다.

“네, 알겠습니다.”

지난 육 개월간 묵묵히 무림맹 일을 했던 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맹을 잘 지키란 말은 무의미했다. 너무 열심히들 일해서 걱정이니까.

“제발 좀 놀아! 놀면서들 일해.”

그날 새벽 나는 맹을 나섰다.

바람을 가르며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아갔다.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빈자리 하나를 느꼈다.

“건방진 천마 같으니라고! 이별주 한잔 없이 그냥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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