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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혈로(2)
만약 내가 내공을 주입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천소선의 손에 수라명왕검은 부러졌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힘은 강력했고 위협적이었다.
쇄애액. 퍼엉!
내 발길질에 그녀가 검을 놓으며 뒤로 날아갔다.
얻어맞은 것이 아니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맞아준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천소선이 계산한 적절한 거리가 만들어지는 순간, 그녀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휘젓듯 회전했다.
휘리리리릭.
우기긱.
내가 떠 있던 공간이 비틀리며 내 몸도 함께 비틀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빨래를 비틀어 짜듯 나와 내가 있던 공간을 비틀었다.
반격하느냐, 피하느냐?
내 선택은 반격이었다.
휘리리리리리릭.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저항하며 나 역시 양손을 휘감았다.
구기기기기깃!
이번에는 천소선이 있던 공간이 비틀렸다.
내공을 믿고 한번 버텨보려는 것이다.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
천소선 역시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고 더욱 강한 힘을 가했다.
쿠우우우우우.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었지만,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고 거친 파동이 주위를 휩쓸었다.
천소선과 나의 힘은 팽팽했다. 극한의 내공이 끝없이 손끝으로 밀려나갔다. 이런 나와 동수를 이루는 것만 봐도, 천소선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압살시키기 위해 힘을 쏟아부었을까?
꽝!
폭음과 함께 우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공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 한 수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힘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정말 혈군들을 모두 죽였구나!”
“이제야 믿는구나.”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지?”
“너도 인간이었잖아? 인간에서 시작해서 거기까지 간 것 아닌가?”
“나는…….”
“위대한 혈신이 될 뻔했지만, 결국 되지 못한 재수 없는 존재라고?”
“이 새끼!”
쇄애애애애액.
천소선이 다시 나를 향해 쇄도해 날아왔다. 나는 그녀를 자극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계속 그녀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마주섰을 때부터, 지금 미친 듯이 쇄도하는 지금까지 그녀의 마음을 계속 읽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천소선에게는 저 마음 하나뿐일까? 저 마음만 베어버리면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꽝! 꽝! 꽝!
그녀가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렸다. 한방 한방에 천지가 뒤바뀌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이번에는 선학비술로 그녀를 상대했다. 힘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노인이 마르지 않는 내공을 준 것은, 이런 상황에서 도망갈 때 쓰라고 주진 않았을 테니까.
너 따위에게 지지 않겠다.
상대를 무시해서 드는 마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내 노력을 높이 사는 마음이었다.
그녀 역시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날아드는 주먹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꽝! 꽝! 꽈아앙!
엄살이 아니라 팔이 떨어질 듯 아팠다. 극한의 호신강기와 내공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정말 아팠다. 이때는 한 가지 믿음만이 필요하다.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플 것이다.
그 믿음이 무너지면 진다. 먼저 무너지는 쪽이 지는 것이다.
꽝! 꽝!
주먹이 부서져라 서로의 주먹에 충돌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너무 큰 폭음에 고막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주먹을 주고받았을까?
슁!
이질적인 바람 소리.
그녀가 광살풍을 날렸다.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이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잘 피했다. 광살풍이 어깨 옆을 스치며 지나간 것이다.
그 공격 탓에 잠시 주고받던 주먹 공방이 멈췄다.
공격을 한 사람은 천소선이었지만, 웃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를 죽이기 위해 기습을 날린 것이 아니었다. 힘 싸움에 밀려 버티지 못하고 광살풍을 날린 것이다. 그녀가 더 아팠던 것이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며 천소선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 따위에게!”
다음 순간.
휘리리리리리리릭.
내 몸 주위를 핏빛 넝쿨이 휘감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몸을 옭아매는 그것은 당연히 보통 넝쿨이 아니었다.
엄청난 기운과 함께 몸이 끊어질 듯 나를 압박해왔다.
물론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휘리리릭.
허리에 차고 있던 수라명왕검이 뽑혀서 날아올랐다.
쉭. 쉭. 쉭. 쉭.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나를 연속해서 내리그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검처럼 넝쿨이 나를 옥죄는 곳을 찾아서 정확하고 빠르게 잘라낸 것이다.
서걱! 서걱! 서걱!
그냥 봐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이 수법은 굉장한 것이었다. 까닥 실수를 했다간 살이 베일 수도 있었기에, 아주 정교하게 검을 다뤄야 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빠른 결정이 주요했다.
넝쿨이 다음 단계의 위험을 드러내기 전에, 이 방법으로 잘라내 버리는 결정은, 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없다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퍽, 퍽, 퍽, 퍽.
잘려진 넝쿨이 허공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회심의 한 수가 실패하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바로 이때가 내가 결정적인 한 수를 날려야 할 때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앵!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기어검술인 광속비검을 발출했다. 강수를 아껴선 안 된다. 그녀와의 싸움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으니까.
푸아아아아앙.
빛처럼 날아간 수라명왕검이 그녀의 가슴에 정확히 적중했다.
퍼어어엉!
검에 박힌 채 그녀가 뒤로 날아갔고, 나는 마신지로로 순식간에 그녀를 뒤쫓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통으로 광속비검에 맞았음에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가슴이 관통되지도 않았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피갑옷 때문이었다.
대신 가슴을 흐르고 있는 붉은 기운들이 멍이 든 것처럼 짙어져 있었다. 그녀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정말 아프군.”
내 손으로 되돌아온 수라명왕검을 고쳐 쥐며 내가 말했다.
“유감이군.”
“왜지?”
그녀의 물음에 차갑게 대답했다.
“쉽게 죽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게 될 테니까.”
* * *
천마와 송화린은 연무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나직한 굉음이 저 하늘 끝에서 들려왔다.
부상을 당한 이들은 모두 맹주전에서 멀리 물러나서 치료를 시작했다. 부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시체를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돌봤다.
“아까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괜찮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그럴 필요 없네. 나란 사람은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니네. 그냥 잊고 살게.”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그럼 전 가볼게요.”
송화린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부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천마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의 말이 낯설긴 했지만 싫진 않았다.
그때 그곳으로 갈사량이 걸어왔다.
“싸움이 길어지는군요.”
“걱정 말게. 그 친구는 지지 않을 것이네.”
“네,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천마가 갈사량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떠나겠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저 친구가 내려오면 떠났다고 전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다지 놀라지 않는군?”
“왠지 떠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랬군.”
갈사량은 천마가 계속 무림맹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생각지 못한 순간에 떠나는 것이 오히려 천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맹주님에 대한 믿음이 저만큼 강하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나? 저 친구가 졌을 때를 걱정해서, 이곳에 있다간 죽을 것 같아서 달아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러십니까?”
갈사량의 반문에 천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만에 하나라도 벽리단이 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렇다면 더욱더 떠나야지. 여기 있다가 죽으면 복수의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언젠가 천소선은 정말 복수가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맹주님이 섭섭해하시겠군요.”
“보고 싶으면 찾아오겠지.”
“가실 곳은 정하셨습니까?”
“그냥 당분간은 이곳저곳 강호를 떠돌 생각이네.”
“부디 보중하십시오.”
“자네도.”
천마는 그길로 무림맹을 떠났다.
저 멀리 하늘에서 굉음이 간간히 들려왔다. 지금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리단이 내려오면 떠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계속 무림맹에서 지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떠날 것이다. 떠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너무 친하기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별법으로 헤어져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 * *
슈우우우우우욱!
광속비검이 다시 천소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꽝!
천소선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벌써 네 번째 광속비검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역시 천소선은 관통당하지 않고 광속비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충격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천소선은 수라명왕검을 붙잡아서 파괴하려고 했지만, 광속비검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되돌아 빠져나오는 수라명왕검의 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가슴에 흐르고 있는 피 갑옷은 이제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수라명왕검이 다시 크게 한 바퀴 돌아서 다섯 번째 광속비검을 발휘했다.
쇄애애애애애애액!
꽝!
그녀가 다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마치 땅바닥을 구르듯, 허공을 뒹굴었다.
“잠깐! 잠깐!”
천소선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잠깐이라니?
물론 나는 더욱 거세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승기를 잡았을 때, 어설픈 자비로 반격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승리의 신에게 침을 뱉는 일이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액!
이번에는 그녀의 배에 광속비검이 적중했다.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원래라면 절대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내공소모가 극심한 광속비검을 이렇게 연달아 쏟아부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가 마구잡이로 광살풍을 날렸다.
슁! 슁! 슁! 슁!
그렇게 날린 광살풍이 내게 적중할 리가 없었다. 제대로 날아든 것은 가볍게 피했고, 나머지는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내 광속비검은 정확히 그녀를 적중했다.
쇄애애애애애애액!
꽝!
“으아아아아악!”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반신반인.
그녀는 인간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다. 하나는 확실히 느껴졌고, 다른 하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지금 모습에서 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쪽의 그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완성되지 못한 그 원념덩어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 속에 숨어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과연 그녀의 몸에 있는 신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정심을 느낄까? 아니면 이기적으로 그녀를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할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아무 감정이 없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너는 어디에 있느냐?
쇄애애애애애애액!
꽝!
이번에는 제대로 광속비검에 적중당했다.
천소선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 드러누워 있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가 소리쳤다.
“천하진!”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늘에 울려 퍼졌다. 발악과도 같은 외침이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 나다.”
그녀는 양사휘에게 내가 천하진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왜 운명은 당신과 이곳에 마주서게 한 것이지?”
천소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왜!”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 운명이 마주서게 한 것은 너와 나가 아닐 거다.”
그녀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너는 단지 이용당했을 뿐, 운명이 나와 마주서게 한 존재는 네 몸에 있는 또 다른 무엇인가겠지.”
“내 몸에 또 다른 무엇인가?”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분노하며 소리쳤다.
“내 몸속에 그딴 것은 없다!”
“증명해봐.”
“증명? 어떻게?”
“네 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봐.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나뿐이라고?”
“그래, 만약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운명이 마주서게 한 것이 나와 너라는 것을 인정하지.”
충분히 그럴 듯한 이유도 있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몸 밖으로 내보냈으니.”
“헛소리!”
천소선이 원망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