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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91화 (2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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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귀환(4)

무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무양장.

천소선이 마지막 희생자에게서 피와 내공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털썩.

이윽고 그녀가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을 때, 옆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양사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지.”

그가 성큼성큼 걸어서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마부석에 올라타려던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라면 배가 고프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할 그녀가 오늘따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러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양사휘가 다시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은가?”

바로 그때 천소선이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두 눈은 온통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기운이 너무 강해 양사휘가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감싸고 확 잡아 당겼다.

순식간에 천소선의 손에 멱살을 잡혔다.

“버러지 같은 놈!”

그녀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혈기가 너무 강렬해서 양사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이러나? 정신 차리게!”

“드디어 네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양사휘는 알 수 있었다.

“드디어 혈종비연공의 대성을 이루었구나!”

“그렇다.”

“하하하. 정말 잘되었다!”

“곧 죽을 놈이 왜 이리 좋아하느냐?”

“죽는다고? 왜?”

양사휘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천소선이 당황했다.

“왜 나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넌 너무 건방지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죽이겠다는 말인가? 넌 고작 그런 인간에 불과한가?”

“그딴 소리 해봤자 너만 불쌍해진다. 내가 형편없어질수록, 넌 형편없는 놈에게 죽는 것이니까.”

“년이겠지.”

순간 천소선의 눈에서 살기가 솟구쳤다.

양사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이유는?”

“나를 죽이면 너도 죽기 때문이다.”

천소선의 눈빛에서 더욱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양사휘는 눈은 질끈 감을지언정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내 몸과 네 몸에 연리고(連理蠱)라고 불리는 한 쌍의 벌레가 들어있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도 죽는다. 물론 주인의 생명과도 이어져 있지. 내가 죽으면 내 몸 안의 연리고가 죽고, 그렇게 되면 네 몸의 연리고가 죽으면서 너도 죽는다. 확인하고 싶으면 당장 확인해 보도록.”

천소선이 더욱 거칠게 멱살을 틀어쥐었지만, 양사휘는 절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잠시 후 천소선이 틀어쥐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혈기가 사라지자 그제야 양사휘가 눈을 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양사휘는 그녀의 배신을 예감하고 있었고,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연리고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혈신이 강림하는 것을 보기 전까진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다.”

가만히 양사휘를 응시하던 천소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뭔가를 토해냈다.

“쿠에엑.”

그녀의 입을 통해 커다란 누에 같은 벌레가 나왔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연분홍 빛깔의 누에는 너무나 징그러웠다.

그것을 짓밟으려고 천소선이 발을 번쩍 들었다.

“안 돼!”

양사휘가 간절히 소리치며 엎드려 몸으로 막았다. 그것은 바로 천소선의 뱃속에 심어둔 연리고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한번 몸에 심어지면 어떤 수를 써도 빼낼 수 없다고 알려진 연리고였다.

“나는 혈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다.”

양사휘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천소선이 손을 스윽 내밀었다.

“으아아아악!”

양사휘가 비명을 내질렀다.

찌이이이이익.

그의 배를 찢으며 또 다른 연리고가 튀어나왔다. 창자를 찢고, 다시 뱃가죽을 찢고 나왔으니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양사휘가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했지만 고통과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천소선이 사정없이 연리고를 밟아버렸다.

꽈직.

하나가 죽자 다른 하나도 펑하면서 터졌다.

“그래, 세상이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게 해주지. 네가 얼마나 버러지 같은 인간인지 알게 될 거다.”

천소선이 먼저 걸어가서 마차에 올라탔다.

“타라.”

마치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 그녀는 뒤에 실린 천란에 들어가지 않고 마부석에 앉았다.

“어디로 가는 건가?”

양사휘가 비틀거리며 걸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

천소선이 마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세상을 바꾸러 간다.”

* * *

입신관의 문이 다시 열렸다.

거짓말처럼 어제의 그 스무 명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 확신할 수 없었지만, 왠지 어제의 그들인 것 같았다. 안내인의 말처럼 그들은 무한반복해서 다시 태어나는 모양이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하지만 누구도 인사를 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자들인가? 혹은 흑마군에서 백마군으로 바뀌면 말을 하는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자, 다시 해보자고!”

내가 먼저 허공을 붕 날아서 놈들에게 쇄도했다.

쇄애애애액!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단칼에 네 명이 쓰러졌다. 내 신형이 한 번 더 회전했다.

빠아악!

뒤따라 달려들던 마군의 턱을 돌려차기로 강타했다.

날아간 마군이 뒤따르던 마군들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다시 또 다른 마군에게 몸을 날려서 무릎으로 턱을 강타하며 다시 수라명왕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애액.

좌우에서 달려들던 두 명의 마군이 동시에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나는 손과 발, 검을 적절하게 사용한서 그들을 상대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스물을 쓰러뜨린 내가 앞으로 내달렸다.

삼십, 사십, 오십, 육십. 어제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숫자가 튀어나왔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들을 처리했다.

오늘도 내공의 반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론상으로는 내공의 반만 사용하고 돌아가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반의 내공으로 왔으니 남은 반으로 돌아간다면, 지나온 길의 마군들이 다시 다 부활해 있다 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목숨을 건 싸움이니 방심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배제하기로 했다.

두 번째 관문은 어제와는 달리 직접 다 처리했다. 물론 그만큼 더 위험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암기에는 독이 발려져 있었는데, 만독지체의 몸이라고 하지만 이곳의 독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그들을 상대해서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아예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서 통나무를 하나 챙겨서 갔다.

오늘은 세 번째 늪 관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싸우면서 보니까, 놈들은 통나무는 무시하고 나만 공격했다. 적어도 이 늪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군들은 지적인 싸움보다는 나를 죽이겠다는 살의가 더 앞서 있었다.

어제는 통나무를 내력으로 계속 이동시켰는데, 이번에는 아예 통나무를 늪 끝까지 내던졌다. 그리고 몸을 날려서 그 통나무에 올라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아가는 통나무에 올라타는 그 짧은 순간 소모된 내공이 지속적으로 통나무를 이동시키는 내공보다 더 많이 소모된 것이다. 정말이지 독에 난 큰 구멍처럼, 내공이 콸콸 쏟아지듯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날아가는 속도가 빨라서 상대해야 하는 마군의 숫자가 줄었다. 덕분에 비슷한 내공을 소모한 후 그곳을 통과했다.

네 번째 마물들은 마신혈우로 상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수백 마리의 마물들을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쏴아아아아아악.

내리는 검기에 마물들이 모두 죽었다.

어제는 여기까지만 처리한 후에 되돌아갔다.

하지만 오늘은 내공이 삼분지 이 이상이 남아 있었다.

다시 다음 관문으로 들어섰다.

바둑판처럼 규칙적인 줄이 그어진 너른 평원, 그곳에 들어서자 진법이 발동했다.

이곳 관문은 진법의 관문이었던 것이다.

앞서 내가 흑지를 돌파해 들어갈 때 펼쳐져 있었던 진법과 비슷한 수준의 진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힘으로 밀어붙여서 파훼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그 말은 곧 그때처럼 상당한 내공이 소모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내 스스로 생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생문만 찾아내면 이곳은 내공소모 없이 그냥 통과할 수도 있었다.

과거 갈사량과 진법 공부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힘으로 돌파하면 내공이 반쯤 남을 것이다. 내가 세운 규칙을 생각하자면 곧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

다음 단계가 곧바로 시작되고, 그것이 이전 관문보다 훨씬 어렵다면, 나는 내공의 반이 남았을 때 돌아간다는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 관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은 잠시 접었다. 어차피 관문은 계속될 텐데. 차라리 순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진법의 생문을 찾기 시작했다.

* * *

동굴로 돌아온 나는 내부의 석실에서 밥을 짓고 있는 안내인을 찾아갔다.

“혹시 진법과 관련한 책자를 구할 수 있소?”

“시험 내에 설치된 진법의 파훼법을 원하시는 것이라면 불가합니다. 아니고 진법 공부를 위한 책자라면 가능합니다.”

“공부를 위한 책자면 충분하오. 되도록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면 더욱 좋을 테고.”

“구해드리지요.”

“고맙소.”

나는 두 시진이나 헤맸지만 결국 여섯 번째 관문에 펼쳐진 진법의 생문은 찾아내지 못했다.

갈사량 정도의 수준이라면 모를까, 아직 내 수준은 처음 접하는 진법의 생문을 척척 알아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진법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았다. 조심조심 생문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

소생연에 몸을 담근 채 쉬고 있으니 안내인이 몇 권의 책자를 가져왔다.

나는 소생연에 몸을 담근 채 책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안내인이 넌지시 말했다.

“역시 보통 분은 아니시군요.”

“왜 그러시오?”

“이런 경우에 보통 사람은 공부를 해서 진법을 통과할 생각을 하진 못할 테니까요.”

“과찬이시오.”

어떤 큰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이 앞서거나 서두르게 되면 도리어 낭패를 당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이다.

먼 길일수록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여정’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

진법책에 시선을 둔 채 내가 물었다.

“이곳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있었소?”

그러자 안내인이 대답했다.

“제가 안내를 맡은 이후에는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거기까진 저는 잘 모릅니다.”

“알겠소. 대답해 줘서 고맙소.”

“별말씀을요. 저녁 식사는 반 시진쯤 후에 준비하겠습니다.”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것 같소.”

“하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마신이 되는 시험장에서 그런 인간적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잘 드셔야 시험을 통과하지요.”

“고맙소.”

안내인이 식사를 차리러 갔고 난 다시 진법책에 집중했다.

* * *

“군사님!”

수하군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갈사량이 내심 마음을 다잡았다. 최근에 놀랄 일이 더 있겠나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무슨 일이냐?”

“그게…… 이상한 것이 출현했습니다.”

“이상한 것?”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자.”

그것은 무림맹 본단 뒤쪽에 출현했다고 했다.

수하 군사들과 함께 무림맹 본단 대연무장에 도착했다. 이미 멸마단 무인들이 일대를 철통같이 통제하고 있었다.

백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무슨 일인가?”

“저를 따라오십시오.”

백표가 한옆으로 갈사량을 데려갔다. 한옆에 무인들이 띠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이 입구를 열어주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갈사량은 깜짝 놀랐다.

“저것은?”

알처럼 생긴 것이 세워져 있었다.

“천란!”

갈사량은 그것이 천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벽리단의 말에 의하면 맹주전 지하밀실에 있었는데, 천소선과 함께 사라졌었다고 했다. 그것을 마차에 싣고 다녔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림맹 앞마당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세워져 있었다. 땅에 박히지도 않았는데, 놀랍게도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갈사량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저길 보십시오.”

백표가 가리키는 곳은 천란의 테두리였다. 그곳은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속이 보였다. 그 아래 부분에 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발견한 이후부터 피가 아주 조금씩 차오르고 있습니다.”

“차오르고 있다고?”

“네. 아주 천천히 차오르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다 차게 되나?”

“차오르는 속도를 계산해본 결과 삼 일 후면 다 찰 것 같습니다.”

갈사량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삼 일 후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반드시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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